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화
냇가를 사이에 두고 두 병력이 서 로 마주 보고 있었다.
칼리고는 정면에 대치한 적들을 바 라보았다.
하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미 융륭으로부터 강현이 공국의 기사라 보고 받은 바 있었다.
융륭이 동굴에서 강현을 발견한 즉 시 미리 보고를 해 둔 것이었다. 강현은 융륭과의 격전으로 조직의 추격을 염려하고,이처럼 공국의 기 사들과 합류한 것이리라.
여기까진 이미 예상한 바였다.
‘놈이 공국 병력과 합류해서 움직
일 것도 계산해 뒀어. 지금 병력이 면 마나 마스터를 포함한 기사단도 감당할 수 있을 테지.’
3명의 지부장이 마나 마스터를 상 대하고,수하들이 기사를 상대한다. 공국의 기사단이 있을 경우를 대비 하여 철저하게 준비해 온 칼리고였 다.
맞은편의 병력 사이에 로브를 덮어 쓴 사내가 보였다.
사내는 마나 블레이드를 펼친 검을 쥐고 있었다.
마나 블레이드를 목격한 칼리고는 그가 강현이라고 확신했다.
마나 블레이드를 쥔 사내에게서 짙 디짙은 살의가 전해져 왔다.
어찌나 살기등등한지 시선을 마주 치기만 해도 피부가 따끔거렸다.
“바로 백병전에 들어간다. 모두 작 전대로 수행하도록.”
“네!”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칼리고는 바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벌써 상대와의 거리는 W미터 정 도로 좁혀졌다.
측면에서도 힐라와 스티븐의 부대 가 공격에 들어가며 삽시간에 공국 의 기사들을 에워쌌다.
공국의 기사들과 조직원이 한데 얽 히면서 숲 한가운데가 전장이 되었 다.
보금자리를 떠난 새들의 지저귐 대
신 격한 쇳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 졌다.
챙! 차앙! 채앵!
난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칼리고는 마나 블레이드를 든 사내에게 쇄도 했다.
그러고는 처음부터 자신의 주력 기 술인 윈드 블레이드를 전개했다. 바람의 검을 소환할 수 있는 A급 스킬이 었다.
바람을 이용한 무형의 검이기에, 상대의 입장에선 길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이 기습으로 치명타를 먹인 후에, 그 기세를 이어 나가 상대를 몰아붙 이는 게 칼리고의 공격 방식이었다.
후우응!
칼리고가 거침없이 바람의 검을 사 내에게 뻗었다.
그런데 상대는 마치 바람의 검이 눈에 보이기라도 한 양 주저 없이 쳐냈다.
마나 블레이드가 바람으로 이루어 진 검날을 갈랐다.
마나 블레어드의 검격에 검날을 이 루고 있던 바람이 흩어지며 스킬이 강제로 풀려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람의 검을 이루고 있던 바람이 흩어지면서 사 내의 로브가 뒤로 넘어갔다.
걷혀진 로브 아래로 반짝이는 은발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생김새를 목격한 칼리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은발이라면…… 공국의 사냥개인 가!”
천부적인 전투 감각과 흔치 않은 은발.
공국에 존재하는 2명의 마나 마스 터 중 한 명인 네베르를 가리키는 지표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마나 블레이드를 쓰는 것으로 강현 이라 짐작했는데,공국에서 강현을 구하기 위해 마나 마스터를 파견했 단 말인가!
그렇다면 강현은 어디 있다는 거 지?
*
한편 강현은 칼리고 부대의 최후방 에서 마나포션을 빨고 있었다.
전방에선 벌써 전투가 벌어졌고, 아까 싸웠던 마나 마스터의 모습도 확인했다.
마나포션의 효과가 몸에 돌기 시작 하면 바로 뛰쳐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방에서 다소 높아진 언성 이 들려왔다.
“공국의 사냥개인가!”
공국의 기사인 줄 알았던 자가 상 대를 두고 공국의 사냥개라 했다. 공국의 사냥개에 대해선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강현이었다.
공국에 존재하는 두 명의 마나 마 스터 중 한 명이라는 것.
상대가 공국의 기사라면 이들은 누 구인가.
공국 외에 서신을 노리는 자들은 한 곳뿐이다.
‘음? 저쪽이 공국의 기사들이라고?’ 어째서 공국의 기사들이 나를 쫓았 던 걸까.
칼덴 협곡에서 기다리기로 했던 자 들이건만,실제로는 제국 국경에서 부터 쫓아왔다.
차라리 마중 나오는 게 빠를 거라 생각해서 제국 쪽으로 넘어왔던 건 가?
그렇다면 모든 게 해명된다.
