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69화 (69/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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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에게 연합기사단 제의를 거절 하란 편지를 보냈던 에르델이다. 그런데 강현이 에르델의 충고를 무 시하고 샹데르까지 왔으니 한 번쯤 은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이리 바로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소리 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 었나 보군.’ 아니나 다를까,문을 열자마자 에 르델이 매서운 눈길을 띠고 있었다. 에르델은 열린 문틈으로 몸을 비집 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나름대로 걸음걸이에 힘을 주며 화

가 났음을 보이려 했는데,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어 별 효과는 없었 다.

강현이 가볍게 목례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에르델 황녀 님.”

“잘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군요,최 강현 단장.”

“인사는 해야 하니까요.”

“사람 바보 만드는 성격은 여전하 네요.”

“글쎄요. 공주님께서 느끼기 나름 이 아닐까요.”

“말장난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 가죠. 제가 연합기사단 제의를 거절 하라고 전했을 텐데요?”

“드래코프 황자가 무언가 꾸미고 있을 것 같단 이유에서였지요.”

“잘 기억하고 있네요. 그 음모를 아는 사람이 어째서 제의를 받아들 인 거죠?”

강현은 에르델과 만나면 보여 주기 위해 챙겨 온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죽은 라르손이 작성한 조직 상층부 정보 서신의 사 본이었다.

에르델은 강현으로부터 사본을 건 네받아 하나하나 읽어 보았다. 사본에 나열된 이름을 살피는 동안 그녀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 다.

“여기 조직이라 적혀 있는데 조직

이 뭐죠?”

“이세계인 우월주의에 젖어 있는 자들입니다.”

“세상에…… 언니와 오라버니의 집 사인 디벨롭과 김진수,1급 집무관 들에도 조직원이 섞여 있네요.”

덧붙여 강현은 조직의 구체적인 활 동에 웨이브 공략 실패가 포함되어 있음을 설명했다.

에르델로선 웨이브 공략 실패가 주 된 활동이라는 것만으로도 조직이 얼마나 위험한 단체인지 알 수 있었 다.

그러고는 그런 자들이 황궁 깊숙이 포진되어 있다는 것에 경악을 감추 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언니와 오 라버니는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두 사람은 이미 조직과 손을 잡았 습니다.”

“아니,아무리 세력을 불리고 싶어 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자들과……

“아마 제1황녀와 제2황자로선 조 직을 이용하고 버릴 생각이겠지요. 그렇다곤 해도 당장은 둘 다 한통속 이라고 보셔야 합니다.”

“안 되겠어요. 이 자료는 제가 가 져갈게요.”

“가져가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 까?”

“몰라서 묻나요? 당연히 황궁의회 에 제출해야죠.”

황궁 안에 불순한 무리가 다수 포 진되어 있다는 점,다른 왕위계승권 자를 쳐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당 장이라도 서신을 공개하고 싶어 하 는 에르델이었다.

하지만 강현이 서신을 거두어 갔 다.

“두 공작파와의 싸움에서 진 게 그 리 충격이었습니까?”

“무슨 의미죠?”

“이 자료만으로 신빙성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1황녀와 제2황자 입장에선 증거불충분으로 묵살해 버 리면 그만이지요. 현안의 공주라 불 리시던 분께서 그조차 모를 리 없을 텐데요.”

“아니,그건……

강현의 말대로 이 서신의 신빙성은 없었다.

정보의 출처를 밝힐 타르손은 죽었 고,유일한 증거라곤 조직이 서신을 되찾으려고 병력을 투입했다는 점뿐 인데 그마저도 증명하기 어렵다.

즉 서신을 제출해 봤자 다시금 황 궁의회의 비웃음을 사는데 그칠 뿐 이다.

예전의 에르델이라면 이렇듯 성급 하게 판단하고,조급한 말 따윈 입 에 담지도 않았을 거다.

에르델이 심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 음이 익히 짐작되었다.

강현은 서신 사본을 아공간 주머니

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사본을 보여 드린 건 앞으로 조심 해야 할 사람을 알려 드리기 위함입 니다. 경솔하게 그들을 척결하려 해 도 상관없지만 그럴 경우 저는 황녀 님을 모른 척하게 될 겁니다.”

현재에 이르러선 나락공주라 불리 는 에르델이다.

곁을 지키던 측근들도 에르델에게 미래가 없다 판단하고 하나둘 곁을 떠나가는 실정이었다.

안 그래도 미약했던 세력이 티끌처 럼 흩어지는 마당에 강현마저 등을 돌리면 정말이지,답이 없었다.

물론 강현도 완전한 아군이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공공의 적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한시적인 동맹 관계 는 가능했다.

