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화
소리잔에 물 먹는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달의 방은 달이 차오를 때마다 공 간에 물이 차오르는 구조라 했었다. 말소리에 물에 삼켜지는 소리가 난 걸로 보아 공간 안에 물이 가득 찬 걸로 추정되었다.
강현은 숨을 한껏 들이쉬며 달의 방으로 이동했다.
*
달의 방으로 이동하자 온몸이 무거 워지며 차가운 느낌이 밀려들었다.
예상대로 달의 방 전체가 물에 잠 겨 있었다. 갑자기 체온이 급격하게 낮아지면서 마치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꾸르륵!
급격한 체온 저하에 숨이 약간 새 고 말았다.
다행히 물은 먹지 않았기에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발광이끼의 불빛에 비치는 공간 안 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물은 공간의 3분지 2정도 되는 높 이까지 차 있었다.
3조 기사들 중 2명은 수면에 떠 있었고,1명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 고 있었다.
방금 강현에게 보고를 한 음디티였 다.
강현은 밑으로 헤엄쳐서 음디티의 등 뒤로 돌아 들어갔다. 그러곤 음 디티의 몸에 팔을 두르곤 수면으로 끌고 올라갔다.
첨벙!
“후욱후욱.”
강현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3조 기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단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일단 상황보고부터 하도록.”
“물속을 보면 아시겠지만 바닥에 문 슬라임이라는 몬스터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 몬스터의 모습이 초승 달에서 보름달로 변하면 차오르는 물의 양이 달라집니다.”
물속을 보니 수면 맨 밑의 바닥에 서 노란 슬라임이 통통 튀어 다니고 있었다.
이름은 문 슬라임이며 10분 간격 으로 몸 형태가 계속 바뀐다고 기사 들은 덧붙였다.
문 슬라임의 모습은 초승달에서 점 점 동그랗게 차오르며 보름달이 되 었다가,다시 보름달에서 점점 가늘 어지며 초승달이 되는 구성이었다. 문 슬라임의 몸집이 불어날 때마다 달의 방 내부에 물이 차오른다. 기사들의 설명이 끝날 즈음 음디티 가 물을 왈칵 토해 내며 정신을 차 렸다.
“쿨력! 쿨럭쿨력! 으으,다,단장 님?”
“이제야 정신이 드나.”
“후우후우,제 말 전해 듣고도 오 신 겁니까?”
“그랬지.”
“단장님까지 물에 잠길까 봐 오지 말라고 했던 건데……
“혼자 헤엄칠 수 있겠나?”
“호흡만 가다듬으면 그럭저럭 가능 할 것 같습니다. 그보다 달의 방 공 략법 설명을 들으셨습니까?”
“대충은 들었어. 태양의 조각은 어 디에 끼워야 하지?”
“바닥 중앙에 홈이 있습니다. 거기 끼우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나를 쓰시면 안 됩니다. 마나를 쓰면 문 슬 라임이 반응해서 전격을 내뿜습니 다.”
전격도 일반 전격이 아니라 실드 무시 전격이라고 한다.
물이 가득 찬 지금 실드 무시 전 격이 뿜어져 나오면 꼼짝 없이 모두 가 감전당하고 만다.
강현은 호흡 한 점 한 점 폐에 꽉 꽉 눌러 담으며 물속에 머리를 담갔 다.
바닥을 향해 자맥질을 하다 보니 바닥의 발광이끼 사이에 홈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강현이 바닥에 닿기도 전이 었다.
투응? 투응?
문 슬라임이 바닥에서 튀어 오르며 강현에게 달려들었다.
놈이 강현을 삼키려고 입을 쩌억 벌리는데 그 모습이 흡사 파리지옥 을 본뜬 듯했다.
강현은 위치 되감기를 사용했다.
마나를 사용하는 스킬이 아니기 때 문에 문 슬라임으로부터 전격 공격 은 일어나지 않았다.
강현의 몸은 1분 전 위치로 되돌 아갔고,문 슬라임은 헛물만 삼키게 되었다.
하나,당장의 공격은 피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하필 문 슬라임이 깔고 앉은 자리
가 태양의 조각을 박아야 하는 자리 였던 것이다.
‘놈을 유도해서 위치를 옮기고 바 로 조각을 박아야겠군.’
물속에선 문 슬라임이 더 빠르기 때문에 놈의 공격을 피하려면 꽤 높 은 집중력과 계산이 필요했다. 이윽고 문 슬라임의 하체가 압축되 면서 튕겨 오를 기색이 엿보였다 강현도 놈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한데 문 슬라임이 뜻밖의 움직임을 보였다.
투응!
문 슬라임이 뛰어오른 방향에는 벤 젠 기사단 3조의 기사들이 있었다.
