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화
어쩐지 표지판이 너무 간결하다 싶 었는데 추가문구가 숨겨져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안내 표지판은 물 론이고 로비 구석구석까지 세세히 살펴보았을 것이다.
하나,이번에 경우는 급박한 시간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강현은 태양의 방 12시 방향으로 향하면서 소리잔에 말했다.
“추가문구의 내용은?”
- 1페이즈가 끝나고 2페이즈가 시 작되면 순서가 반대로 된다고 적혀 있어요! 그리고 2페이즈까지 끝나면 하늘의 주인이 나타난대요!
1층,2층,3층이 아닌 1페이즈,2 페이즈,3페이즈 단계로 나뉘어 있 던 것이었다.
1페이즈가 끝나면 ‘현재의 순서’가 '반대’로 바뀐다고 했다.
‘별,태양,달’ 순서로 공략해야 되 던 것을,‘달,태양,별’ 순서로 공략 해야 된단 뜻일 거다.
하나 강현은 달리 생각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SS랭크 웨이브 안이다.
과연 공략순서가 역순으로만 바뀐 다고 해석하면 되는 걸까?
분명 아닐 거다. 적어도 2페이즈가
1페이즈보다 성가실 것만은 확실했 다.
‘어찌 됐든 2페이즈로 넘어가려면
1페이즈부터 끝내야겠지.’
모래를 박차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12시 방향에 도달했다.
웨인포드의 말대로 12시 방향의 벽에 주먹만 한 홈이 패여 있었다. 홈에 별의 조각을 끼워 넣자 태양 몬스터의 주변에 푸른막이 걷히는 현상이 일어났다.
공격무효화 능력이 걷혔음을 의미 하는 현상이었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웨인포드 가 공격에 나섰다.
“2조 전원 몬스터를 공격하자고.
루크,잔여 마나량은 어떻게 돼?”
여전히 태양 몬스터를 유인하고 있 던 루크가 팔을 교차하여 ‘X’ 자를 만들었다.
“무리일 것 같아. 블링크로 녀석을 유인하느라 거의 다 썼어.”
“루크는 당장 뒤로 빠지고 나랑 레 이바는 놈을 공격해서 주의를 끌어 오지.”
“마무리는 역시 단장님께?”
“빨리 끝내려면 그게 낫겠지.”
웨인포드와 레이바가 태양 몬스터 에게 다가갔다.
때맞춰 루크가 블링크로 크게 물러 나면서 두 사람과 교대하는 모양새 가 펼쳐졌다.
태양 몬스터는 사라진 루크 대신 가까이에 있던 웨인포드와 레이바를 향해 굴러왔다.
드드드득!
불꽃 모양 돌기가 바닥을 긁는 소 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태양 몬스터가 구른 자리마다 불길 이 일어나는 건 물론이고,태양 몬 스터 본체 역시 강렬한 열기를 내뿜 었다.
실드마저 태워 버리는 화염이기에 처음부터 그을리는 것조차 안 된다 는 생각으로 덤벼야 했다.
먼저 레이바가 한 손에는 철봉을, 한 손에는 단창을 손에 쥐나 싶더니 둘을 합쳐 장창으로 만들었다.
즉석에서 조립할 수 있는 조립식 장창이 었다.
레이바는 유려하게 장창을 빙그르 르 돌리며 태양 몬스터에게 덤벼들 었다.
“으랏차!”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정면으로 달 려들던 레이바는 태양 몬스터와 격 돌하기 직전 사선 방향으로 뛰었다. 그러곤 태양 몬스터의 옆을 지나치 며 꼬아 쥔 장창을 몬스터의 측면에 쑤셔 박았다.
끼기기긱!
하나 장창은 놈의 몸체를 긁는데 그치고 말았다.
마나유저 상급 수준의 오오라가 맺
혀 있건만 가느다란 흠집을 내는 게 고작이었다.
이어서 웨인포드가 주사위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지금 상황이면 3번이 최고겠군. 제발 3이 뜨길.”
사각 6면체의 주사위가 바닥에 떨 어 졌다.
나온 눈은 웨인포드가 바라던 3이 었다.
주사위에서 빛이 일어나면서 메이 스로 변했다.
B급 보구 ‘웨폰 다이스’로,주사위 의 숫자에 따라 A급 무기가 무작위 로 나오는 보구였다.
한 번 사용하면 30분은 나온 무기
를 사용해야 해서 다소 사행성을 띠 고 있었다.
도박을 좋아하는 웨인포드다운 보 구라 할 수 있었다.