에르델은 애써 냉정을 되찾고 이후 계획을 물었다.

“전 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걸 찾 아보겠어요. 강현 경은 앞으로 어떻 게 하실 거죠?”

“당분간은 탐색전을 펼치게 되겠지 요. 조직에도 수 싸움에 능한 자가 있는 걸로 추정됩니다. 지금 단계에 서 섣불리 계획을 수립하는 건 카운 터가 오는 걸 알면서도 턱을 내주는 바나 다름없지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 같이 조직을 쳐부수죠.”

“못 보던 사이 말투가 거칠어지셨 군요.”

“놀리는 건가요?”

“아뇨,좋은 모습입니다. 점잖아 보 이는 사람은 때때로 깔보이기 쉬우 니까요.”

에르델은 오랜만에 온화한 미소를 그렸다.

강현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상하 게도 마지막엔 미소를 짓게 된다. 무뚝뚝함에서 오는 한결 같음 때문 인 건지,아니면 언뜻 차가운 말투 속에 섞인 미미한 온기 때문인 건 지.

얘기를 마치고 강현의 방을 나서는 그녀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

강현을 비롯한 벤젠 기사단은 다음 날 정오에 황궁을 방문했다.

황궁의 대강당에는 수많은 귀족들 과 두 무리의 기사단이 대기하고 있 었다.

한쪽은 악마사냥꾼이라 불리는 오 브렌이 이끄는 크로스 기사단.

다른 한쪽은 인간포대라 불리는 하 워드가 이끄는 퀵실버 기사단.

양측 모두 황궁 소속이며 제1황녀 와 제2황자에게 충성을 맹세한 마나 마스터들이었다.

이에 더하여 벤젠 기사단이 합류하 면서 대강당 안은 기사들로 가득 차 게 되었다.

대강당 전방에 설치된 무대 위에는 황궁의회장이자 황제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리바시치가 서 있었다.

리바시치는 기사들이 모두 모인 걸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나라에 불미스러운 분쟁이 생겨 본래 마땅히 행해야 할 웨이브 공략 이 소홀해졌소. 그 때문에 백성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나날이 민심이 거 칠어져 가고 있소. 황궁에선 웨이브 공략 성공률을 높이고 민심 안정을 위해 연합 기사단을 발족하고자 하 오.

여기 모인 세 기사단은 수많은 기사단 중에서도 가려 뽑은 용사들 이자,백성을 위해 대의에 지원한 영웅들이오. 세 기사단의 활동이 역 사의 한편에 찬란한 문구로 남길 바 라오.”

훈화와도 같은 지루한 설파가 끝나 면서 약속된 박수가 울려 퍼졌다. 박수 소리가 가라앉자 리바시치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다들 연합기사단이 어떻게 활동하 게 될지 궁금한 것이 많을 것이오. 모두 알다시피 웨이브에는 제한시간 이라는 게 있소. 웨이브 발생을 알 고 나서 출발하면 도착하기도 전에 소멸할 것이오. 하지만 얼마 전 황 궁의 로얄기사단이 웨이브 발생을 미리 알 수 있는 보구를 입수했소.”

리바시치가 무대 옆에다 손짓을 했다.

그러자 무대 바깥에 설치된 천막 뒤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끌고 나 왔다.

무려 높이 3미터,지름 1미터에 달 하는 거대한 거울이었다.

거울이 어찌나 크고 무거운지 거울 아래에 바퀴 달린 지지대를 달아, 밀면서 운반해야 했다.

리바시치는 무대 중앙으로 옮겨진 거울을 두고 입을 열었다.

“SS급 보구 '하늘의 거울’이오. 웨 이브 발생 전에 어느 지방에서 웨이 브가 생겨날지 표시해 준다오.”

SS급 보구란 말에 장내가 술렁거 렸다.

S급 보구만 하더라도 얻기가 하늘 의 별 따기인데 그를 뛰어넘는 SS 급 보구라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 닌 물건이 분명히 드러나 있으니 놀 랄 수밖에.

리바시치는 장내의 사람들에게 정 숙을 요구하고 설명을 이었다.

“하늘의 거울을 통해 웨이브 발생 지를 예측하고,황궁 지하에 있는 대마법진을 통해 현장으로 공간이동 하는 방식을 계획 중이오. 물론 파 견 장소는 제국만이 아닌 공국도 포 함되어 있소. 질문이 있다면 지금하시오.”

고작 세 개뿐인 기사단으로 드넓은 제국과 공국을 어찌 감당하나 싶었 는데,그 의문이 해소되었다.

하늘의 거울과 대마법진의 공간이 동이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리바시치가 발표한 방식에 이견 따 윈 없었다.

모두가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강현 만이 손을 들었다.