공국의 기사들은 타르손을 마중하 러 왔다가 그의 죽음을 알게 되었 고,서신을 가진 자신을 조직원으로 착각하여 여기까지 쫓아온 것이다. 반면 조직은 자신을 잡기 위해 칼 덴 협곡에 들어왔다가 뛰쳐나온 거 고 말이다.
담쟁이 넝쿨이 얹혀 벽이 보이지 않게 되듯,상황과 상황이 얽혀 서 로의 눈을 가린 셈이었다.
“아무래도 이쪽이 조직인 것같 다.”
강현의 말에 김혜림도 지금 막 알 아첸 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런 것 같네요. 마침 잘됐어요.
이대로 조직의 뒤를 치죠.”
당장 강현이 이대로 뒤를 치면 조 직의 진형을 무너뜨리는 건 일도 아 니다.
앞에선 네베르,뒤에선 강현.
두 명의 마나 마스터가 앞뒤에서 날뛰는 것이다.
조직 입장에선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지리라.
하지만 강현은 전방에서 광기에 절 어 칼리고를 몰아붙이는 네베르를 보았다.
“가증스러운 놈들! 여기가 너희들 의 묏자리가 될 것이다!”
아까 네베르가 조직원인 줄 알고 한껏 그의 신념을 부정했었다.
이제 와서 오해라고 해도 쉬이 믿 어 줄지 의문이었다.
되려 서신을 내놓으라고 검을 들이 밀 가능성이 더 높았다.
반면 조직은 강현을 완전히 아군으 로 인식하고 있다.
아군이어야 할 공국의 기사들이 적,적군이어야 할 조직원들이 아군 이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이왕 서로 오해하게 된 거,이 상 황마저 이용해 버리자.
강현은 뽑으려던 빙백검을 다시 검 집에 집어넣었다.
“이 상황을 이용하도록 하지.”
화살통에서 화살을 뽑던 김혜림이 의아해했다.
“어떻게 하게요?”
“보고나 있어.”
강현은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고 조 직원들의 뒤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 곤 기사들과 싸우는 조직원들 중 밀 리고 있는 자들을 주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을 입은 조 직원 하나가 후방으로 빠져나왔다. 강현은 마치 동료를 보조하는 양 그를 부축해 주었다.
“어이,괜찮나?”
조직원은 강현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동료라 여겼다.
“큭,그리 큰 부상은 아니야. 신경 쓰지 말고 칼리고 지부장을 엄호 해.”
“상황이 급박해서 보고하지 못했는 데 놈들한테서 서신을 흠쳐 냈어.”
“뭐? 그게 사실이야?”
강현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슬쩍 서 신을 꺼내 보였다.
아공간 주머니 입구에 서신 끄트머 리가 살짝 튀어나왔다.
로브로 절묘하게 아공간 주머니를 가려서 부축하고 있는 조직원에게만 보여 주었다.
조직원은 서신을 보곤 눈을 휘둥그 레 떴다.
“그렇다면 얼른 칼리고 지부장께 이 사실을……
“잠깐. 이 상황에서 서신의 위치를 알리는 건 좋지 않아. 차라리 서신을 들고 안전한 쪽으로 이동하는 게 낫지 않겠어?”
“과연 그렇군. 가장 중요한 건 서 신을 회수하는 거니까.”
“그래서 말인데 난 바로 전장을 이 탈하고 공국에 있는 지부장을 찾아 가려고 해. 공국에 있는 지부장들의 위치를 아나?”
지부장의 위치를 묻자 조직원이 다 소 경계하듯 되물었다.
“왜 굳이 공국 지부장에게로? 다시 국경을 넘어서 제국으로 들어가면 공국의 기사들도 쫓아오기 힘들 텐 데?”
정확한 지적이었으나 강현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적당한 핑곗거리를 내밀었다.
“빙검의 용병이 공국 놈들한테 서 신을 전달하고 제국으로 돌아갔어. 자칫 잘못하다가 놈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곤란해.”
“그래서 빙검의 용병이 보이지 않 는 거였나. 일단 무슨 말인지는 알 겠어. 하지만 나도 지부장들의 위치 는 몰라.”
말단 조직원들은 지부장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편이었다.
강현이 일전에 만난 말단 조직원들 도 그러했다.
이번처럼 합동 작전을 펼치는 때가 아니면 지부장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조직원은 대신 자신이 아는 공국 말단 조직원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지부장 위치는 몰라도 조직원 한 명은 알아. 데르먼 영지에 로스탱이 란 조직원이 기사로 잠복해 있어. 그한테서 공국에 있는 지부장의 위 치를 알아보면 될 거야. 반드시 서 신을 지켜야만 해.”
어떻게든 서신을 안전한 곳으로 옮 기기 위해 가진 정보를 끄집어내는 조직원이 었다.