웨인포드는 레이바처럼 사선으로 뛰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메이스의 추 부분이 태양 몬스터의 옆면을 두드리며 폭발을 일으켰다. 과앙!
강력한 힘이 실릴수록 폭발력이 높 아지는 봄 메이스의 효과에 따라 태 양 몬스터의 몸이 약간이나마 휘청 거렸다.
그러나 봄 메이스의 반발력으로 인 해 웨인포드 본인도 튕겨 나가고 말 았다.
웨인포드는 입에 모래가 들어가는 것도 상관치 않은 채 외침을 토해 냈다.
“지금입니다,단장님!”
모래 위를 구르는 웨인포드 위로 강현의 신형이 날아올랐다.
강현은 웨인포드를 지나치며 무덤 덤하게 한 마디 던졌다.
“소리치지 않아도 알아.”
뛰어오른 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발검이 빛을 뿜었다.
모름지기 발검술은 뽑힘과 동시에 베고 있어야 한다.
발검의 본보기를 선보이기라도 하 듯 빙백검이 산뜻한 곡선을 그렸다. 어느새 빙백검에서 일어난 마나 블레이드가 태양 몬스터의 몸뚱이에 기다란 검흔을 남겼다.
검흔 사이로 증폭 스렛의 효과가 일으킨 후폭풍이 파고들며 단단한 몸뚱이 속을 헤집었다.
과직! 과지직!
동시에 강현의 발이 모래바닥에 착 지 했다.
달리면서 어찌나 가속도가 붙었는 지,부드러운 모래에 발이 발목까지 파묻히고 나서야 멈춰 설 수 있었 다.
강현은 모래에 파묻힌 발을 지지대 삼아 빈손을 내질렀다.
아니,방금까지 빈손이었음에 분명 했던 손엔 어느새 제왕의 화염검이 소환되어 있었다.
제왕의 화염검은 빙백검이 남긴 검 흔을 따라 그대로 파고들었다.
푸욱!
화염검이 태양 몬스터의 몸 안 깊 숙이 파고들면서 다시금 증폭 스텟 의 효과가 발휘되었다.
태양 몬스터의 몸뚱이 전반적으로 쩍쩍 균열이 일어났고,원심력이 죽 은 듯이 사라졌다.
그 와중에도 태양 몬스터가 강한 화염을 뿜어냈다.
놈은 지나는 자리에만 화염을 일으 키는게 아니라 본체 역시 불을 내뿜 을 수 있던 것이었다.
태양 몬스터에 근접해 있던 강현이
그대로 화염에 휩싸였다.
그를 본 웨인포드가 다급하게 외쳤 다.
“단장님!”
아무리 강현에게 반사 실드가 있다 곤 해도 실드마저 태워 버리는 화염 까지 막을 순 없었다.
화염이 집어삼킨 강현의 모습은 이 미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웨인포드는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입술을 깨물었다.
“크옥,본체도 화염을 내뿜을 수 있었을 줄이야. 내가 더욱 자세히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강현이 당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것이 방심을 불러일으킨 셈이었다.
차라리 한층 신중하게 싸웠다면 이 런 참사도 없었을 것을.
공략을 서두르려고 강현의 일격에 기댄 것이 화를 불렀다.
웨인포드는 한심한 판단에 자신을 자책했다.
“성격 나쁘고 더럽게 무뚝뚝한 당 신을 존경했습니다. 조직은 반드시 쓰러뜨리겠습니다. ”
“거참,시끄럽군.”
“그 목소리도 이제 들을 수…… 엥?”
비극에 빠진 부하 행색을 계속하던 웨인포드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 었다.
태양 몬스터가 내뿜던 화염이 점점
사그라들더니 강현의 모습이 드러났 다.
분명 실드마저 태워 버리는 화염이 건만 강현은 그을린 구석 하나 없이 멀쩡했다.
더불어 화염검은 여전히 태양 몬스 터의 몸 안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 다.
투응!
그리고 잠시 후,이윽고 태양 몬스 터의 몸체가 반으로 갈라지며 모래 바닥에 쓰러졌다.
거대한 몸뚱이가 바닥과 마찰하며 사방으로 모래가 산산이 튀었다. 기사들이 분분히 모래를 피하는데, 강현은 로브의 후드 부분을 머리 깊숙이 눌러쓰는 걸로 회피 동작을 대 신했다.
웨인포드는 입 안 가득 들어찬 모 래를 뱉어 내며 허둥지둥 일어났다.
