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105화 (105/381)

105화

크라켄은 문어나 오징어를 닮은 몬 스터였다.

바다몬스터 중에서도 유달리 호전 적이라고 알려진 그 크라켄이 습격 해 온 것이었다.

강현과 임모벨 백작은 목검을 내동 댕이치고 각자 자신의 검을 들었다.

“백작님은 황녀님께 가십시오. 저 는 바로 갑판으로 가겠습니다.”

“에르델을 데리고 갑판으로 가겠 네. 크라켄은 선박을 통째로 부수는 놈이라서 갑판 쪽이 더 안전해.”

“웬만하면 선박이 부서기지 전에 처리하겠습니다.”

“만약 에르델이 바다에 빠지게 되 는 상황이 오면 가만두지 않겠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강현은 임모벨 백작과 헤어지고 갑 판 위로 올라갔다.

갑판에선 이미 거대한 크라켄의 다 리들이 올라와 사람이며 돛대 따위 의 선박 곳곳을 휘감고 있었다. 선원들은 조잡하게나마 무기를 들 고 크라켄 다리를 찔러 대기 바빴 다.

“싸울 수 있는 자는 전부 무기를 들어! 승객 여러분께서도 싸울 수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크옥! 살이 너무 두꺼워서 무기가 박혀 들어가질 않아!”

“돛대가 부러진다! 돛대부터 지켜!”

아수라장 속에서 가장 급한 건 돛 대였다.

크라켄의 다리가 칭칭 휘감겨 조여 가자,돛대가 버티지 못하고 흔들리 고 있었다.

강현은 빙백검을 뽑아 돛대로 달려 가며 크라켄의 다리 수를 확인했다. 하나,둘,셋,넷…… 아홉,열.

총 열 개인가.

오징어 타입의 크라켄이군.

크라켄의 타입은 문어와 오징어로, 두 가지가 종류가 있었다.

문어 타입은 일정 데미지를 입으면 먹물을 내뱉었는데 그 먹물이 눈에 들어가면 실명 당한다.

오징어 타입은 먹물을 내뱉지 않는 대신 다리의 힘이 훨씬 강력한 편이 다.

강현으로선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 다.

마나 블레어드 앞에선 문어든,오 징어든 똑같이 갈라질 뿐이기에. 돛대까지 순식간에 주파한 강현이 빙백검을 세로로 내리쳤다.

서격!

빙백검의 날에 마나 블레이드가 둘 러지면서 크라켄의 다리를 두 쪽 내 버렸다.

하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리가 잘려 나갔음에도 아직 붙어 있는 크라켄의 다리는 힘을 잃지 않고 계속 돛대를 압박했다.

아예 산산이 조각내 버려야 하는 건가.

강현이 크라켄의 다리에 붙은 빨판 을 밟고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갑판에 떨어짐과 동시에 검 을 길게 내리그었다.

돛대에 나선 형태로 칭칭 감긴 크 라켄의 다리가 툭툭 끊어지고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강현이 다리 하나를 처리하는 사 이,갑판 위는 더욱 엉망이 되어 가 고 있었다.

선체 전방과 후방을 휘감고 있는 다리들이 힘을 줄 때마다 선체가 비 명을 질렀다.

끼이익! 끼릭끼릭!

이대로 가다간 배가 통째로 부서질 판이었다.

물속에서의 전투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쉬프 섬까지 이틀거 리나 남아 있다.

바다 한복판에서 표류하는 것만큼 은 피해야 한다.

남은 다리는 9개.

선박은 부서지기 일보직전.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놈의 몸통을 직접 공략해야겠군.

주변을 둘러보자 선체 앞부분 위로 솟아나 있는 보랏빛 몸통부가 보였 다.

즉시 몸을 날렸다.

강현의 등장을 알아첸 선원들이 구 세주를 만난 양 소리쳤다.

“푸,푸른 비늘검! 빙검의 기사다!”

“빙검의 기사다! 연합 기사단의 그 최강현 경이라고! 그 사람이 이 배 에 타고 있었어!”

“최강현 경! 도와주십시오! 저희 선원이 놈에게 붙잡혔습니다!”

강현을 알아본 사람들이 도움을 요 청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사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늘어났다.

개중에는 자신들의 안전부터 챙기 려는 이기적인 심보들도 있었다.

“이보시오! 도와 달라는 말 안 들

리시오? 얼른 내 동료부터 구하란 말이오!”

“당신들 연합 기사단에게 들어가는 세금이 얼만데 얼른 구해 주지 않고 뭐 하냐고!”

“최강현 경! 저쪽은 이미 가망이 없습니다! 우리부터 구해 주시오!”

화재 속 소방관의 기분이 이럴까. 급박함에 몰려 악바리를 쓰면서 강 현을 재촉하는 이들이었다.

강현은 그들의 소리를 무시했다. 위기감 때문에 시야가 좁아진 자들 의 말 따위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 다.

지금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게 먼저다.

