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71화 (71/381)

기화

디벨롭이 머무는 황궁 내 제2별궁.

디벨롭은 옷단 끝이 두 갈래로 갈 라진 집사복 복장으로 쟁반을 운반 했다.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집사 그 자체였다.

소란스런 본궁 지하와 달리,제2별 궁의 발코니는 고요하기 그지없었 다.

디벨롭은 발코니에 놓인 티테이블 에 티 세트를 올려놓으며 제국의 제 2황자,드래코프에게 말했다.

“벤젠 기사단이 살로만 영지로 떠 났습니다.”

드래코프는 레몬이 가미된 홍차를 마시며 비웃음을 흘렸다.

“계획대로 웨이브 발생 지점에서 떨어뜨려서 보냈겠지?”

“아무리 빨리 도착해도 이틀은 걸 릴 겁니다.”

“크크크크. 놈들 입장에선 무리하 다가 시간에 쫓겨 죽거나,공략을 포기당하거나 둘 중 하나겠군.”

“어느 쪽이든 벤젠 기사단을 기다 리고 있는 건 파멸뿐입니다.”

벤젠 기사단이 살로만 영지에 도착 하면 웨이브 제한시간을 얼마 남겨 두지 못한 상태일 터.

그땐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공략이 불가능하다.

급박하게 공략을 하려 들면 제한시 간을 넘겨 웨이브와 함께 소멸당한 다.

그렇다고 공략을 포기하거나 중간 에 탈출한다 해도 공략 실패라는 결 과는 매한가지다.

나중에 그들이 살아 돌아와서 텔레 포트 위치를 문제 삼아도 상관없다. 원래 그 정도 오차는 존재한다며 묵살하면 그만이다.

그 핑곗거리도 미리 만들어 두었 다.

요 근래 텔레포트를 점검할 때,일 부러 목표 지점과 다른 곳에 실험체 를 보내 통계 자료의 오차 범위를 확대해 두었다.

드높은 실력을 인정하여 융숭한 대 접과 시설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도 첫 임무부터 실패한다면 어떨까?

비난은 비난대로 받을 것이며,처 벌은 처벌대로 내릴 수 있다.

드래코프는 거미줄처럼 촘촘한 디 벨롭의 계략에 찬사를 보냈다.

“이걸로 최강현이 사라지면 드디어 자네도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겠 군.”

“조직의 실수로 황자님에게까지 불 편을 끼친 점. 사과드립니다.”

“사과까진 할 거 없어. 원래 이게 우리 관계가 아닌가? 그쪽은 구린 일을 대신 해 주고,나는 권력을 빌 려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자네의 뛰어난 머리가 좋단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게다가 최강현을 쳐내는 건 내게 도 여러모로 이득이지. 최근 에르델 이 최강현을 자주 찾는 것 같던데 말이야.”

“업무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 니다.”

“최강현을 쳐내면 에르델은 영영 재기하지 못할 거야. 그러면 이제 처리할 건 치장에 미친 노처녀 계집 만 남겠군.”

드래코프는 제1황녀 메이아를 떠올 렸다.

지금이야 에르델을 완벽히 떨쳐 내

기 위해 한시적으로 손잡고 있다지 만,이 일이 끝나면 다시 그녀와의 정쟁이 시작될 터였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자 신감에 차 있었다.

드래코프는 왕위계승 싸움에서 승 리를 확신했다.

자신에겐 조직이라는 든든한 조력 자들이 있고,디벨롭이란 지략가가 있었다.

그는 흡족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 다.

그 맞은편에서 디벨롭이 그 흡족한 얼굴에 마주 미소를 지어 주었다.

‘멍청한 놈.’

드래코프는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

조직이 제2황자 드래코프뿐만 아니 라,제1황녀인 메이아와도 은밀히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태연함을 가장하며 속으로는 뱀을 품고 있는 디벨롭이었다.

디벨롭은 드래코프가 아무것도 모 른 채 차 맛을 음미하는 동안 살로 만 영지가 있는 남쪽을 바라보았다.

‘첫 승부수는 던져졌군. 자,최강 현. 어떻게 대처할 거지?’

*

강현과 벤젠 기사단은 쉴 새 없이 달렸다.

그러나 아무리 단련된 기사들이라

해도 산 두 개를 전력질주로 주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벤젠 기사단은 떨어지는 체력을 보 충하기 위해 간간이 기력 포션을 먹 었다.

