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80화 (80/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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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고,황궁에도 밤이 찾아 왔다. 황궁 곳곳에 모닥불용 삼발대 가 설치되었다.

삼발대 위의 전나무 장작이 타오르 며 어둠을 물리고 빛을 밝혔다. 수많은 경비병과 궁녀들,야근에 절은 2, 3급 집무관 등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황궁 안을 나돌고 있었다. 강현과 에르델은 간간이 집무관이 나 경비병들의 인사를 받으며 제1별 궁으로 향했다.

제1별궁 앞에 도착하자 별궁을 지 키는 경비병들이 절도 있게 예의를 갖추며 에르델을 맞이했다.

“에르델 황녀님. 이 시간엔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에르델은 허리를 꼿꼿이 펴며 기품 있는 자태를 드러냈다.

“메이아 언니를 만나러 왔어요. 가 벼운 담소나 나누러 왔다고 전해 주 세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경비병 하나가 말을 전하러 갔다가 5분 뒤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멋쩍 은 투로 메이아의 말을 전해 주었다.

“지금 목욕 중이시니 10분만 기다 려 달라 하십니다.”

목욕 중이란 말에 메이아가 이마를 짚으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타이밍 한번 최악이네요.”

당장은 타이밍이 최악이란 말을 알 아들을 수 없었다.

10분 뒤,메이아의 허락이 떨어지 면서 제1별궁 내에 있는 그녀의 침 실로 들어갔다.

강현은 메이아의 침실에 들어서자 마자 에르델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 었다.

“반가워요,최강현 단장. 얼굴 보는 건 처음이네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 어요.”

에르델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강 현에게만 웃어 보이는 한 여인. 보랏빛을 띠는 머리칼에 짙은 벽 안,매끄러운 눈매 아래에 위치한 미인점,형태가 선명하면서도 두꺼운 입술이 돋보이는 외모였다. 어깨가 알맞게 벌어져 있고,물이 고일 둣 깊은 쇄골과 옴폭 들어간 허리 라인,가느다란 발목 라인이 한눈에도 욕정을 자극했다.

에르델이 청순함만을 모아 놓은 미 인이라면,메이아는 섹시함만을 모 아 놓은 미인이었다.

심지어 막 목욕을 마쳐 젖은 머리 칼에 목욕 가운만 걸친 복장은 뇌쇄 적이기 그지없었다.

가운만 걸쳐도 더할 나위 없이 어 울리긴 하나 황녀라는 신분을 감안 하면 파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에르델이 메이아의 차림 새를 지적하고 나섰다.

“언니,외간 남자의 앞이에요. 적어 도 황녀의 품위에 어울리는 차림을 해 주세요.”

메이아는 목덜미가 드러나도록 머 릿결을 넘기며 같잖다는 반응을 보 였다.

“일과 시간 외에 내 침실에서 무엇 을 입고 있든 네가 상관할 바는 아 니지 않아?”

“최소한의 품위는 지켜 달라는 뜻 이었어요.”

“마음에 안 들면 돌아가든가.”

자매끼리라곤 하나 엄연히 손님의 신분으로 방문한 에르델이다.

메이아의 허락 하에 들어온 이상 한 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메이아가 에르델의 체면을 깔아둥개기 직전에 강현이 끼어들었 다.

“슬슬 앉아도 될는지요.”

손님을 들여놓고 아직 자리조차 권 하지 않았다.

메이아는 에르델에게서 시선을 거 두고 흥미로운 눈길로 강현을 바라 보았다.

“얼마든지. 안 그래도 한번쯤은 이 야기해 보고 싶었어. 소문으로만 듣 던 신인 마나 마스터가 어떤 남자일 지 궁금했거든.”

“궁금증은 풀리셨습니까?”

“아직은 아니야. 좀 더 대화를 나 눠 보면 풀릴지도 모르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에서 끈적 거리는 색기가 묻어 나왔다. 어지간한 남자라면 순식간에 매료 되어 흐물흐물 녹아내릴 거다. 그러나 강현은 메이아의 눈 이외에 는 아무 곳에도 시선을 주지 않았 다.