강현은 곳곳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홀려 넘기며 크라켄의 몸체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뱃머리에 다다르자, 이물에 매달리듯 붙어 있는 크라켄 의 몸체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보랏빛의 미끄덩한 몸뚱이에서 그 로테스크한 혐오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강현은 망설임 없이 놈에게 뛰어내렸다.

낙하하는 와중에 빙백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제왕의 화염검을 소환했 다.

동시에 엘레멘탈 웨펀 스킬을 발동 하여 화 속성 효과를 덧입혔다.

화르륵!

제왕의 화염검에 엘레멘탈 웨펀의 효과까지 더해지자 불길이 더욱 거 세게 타올랐다.

그리고 이윽고 놈의 몸체에 두 발 이 닿기 직전,크라켄의 몸통 한가 운데 화염검을 내리꽂았다.

화염검이 크라켄의 외투막을 태우 며 데친 오징어를 자르듯 깊숙이 파 고들었다.

푸우욱!

화염검이 파고든 주변으로 붉은 화 상이 피어났다.

엘레멘탈 웨펀 화 속성 공격의 효 과인 화룡의 낙인이 찍힌 것이었다. 이어서 강현은 증폭 스렛의 효과를 발동했다.

강현이 가한 데미지가 그대로 복사 되어 후폭풍처럼 퍼져 나갔다.

후폭풍은 화룡의 낙인에 의해 1.2 배 증가하여 평소보다 2할 증가한 데미지가 크라켄의 내부에 작렬했 다.

몸속에서 작렬한 폭발력을 견디지 못한 크라켄이 부르르 떨다가 추욱 늘어졌다.

강현은 크라켄이 사망했는지 확인 한 이후에야 제왕의 화염검을 뽑아 냈다.

‘그나마 레벨 70짜리 몬스터라 다 행이군. 레벨 100이 넘는 리바이어 던 같은 게 나타났으면 선박 같은 건 애저녁에 부서지고 없있겠지.’

크라켄을 쓰러트리기는 했지만 완 전하게 상황이 해제된 건 아니었다. 놈이 죽은 이후에도 빨판이 붙은 다리는 여전히 선박 곳곳에 매달려 있었다.

강현은 다시 갑판 위로 을라 선박 에 휘감긴 크라켄의 다리를 일일이 잘라 냈다.

일련의 작업이 끝나고 선박에 들이 닥친 위기가 일단락되었다.

호위로 부른 인어 용병들 외엔 사 망자가 없었다.

크라켄의 다리에 잡혔다가 풀려난 부상자라 해 봐야 골절상을 당한 정 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현에게 감사

를 표했으나,몇몇 승객들이 불평을 토했다.

“이봐,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으윽,기다려.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아. 젠장,빨리 풀려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연합 기사단이라더니 크라켄 하나 빨리 처리 못하고 뭐하는 건지 원. 우리가 뭣 때문에 세금을 내고 있다 고 생각하는 거야?”

그나마 강현이 빨리 크라켄을 처리 해 준 덕분에 목숨이나마 부지한 것 인데 투덜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마냥 보호 받아야 할 선량 한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작자들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갑질을 할 상대도 잘 골라 야 하는 법이다.

강현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시끄럽게 소란을 키우느니,차라리 크라켄과 같이 묻어 주는 게 나으려 나.

그때 였다.

어느새 갑판으로 나온 에르델이 임 모벨 백작의 검을 검집째로 빌려 바 닥에 내리찍었다.

쿵!

“비와 햇살을 당연히 여기는 자 살 아 있는 줄도 모르는 자이니! 마땅 히 검으로 베여도 할 말이 없을지어 다! 감히 누가 은혜도 모르고 빙검 의 기사를 모욕하느냐!”

로브를 벗고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에르델의 자태는 평소의 온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르델은 여지없이 강인함을 표출 하며 검집째로 투덜거리는 이를 겨 누었다.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괜히 뽑으려다가 반만 뽑히면 기세가 살지 않으니까 검집 째로 겨눈 거군.

강현의 직설적인 감상과는 별개로, 투덜거리던 승객들에겐 충분한 위협 이 되었다.

승객들이 에르델의 모습을 알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델의 기품

넘치는 모습에 보통 신분이 아님을 느끼곤 저도 모르게 경어를 썼다.

“다,당신은 누구십니까?”

“제국의 제3황녀,나 엘리오스 킨 에르델이 묻건대 그대는 무슨 이유 로 빙검의 기사를 욕보이게 했지? 그는 나의 은인이니,그를 욕보이는 건 곧 나를 욕보이는 것. 대답 여하 에 따라 가만두지 않겠다.”

승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 에 없었다.

귀족도 아니고 황족이라니?

황궁에 있어야 할 황족이 어이하여 이곳에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강현과 에르델은 상당 히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다.

강현이 실물인 이상 에르델도 실물 일 터.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긴 자들이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에,에,에르델 황녀님! 제,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이 우매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사과를 할 방향을 착각하는 것 또 한 본녀를 우습게 보기 때문인가?”