“벤젠 기사단의 최강현입니다. 질 문해도 되겠습니까?”

“말하시오.”

“연합기사단이란 틀 안에 묶인 이 상 직급 체계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연합기사단 내의 명령체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습 니다만.”

“적절한 질문이오. 기사단들끼리는 오로지 대등한 관계이며 모든 명령 은 황궁의회에서 내리겠소. 역사의 한 구절을 이룰 용자들끼리 서열을 나누는 건 옳지 않으며,현장에서의 활동 방침은 각 기사단의 판단에 맡 기려 하오.”

강현 이외에는 질문이 없었기에 행 사는 다음 절차로 넘어갔다.

각 기사단의 단장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 연합기사단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으며,황궁의회에서 준비한 선 언서를 낭독했다.

그 뒤에는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연합기사단 설립을 축하하는 파티가 이어졌다.

와인과 궁중요리의 향연,황궁악단 의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지는 파티 장.

강현은 그 어느 것에도 눈길을 두 지 않고 발코니에서 바람을 맞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역시 의도적으로 내가 뿌린 미끼 를 삼킨 거였군. 내가 수동적인 활 동밖에 못하도록 미리 손을 써 놨 어.’

생각의 깊이로 표정이 굳어진 가운 데 에르델이 발코니로 나왔다. 양손에는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는 데,그중 하나를 강현에게 권했다.

“한 잔 어때요?”

“술은 되도록 사양하고 있는 편입 니다.”

“그럼 받아만 두세요. 숙녀의 손을 부끄럽게 하지 말고요.”

강현은 샴페인 잔을 받아 들고 에 르델을 보았다.

파티에 어울리는 민소매 드레스 복 장이었다.

유달리 동그란 어깨와 쇄골이 강조 된 디자인이었다. 이에 더해 평소와 달리 닿은 머리를 뒷머리에 붙이듯 이 묶어 놓아 하얀 목덜미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개방적인 차림이 평소의 청순한 모

습과 대비되어 완숙한 매력을 자아 냈다.

에르델은 가볍게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연합기사단 활동 방침에서 알아낸 거라도 있나요?”

“상당히 머리를 잘 썼더군요. 제가 수동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꾀를 썼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황궁의회가 직접 명령을 내리게 만들어 놓았더 군요. 명령을 어기면 바로 직무유기 로 판결을 내리기 위함이겠죠.”

기사단 내에 서열을 만들어 두면 명령을 어겨도 기사단 내부분쟁에서 그친다.

하지만 황궁의회의 명령을 어기면 그 즉시 형벌을 정할 수 있었다. 무리한 명령이라도 들을 수밖에 없 도록 판을 짜 놓은 셈이다. 그러면서도 현장의 일은 각 기사단 의 판단에 맡긴다고 했다.

언뜻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 이지만,조금이라도 일이 틀어지면 기사단의 역량을 의심 받는다. 여태까지의 극진한 대접과 연관 지 어 생각해 보면 한 가지 결론을 내 릴 수 있었다.

“무리한 명령을 내려 실패시킬 생 각일 겁니다.”

“여론의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고 단 한 번의 실패로 나락까지 떨어뜨릴 생각이로군요. 제가 똑같은 수법 에 당해서 현안의 공주에서 나락공 주가 되었죠.”

“역시 경험자라 이해가 빠르시군 요.”

“그 비아냥거리는 말투도 슬슬 익 숙해지려 하네요. 그래서 대응책은 요?”

강현은 마시지도 않을 샴페인 잔을 흔들었다.

잔 안에서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와 표면에 맺히는 가운데 강현의 입이 열렸다.

“저쪽에서 먼저 수작을 부리게 놔 둘 생각입니다.”

*

에르델과의 대화를 마친 강현은 파 티장으로 돌아갔다.

물론 파티 분위기를 즐기기 위함은 아니었다.

술을 마시는 척하고 있었지만 귀는 사방으로 열려 있었다.

당분간은 탐색전을 벌여야 하는 이 상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귀족들이 연합기사단을 어떻게 생 각하는지,다른 두 기사단이 벤젠 기사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한창 주변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 던 중.

누군가 강현에게 말을 걸어왔다.

“벤젠 기사단의 최강현 단장이십니 까?”

옆을 보니 붉은 머리의 정장 차림 사내가 서 있었다.

붉은 머리 사내를 본 순간,강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조직 상층부 정보에 포함되어 있는 자들 중 한 명이자 드래코프의 집사 를 맡고 있는 자.

조직 간부들 중에서 우두머리인 걸 로 추정되는 자인 디벨롭이 직접 강 현을 찾아온 것이다.

디벨롭은 아까까지 강현과 에르델 이 함께 있었던 발코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습니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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