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화
검은색 웨이브 보석은 처음이었다.
그것이 황궁의 추측대로 SSS랭크 웨이브라면 대륙 최초로 공략에 나 서는 셈이다.
강현은 집합시킨 벤젠 기사단을 이 끌고 황궁으로 향했다.
황궁에선 사상 초유의 사태인지라 황궁의회부터 말단 병사까지 모두 집합해 있었다.
황궁 본궁 앞에선 먼저 도착한 크 로스 기사단과 퀵실버 기사단이 대 기하고 있었다.
강현의 벤젠 기사단까지 합류하자 황궁의회장 리바시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다들 이미 들있겠지만 SSS랭크로 추정되는 웨이브 보석이 나타났소! 무려 SS랭크 웨이브 보석의 3배 크 기라 하오!”
본궁 앞에 모여 있던 자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웨이브 공략 실패로 발생하는 영지 소멸 현상은 웨이브 보석의 크기에 따라 달라졌다.
SS랭크 보석의 경우에는 어지간한 귀족 영지의 3분지 1을 날려 버린 다.
한데 황궁에 나타난 웨이브 보석의 크기가 그 세 배라면,이는 어지간 한 영지 하나쯤은 통째로 소멸당할 수준이었다.
게다가 검은색 웨이브 보석이 나타 난 위치 또한 문제였다.
“심지어 검은색 웨이브 보석은 상 데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생 성되었소. 공략에 실패하면 샹데르 서부 일대까지 소멸하게 될 거요. 제국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피해를 입은 적이 없는 샹데르가 고작 웨이 브 따위로 상하게 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오! 연합 기사단 소속 의 세 기사단 전원은 지금 당장 웨 이브에 입장하여 반드시 공략해 내 시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입장 가능 인 원은 30명까지였다.
연합 기사단 소속 기사들이 전원 들어가면 딱 맞는 숫자였다.
리바시치는 재차 시간이 없음을 강 조하며 기사단의 출발을 재촉했다.
연합 기사단 소속 세 기사단은 말 에 올라 바쁘게 샹데르 서쪽 너머를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서둘러 이동한 결과,상데 르 서쪽 산봉우리 위로 삐져나온 검 은 보석의 끄트머리를 목격할 수 있 었다.
산봉우리를 넘어서는 모습만 봐도 가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크다는 게 실감되었다.
산 하나를 가뿐히 뒤덮는 기다란
높이와 웅장한 크기.
그야말로 압도당할 만큼 웅장한 위 용이었다.
하나,마냥 놀라고만 있을 수 없었 다.
검은색 웨이브 보석 앞에 다다른 연합 기사단은 바쁘게 장비를 점검 했다.
무기와 방어구를 장비하고,소모성 물품의 잔량을 확인하는 등 곳곳에 서 바쁜 움직임이 이어졌다.
한데 그 와중에도 간간이 투덜거리 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국 놈들 SS랭크도 아슬아슬하게 공략했는데 SSS랭크에서는 안 봐도 뻔한 거 아냐?”
“발목이나 잡지 말아 줬으면 하는 데.”
“차라리 따로 행동할 수 있는 규칙 이라도 생겼으면 좋겠군.”
훈련장에서 여러 번 부딪치면서 사 이가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다. 그뿐이랴.
저번에 아슬아슬하게 웨이브를 공 략한 걸 두고 더더욱 벤젠 기사단을 얕보았다.
웨이브에서 먼 곳에 텔레포트된 건 기억조차 나지 않는 모양이다. 상대가 마음에 안 들수록 나쁜 점 만 기억하기 마련이다.
크로스 기사단과 퀵실버 기사단은 그저 비아냥거리기 바빴다.
강현은 웨이브 안에서 탁류가 몰아 칠 것을 예감했다.
‘크로스 기사단과 퀵실버 기사단도 그리 친한 편은 아닐 테지. 그래도 우릴 쳐낼 수 있을 때가 오면 쳐내 려고 하겠군.’
