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화
강현도 빙백검과 비슷한 길이의 나 뭇가지를 주워 들며 고개를 끄덕였 다.
“대련 방식은 어떤 걸로 하시겠습 니까?”
“대련 대회 공식룰로 가세. 마나 사용 금지,눈 공격 금지,격투기 사용 가능일세.”
“삼 수 양보 해 드립니까?”
“허허허,아직 노약자라 불릴 정도 는 아니니 힘껏 덤벼 보거라.”
선공을 양보하듯 하반신을 단단히 고정하며 기다려 주는 임모벨 백작 이었다.
강현은 거리낄 것 없이 거리를 좁 히며 나뭇가지 끝을 조금씩 흔들었 다.
더불어 임모벨 백작의 옆구리를 힐 끗 본 후 다른 신체 부위를 보는 척했다.
‘휘두른다’라는 간단한 동작 하나 에 시선,팔다리,타이밍 등 갖가지 허수가 섞여 있었다.
임모벨 백작은 강현의 움직임을 같 잖은 듯 바라보았다.
'애송이 녀석 눈속임이 능숙하구 만. 조금은 검을 다룰 줄 아는군.’ 강현은 나뭇가지를 찌르는 척하다 가 손목을 비틀어 옆구리를 그었다. 처음에는 강현의 찌르기를 쳐 내려던 임모벨 백작이 능숙하게 나뭇가 지를 옮겨 강현의 공격을 막아 냈 다.
따악!
강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굽 혔다가 펴며 나뭇가지를 위로 을려 쳤다.
옆구리 공격이 막힐 것까지 고려한 연계공격이었다.
한데 그 순간,임모벨 백작의 나뭇 가지가 강현의 나뭇가지 중앙을 내 리눌렀다.
검에 완전히 힘이 실리기 전에 막 아 낸 것이다.
강현이 눈을 빛냈다.
바로 이 기술이다.
순간적으로 타이밍을 계산하여 힘 이 실리기 전에 막아 내는 기술. 강현은 다리를 뻗어 임모벨 백작의 왼쪽 다리 바깥을 걷어차려 했다. 상체에 공격을 가하면 발쪽은 사각 이 된다.
그런데 임모벨 백작은 강현의 옆으 로 돌아서는 걸로 검의 경합을 유지 함과 동시에 발차기를 피했다. 그러곤 강현이 헛발질을 유도하여 일순 자세가 흐트러진 걸 놓치지 않 고 나뭇가지를 짧게 휘둘렀다.
“옷차! 팔이 비었구먼.”
퍽!
임모벨 백작의 나뭇가지가 강현의 팔뚝을 때렸다.
대련이란 명목으로 실드를 끌어 올 리지 않았기에 타격이 그대로 몸에 전해졌다.
굉장히 짧게 휘둘렀는데도 팔뚝이 욱신거렸다.
급격한 체중이동 속에서도 온전히 허릿심을 실었다는 증거였다.
강현은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디디 곤 우직하게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낭비가 없는 동작이었으나 임모벨 백작은 강현의 나뭇가지가 휘둘러지 기 전에 먼저 경합을 이루었다.
따악!
또다시 힘이 실리기 전에 맞부딪친 탓에 강현의 나뭇가지가 완전히 떨 어지지 못했다.
동시에 임모벨 백작이 자신의 발목 을 후크처럼 이용하여 강현의 발목 에 걸었다.
“대결에서 다리를 고정하면 쓰나.”
임모벨 백작이 발목을 움직이자 강 현의 가랑이가 벌어지면서 균형이 흐트러졌다.
또 한 번 틈이 생기자 임모벨 백 작의 나뭇가지가 머리에 날아들었 다.
“머리!”
강현은 무의식중에 수정 스텟의 효 과를 발동했다.
스텟 효과는 스킬도 아니고,마나 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임모벨 백작이 휘두른 나뭇가지의
궤도가 틀어지며 강현의 머리 옆으 로 비껴 나갔다.
여유만만 했던 임모벨 백작의 표정 에 처음으로 균열이 일었다.
“요상한 기술을 쓰는구나.”
강현은 임모벨 백작의 공격이 빗나 간 틈을 파고들어 나뭇가지를 사선 으로 을려 그었다.
그런데 임모벨 백작은 빗나가면 빗 나간 대로 그 힘을 그대로 이용해 몸을 반 바퀴 돌렸다. 그러곤 파고 드는 강현의 옆머리에 돌려차기를 먹였다.
퍼억!
