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화
강현의 얼굴에 전에 없던 긴장감이 어렸다.
빙백검을 막아 낸 상대의 검에 어 린 푸른 기운.
그것은 분명 마나 블레이드였다.
그것은 상대의 경지 역시 마나 마 스터란 뜻이었다.
‘조직에서도 슬슬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 시작했나.’
이 세계에서 정권을 잡으려는 자들 인 만큼 마나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 으리라 여겼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자신을 상대하 기 위해 마나 마스터를 보낸 것이리라.
강현은 머리를 차갑게 했다.
마나 마스터와 부딪치는 것은 이번 이 처음이었다.
여태껏 마나유저 상급 이하의 적들 만 상대해 왔고,그마저도 자신의 무력에 지레 겁을 먹거나 다수로 덤 벼 오는 적밖에 없었다.
같은 마나 마스터에겐 자신의 실력 이 얼마나 통할까.
강현은 사내를 향해 빙백검을 휘두 르며 증폭의 효과를 발동시켰다.
후응!
증폭의 기운을 실은 빙백검이 사내 를 노리고 떨어졌다.
카앙!
그런데 증폭의 기운을 채 쏘아 내 기도 전에 사내의 검이 날아들었다. 때문에 증폭의 기운이 나아가지 못 한 채 빙백검이 뒤로 튕기고 말았 다.
스킬의 효과인가?
아니다. 상당 기간 검술에 시간을 할애한 강현이다.
상대의 기술이 순수 검술인지,스 킬인지 구분할 안력 정도는 충분히 있었다.
방금의 공격은 순수한 검술 실력이 었다.
무게중심이 옮겨 가는 때를 노려서 단숨에 가격했다.
‘대단한 센스군.’
강현의 공격을 튕겨 냄으로 기세를 잡았다 여겼음인지,사내가 물 흐르 듯 공격을 이어 나갔다.
동작을 크게 잡는 것 같은데도 공 격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쾌검의 묘를 가미한 검술이 폭우처 럼 연이어 이어졌다.
카앙! 카가각! 캉!
쉴 틈 없는 연타에 강현은 수비일 변도로 대응했다.
상대의 검술이 제법 뛰어나 좀처럼 반전의 기회가 열리지 않았다.
‘증폭을 쓰려고 자세를 크게 연 게 컸어.’
마치 언덕 위에서 굴린 눈덩이가 점점 불어나듯,한번 주도권을 뺏긴 이후로 상대의 공격이 더욱 거세어 만 갔다.
문제는 그뿐만 아니었다.
“저희도 합세하겠습니다!”
사내의 뒤편에서 강현을 추적하던 두 명이 가세했다.
그들이 사내의 양옆을 점하고 측면 에서 공격해 왔다.
일대일에서도 밀리고 있는데 다른 자들까지 가세하면 더욱 힘들어진 다.
하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마나 블레이드라면 몰라도,어지간 한 공격이라면 반사 스렛으로 커버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자신 역시 혼자가 아니었다.
싁! 쉬익!
합공을 당하겠다 싶던 찰나,어디 선가 화살 두 대가 날아왔다.
두 사내가 급급히 화살을 쳐 내거 나 피하느라 몸을 젖혔다.
김혜림의 지원사격이었다.
아마도 맞출 생각이었겠지만 추적 자들의 기민함이 만만치 않았다. 하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견제가 들어온 이상 두 추적자들도 움직임이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적절한 엄호도 있겠다,강현이 뒤 편으로 몸을 날려 여백을 만들고 상 황을 반전시키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사내의 마나 블레이드가 견제를 섞
으며 오른쪽 어깨로 날아들었다.
일격필살을 노린 강공을 강현이 모 조리 막아 내자,공격 형태를 바꾼 것이었다.
‘왔다!’
강현이 몸을 왼쪽으로 기울이자, 사내의 마나 블레이드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왜곡의 효과였다.
예상 외로 크게 틀어진 검로에 사 내가 눈을 부릅뜨는 찰나,빙백검이 그의 옆구리를 베어 냈다.
서격!
사내의 로브 옆구리가 잘려 나가며 붉은 금이 일어났다.
‘실드가 없다?’
설마 공격 스텟에만 포인트를 투자 한 마나 마스터란 말인가?
어쨌든 반격당할 여지를 남기지 않 는 것과 동시에,공격의 명중에 중 심을 둔 검격이었기에 상처의 깊이 가 얕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증폭이 일으킨 마나 파문이 남아 있었다.
“크옥!”
마치 야생 짐승에게라도 물어뜯기 기라도 한 듯 사내의 옆구리에 난 상처가 크게 벌어졌다.
빙백검의 검격은 작은 경상에 그쳤 으나,증폭의 효과로 치명상으로 번 져 나간 것이었다.
아마도 몸속 또한 진탕이 되었을 터.
‘이대로 끝낸다.’
주도권을 끌어온 강현이 마지막 일 격을 날렸다.
무게중심을 허리에 옮기고 빙백검 을 크게 휘둘렀다.
채앵!
