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화
강현은 구멍에 들어오기 직전,6시 방향의 석문 위를 보았었다.
이는 그냥 본 것이 아닌,시간을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반면 기사들은 전투에 집중하느라 시간 개념이 흐려져 있었다.
더욱이 밀폐된 공간과 어두운 시 야,지금 끝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그들의 눈을 흐려 놓았다. 하나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통로 가득 지옥의 불꽃이 피어오르 면서 모든 사람을 집어삼켰다.
링이 있는 강현 일행은 무사했으
나,링이 없는 기사들은 삽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모든 것이 강현의 전략이었다. 기사들을 동굴 안으로 끌어들인 것,그리고 마나 블레어드를 난사하 여 이들의 이목을 끌어온 것까지. 웨이브의 ‘선별’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의 연속이었다. 강현이 어깨 위에 앉는 잿더미를 툭툭 털었다.
“자업자득이지.”
*
지옥의 불꽃이 가라앉은 후, 강현 은 팔에서 업화의 불꽃 링과 지옥의 불꽃 링을 빼냈다.
원래는 팔목에서 풀리지 않는 특징 을 지닌 귀속 링이었는데,불꽃 링 이 되면서 빼낼 수 있게 되었다. 강현은 두 개의 불꽃 링을 들고 비밀방 앞에 다가섰다.
[비밀방에 발을 들이려는 자. 업화 의 불꽃이 담긴 링,지옥의 불꽃이 담긴 링을 홈에 넣어라. 그리하면 링의 해방을 열쇠 삼아 문이 열릴지 니.]
문에 새겨진 문구에 따라 두 개의 링을 홈에 끼워 넣었다.
끼릭!
홈에 링을 끼워 넣자 두 불꽃 링 에서 불길이 새어 나왔다.
‘링의 해방이라는 게 링이 흡수한 불꽃이 해방된다는 뜻이었나.’
해방된 두 개의 불꽃이 하나로 뭉 치나 싶더니 녹색 불길이 되어 강현 의 팔목으로 날아들었다.
강현의 팔목에 남아 있던 마지막 귀속 링이 녹색 불길을 흡수하면서 문구가 새겨졌다.
[각성의 불꽃 링.]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마침내 비밀 방 문이 열렸다.
비밀방 문 안쪽은 빛으로 가득했
다.
방 안에 발광이끼가 한없이 자라나 있어 내부가 매우 밝았다.
비밀방 한가운데에는 궤짝 하나가 있었는데,궤짝 덮개에 링 모양의 홈이 파여 있었다.
더불어 홈 아래에 궤짝을 여는 방 법이 적혀 있었다.
[홈에 각성의 불꽃 링을 넣으면 궤 짝이 열릴 것이니.]
문구의 내용대로 각성의 불꽃 링을 끼워 넣었다.
그러자 궤짝의 덮개가 쩌억 벌어지 며 뒤로 넘어갔다.
궤짝 안에는 스킬북 하나가 다소곳 이 놓여 있었다.
그 스킬북을 꺼내어 펼쳐 들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물음표 등급의 스 킬북이었다.
[개화의 서(등급 ?)]
[습득자의 레벨이 100,200, 300,
400, 500을 달성할 때마다 특수능 력이 개화된다. 각성의 서,명계의 서를 익힌 자만이 개화의 서를 습득 할 수 있다.]
각성의 서는 스텟을 기준으로 각성 이 이루어지는데,개화의 서는 레벨 을 기준으로 개화가 이루어졌다.
강현의 현재 레벨은 96.
조금만 더 레벨을 올리면 100이 되니,마침내 첫 번째 특수스킬을 개화시킬 수 있었다.
강현은 개화의 서를 습득하고 상태 창을 확인해 보았다.
[최강현 (lv.96)]
파괴 : 275 실드 : 39 왜곡 : 176 정제마나 : 111 회복 : 46 보너스 포인트 : 0 보유스킬 : 각성의 서(?),세이덴의 독주머니 (S),마나폭검 (S),석상 호걸의 갑옷(S),쉐도우 리퍼의 외갑 (SS), 명계의 서(?), 위치 되감기(S), 개화의 서(?)
특수능력 : 없음
상태창에 특수능력 항목이 새롭게 추가되어 있었다.
첫 특수능력이 뭔지는 이번 웨이브 공략이 끝날 때 즈음 알 수 있을 터였다.
스킬북을 습득한 뒤에 문득 등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뒤편에는 김혜림과 에르델이 관람 이라도 나온 양 멀뚱하게 서 있었 다.
“할 말이라도 있나?”
강현이 말을 걸길 기다렸는지 김혜 림의 입이 열렸다.
“무슨 스킬북인지 물어보면 대답해 줄 거예요?”
“전혀.”