강현이 조각을 넣기 쉽도록 3조 기사들이 문 슬라임을 유인한 것이 었다.
3조 기사들이 문 슬라임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지며 강현을 향해 엄 치를 척 들어 올렸다.
‘저희가 유인하겠습니다,단장님.’
나름대로 폼 잡고 있긴 하다만 멀 리서 보기엔 파리지옥에게 쫓기는 파리들 같았다.
급한 자맥질로 팔을 휘적거리는 품 새까지 꼭 닮았다.
모양새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유인 의 효과는 톡톡히 볼 수 있었다.
문 슬라임이 움직이면서 바닥의 홈 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강현은 바닥으로 헤엄쳐 들어가 홈 에 태양의 조각을 끼워 넣었다.
회전태양 때처럼 문 슬라임의 주변 에 푸른 막이 걷히는 효과가 나타났 다.
공격무효화 능력이 풀렸으니 이젠 공격할 차례였다.
마나를 쓰면 문 슬라임이 광역기를 쓰니까 마나 없이 공격해야 한다. 강현이 문 슬라임을 향해 헤엄쳐 가자,음디티가 오른손에 소형 보우 건을 장착했다.
그러곤 화살대가 검은색인 화살을 걸쳐서 발사했다.
피잉!
켄타로우스의 꼬리털을 감아 만든
보우건으로,줄은 짧아도 탄성은 장 궁 못지않았다.
음디티가 쏘아 낸 화살이 물살을 가르며 문 슬라임에게 틀어박혔다. 공격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 다.
검은색 깃대의 화살이 녹아내리면 서 문 슬라임의 몸에 스며들었다.
일명 ‘반전 화살’이라는 것으로,화 살에 적중당하면 모든 감각이 반대 로 바뀌는 저주 효과가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왼손을 움직이려 하 면 오른발이,왼발을 움직이려 하면 오른팔이 움직이는 식이었다.
이는 몬스터인 문 슬라임도 마찬가 지였다.
문 슬라임이 저 혼자 물속을 허우 적거리면서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했다.
이어서 다른 두 기사들도 보우건을 꺼냈다.
세 기사는 각자 가진 화살을 아낌 없이 쏘아 댔다.
피잉! 피잉!
디딤발이 중요한 장궁이나 석궁이 었다면 이처럼 물속에서 쏘지 못했 을 거다.
어디까지나 시위를 걸치기 쉬운 보 우건이기에 물속에서의 사격이 가능 한 것이었다.
원래 3조는 보우건,독침,수리검 등을 사용하는 자들만 모아 기습조로 편성한 조였다.
게다가 3명 전부 현지인이라서 보 구 자체의 능력 이외에는 달리 화력 이랄 만한 게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다양한 공격을 펼 칠 순 있지만 특별히 강한 공격 기 술은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문 슬라임의 발목은 잡을 수 있어도 치명타를 입히진 못 했다.
결국 마무리는 강현의 몫이었다.
강현은 바닥을 뒹굴고 있는 문 슬 라임에게 다가가 빙백검을 꽂아 넣 었다.
푸욱!
묵 덩어리에 검을 꽂은 듯 물컹물
경한 감촉이 손잡이를 타고 느껴졌 다.
베는 감촉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데미지는 확실하게 들어갔다.
빙백검을 몇 번 더 쑤셔 박으니 문 슬라임의 몸이 늘어지면서 전리 품 반응을 띠었다.
강현은 전리품을 추출했다.
이미 별의 방과 태양의 방에서 소 켓 생성기와 마법석이 나왔었다.
달의 방에서도 같은 전리품이 나오 리란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 었다.
[수명 융합석]
등급 : s
타입 : 마법석
특성 : 소켓에 박을 수 있는 마법 석. 창 타입 보구의 소켓에 박아서 마나를 부여하면 공격 시 30퍼센트 확률로 ‘실드 무시 전격’ 혹은 ‘물세 례’가 발동된다. 두 가지 기술 중 어느 것이라도 발동하면 재사용대기 시간 5초를 가진다. 한 번 소켓에 박으면 빼낼 수 없으니 주의할 것.
동시에 문 슬라임이 죽은 자리에 배수구가 생겨나며 물이 빠지기 시 작했다.
달의 방 가득 차 있던 물이 급격 하게 줄어들면서 헤엄치지 않아도 바닥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모두 빠지 자 생겨났던 배수구가 사라졌다.
달의 방을 채우고 있던 물이 완전 히 빠져나가자 동시에 음디티를 비 롯한 기사들이 쓰러지듯 바닥에 주 저 앉았다.
“후우,어찌어찌 살아남긴 했구만.”
“불부터 피우자고. 이대로 있다간 저체온증 걸리겠어. 윽,역시 배낭에 넣어 둔 옷은 다 젖었군. 다른 사람 걸 빌릴 수밖에.”