목소리에 노이즈는 섞이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정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김혜림과 함 께 전장에서 이탈했다.
공국의 기사들이며,조직의 지부장 들 모두가 생사투에 바빠 강현의 움 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전장의 피비린내가 점점 옅어지고, 날붙이가 맞부딪치는 쇳소리가 잦아 들 즈음.
김혜림이 뒤늦게 의문을 표했다.
“공국에 있는 조직원이라도 처리하 게요?”
“등잔 밑이 어둡다지. 조직의 추격 을 피하는데 조직원 행세보다 더 나 은 게 있을까.”
“아? 과연 그렇네요. 근데 공국의 기 사들은 서신을 추적할 수 있잖아요. 조직의 추격은 둘째쳐도 오해를 풀지 않으면 또 싸우게 되지 않을까요?”
“일부러 오해를 풀지 않은 거야.”
강현이 공국의 수도로 나아가고, 벤젠 기사단이 강현의 행로를 밟아 따라온다.
그리되면 그 과정 중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강현의 의도를 깨달은 김혜림이 씨 익 웃었다.
“안전은 안전대로 챙기고,적은 적 대로 제거하자 이거네요. 아휴,꾀돌 이 아저씨 같으니.”
“썩 달가운 칭찬은 아니군.”
“아니면 채플린 아저씨라 해 줄까 요? 아까 보니까 연기 잘하시던데.”
“됐으니까 달려.”
*
네베르를 상대하던 칼리고는 시간 이 흐를수록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강현의 능력을 경계하여 상대적인 능력자들을 뽑아왔다.
강현의 최대 트레이드 마크인 빙백 검,그러니까 검 타입 보구의 능력 을 봉쇄하는 능력자들을 준비했던 것이다.
한데 네베르는 보구도,스킬도 쓰 지 않았다. 그리고 순수 검술만으로 전투에 임했다.
사정이 그러하니 강현의 무력을 봉
쇄하려고 준비한 수단들이 모조리 쓸모없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전멸을 면치 못할 터. 분하지만 당장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칼리고는 고민 끝에 퇴각 명령을 내렸다.
“전원 산개해라! 집합 장소는 세션
C로 한다!”
칼리고의 명령에 싸우던 조직원들 이 일제히 흩어졌다.
칼리고 역시 네베르를 떨쳐 내고 물러났다.
집합 장소로 가기 전에 한껏 교란 하여 네베르의 추격을 뿌리쳐야만 했다.
수풀 사이를 달리던 칼리고에게 말 단 조직원 한 명이 따라붙었다.
“칼리고 지부장님. 아까 싸우던 중 정찰조가 희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희소식?”
“서신을 훔쳐 냈다고 합니다.”
“뭐? 그게 사실이더냐?”
“직접 두 눈으로 서신을 확인했습 니다. 서신의 안전 확보가 우선이라 여겨 한참 전에 미리 전장을 이탈한 상태입니다.”
말단 조직원이 멋대로 전장을 이탈 한 셈이지만 칼리고는 그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래 목적인 서신을 확보했 다는 것에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훌륭한 판단이군. 서신을 확보한 자가 누구더냐?”
“부상 중에 이야기를 나눈 터라 정 확히 누구인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대신 데르먼 영지의 로스탱이란 조 직원에게 가라고 해 뒀습니다.”
“우리도 곧장 데르먼 영지로 간다. 힐라와 스티븐에게도 이 얘기를 전 해라. 집합 장소를 세션C에서 공국 의 데르먼 영지로 바꾸겠다.”
“알겠습니다.”
한편 공국의 기사들은 네베르의 지 시를 기다렸다.
“단장,놈들이 물러납니다. 추격할 까요?”
“아니,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마라. 서신을 가진 놈만 쫓으면 된다. 빅 터,서신의 위치는?”
전투 중에 부상을 입은 빅터가 상 처 부위에 포션을 부으며 오버로드 의 수정을 꺼내 서신의 위치를 확인 했다.
“놈은 지금 칼덴 협곡을 지나고 있 습니다.”
“음? 제국 쪽이 아니라 공국 쪽으 로 가고 있단 말이냐?”
“적어도 오버로드의 수정에는 그리 뜨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쫓아가야 합니다. 서신의 위치가 수정의 수색 범위 바깥으로 넘어가기 직전입니 다.”
여기까지 와서 서신을 놓칠 순 없 는 노릇이었다.
서신이 반경20km를 벗어나면 다 시는 쫓을 수 없다.
막 전투를 마친 터라 지친 상태였 지만,네베르를 비롯한 기사들은 추 격 의지를 불태웠다.
“바로 출발한다. 마주치는 조직원 은 모두 베도록. 놈들에게 공국이 호락호락한 곳이 아님을 알게 해 주 어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