조직 상층부 보고서에 크로스 기사 단 단장인 오브렌과 퀵실버 기사단 단장인 하워드의 이름은 없었다.
둘 다 조직에 속한 인물은 아니었 다.
하지만 각자 메이아와 드래코프의 세력에 속한 만큼,기회가 되면 벤 젠 기사단을 쳐내란 명령을 하달 받 았을 거다.
크로스,퀵실버 기사단과 벤젠 기
사단 사이에 좋지 않은 기류가 흘렀 다.
먼저 준비를 마친 오브렌이 크로스 기사단을 이끌고 진입에 나섰다. 이어서 벤젠 기사단과 퀵실버 기사 단이 검은색 웨이브 보석 안으로 들 어갔다.
*
동굴을 연상케 하는 거친 돌벽과 천장,바닥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발광이끼,습한 공기까지.
여느 던전이나 웨이브 안과 딱히 다를 게 없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돔형 공간 한
가운데에 커다란 새장이 있다는 점 정도?
입장한 자들은 전원 새장 안에 착 지 했다.
시작부터 새장에 갇혔음을 자각한 기사들이 새장 안을 살폈다.
“단장님,갇힌 것 같습니다.”
단장님이란 호칭에 강현,오브렌, 하워드가 모두 고개를 돌렸다.
세 기사단 모두 자신의 단장을 단 장님이라 부르기에 발생한 현상이었 다.
공략에 들어가기 앞서 호칭 정리부 터 해야 할 것 같았다.
먼저 오브렌이 입을 열었다.
“이래선 단장님이라 할 때마다 신
경 쓰일 것 같군. 각 기사단의 기사 들은 자신의 단장을 부를 때마다 이 름을 덧붙이는 걸로 하지.”
스위스계 이세계인이자 시커먼 피 부와 우락부락한 몸집을 지닌 오브 렌이다.
건틀릿을 주무기로 삼으며 근육을 활용한 싸움이 특기인 자였다. 강현과 하워드로서도 오브렌의 의 견이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이라 여 겼다.
그리하여 세 기사단은 자신의 상관 을 부를 때 무조건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오브렌 단장님,철창 사이에 실드 가 쳐져 있어서 탈출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워드 단장님,공간 12시 방향에 거대한 뱀 한 마리가 있습니다.”
“최강현 단장님,아무래도 새장 안 에선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둣합니 다.”
사방에서 서로의 단장에게 보고를 하다 보니까 정보가 난잡하게 전달 되었다.
보다 못한 오브렌이 재차 말을 꺼 냈다.
“이러니 서로 복잡하기만 하고 효 율성도 떨어지는군. 차라리 이번 공 락에 한해서 총지휘관을 정해 두는 게 낫지 않겠나?”
하워드는 강현을 매섭게 노려보더
니 언짧은 투로 말했다.
“나나 오브렌 중 한 명이 맡는 게 좋겠군. 경험은 나와 오브렌이 더 많으니 말일세.”
효율이란 명목 하에 내놓은 제안이 긴 하나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을 강현이 아니었다.
틈만 나면 자신을 처리하려 드는 자들에게 목숨줄을 맡길 수야 있겠 는가.
강현은 단칼에 거절했다.
“우린 우리대로 행동하지.”
하워드가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발 끈했다.
“자네 공략이 장난으로 보이나? 제 국의 기사에겐 명령 받지 못하겠단 말인가?”
“정확하게 말하면 당신들의 명령을 받기 싫은 거지.”
“이 작자가!”
오브렌이 발끈하는 하워드를 붙잡 으며 둘 사이를 중재했다.
“진정하게.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 가 아닐세. 최강현,좀 더 냉정히 판단해 주게나. 물론 크로스나 퀵실 버는 평소 벤젠과 사이가 좋지 않았 네. 서로 명령 받기 싫어하는 건 당 연한 일이지.”