“기력 포션도 한 병씩 마셔 두자 고. 단장님,단장님도 불 찍시죠.”
3조 기사들은 젖은 바닥에 햇불용 장작과 기름 먹인 천을 겹쳐 모닥불 을 피웠다.
마음 같아선 젖은 신발을 벗고 쭈 글쭈글해진 발을 말리고 싶지만 편 하게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언제 2페이즈가 시작할지 모른다.
강현과 3조의 기사들이 잠깐의 여 유를 이용해 몸을 말리고 있을 때. 로비에 있던 기사들이 달의 방 입 구를 통해 들어왔다.
기사들을 이끌고 나타난 김혜림이 질척질척한 바닥을 밟으며 걸어왔 다.
진흙이 신발 밑창에 겹겹이 들러붙 은 탓에 강현에게 도착할 즈음엔 키 가 3cm정도 솟아 있었다.
김혜림은 홀딱 젖은 강현을 보곤 수건을 꺼내 건넸다.
“홀딱 젖었네요. 난이도는 어땠어 요?”
“오히려 달의 방이 가장 쉼더군.”
“이걸로 1페이즈는 끝났고 2페이
즈를 대비해서 기력 포션을 하나씩 먹어 둬야겠어요. 2페이즈는 1페이 즈 순서의 반대니까 달의 방에서부 터 시작해야겠죠.”
강현은 바닥 중앙에 박아 두었던 태양의 조각이 사라진 걸 확인했다.
“태양의 조각이 사라졌군.”
“2페이즈로 넘어가면 각 방 몬스터
들의 공격무효화 능력을 다시 하나 씩 해제해야겠네요.”
로비 표지판의 뒷면에는 1페이즈가 끝나면 쟁재의 순서’가 ‘반대’로 바뀐다고 했었다.
표지판의 내용을 반대로 해석하면 이러했다.
[달은 별과 태양이 모두 있어야 부 술 수 있고,태양은 달이 없어야 부 술 수 있으며,별은 태양이 없어야 부술 수 있다. 순서를 어기는 자 하 늘의 징벌을 받으리니.]
김혜림은 나름대로 2페이즈 공략에 숨겨진 함정을 추측해 보았다.
“여태까지 공략 난이도로 따지면 별의 방이 가장 어려웠고 달의 방이 가장 쉬웠던 거네요. 2페이즈란 순 서까지 미뤄 놓고 가장 쉬운 것부터 가장 어려운 것까지 다시 공략하라 는 건 이상해요. 분명 ‘반대로 공략 하라’는 부분에서 함정이 있을 거 같아요.”
강현을 따라하듯 부자연스럽게 턱 을 매만지는 김혜림이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옮는다고 어쯤잖게 강현 흉내를 내고 있었다. 강현은 가만히 그녀를 보다가 등을 돌리며 붉게 충혈된 눈을 그녀에게 서 거두었다.
“일단 달의 방부터 공략해야 하는 건 확실해. 단원들에게 문 슬라임 소환 지점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짜 두라고 해 둬.”
“아예 다른 몬스터가 나올 가능성
도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요? 달 의 방이라 해서 꼭 문 슬라임이 나 오리란 보장은 없잖아요.”
“벤젠 기사단은 어린이 집단이 아 니야.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엔 각 자 알아서 임기응변을 취하도록 해.”
“그게 효율적이긴 하죠. 모두에겐 그리 전해 둘게요.”
김혜림이 종종걸음으로 쪼르르 돌 아다니며 강현의 지시를 전달했다. 모두에게 지시가 전달되었을 즈음, 달의 방 공간 자체가 지진이라도 일 어난 양 강하게 흔들렸다.
드르르르르!
2페이즈로 돌입한다는 신호였다.
2페이즈가 시작되면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3시 방향과 9시 방향의 벽이 무너진 것이었다.
양옆의 벽이 무너지면서 달의 방, 태양의 방,별의 방이 하나로 이어 졌다.
즉 3개의 방이 하나로 통합된 것 이다.
더불어 여태까지 사냥했던 모든 몬 스터가 되살아났다.
하늘엔 4개의 별 몬스터가 나타났 으며,태양은 바닥을 굴렀고,달은 보름달 모양으로 차오르기 시작했 다.
세 방의 몬스터가 한꺼번에 나타난 것을 보고 기사들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반대로 공략하라는 게 전부 상대 하면서 공략하라는 거였나.”
“역시 난이도가 올라갔군. 2페이즈 가 1페이즈보다 쉬울 리 없지.”
난이도가 상승한 것을 두고 불평할 시간은 없었다.
부활한 4개의 별 몬스터,회전태 양,문 슬라임은 한꺼번에 벤젠 기 사단을 표적 삼아 공격을 개시했다. 우우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