메이아의 외견 따윈 아무래도 좋 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역할은 제1별궁 내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것이다.

오밤중에 찾아든 제3황녀와 공국의 마나 마스터.

제1별궁 안에 있는 자들이라면 강 현과 에르델에게 신경이 쓰일 수밖 에 없다.

강현의 예상대로라면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는 건 기껏해야 1,2시간 정도.

그사이 김혜림과 빅터가 슈타인 백 작의 일기를 찾아내길 바라야 했다.

‘지금쯤이면 수색을 시작했겠군.’

*

카모플라쥬로 위장한 김혜림과 빅 터는 제1별궁 안에 잠입했다.

1층 복도 창문을 통해 들어서자 복도를 거니는 궁녀들이 보였다. 은신 스킬은 모습을 감출 수 있을 뿐,물체와는 부딪치기 때문에 최대 한 조심해서 움직여야 했다.

김혜림은 복도를 돌아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러서야 조그만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제 수색 스킬 써도 될 거예요.”

빅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손 을 대고 스킬을 발동했다.

빅터의 손바닥에서 검은색 기운이 줄줄줄 홀러나오더니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그리고 잠시 후,갈래갈래 나뉜 검 은 기운은 조그마한 생쥐로 변하더 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A급인 ‘하멜론의 쥐’라는 스킬로, 마나로 이루어진 쥐를 만들어 반경 lkm내의 정보를 수집하는 효과가 있었다.

갈라진 벽 틈이나 벌어진 문틈으로 도 드나들 수 있어서 정보 수집에는 이만한 스킬이 없었다.

단점이 있다면 내구성이 낮다는 점 일까. 간단한 침입자 방어용 보구 하나만 설치해도 그 구역엔 들어가 지 못한다.

가까운 예로 예전에 조피스가 간단 한 방어용 보구만으로 빅터의 수색 을 사전에 차단한 적이 있었다.

별궁 안에도 몇몇 방은 따로 마법 진을 설치해 보호하는 걸로 안다. 원래 하멜론의 쥐가 침입하지 못하 는 곳도 오늘은 충전을 늦춰 놓았기 에 얼마든지 침입할 수 있었다.

빅터는 하멜론의 쥐가 가진 눈을

빌려 제1별궁 곳곳을 샅샅이 살펴보 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빅터가 다시 눈 을 떴다.

“금고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썩 좋 은 위치는 아니군요.”

“금고가 찾기 좋은 위치에 있을 리 없죠. 어디 있는데요?”

“황녀의 침실입니다.”

중요한 물품을 곁에 두는 성격이라 더니 아예 침실 안에 설치해 두었나 보다.

그렇다면 문제가 커졌다.

현재 메이아의 침실 안에선 메이아 와 강현,에르델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안에 사람이 버젓이 있는데 수색하 는 건 무리다.

어떻게든 강현에게 메이아를 바깥 으로 끌어내라고 전달해야만 했다.

“강현 씨한테 황녀를 밖으로 유인 해 달란 메시지를 전달해야 해요.”

“침실의 방문이건 창문이건 모조리 닫혀 있습니다. 하멜론 생쥐로는 물 건 전달도 불가능하고요.”

두 사람은 침실에 소식을 전할 방 법을 찾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강현 흉내라도 내면 잘 떠오를까 싶어 턱을 매만져 보았지만 떠오르 는 방법이 없었다.

척하면 척하고 방법이 나와야 하는 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카모플라쥬에 의해 마나만 계속 닮 아 가기만 하던 때.

복도 코너를 돌아 계단을 올라가는 궁녀가 눈에 들어왔다.

김혜림은 궁녀가 술과 안주를 담은 쟁반을 들고 있음을 확인하곤 곧바 로 발걸음을 뗐다.

“저 궁녀를 따라가죠. 분명 침실에 술과 안주를 가져가는 걸 거예요.”

김혜림과 빅터는 계단을 밟아 오르 며 아슬아슬하게 궁녀의 뒤에 따라 붙었다.