한데 이번에도 검이 떨어지기 전에 상대의 마나 블레이드가 빙백검을 튕겨 내고 말았다.
그야말로 지독한 집중력이었다.
사내는 통증으로 인해 식은땀을 흘 리고 있었다.
허나 상처 입은 야수가 더욱 흉폭 해지듯 살의는 더욱더 흉흉했다.
집념만으로 통증을 버텨 내고 있는 건가.
사내의 입을 통해 노기 어린 목소 리가 흘러나왔다.
“왜 그만한 힘을 가지고 그 따위 일을 하느냐.”
또 조직의 이념인가.
이세계인의 득세를 위해 힘을 쓰라 는 말은 질리도록 들었다.
고장 난 주크박스도 아니고 조직원 들은 전부 똑같은 말밖에 못하는가. 강현은 빙백검의 손잡이를 최대한 당겨 잡으며 말했다.
“적어도 너희가 믿는 것보단 훨씬 값어치 있는 일이지.”
“나와 동료들의 명예를 모욕하는
것이냐. 내 네놈의 목을 베어,죽은 동료들의 원혼을 달래겠다.”
“싸구려 원혼을 달래기 위한 죽음 이라면 사양하지.”
“이놈!”
사내의 검이 날아드나 싶더니 급격 하게 궤도를 꺾으며 강현의 발 주변 을 내리쳤다.
쿠음! 쩌적!
쾌검이 특기인 줄 알았는데 강검 또한 각별했다.
사내의 마나 블레이드가 바닥을 강 타하자,강현이 선 자리의 바닥이 붕괴되며 균형이 흐트러졌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음푹 패인 바닥으로부터 돌조각이
비산했다.
튀어 오르는 돌 파편들 사이로,사 내의 마나 블레어드가 날아들었다.
‘큼!’
강현은 내심 신음을 흘렸다.
사내의 검속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일격필살의 한 수!
그에 대비하여 있는 힘껏 허리를 비틀었다.
하나,사내의 검이 기어이 어깻죽 지에 떨어졌다.
파지직!
마나 블레이드가 강현의 어깨에 부 딪쳤으나 반사 실드에 막히면서 파 열음을 일으켰다.
직후,사내의 검격이 마나 덩어리
가 되어 반사되었다.
사내는 자신의 마나 블레이드를 거 두어 지척에서 반사된 마나 덩어리 를 베어 냈다.
동일한 위력을 지닌 공격이 부딪치 면서 상쇄되었다.
이런 초근거리에서 반사된 공격을 읽어 내고 상쇄했단 말인가.
실로 놀라운 기민함이었다.
‘사생결단이라도 한 건가. 여기서 죽을 작정으로 덤벼 오는군.’
강현은 사내가 마나 덩어리를 베느 라 잠시 주춤한 틈을 타서 빙백검을 아래로 찔렀다.
그러나 그 또한 막아 내는 사내였 다.
채앵! 챙! 차앙!
또다시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공격이 반복되었다.
장기전이라면 강현이 훨씬 유리하 다.
상대는 옆구리에 치명상을 입었다.
공방전을 이어 나가기만 해도 전세 를 끌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강현에겐 시간이 없었다. 사내의 어깨 너머로 아른거리는 십 수 명의 인영이 보였다.
적의 본대가 도착한 것이다.
마나 마스터와 대치한 채로 적에게 둘러싸이는 건 좋지 않다.
심지어 상대는 등귀어진이라도 할 생각으로 덤벼들지를 않는가.
작전 변경이 필요한 때였다.
‘굳이 적에게 둘러싸여서 싸울 필 요는 없지. 칼덴 협곡으로 가서 공 국의 기사단을 전투에 끌어들여야겠 군.’
칼덴 협곡에서 기다리고 있을 공국 의 기사들과 합류하면 수적으로도 부담이 줄어든다.
굳이 여기서 위험을 무릅쓰고 고군 분투할 이유가 없었다.
강현은 상대가 검을 휘두를 때에 맞춰 위치 되감기를 전개했다.
강현의 몸이 1분 전에 있던 나무 뒤로 옮겨졌다.
널찍한 나무기둥은 훌륭한 엄폐물 이 되어 주었다.
상대 입장에서 보면 신기루마냥 사 라진 것처럼 보이리라.
별안간 싸우던 상대가 사라진 탓에 사내가 목청을 높였다.
“크으으,비겁하기 짝이 없는 놈! 모름지기 사내란 놈이 싸움 중에 도 망을 치느냐!”
강현은 도발을 홀려넘기며 칼덴 협 곡이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위치를 옮겨 가며 엄호 사격을 하 던 김혜림이 재빨리 합류하여 카모 플라쥬를 써 주었다.
녹색 빛에 둘러싸여 주변의 풍경에 녹아들던 중 김혜림이 낮은 목소리 로 말했다.
“이대로 칼덴 협곡까지 가야겠죠?”
“속도를 높여. 적은 추적 수단을 가지고 있어.”
벌써 뒤편에서 추격대가 따라붙었 다. 확실히 위치를 파악하고 있단 뜻이다.