“뭐 상관없겠죠. 어차피 같이 있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될 테니까요.”
언젠가는…… 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들러붙어 있을 생
각인 건지.
이제 와선 새삼 놀람지도 않다. 강현은 김혜림의 머리에 손을 올린 후 그녀를 지나치며 말했다.
“그러던지.”
이제 3차 선별만이 남았다.
마지막은 제왕의 불꽃이라 했던가.
제왕의 불꽃에서 살아남기 위한 링 을 가지러 가야 했다.
남은 링들을 2-D구역에 묻어 뒀 었다.
숫자는 5개이니,3차 선별에서 세 사람이 살아남기에는 충분했다. 강현은 라그나로스 공략 조건을 되 새겼다.
업화의 불꽃 링,지옥의 불꽃 링,제 왕의 불꽃 링을 착용해야 된다고 했 었나.
라그나로스는 공격무효화 능력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무시하기 위해서 는,세 차례에 걸친 선별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세 가지 성격의 링이 필 요했다.
‘흐음,업화랑 지옥 링은 이미 비밀 방 입장에 써 버렸고……. 에르델이 가지고 있는 링을 써야겠군.’
자신은 비밀방을 열기 위해 업화의 불꽃 링과 지옥의 불꽃 링을 소모해 버렸다.
그래서 에르델이 가진 업화의 불꽃 링과 지옥의 불꽃 링을 전해 받아서 라그나로스의 등장에 대비했다. 강현은 에르델에게서 2개의 링을 받아 팔에 차며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사람은 W명 남짓이겠 군.”
1차 선별 이후 60명이 살아남았었다.
그중 4,50명의 기사가 에르델을 습격하려다가 강현의 손에 죽었다. 슈타인 백작과 빌토르 백작에게 남 은 병력은 기껏해야 10명 남짓일 터.
에르델은 나름대로 두 백작의 행동 을 예상해 보았다.
“저쪽은 아직 강현 씨의 존재를 모 르고 있어요. 기사들이 죽은 건 단 순히 2차 선별 때문,이번에는 두 백작이 직접 저를 치러 올지도 모르 겠네요.”
“그 전에 황녀님이 살아 있는지부 터 확인하는 게 먼저겠지요.”
“그렇다면 잠시 자리를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강현 씨가 마나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대규모 난전 이후 시간이 조금 흘 렸기에 마나는 2할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그러나 완벽을 기하기 위해선 최소 한 7할 이상의 마나를 확보하는 게 나았다.
일행은 일단 강현의 마나가 회복될 때까지 다른 곳에서 대기하기로 했 다.
그 전에 강현은 제한시간을 확인해 두고자 6시 방향의 문 위에 새겨진 문구를 바라보았다.
[스타폴 미궁(SS랭크)]
[제한시간 : 30시간]
[현재 라그나로스 위치 : ???]
[현재 미궁에 남은 링의 개수]
[-일반 링 20개]
[-업화의 불꽃 링 17개]
[-지옥의 불꽃 링 W개]
[-제왕의 불꽃 링 0개]
이상한 일이었다.
웨이브 내의 시스템이 라그나로스 의 위치를 아??’로 표기해 두고 있 었다.
게다가 남은 제한시간이 30시간이 었다.
47개였던 업화의 불꽃 링은 17개 로 줄어 있고 말이다.
누군가가 업화의 불꽃 링을 한꺼번
에 30개나 먹였다.
이상함을 눈치챔 건 강현만이 아니 었다.
김혜림도 뒤이어 제한시간을 확인 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30시간이라고? 게다가 업화 의 불꽃 링이 30개나 줄었어? 어느 멍청이가 30개나 먹인 거야!” 원래라면 앞으로 24개,또는 25개 만 먹여도 된다.
24시간 뒤에 3차 선별이 끝나면 제왕의 링이 생기므로 라그나로스를 공격할 수 있게 되니까.
그런데 누군가가 30개나,그것도 공격력을 올려 주는 업화의 불꽃 링 만 잔뜩 먹였다.
두 백작 쪽에 무슨 일이 발생한 게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9시 방향의 문이 들썩거리더니 검게 그을린 사내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화상 자국으로 만신창이 몰골이었 지만,복장 등으로 보아 빌토르 백 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강현 일행을 발견하고는 신음 을 홀리듯이 말했다.
“으으으,미,미친…… 슈타인 백작 의 딸 때문에…… 이런 젠장…… 현재의 이상현상을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정보원이다.
강현은 서둘러 빌토르 백작을 붙들 고 말했다.
“말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 지?”
빌토르 백작은 정신상태가 불안정 해진 탓인지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 았다.
“나와 슈타인이 직접…… 나리야가 반지 달린 손을 발견해서…… 갑자 기 라그나로스에게…… 출구도 발견 하지 못……
화상 때문에 입술이 눌어붙어서 말 의 대부분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강현은 귀에 들어오는 말만 대충 간추려서 짐작해 보았다.
