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화
장내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이 일어났다.
공국에도 강현의 이름은 전해져 있 었다.
슈타인 백작가에서 SS랭크 웨이브 를 공략하고 제국의 제3황녀를 구해 낸 자.
빙검의 용병이란 이명을 가진 신진 마나 마스터를 어찌 모를 수 있으 라.
웅성거림 속에서 강현이 조피스에 게 눈길을 주었다.
강현과 시선이 마주친 조피스는 표 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조직 내에서 강현은 S급 위험요소 로 분류되어 있었다.
오늘 아침부터 자신을 압박하는 사 건들이 연이어 터진 후,물 흐르듯 그 위험요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피스는 이 모든 공작을 꾸민 것 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모든 게 최강현이 꾸민 일이었나. 대체 언제부터 개입한 거지? 당최 영문을 알 수가 없군. 그래도 의원 들에게 돈을 먹여 두었으니 계획에 는 지장이 없을 터. 이제 와서 외부 인이 개입한다고 해서 벤젠 기사단 의 해체를 막을 순 없을 거다.’ 세간에서 유명한 마나 마스터라 할 지라도 왕궁 안이라면 한낱 외부인에 불과하다.
국정회의에서 놈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 따윈 없었다.
한데 어째서 강현은 직접 국정회의 에 참가한 걸까?
조피스가 떠올린 의문은 다른 사람 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왕궁의원이 바르가스에게 강현 을 부른 이유를 물었다.
“전하,빙검의 용병이 무슨 사연으 로 회의에 참석을……
그때,바르가스가 말을 자르며 폭 탄발언을 터트렸다.
“네베르가 근신 명령을 어기고 자 택에서 사라졌네. 왕명을 어긴 죄는 크니,이 시간부로 네베르의 벤젠기사단 단장직을 박탈하겠네.”
“아니,그런!”
“그렇다면 설마……. 네베르의 후 임으로 지목할 사람이……
바르가스가 환한 미소를 짓고 고개 를 끄덕였다.
“그 설마일세. 이후,여기 있는 최 강현 군이 벤젠 기사단 단장을 맡을 걸세.”
“아……!”
왕궁의원들은 물론이고 조피스까지 모두 뒤통수라도 맞은 표정을 지었 다.
벤젠 기사단이 성과를 못 올린다는 걸 빌미로 해체를 건의하려 했다. 그런데 빌미로 잡을 네베르만 쏙 빼 버리고,그 자리에 강현을 앉혀 벤젠 기사단을 유지한 셈이었다. 호랑이를 쫓아냈더니 용이 들어온 격이다.
강현은 벤젠 기사단 단장으로서 새 로이 인사를 돌렸다.
“다들 말씀 들으셨겠지요. 다시 인 사드리겠습니다. 벤젠 기사단 단장 을 맡게 된 최강현입니다.”
조피스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로써 강현은 외부인이 아니게 되 었다.
벤젠 기사단 단장이 됨으로써 국정 회의 내에서 발언을 할 수 있는 권 한이 생긴 거다.
아직 직접적인 타격은 가해지지 않
았지만 점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 는 기분이었다.
수조 안에 갇혀 물이 차오르는 양 답답함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소속을 두지 않았던 자 가 왜 이제 와서? 설마 나 하나 잡 겠다고 공국의 기사가 된 건가?’ 제국 쪽 조직 내에선 강현이 공국 의 기사라 추정하고 있지만, 그 사 실이 조피스에게까진 전해지지 않았 다.
어찌 보면 진짜로 강현이 공국의 기사가 되면서 조직 쪽의 착각이 현 실이 된 셈이었다.
어쨌든 그런 사실과는 별개로 조피 스로선 괴로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내 거처를 수색하려면 의 회의 허가가 필요해. 네베르와 같은 명분이라면 어제처럼 뭉개 버리면 그만이지.’
단장이 강현으로 바뀌었다 해서 조 피스를 수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합당한 명분이 없으면 절대로 조피 스의 거처를 수색할 수 없다.
조피스가 안절부절못하거나 말거나 강현의 말은 계속되었다.
“이전의 벤젠 기사단은 조직이란 곳을 수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더 군요. 하지만 제가 취임한 이상 벤 젠 기사단은 공국의 평안과 왕실의 안녕을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여느 기사단과 다를 바 없는 포부
였지만 왕궁의원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목적이야 어찌 됐든 바르가스 밑에 새로운 마나 마스터가 들어온 건 변 하지 않는다.
네베르 역시 기사단 단장직만 박탈 당했지 계속 바르가스를 따를 거다. 왕궁의원들 입장에선 성가신 적이 늘어난 셈이었다.