과연 궁녀는 3층 황녀의 방 앞에 멈추어 선 후 노크를 했다.

“메이아 황녀님. 술상을 봐 왔습니 다.”

“들어와.”

궁녀가 문을 열고 예를 갖추면서 짧게나마 방문이 열린 채로 방치되 었다.

김혜림과 빅터는 그 틈을 타고 재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예를 갖춘 궁녀가 문을 닫곤 침실 안 테이블에 술상을 차렸다.

메이아는 차게 식은 도자기 술병을 들며 말했다.

“이리 발걸음을 해 줬으니 최소한 의 대접이라도 해야겠지. 술은 잘 마시는 편?”

강현이 대답했다.

“그럭저럭입니다.”

“그나저나 정말로 가벼운 담소나

나누러 온 건 아닐 테고. 내게 무슨 할 말이라도?”

“황녀님과 재미있는 거래를 하고자 합니다.”

“나와 강현 경의 거래? 아니면 나 와 에르델의 거래?”

“딱히 구분 지을 만한 정도의 거래 는 아닙니다.”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기에 이야기 는 다소 느긋하게 진행되었다.

한편 빅터는 메이아를 보곤 하마터 면 큰소리를 낼 뻔했다.

대화를 나누고 있단 건 알고 있었 지만 이리 뇌쇄적인 분위기일 줄은 몰랐다.

남자인 이상 메이아의 흐트러진 차

림 앞에서 눈길이 안 갈 수가 없었 다.

김혜림이 한심하단 눈으로 빅터를 째려보았다.

‘이 긴박한 상황에 한눈이 팔려 요?’

‘아니,제가 한눈을 팔았다기보 단…… 그나저나 걱정되지 않으십니 까? 단장님도 남자니까 흔들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정도로 흔들릴 남자였으면 저 도 고생 안 해요.’

김혜림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 쓱이며 강현의 뒤로 걸어갔다. 강현과 메이아,에르델이 한 자리 에 모여 있으니 자연스레 메이아의 코앞까지 접근한 셈이었다.

대담하기 그지없는 움직임 속에서 김혜림이 강현의 등에 검지를 붙였 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글자를 그렸 다.

둥에 글자 적어서 뭐 썼는지 맞추 기.

초등학생 때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거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보다 효율적인 전달 방법이 있을까.

갑작스럽게 등에서 감촉이 느껴졌 을 터이건만 강현에게선 표정 변화 한 점 없었다.

김혜림의 대담함도 대담함이지만 빅터는 강현의 반응이 더 신기했다.

'저 사람한테 표정이란 게 있을까.’

그가 놀라워하는 동안 김혜림은 메 시지를 간략하게 전달했다.

내용은 ‘금고가 침실에 있다’ 정도 로 짧고 단순하게 전달했다.

그것만으로도 강현에게 상황을 이 해시키기엔 충분했다.

김혜림이 손가락을 떼자마자 강현 이 행동에 나섰다.

“거래라 해 봤자 별거 아닙니다. 메이아 황녀님은 소문난 보구 수집 가라 들었습니다.”

메이아가 보구 수집가인 건 황궁 내에선 꽤 유명한 이야기였다.

보구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수집 하는 편이지만,그중에서도 미용에 도움이 되는 효과라면 특히 사족을 못 쓰는 편이었다.

메이아로선 좀 더 정치적인 거래를 예상했던 터였는지 다소 김빠진 표 정을 지었다.

“거래라는 게 보구 얘기인 건 아니 겠지?”

“그래서 가벼운 담소라 말했던 것 입니다.”

“소문이라는 게 마냥 믿을 만한 것 은 못 되네. 좀 더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를 가져온 줄 알았는데 말이 지.”

“듣자 하니 미용에 좋은 보구를 선 호하시는 것 같더군요. 이번 웨이브 공략으로 하늘의 보주란 S급 마법석을 얻었습니다. 효과는 몸 안에 있 는 독소 배출인데,분명 맹독뿐만 아니라 다른 불순물들도 제거해 주 는 것이겠지요.”