“옥!”
강현의 머리가 크게 흔들리면서 옆
으로 밀려났다.
수정 스텟의 효과로 공격이 빗나간 상태에서 돌려차기를 할 줄이야.
대단한 균형 감각이다.
예순이 넘은 나이라고 생각되지 않 을 정도였다.
반면 강현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 임모벨 백작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 며 에르델을 보았다.
‘어떠냐. 할애비도 아직 죽지 않았 단다.’
손녀의 감탄이 들려올 거라 예상했 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에르델은 강현 을 부축하며 임모벨 백작을 흘겨보 았다.
“대련인데 머리를 가격하면 어떻게 해요! 사람 잡을 일 있어요?”
어찌나 화가 났는지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에르델이었다.
임모벨 백작은 예상과 달라도 한참 다른지가 당황을 금치 못했다.
“패,괜찮단다. 정확하게 가격하면 깔끔하게 기절만 시킬 수 있는 기술 이라서……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강현 경,괜찮아요?”
강현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머리가 약간 명 한 것 빼곤 괜찮은 편이었다. 공격적인 수비와 깔끔한 전투 센마치 좀 더 노련해진 네베르를 상 대하는 기분이었다.
강현은 손을 모아 인사를 하며 대 련을 일단락지었다.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나쁘지 않은 솜씨였네. 하지만 최 강의 기사라 불리는 것치곤 생각보 다……
대련에서 이겼기에 한껏 콧대가 높 아진 임모벨 백작이었다.
강현의 속을 긁으려고 어깨에 힘을 주며 들썩이려 했다.
허나 에르델이 발끈하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사과부터 하세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요.”
“사과를 하라고? 대련 중에는 빈번 하게 일어나는 일이잖느냐.”
“할아버지!”
“끄응.”
강현은 에르델을 향해 손을 저었 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떻게 페이 크에 속지 않고 그리 정확하게 막아 낼 수 있는 겁니까?”
맛집이 맛내는 비법을 알려 주고 다니던가.
검사가 자기 검술의 핵심을 말해 줄 리 없었다.
머리 숙여 제자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말이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매몰차게 거절
당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임모벨 백작은 감히 매몰차 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에르델이 눈에 시퍼렇게 불을 켜곤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임모벨 백작은 에르델에게 안겨 있 는 강현을 보곤 눈썹을 썰룩거렸다.
‘끄음,이긴 건 난데 왜 눈치를 봐 야 되는 거지. 이 녀석 설마 일부러 당한 건 아니겠지?’
심하게 당한 척하면서 에르델로 하 여금 강현 편을 들게 한 걸 수도 있다.
적당히 힘을 빼고 대련에 임한 건 지,아니면 정말로 당해 놓곤 운 좋 게 에르델의 동정을 산 건지.
임모벨 백작으로선 어느 쪽이 진실 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강현의 질문에 대답해 줘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손등일세.”
“손등?”
“대답해 줬잖나. 나머지는 자네가 생각하게.”
“황녀님,갑자기 현기증이 나는군 요.”
“역시 후유증이 있는 거죠? 어디 베개 대용으로 쓸 만한 게 없으려 나. 급한 김에 제 무릎에라도…… 강현이 현기증을 호소하며 에르델 에게 기댔다.
임모벨 백작은 하마터면 체면을 잃
고 펄쩍 될 뻔했다.
반신반의했는데 이걸로 확실해졌 다.
놈은 일부러 당한 게 틀림없었다. 에르델을 등에 지고 자신의 검술을 흡수하려는 셈이었다.
덤으로 에르델에게 한껏 안기기까 지.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든다.
임모벨 백작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가까스로 참으며 원하는 대로 대 답해 주었다.
“손등의 위치를 보면 대략적인 공 격방식을 가늠할 수 있네. 거기서 다시 배꼽이나 명치가 향하는 방향 으로 공격 방향을 예상할 수 있지.
배꼽이나 명치는 페이크를 주고 싶 어도 줄 수 없는 부위니까. 이제 직 성이 풀렸나?”
“감사합니다.”
강현의 몸 상태를 고려하여 10분 정도 더 휴식 시간을 가졌다.
대련을 하느라 예정보다 시간이 지 체되 었다.
저녁이 되기 전에 다음 예정지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 다.
강현은 마부석에 앉아 채찍을 쥔 손을 위아래로 계속 뒤집었다.
‘여태까지 시선이나 발의 위치 같 은 것만 신경 썼는데,손등으로 파 악하는 방법도 있었구나.’