기력 포션은 소위 말하는 타우린 자양강장제 같은 것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 자양강장제 가 내일 쓸 힘을 끌어오는 거라면 기력 포션은 내일,모레에 쓸 힘까 지 끌어온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공략에 실패하는 것보단 이 틀 후에 기절하듯 침대에 쓰러지는 게 훨씬 나았다.

웨이브의 공략 실패로 뒤따르는 사 태는 그야말로 최악일 터.

그때는 감당이 불가능한 마녀사냥 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강현을 비롯한 벤젠 기사단 은 이를 또다른 기회로 생각했다.

이 무모한 공략을 성공시킨다면, 자신들의 위명은 더더욱 높아질 터 였다.

리스크가 큰 만큼 보상도 크다.

강현과 벤젠 기사단은 생각의 전환 을 원동력 삼아 산길을 내달렸다.

산길을 전력으로 주파한 결과,벤 젠 기사단은 이틀 안에 살로만 영지 에 다다를 수 있었다.

보라색 웨이브 앞에서는 살로만 남 작이 애타는 얼굴로 발을 구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는가! 웨이브가 발 생한 지 벌써 하루가 지났네!”

“다소 문제가 생겨 늦었습니다. 바 로 입장하겠습니다.”

“어서어서 서두르게! 얼른!”

벤젠 기사단이 도착하자마자 일갈 을 내지르는 살로만 남작이었다. 살로만 영지에 일어난 웨이브는 무 려 SS급이었다.

황궁에서 대대적으로 연합기사단을 보내 주겠다고 선전해 놓았는데,이 처럼 하루나 늦게 왔으니 조바심에 역정을 내는 것이었다.

강현은 현장 파악부터 하고자 했 다.

“입장은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합니 다. 그 전에 남은 제한시간,입장 가능 인원,그 외의 모든 정보가 필 요합니다.”

“이제 6시간 남았네. 입장 가능 인 원은 15명이고,자네들이 늦게 와서 일단 내 기사들 6명을 미리 들여보 냈네.”

“6시간 안에 공략해 보이겠습니 다.”

“가능하겠나? 자네가 공략에 실패 하면 수만 평의 과수원이 한순간에 날아가네.”

“그리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다

니?”

“그럴 만한 일이 있습니다.”

“아무튼 얼른 들어가 주게. 반드시 공략을 해내야 하네.”

“물론 그리할 생각입니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다.

강현은 곧장 벤젠 기사단을 이끌고

웨이브 보석 안으로 들어갔다.

*

웨이브 보석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 이 대리석으로 깔린 로비가 나타났 다.

언뜻 보기엔 호텔 로비에 들어선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로비 끝에는 세 개의 철문이 있었 다.

철문 앞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기 에,표지판부터 확인했다.

[별은 태양과 달 모두가 있어야 부 술 수 있고,태양은 별이 없어야 부 술 수 있고,달은 태양이 없어야 부 술 수 있다. 순서를 어기는 자 하늘 의 징벌을 받으리니. 48시간 안에 태양,달,별을 모두 없애지 않으면 모든 것이 소멸하리라.]

[남은 제한시간 : 6시간]

수수께끼 같은 문구였다.

기사들은 몇 번이나 공략 문구를

읽다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이씨,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 고 뭔 수수께끼야. 바빠 죽겠는데.”

“태양과 달과 별이 뭘 의미하는 거 지?”

“철문에 뭔가 새겨져 있어. ‘태양 의 방,달의 방,별의 방’이라는데?”

“대충 해석이 되는구만. 태양, 달, 별 모두 각 방에 있는 몬스터를 의 미하는 거야. 태양과 달을 먼저 공 략하면 별을 공략할 수 없게 되는 거지. 별의 방,태양의 방,달의 방 순서로 공략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단장님. 단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 니까?”

철문과 수수께끼 같은 공략문구 외

에는 아무런 단서도 없다.

각 문에 입장제한이 있는 것도 아 니고,던전보스에 대한 정보가 나타 나 있는 것도 아니다.

방에 들어가 보면 좀 더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순서대로 공략하라는 게 전부인 건가. 단서가 너무 모자라.”

“일단 별의 방,태양의 방,달의 방을 순서대로 공략하는 건 맞을 겁 니다. SS랭크 특유의 함정은 공략하 면서 파악하는 걸로 하죠.”

“시간이 없습니다,단장님. 어서 공 락을 시작해야 합니다.”

급한 마음에 기사단원들이 공략을

재촉했다.

남은 6시간 안에 공략을 해야 한 다.