원래는 미지근한 주제로 시간이나 끌려고 했으나,금고가 침실에 있는 이상 메이아를 바깥으로 끌고 나가 야 한다.

그래서 이번 웨이브 공략 때 보스 몬스터인 하늘의 주인에게서 얻은 ‘하늘의 보주’를 미끼로 내건 것이 었다.

이쪽에서 s급 마법석을 제시하고, 보구 교환이란 명목을 내밀어 다른 보구가 보관된 곳으로 장소를 옮기 려는 셈이었다.

S급 마법석을 다른 S급 보구로 교 환하는 것이니 딱히 손해 보는 장사 인 것도 아니다.

메이아는 소문난 보구 수집가답게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단순 보구 교환을 하겠다고 오밤중에 찾아왔다는 것을 석연찮게 여겼다.

“흐음,이상하네. 보구 교환이라면 낮에 방문해도 환영했을 텐데. 안 그래?”

날카로운 질문이었지만 강현은 능 청스럽게 소화해 냈다.

“저희는 당장이라도 웨이브가 발생 하면 출동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 전에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에르델도 강현이 메이아를 침실에 서 끌어내려 한다는 걸 눈치채곤 지 원사격을 더했다.

“우리 입장에선 별거 아닌 일이지 만 기사단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죠. 그래도 강현 경 혼자 오면 실례가 될 것 같아 제가 같이 와 준 거예 요. 강현 경 부탁이 아니었으면 오 지도 않았겠죠

“에르델,강현 경은 예를 갖추는데 넌 여전히 언니에게 무례하게 구는 구나.”

“이제 와서 새삼 친한 척할 이유가 있던가요?”

에르델이 적절하게 메이아를 자극

해 준 덕분에 메이아의 의심이 흐려 졌다.

메이아의 보구 수집방은 제1별궁 뒤편에 있었기 때문에 방에서 나가 야만 했다.

메이아도 바깥에서까지 가운 차림 으로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기에 옷 을 갈아입고자 했다.

당연히 강현과 에르델은 복도로 나 가서 기다렸고,메이아는 궁녀를 불 러다 옷을 갈아입었다.

이윽고 메이아가 방 밖으로 나가면 서 김혜림과 빅터만이 남게 되었다.

빅터는 두 손을 가슴 위에 얹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적이지만 훌륭했습니다.”

김혜림은 눈살을 찌푸리며 팔꿈치 로 빅터의 명치를 강타했다.

퍽!

“욱!”

“헛소리 말고 빨리 금고 위치나 알 려 줘요. 황녀가 다시 돌아오기 전 에 일기를 꺼내서 빠져나가야 해 요.”

빅터는 명치를 문지르며 책장을 가 리 켰다.

“아까 하멜론의 쥐로 봤는데 책장 뒤로 공간이 있더군요.”

“옆으로 밀어 보죠. 빅터 경이 오 른쪽에서 끌어 봐요. 제가 왼쪽에서 밀게요.”

김혜림과 빅터는 책장 양쪽을 붙잡

고 조심스레 옆으로 옮겼다.

그러자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그림이었 다.

장식용 그림을 눈에 띄지 않는 책 장 뒤에 걸어 둘 리 없지 않은가. 과연 그림을 옆으로 젖히자 미스릴 금고가 나타났다.

금고 문에는 다이얼식 잠금장치와 열쇠 구멍이 달려 있었다.

빅터는 다이얼과 열쇠 구멍을 유심 히 바라보며 말했다.

“비밀번호와 열쇠. 두 쪽 다 필요 한 형태로군요. 어느 쪽이든 쉽게 풀진 못하겠는데요?”

“먼저 다이얼부터 손 볼 순 없을까 요? 구식 다이얼이라서 잠금쇠 맞물 리는 소리만 잘 들으면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혜림 양은 방 안에 열쇠가 있는지 찾아봐 주십시오. 전 다이얼을 돌려 보겠습니다.”

“그러죠.”

김혜림은 열쇠를 찾기 위해 가구 등을 뒤적였고,빅터는 금고 문에 귀를 붙이고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 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금고를 중심으로 벽에 마법 진이 일어나더니 커다란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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