“잘 알고 있군. 그럼 이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게. 이번 웨이브 공략 때만이라도 평소 의 감정은 미뤄 두고 공략에만 집중해 줄 수 없겠는가? 난 자네가 총 지휘관을 맡더라도 불만 없네.”
총지휘관 자리를 기꺼이 양보하려 는 오브렌이었다.
사적인 감정보단 공략을 우선시하 는 움직임이었다.
하워드는 졸지에 강현의 명령을 받 게 될 처지인지라 펄펄 뛰며 반대했 다.
“난 납득할 수 없네! 뭐가 아쉬워 서 웨이브 공략 경험 10회도 안 되 는 애송이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가!”
“하워드. 여긴 우리가 늘 공략해 왔던 SS랭크 웨이브가 아니잖는가. 게다가 소멸범위 안에 샹데르가 있네. 상데르 주민 800만 명,그중 200만 이상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 황인데 개개인의 자존심을 내세울 때인가?”
“하지만 나는…… 후우,알겠네.”
한숨을 내쉬던 하워드가 얼굴을 잔 뜩 찌푸린 채로 어쩔 수 없이 수락 했다.
샹데르처럼 사람이 많은 곳은 대피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피시킬 장소도 마땅치 않은데다, 대이동 중에 수많은 인명사고가 발 생하기 때문이다.
황궁에선 대혼란을 피하기 위해 검 은색 웨이브 보석이 나타난 걸 민간 에 알리지도 않았다.
그저 모든 책임이며 의무를 연합 기사단에게 맡긴 채로 저희들끼리 미리 몸을 피해 둘 뿐이었다.
실패할 경우 발생할 피해며, 세간 의 비난을 모두 뒤집어쓸 게 뻔하기 에 자존심을 접어서라도 단합을 하 려는 것이었다.
이만큼 양보했으니 강현도 받아들 일 거다.
그러나 이어지는 강현의 대답은 오 브렌과 하워드를 당황케 하고도 남 았다.
“각자 따로. 그 외엔 기각하겠어.”
오브렌은 가슴을 치며 답답함을 호 소했다.
“고집부릴 때가 아닐세. 여기서 뭘
더 양보해 주길 바라는가?”
“양보를 운운할 만큼 내가 만만해 보이나 보군.”
“무슨 소리지?”
“그럼 지금 당장 제물로서 죽으라 고 하면 죽을 수 있나?”
강현이 새장 한편에 달려 있는 문 을 가리켰다.
문에는 공략 문구가 새겨져 있었 다.
[희생의 새장(SSS랭크)]
-공간 12시 방향에는 바실리스크 가 있다.
-새장 입구의 안쪽에 있는 열쇠 구멍에 사람 머리를 넣으면 단두대가 내려와 목을 친다. 사람 1명이 죽으면 생존자 중 1명이 무작위로 새장 바깥으로 이동한다.
-바실리스크는 새장 바깥으로 나 온 사람만 공격한다.
-바실리스크가 죽거나 강제 클리 어 조건을 충족하면 희생의 새장 구 간이 클리어 된다.
[강제 클리어 조건 : 구간 안의 시 체가 6구가 되면 희생의 새장 구간 이 강제로 클리어된다.]
바실리스크와 싸우려면 새장 바깥 으로 나가야 하고,새장 바깥으로 나가려면 사람을 희생해야 한다.
그것도 1명이 희생하면 1명이 무 작위로 나가게 되는 규칙이다. 강현은 오브렌에게 희생양이 되라 고 명령하면 할 것이냐고 물은 것이 었다.
오브렌으로선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었다.
“난 연합 기사단 전체로 따져 봐도 가장 큰 전력 중 하나일세. 내가 먼 저 희생하면 화력이 대폭 감소할 걸 세.”
“내가 총지휘관을 받아들인 상태였 다면 명령에 불복종한 셈이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그딴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지 않나.”
“허울뿐인 명령체계라고 스스로 인 정하는 건가?”