조금이라도 공략에 제동이 걸리면 웨이브와 함께 흔적도 없이 소멸당 하고 만다.

기사단원들이 이처럼 조급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SS랭크 웨이브인 만큼 함 정이 있을 것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정 보를 종합해야 했다.

강현은 단시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훈련 때 짜 놓은 3인 1조로 나누 어 각 방에 들어간다. 1조는 별의 방,2조는 태양의 방,3조는 달의 방으로 들어가지. 이후의 오더는 통 신 보구를 통해서 할 테니 그리 알 도록.”

“네? 인원을 나누면 그만큼 전력이 약해집니다. 굳이 인원을 나눌 필요 가 있을까요?”

“정보량과 공략 속도는 비례하지.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어.”

“전력이 나뉘는 만큼 몬스터에게 당할 확률도 높아지지 않습니까.”

“약한 놈은 뭘 해도 죽어. 너희는 너희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나?”

다른 자들도 아니고 조직을 상대하 기 위해 가려 뽑은 기사들이다.

다들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높았

다.

기사들은 강현 특유의 자존심을 건 드리는 자극 덕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아닙니다! 충분히 할 수 있습니 다!”

“이제야 조금은 투지를 보이는군. 방금 내린 명령대로 움직이도록.”

“네!”

기사단이 분산될 경우를 대비하여

3인 1조로 미리 조를 짜 두고 훈련 해 왔었다.

원래 1조는 강현,김혜림,빅터로 짜여 있으나,빅터가 아직 복귀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혜림은 빅터가 없음을 상기했다.

“우리 조는 2명인데 2명이서 들어 가요?”

“빅터가 빠져도 다른 조보다 화력 이 월등히 높아.”

“네네,제가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요. 천하의 마나 마스터 옆에서 화 력 걱정하는 건 배부른데 반찬 투정 하는 격이죠 뭐.”

“그만 까불고 들어갈 준비나 해.”

어차피 강현 한 명만으로도 일당백 의 전력이나 마찬가지다.

일부러 다른 조의 인원을 빼면서까 지 인원을 충당할 필요는 없었다. 고로 1조는 인원 충당 없이 강현 과 김혜림 둘이서 들어가기로 했다. 강현과 김혜림은 별의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밀어젖혔다.

끼이 익!

귀를 긁는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 안쪽에는 마나가 요동치는 비틀 린 공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강현과 김혜림이 문 너머로 발을 들이자 두 사람의 몸이 안쪽으로 빨 려 들어갔다.

텔레포트를 하듯 시야가 뒤틀리나 싶더니 이내 별의 방 내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별의 방 안에는 삼각형 모양의 언 덕 하나가 전부였다.

공간 안에 100미터 높이의 삼각 언덕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고,강현과 김혜림의 위치는 언덕 남쪽 아래였다.

하늘은 밤하늘처럼 어두웠는데 언 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빨강,파 랑,노랑,녹색의 거대한 별이 떠 있었다.

언덕 앞에 별의 방 공략 방법이 새겨진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기에 그것부터 읽어 내렸다.

[남쪽으로 오르면 붉은 별이 화염 을,북쪽으로 오르면 파란 별이 냉 풍을,동쪽으로 오르면 노란 별이 바위 세례를,서쪽으로 오르면 녹색 별이 독물을 쏟아 낸다. 언덕에 올 라 모든 별을 파괴하면 하늘에서 별이 사라지리라.]

“언덕을 오르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타입의 공격이 날아든다 이거 군.”

자신에게 맞는 루트를 선택해서 언 덕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한다. 꼭대기까지 올라간 다음에 별을 모 두 부숴야 하는 방식인 듯했다. 적어도 안내문에는 그리 적혀 있었 으나 액면 그대로 믿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문구 어딘가에 빼먹은 설명이 있 을 것 같은데 말이지.’

강현은 공략에 들어가기 앞서 다른 방으로 들어간 기사들과 정보를 공유하고자 했다.

그래서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어 통신 보구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김혜림이 화들짝 놀라며 머 리 위에 서 있는 붉은 별을 가리켰 다.

“강현 씨! 붉은 별이 공격하려 하 고 있어요!”

아직 언덕에 오르지도 않았다.

한데 왜 벌써 공격이 시작됐지?

강현은 통신 보구를 꺼내려다 말고 빙백검부터 쥐었다.

그와 동시에 붉은 별이 발한 붉은 빛이 화염으로 변하며 쏟아져 내렸 다.

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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