강현은 채찍을 검 삼아 여러 각도 에서 준비 자세를 취해 보았다. 손등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니 정 말 준비 자세마다 일정한 각도를 취 하게 되었다.
굳이 상대가 검을 쓰지 않더라도 다양한 무기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시선에서 자신의 손 을 보는 각도와 상대의 손을 보는 각도는 다를 거다.
좀 더 실력자와 대련을 해 봐야 한다.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 방법이나, 검투술도 좀 더 알고 싶은데…… 세부적인 검술 실력을 좀 더 단련한다면 사람뿐만 아니라 인간형 몬 스터와의 싸움에서도 한층 편해질 것이다.
아직 더 강해질 수 있다.
‘공국 최고의 기사란 호칭 같은 건 믿을 만한 게 못 되는군. 여전히 부 족한 게 너무 많아.’
지금은 배고픈 자처럼 계속 부족함 을 느껴야 한다.
좀 더 많은 것을 흡수하고,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
쉴 새 없이 힘을 쏟아 낼 수 있는 나이이지 않은가.
단 한 톨의 시간도 낭비해선 안 된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까.
강현은 스스로에게 긴장감을 심어 주며 즐거운 듯 손등을 움직였다.
*
다음 마을에 도착한 강현 일행은 여지없이 고급 여관을 잡았다.
이번 마을의 고급 여관은 상당히 특이한 구조였다.
여관주인과 종업원이 머무르는 1층 짜리 본채 하나와 여러 개의 별채로 이루어진 여관이었다.
별채마다 마당이 있어서 바비큐도 할 수 있고,작은 연못이 있어 요청만 하면 물고기를 방류하고 낚시를 즐길 수도 있었다.
임모벨 백작은 돌멩이를 연못에 차 넣으며 툴툴거렸다.
“에잉,생각대로 풀리지가 않는구 만.”
여기까지 오는 내내 에르델의 잔소 리를 들어야만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와의 여행이라면 좀 더 오순도순할 줄 알 았는데 잘 풀리지가 않는다.
평소에 자주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나이가 든 탓에 젊은이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씁쓸함이 올라오려던 차에 마당으로 들어서는 강현이 눈에 들어왔다. 임모벨 백작은 씁쓸함을 느낄 새도 없이 분노를 끌어 올렸다.
‘생각해 보면 전부 저 녀석한테 속 았기 때문이잖아. 내가 다시는 속나 봐라.’
강현은 고기와 야채가 담긴 바구니 를 흔들며 지나가다가 문득 멈춰 섰 다.
“저녁 식사 후에 또 대련하지 않으 시겠습니까?”
“흥,또 일부러 당하는 척하며 노 하우를 빼 갈 것 아니더냐.”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텐데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를 하
는구나. 금화를 한 바구니 가져다줘 도 네 녀석한테는 가르쳐 줄 생각이 없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이번 여행 내내 아침저녁으로 대련을 하는 겁 니다. 만약 제가 한 번도 이기지 못 하면 앞으로 에르델 황녀님 주위 1 미터 이내엔 발을 들이지 않겠습니 다.”
임모벨 백작은 문득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요놈 봐라? 또 날 속이려고?
근데 잠시 생각 좀 해 보자.
대련 기술은 내 쪽이 두 단계,아 니 세 단계는 더 높잖아.
이번 여행은 겨우 한 달 반밖에 안
되는데 그사이에 날 넘긴 힘들지. 대련 좀 해 주고 에르델한테서 요 벌레 녀석을 떼 낼 수 있으면 남는 장사이지 않나?
임모벨 백작은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오냐. 내기를 받아들이마. 약속은 지키 거라.”
“사나이 입으로 두말하겠습니까.”
“내기니까 오늘처럼 에르델을 끌어
들이는 건 금지하지. 동의하나?”
“그러지요. 그럼 오늘 저녁부터 시
작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여행 내내 아침저녁으로 대련을 하게 된 두 사람이었다.
임모벨 백작이 속지 않으리라고 다
짐한 지 고작 5분 만에 일어난 일 이었다.
*
고급 여관 별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 능선.
막 강현을 따라잡은 조직의 간부들 이 대기하고 있었다.
김진수는 S급 보구인 고르곤의 검 을 꺼내며 진득한 살기를 품었다.
“속전속결로 끝내지. 오늘밤에 최 강현과 에르델을 척살한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김진수의 등 뒤에서 50명에 가까운 조직원들이 무기를 손에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