“아,아닙니다! 최,최강현 경 저희 의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곳곳에서 사죄와 용서를 구하는 말 이 쏟아졌다.

무릎을 꿇은 선객들 뒤로 에르델이 강현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갑판 위의 상황이 일단락된 가운데 강현과 에르델,임모벨 백작은 선박 안쪽으로 되돌아왔다.

선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에르델 이 입을 열었다.

“아? 조용히 이동하려고 했는데 여기서 말짱 도루묵이 되었네요.”

“그런 것치곤 말투가 홀가분해 보 입니다만.”

“어쩔 수 없죠. 제가 나서지 않았 으면 강현 경이 무슨 짓을 할지 모 르니 까요.”

“정말 그런 이유입니까?”

“쪼끔 짜증나긴 했었어요. 강현 경 이 욕먹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 야죠.”

“절 위해 나서 주셨던 거군요.”

“그거야 당연히…… 무,무슨 말을 하게 하는 거예요? 지금 놀찍는 거 죠?”

“아뇨,감사하는 겁니다만.”

“놀리는 거 맞잖아요. 강현 경 심 술쟁이.”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지자 뒤따 라오던 임모벨 백작이 헛기침을 했 다.

“흠흠,나 아직 여기 있다.”

임모벨 백작이 존재감을 어필하든 말든 에르델은 강현의 팔뚝을 투닥 투닥 두드리며 새침 떨기 바빴다.

“자꾸 놀리면 황녀 권한으로 혼내 줄 거예요.”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말을 아끼 겠습니다.”

“아니,그럴 필요까진…… 이 정도 는 용서해 주겠어요.”

할애비의 존재조차 잊을 정도로 마 음껏 밀당당하고 있는 에르델이었 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는 임모 벨 백작으로선 머리가 지끈거릴 뿐 이었다.

‘저 꼴을 안 보려면 내기에서 이겨 야 하는데. 근데 대련을 하면 또 기 술을 흡수당할 거고. 아이고,머리 야. 완전히 저놈 손바닥 안에서 놀 고 있구나.’

?

수천 마리의 양을 풀어놓고 기르는 쉬프 섬.

푸르른 벌판에 헤쳐 놓은 수많은 양들로 인해,에메랄드 빛 하늘에 하얀 구름이 무리지어 움직이는 듯 한 광경이 대지에서 펼쳐졌다. 절경으로 치면 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평화로운 섬이었다. 한가롭다는 말이 어울리는 섬에 짜 리몽땅한 남자애 하나가 나비를 쫓 고 있었다.

“나비. 나비. 우헤헤.”

겉보기에는 유달리 팔과 다리가 짧 은 어린애처럼 보이나 실상은 드워프족 아이였다.

포푸 로드 데이먼드.

이제 막 4살밖에 되지 않은 이 아 이는 그저 뛰어놀기 좋아하는 순진 무구한 꼬마에 불과했다.

포푸는 아리따운 날갯짓을 하는 잿 빛 나비를 따라 두 팔 벌려 따라다 니고 있었다.

“우헤헤,예쁜 나비. 벨런한테 보여 줘야지.”

잿빛 나비는 자신을 잡으려는 작은 무법자를 피해 외진 숲 속으로 들어 갔다.

포푸 역시 나비를 따라 수풀 사이 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포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나비가 아닌 바스타드 소드였다.

푸욱!

날카롭게 벼려진 바스타드 소드가 여린 살을 파고들었다.

포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지도 모른 채 바들바들 떨었다.

생전 처음 겪는 쇠붙이의 감각 때 문이 아니었다.

수풀 사이에 숨은 음흉한 눈길 때 문이었다.

그 눈길의 주인은 시리도록 반짝이 는 금발의 사내였다.

그 금발의 사내 옆에서 로브 차림 의 소년이 나타나며 얼굴을 찡그렸 다.

“너무 깊게 찌른 거 아냐?”

금발의 사내,스카텐드는 바스타드 소드를 잘근잘근 비틀며 말했다.

“처참하게 죽일수록 효과가 좋지 않겠어?”

“바스타드 소드의 흔적을 남겨서 좋을 건 없어. 어디까지나 최강현이 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게 목적이잖 아.”

“인상 펴. 찔러 버린다.”

“작전에 동의한 건 스카텐드라고. 그럼 내 말에 따라 줘야지.”

“알겠으니까,그쯤 해 둬. 네 잔소 리는 귀 속에서 응응거려서 짜증난 다고. 그나저나 어린애라서 그런지 손맛이 별로구만.”

스카텐드가 포푸의 몸에서 바스타

드 소드를 빼냈다. 그러곤 아무 감 흥 없이 몸을 돌리며 손톱만 한 물 건을 적당한 곳에 던져두었다.

용과 독수리가 새겨진 문양이 박힌 배지.

제국의 연합 기사단을 의미하는 배 지였다.

볼일을 마친 두 사내가 어두운 숲 너머로 사라졌다.

포푸는 피에 젖은 채 그 어린 몸 을 바들바들 떨며 싸늘한 바닥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벨…… 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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