당연히 강현의 포부에 대한 대답에 불편함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어제까지 용병이었던 자가 과연 기사단을 잘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 겠군.”
“기사단은 무력만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네베르 경만 봐도 잘 알 수 있지 않나.”
회의장이 강현의 능력을 의심하는 눈빛으로 가득 찼다.
그 눈빛들을 받으며 강현은 준비해 온 서류를 꺼냈다. 그러곤 보란 둣 이 들어 보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왕국의 평안은 윗사람의 청결함에서 비롯되지요. 그 이념에 따라 기사들 에게 조사를 시킨 결과 흥미로운 보 고가 들어왔습니다.”
강현이 말하는 윗물이 누구를 말하 는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서류 표지에 대문짝만 하게 ‘왕궁 의회 실태 조사’란 제목이 적혀 있 었다.
기껏 해야 오늘 부임한 자가 조사 를 하면 얼마나 했겠는가,라고 생 각하는 의원은 없었다.
왜냐하면 오늘,그것도 국정회의 직전에 꺼림직한 거래가 오갔기 때 문이었다.
왕궁의원들의 표정에 제발 그것만 은 아니길 하는 바람이 묻어 나왔 다.
강현은 그 바람을 간단하게 부숴 주었다.
“이 보고서는 국정회의 직전에 벌 어진 일을 토대로 작성된 것입니다. 의원님들 중 상당수가 어떤 한 인물 로부터 재물을 전해 받았더군요.”
왕궁의원들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모른 척 시치미를 떼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 르겠군. 지금 자네가 네베르 경의 행적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걸 알고 나 있나?”
“현재로선 증거가 없습니다. 심증 뿐이지요.”
“역시 입만 살은 거였군! 심증만으 로 우릴 모욕할 셈인가!”
“하지만 누구한테 뇌물을 받았는지 는 알고 있지요. 그자의 처소를 뒤져 장부가 나오면 어찌하실 겁니까?”
“장부? 그런 게 있다면 가져와 보 게.”
장부가 없다는 것 정도는 왕궁의원 들도 알고 있는 바였다.
조피스가 책잡힐 물건을 만들지 않 겠다 미리 협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뇌물을 주고받을 때도 구두계약 선 에서 마무리했으니 증거로 쓸 거리 는 머리카락 한 올도 없으리라. 강현은 조피스를 힐끗 보곤 담담히 말했다.
“조피스 집무관이 뇌물을 돌린 걸 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처소에서 장부가 나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순간,조피스의 얼굴에 크게 당혹 감이 어렸다.
표정관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에 도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이런 야비한……!’
처음부터 장부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던 거다.
장부는 조피스의 거처를 뒤지겠다 는 빌미일 뿐,서신을 찾기 위한 핑 계에 불과하다.
‘모든 게 함정이었나!’
개봉의 썰과 프라넬라 공주를 활용 하지 못할 경우,조피스가 기댈 건 벤젠 기사단의 해체밖에 없다.
벤젠 기사단을 해체하려면 왕궁의 회의 힘이 필요하고 말이다.
조피스가 왕궁의원들에게 손을 쓰 리라는 건 이미 강현의 예상대로였 다. 아니,정확하게는 조피스가 왕궁 의원들에게 손을 쓸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 거였다.
조피스는 속으로 간절하게 바랐다.
‘의회 늙은이들아. 최강현이 멋대 로 하게 놔두지 마.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하라고. 조금이라도 위험요 소를 배제하란 말이다.’
그러나 조피스의 간절한 염원은 의 원들에게 닿지 않았다.
의원들은 장부가 없다는 걸 확신하 고 있다. 그래서 강현과의 기 싸움 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 강하게 나 갔다.
“한번 조사해 보게. 어디 자네가 말하는 장부가 나오나 봅세.”
정식으로 수색 허가가 떨어졌다.
복덩이라 여긴 서신은 애물단지가 되었고,자신의 편으로 돌려 두었던 왕궁의원들은 최악의 수를 놓고 말았다.
이제 조피스가 믿을 거라곤 강현이 서신을 찾지 못하거나,프라넬라 공 주를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돌아 버리겠군. 이리된 이상 지부 장들이 공주를 확보하는 걸 기대할 수밖에.’
*
한편,공주를 태운 마차가 데헤란 을 떠나 한적한 산길에 들어섰다. 마차에는 공국 왕실을 뜻하는 깃발 이 달려 있었고,마차 주변으로 상 당수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호위를 서고 있었다.
마차는 다소 급하게 나아가고 있었 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일정이라 다 소 급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은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 날 씨와 말의 상태,이동루트를 확인했 다.