달리는 속도는 엇비슷하다.
때문에 서로의 거리는 계속 유지되 었다.
추격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상대방 마나마스터가 포션으로 상처를 회복 하는 게 보였다.
강현은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칼 덴 협곡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기사들이 이쪽으로 오게 만드는 게 더 빠르겠군.”
“아직 제법 거리가 있는데 목소리 가 닿겠어요?”
“목소리보다 더 효과적인 게 있 지.”
기사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이 쪽으로 와 줘야만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그들을 부를 방법이라면 있었다.
강현은 달리면서 곳곳에 마나폭검 을 날렸다.
굳이 섬세하게 마나를 가다듬을 것 도 없이 큼직큼직하게 파편을 퍼뜨 렸다.
굵직한 마나 파편이 사방에 퍼지면 서 요란하게 나무를 무너뜨렸다.
와드드득! 와지끈!
갑작스레 일어난 굉음이 고요했던 사방에 널리 퍼졌고,깜짝 놀란 새 들이 곳곳에서 날아올랐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이 굉음을 듣고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킬 터. 강현은 요란하게 인기척을 일으키 며 수풀 사이를 내달렸다.
*
협곡 위에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들 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들 모두 숲에서 들려온 굉음에 민감히 반응했다.
협곡 위 양쪽에 갈라져 있던 지부 장 세 명이 급히 한데 모였다.
“무슨 일이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어. 숲에서 난 소리 같은데?”
“소리로 보건데 상당한 위력이 공 격이 퍼부어진 것 같군.”
“설마 정찰조가 발각당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아. 놈이 정찰조 를 잡았다면 매복 작전이 들켰을 거 야.”
“정찰조는 힐라의 부대에서 파견했 었나? 제 상사를 닮아서 그런지 노 출하는 데엔 일가견이 있군.”
“뭐라고 지껄였어? 이마로 숨 쉬게 해 줄까? 앙?”
“둘 다 거기까지만 해 둬라. 이리 된 이상 매복 작전은 취소한다. 각자 당장 병력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 가도록.”
조직의 세 지부장은 협곡 위에 대 기시켜 둔 부하들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갔다.
때 아닌 소란에 숲 전체가 어수선 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또 한 번 폭발 음이 들려왔다.
과앙!
분명 마나 마스터인 강현의 공격이 리라.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는 건 아직 전투 중이라는 뜻이다.
세 지부장은 굉음을 쫓으며 양동작 전을 논했다.
“내가 정면! 힐라는 우측! 스티븐 은 좌측에서 놈을 덮친다!”
“오케이,칼리고.”
칼리고의 지시에 따라 힐라와 스티 븐의 부대가 각각 측면으로 흩어졌 다.
칼리고는 다용도 조끼의 앞 지퍼를 끝까지 끌어올리며 호흡을 가다듬었 다.
상대는 무려 마나 마스터다.
기습이 실패한 이상 목숨을 걸 각 오로 싸워야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풀 사이에서 두 남녀가 튀어나오며 칼리고와 마 주쳤다.
강현과 김혜림이었다.
하지만 칼리고는 힐라가 파견한 조 직의 정찰조라 여겼다.
외모로 보아 두 동남아인으로 보였 으니,강현과 김혜림이라곤 생각지 못한 것이다.
두 남녀가 최강현으로 추정되는 마 나마스터에게 쫓기던 중이라는 점도 착각에 한몫 했다.
칼리고는 시야 확보가 먼저라는 양 신경질적으로 강현을 뒤쪽으로 떠밀 었다.
“상황 설명은 됐으니 일단 후방에 붙어라.”
두 남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칼리고 부대의 맨 끝에 자리를 잡았다. 강현은 갑자기 마주친 자들의 뒤에 따라붙으며 흐트러진 마나를 갈무리 했다. 그러곤 주위의 모두가 임전태 세에 들어간 걸 확인했다.
그들에게 있어선 돌발 상황일 텐데 도 침착하게 전투 준비까지 해 왔 다.
그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이들이 상당한 훈련이 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일으킨 굉음만으로 상황을 파악한 건가. 공국의 기사들은 상당 히 수준이 높군.’
이 정도로 잘 훈련되어 있다면 추 격대와 충분히 해 볼 만할 터.
병력 숫자도 상당히 많은 게 수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로써 수적 열세는 해결되었다.
강현이 상대의 마나 마스터만 잘 처리하면 손쉽게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거다.
강현은 만약을 위해 마나회복을 해 두고자 옆 사람에게 말을 붙였다.
“혹시 마나회복포션 있나?”
옆 사람은 혀를 차면서 강현을 보 더니 이내 작은 약병을 꺼내어 내밀 었다.
약병 안에 쪽빛처럼 푸르른 색깔의 물약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척 봐도 A급 수준의 마나회복포션 이었다.
‘A급씩이나 주다니 꽤 친절하군. 이게 공국의 인심인가?’
강현이 후한(?) 인심에 감탄하는 사이 전방에선 병력끼리의 충돌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