“단장님,괜찮으십니까? 분명 화염 에 휩싸였던 게……
“찜질 수준도 못 되더군.”
“하……
도무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웨 인포드였다.
정녕 불사신이라도 되는 건가?
대체 우리 단장이라는 작자는 무슨
짓을 해야 죽는단 말인가.
정말 같은 편이라는 게 다행이라는 말은 이럴 때나 쓰는 것이리라.
물론 강현은 불사신이 아니다.
화염 계열의 공격을 무시할 수 있 는 ‘업화의 불꽃반지’덕에 무사했던 것이었다.
강현은 눈을 휘둥그레 뜬 웨인포드 에게 한 마디 날렸다.
“성격 나쁘고 더럽게 무뚝뚝이라 했었나.”
“아,아니 그건 진심이 아니랄까, 존경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말이 헛 나온 거랄까.”
“훈련 목록에 일대일 대련을 추가 시키도록 하지.”
“아악! 봐주세요! 단장과의 대련은 체벌이나 마찬가지라고요!”
강현은 기운차게 절규하는 웨인포 드를 뒤로하며 태양 몬스터의 시체에 다가섰다.
태양 몬스터가 죽으면서 전리품 반 응이 나타났다.
태양 몬스터의 몸체에 남은 열기가 식을 즈음 손을 대어 전리품을 추출 해 냈다.
“추출.”
전리품은 2개가 나왔다.
별의 방에서처럼 소켓 생성기와 마 법석이 나왔다.
이번에는 활에만 박을 수 있는 마 법석이 아니라 방패에만 박을 수 있 는 마법석이었다.
[흑점의 형상석]
등급 : S
타입 : 마법석
특성 : 소켓에 박을 수 있는 마법 석. 방패 타입 보구의 소켓에 박으 면 피격시 50퍼센트 확률로 회전태 양의 불꽃이 발생한다. 회전태양의 불꽃은 실드까지 태워 버리는 스킬 이며 한 번 발동하면 W초의 재사 용대기시간을 가진다. 한 번 소켓에 박으면 빼낼 수 없으니 주의할 것.
방패를 쓰지 않는 강현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벤젠 기사단 내에서 방패를 쓰는 사람이 사용하거나,팔아서 다른 필 요한 보구를 구입해야 할 것 같았 다.
강현은 소켓 생성기와 마법석을 아 공간 주머니에 넣고 2조 기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흰 로비로 가서 김혜림과 함께 쉬고 있도록.”
“아닙니다. 아직 더 싸울 수 있습 니다.”
“마나는 남아 있나?”
이미 1시간 이상 몬스터를 상대하 느라 마나가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 게다가 슬슬 이틀 동안 전력질주한 여파가 나타나고 있었다.
눈은 반쯤 풀려 있었고,피로로 인 해 손끝이 저린지 손가락이 미미하 게 떨려 왔다.
강현의 판단이 옳다 여긴 기사들은
명령을 받아들였다.
“로비에서 금방 회복하고 합류하겠 습니다.”
“2페이즈 시작 때 달의 방에서 집 결하는 걸로 하지.”
“네. 그런데 단장님은 지치지 않으 셨습니까?”
“그런 게 중요하나?”
기사들은 몰라도 강현만큼은 피로 를 따져선 안 되었다.
강현이 움직이지 않으면 공략을 할 수 없으니까.
워낙에 표정변화가 없어서 겉으로 는 지쳤는지,안 지쳤는지 알 수조 차 없었다.
기사들은 강현의 괴물 같은 체력이
놀라움 따름이었다.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단장님이 무리하시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누가 조직을 칠 수 있겠습니까.”
“5 일.”
“네?”
“5일 동안 자지 않고 싸운 적도 있었지.”
“저……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인 간이 맞긴 하신 거죠?”
“괴물이길 바라나?”
“뭐 어느 쪽이든 단장은 단장이니 상관은 없습니다만.”
“마음대로 생각해.”
쏘아붙이듯 한 마디 날린 강현은 회전태양의 시체 위에 올라섰다.
갈라진 회전태양의 시체 사이로 주 먹만 한 붉은 돌이 있었다.
태양의 조각이었다.
강현은 1페이즈 마지막 방인 달의 방에 가기 전에 소리잔을 쥐었다.
“단장이다. 태양의 방 공략을 마쳤 고 지금 달의 방에 가려 한다. 그쪽 상황은?”
소리잔 안에서 한참 동안 대답이 없더니 뒤늦게 다급한 대답이 되돌 아왔다.
- 꾸르륵! 단장님! 여기로 오시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