“일정대로라면 사흘 안에 가야 하 는데 지금 페이스론 아무래도 빠듯 할 것 같군.”
“좀 더 속도를 높일 순 없을까?”
“여기서 속도를 더 높이면 마차가 흔들릴걸세. 공주님께 불편을 끼칠 수는 없지 않나.”
“골치 아프구만. 전하께선 왜 갑자 기 공주님을 부인회 행사에 참가시 키려는 건지 원.”
일정을 맞추는데 급급한 나머지 주 변 경계가 다소 소홀해졌다.
그렇게 공주 일행이 산 중턱 부근 을 지나고 있을 무렵.
한쪽에는 절벽이, 다른 한쪽에는 낭떠러지가 내린 좁은 지형을 지나 던 차에,호위 선두에서 비명 소리 가 울려 퍼졌다.
“크아악!”
마차 옆을 지키던 기사들이 전방을 향해 외쳤다.
“무슨 일이더냐! 어서 보고해라!”
“적입니다! 전방에 무장을 한 자들 이…… 크어억!”
보고를 하던 병사가 단말마를 내지 르며 고꾸라졌다.
직후 구불구불 이어진 길 너머에서 다수의 복면괴한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쥔 무기엔 마나유저 상급, 중급 수준의 마나오오라가 피어나오 고 있었고,간간이 스킬로 추정되는 기술을 사용하는 자까지 있었다. 마차까지 소란이 전해지면서 마차 창문이 열렸다.
열린 마차 창문으로 머리를 단아하 게 묶어 올린 요조숙녀의 모습이 드 러났다.
프라넬라 공주였다.
“아돌프 경. 사태가 심각한가요?”
“괴한들의 습격입니다. 호위 기사 들과 병사들이 대응에 나섰으니 염 려 마십시오.”
“최대한 조심하시고 문제가 발생하 면 즉각 보고해 주세요.”
“네,알겠습니다.”
프라넬라 공주를 안심시킨 기사들 이 즉각 진형을 정비하여 반격에 나 섰다.
호위대에도 마나유저 중급,상급의 기사가 있었기에 충분히 습격을 막 아 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방패병 앞으로! 모두 절벽 쪽을 등지며 싸워라!”
“와아아!”
챙! 차앙! 채앵!
좁은 길목에서 날붙이들이 어지럽 게 부딪치며 난전이 펼쳐졌다. 낭떠러지를 등지면 위험하다는 걸 알기에 서로가 절벽을 등지기 위한 자리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허나,공주의 호위대는 시간이 갈 수록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수적,질적 요소는 비슷한데 어째서인지 호위대의 숫자가 더 빨 리 줄어들고 있었다.
전투 도중 괴한들의 후방을 목격한 기사들이 그 이유를 알아냈다.
“이런! 적에게 지원 스킬을 쓰는 자가 있다!”
괴한들의 후방,손에 하얀빛을 두 른 채로 다른 괴한들에게 빛을 쐬여 주는 자가 있었다.
그리고 하얀 빛을 쐰 자마다 마나 가 회복된 듯,마나오오라를 최대한으로 발휘했다.
마나 회복 지원스킬이었다.
무릇 지원스킬은 공격 스킬보다 훨 씬 귀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지원스킬의 등장 또한 예측하기 힘들었으니,호위 기사들 이 당황할 만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판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지원스킬로 마나가 회복된 괴한 측 은 공격력 유지에 제약이 없지만,호 위대는 마나량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하니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괴한들의 숫자는 얼마 줄지 않은 반면,호위대는 어느새 절반가량이 나 줄어 있었다.
기사들은 뒤늦게 후퇴를 고려했다.
“이러다가 전멸하겠어! 후퇴해야 해!”
“공주님의 마차부터 뒤로 보내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공주님만은 지 켜야 한다!”
그러나 후퇴마저도 용이치 않았다.
어느새 자신들의 뒤편에서도 괴한 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던 것이 다.
양옆은 절벽과 낭떠러지,앞뒤는 괴한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기사 들은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퇴로가 막혀 버렸어. 이래선 끝이 라고밖에……
호위대가 마지막 자신감마저 잃어 버리기 직전.
절벽 위에서 한 인영이 뛰어내렸 다.
“하암!”
절벽의 칼바람을 가르며 나타난 인 영이 마차 옆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유달리 날카로운 송곳니가 돋보이 는 강한 인상의 사내였다.
사내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며 괴 한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델라프 드 네베르의 이름을 아는 자는 즉시 물러서라. 알고도 덤비겠 다면 사양치 않고 배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