“내 말은……
“입 발린 소리는 그쯤 해 두시지. 각자 살아남기 위해 각자 판단을 내 린다. 그 이상의 효율이 있을 거라 생각하나?”
명령체계 따위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어차피 살고 싶은 놈은 남을 버려 서라도 살려 하고,희생을 각오한 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받아들인 다.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을 손발을 갖느니,벤젠 기사단만 운용하는 게 나았다.
강현은 빙백검을 담고 있는 검갑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각 기사단의 운용은 각자 알아서, 필요할 때만 서로 합의를 보도록 하 지. 불만 있으면 말하도록.”
오브렌이며 하워드는 마치 강현에 게 끌려다니는 느낌을 받았지만 현 재로선 어쩔 수 없었다.
억지로 강현 밑에 숙이고 들어간다 는 선택지도 있으나,그리하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결국 두 사람은 강현의 의견대로 하기로 했다.
이로서 웨이브 내에서의 행동방침 은 결정되었다.
이젠 본격적으로 희생의 새장 구간
을 공략할 차례였다.
분위기는 한껏 거칠어졌지만 세 사 람 모두 감정을 속으로 담아 둔 채 로 공략에 대해 논했다.
“그럼 명령체계는 각자 알아서 하 는 걸로 하고 공략 방법이나 논하 세. SSS랭크 웨이브라 그런지 강제 클리어 조건이란 게 존재하는군.”
“새장 안의 시체라는 건,열쇠 구 멍으로 희생한 시체와 우리끼리 직 접 죽여서 만든 시체를 모두 포함한 숫자겠지?”
“일반 클리어,강제 클리어 두 가 지 루트가 존재하는 건가.”
일반 클리어 루트로 공략했을 경 우,잘하면 1명의 희생만으로 끝날수도 있었다.
누군가 1명이 희생하고 운 좋게 강현,오브렌,하워드 중 한 명이 새장 바깥으로 나가면 바실리스크를 사냥할 수 있다.
셋 다 바실리스크를 사냥할 정도의 무력은 된다.
1명 희생으로 끝낼 확률은 29분의
3.
약 W퍼센트의 확률이다.
하지만 세 마나 마스터가 아닌,기 사단원이 나갈 경우 십중팔구 바실 리스크에게 잡아먹힐 거다.
그리되면 희생자는 2명이 된다. 일반 클리어 루트는 한 번 실패할 때마다 희생자 2명 발생한다.
심지어 새장 바깥에서 죽은 자는 강제 클리어 루트에 포함되지 못하 니,최대 12명까지 희생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강제 클리어 루트는 당장
6명만 죽이면 바로 끝낼 수 있다. 확률에 맡기느냐,확실함을 챙기느 냐.
강현은 선택하기 이전에,공략 문 구에 함정이 있을지부터 생각해 보 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함정이 있 을 만한 구석이 없었다.
'함정이 있으면 꼼수도 있어. 하지 만 함정이 없으면 꼼수도 없지. SSS 랭크는 꼼수 없이 무조건 희생하고 공략하란 의도로 설계된 곳인가.’ 아직 정보가 부족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현재 단계에서 일반 루트냐,강제 루트냐 선택하라면 일반 루트를 고 르겠다.
오브렌과 하워드도 강현과 마찬가 지로 일반 클리어 루트를 택했다.
“일반 클리어 루트로 가도록 하세. 피해는 최소화할수록 좋네.”
“그렇다면 첫 희생자는 어떻게 뽑 을 건가? 지원자가 있다면 모르겠지 만……
오브렌과 하워드가 기사들을 둘러 보았다.
기사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시
선을 돌렸다.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온 웨이브라 지만 아무것도 못해 보고 먼저 죽을 자는 없었다.
누군가 대신 나서 주길 바라는 분 위기가 묻어 나왔지만 끝내 지원자 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오브렌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 다.
“하는 수 없군. 제비뽑기로 뽑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