“두 백작이 직접 수색에 나서려 했 는데,나리야가 최진철의 잘린 손을 보았다는 건가.”
최진철을 죽일 때 그의 손을 잘랐 었다.
그 잘린 손에 달린 반지를 보고 최진철이 죽음을 짐작한 나리야가 실성했고, 라그나로크에게 업화의 불꽃 링을 먹인 듯했다.
에르델은 안타까운 듯 한탄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불쌍한 사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까지 하다니.”
나리야는 최진철에게 속아 금지구 역의 봉인까지 푼 여자다.
속은 이후에도 미친 것마냥 최진철 만 찾아 댔었다.
사랑에 빠졌다기보단 광적인 집착 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최진철이 곧 인생의 목적이나 다름 없던 여자였으니,그가 죽은 걸 안 순간 이성을 잃고만 것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최진철을 죽인 자 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라그나로스를 강화시키는 것이 바 로 그것이었다.
자신이 죽이지 못할 바엔,던전 보 스를 강화시켜 그 복수를 대신 이루 고 말겠다는 생각이었으리라. 그리하여 나리야가 두 백작이 퍼트 려 놓은 업화의 불꽃 링을 모아서 라그나로스에게 먹인 게 분명했다. 강현은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 가장 중요한 건,어째 서 라그나로스의 위치가 물음표로 뜨냐는 점이었다.
그 부분은 굳이 빌토르 백작에게 물을 것도 없었다.
빌토르 백작이 올라온 9시 방향 문 너머에서 강렬한 열기가 전해져 왔다.
화르륵!
업화의 불꽃 링을 대량으로 먹인 탓에 라그나로스의 온도가 대폭 상 승했다.
문 자체는 석문이라 불에 타지 않 는다. 그저 달궈질 뿐.
총합 43개나 되는 업화의 불꽃 링 을 먹은 라그나로스다.
그로 인해 라그나로스가 비정상적 으로 강화되면서 경첩이 녹을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라그나로스의 등장을 알아챔 강현 이 6시 방향의 문으로 뛰면서 말했 다.
“뛰어. 문이 뚫릴 거다.”
“네? 아! 경첩!”
강현 일행이 6시 방향의 문에 다 다를 즈음에 9시 방향 문이 뚫렸다. 투광!
9시 방향의 문이 넘어지면서 라그 나로스의 불길이 3-D구역 안으로 흑 끼쳐 왔다.
불길은 방에 들어서면서 곧 완성체 의 모습을 이루었고,이내 곧 강화 된 라그나로스의 전신이 3-D구역 안에 우뚝 섰다.
“쿠워어어!”
강화된 라그나로스의 몸집은 처음 봤을 때보다 2배나 커져 있었다.
열기도 훨씬 더 강해진 탓에,거리 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 부가 바짝바짝 말라 갔다.
심각한 화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어기적거리던 빌토르 백작은 별다른 수도 못 쓰고 불길에 휩싸였다.
“크아아악! 이,이럴 순 없어! 아 직…… 아직 이루지 못한 게…… 불길에 휩싸여 발악하던 빌토르 백 작은 이내 곧 한줌의 재가 되었다. 그사이 6시 방향 문으로 들어선 강현은 빠르게 아래층으로 이어진 나선 계단을 주파했다.
계단을 밟는 발소리가 부산하게 울 려 퍼졌다.
강현은 나선 계단을 따라 내려가던 중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랬군. 문이 뚫리면서 방끼리 이 어지게 된 거였어. 그래서 라그나로 스가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게 된 거고.’ 방을 나누는 기준은 문의 존재 여 부다.
문 너머로 입장함에 따라 구역들이 바뀌질 않았던가.
한데 라그나로스가 여기저기를 옮 겨 다니며 구역을 규정해 주는 문짝 들이 부서져 버렸다.
때문에 통로와 방의 구분이 사라져
버리고,흩어진 링들의 분류 구분도 모호해져 버린 듯했다.
이런 상황은 웨이브 내 규칙도 논 외였던지,라그나로스의 위치가 물 음표로 뜬 것이었다.
그런데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중 뒤편에서 점점 강해져 오는 열기가 느껴졌다.
벌써 나선 계단 위편에서 라그나로 스의 불꽃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강현 일 행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몸을 날리던 강현이 띔박질을 멈추 고 몸을 돌렸다.
“먼저 가 있어.”
김혜림이 곁을 지나치며 말했다.
“막을 수 있겠어요?”
강현은 빙백검을 뽑으며 대답했다.
“불장난이나 좀 하다 가지.”
평소와 같은 대답에 김혜림은 안심 하는 표정을 짓고 지나쳐 갔다. 마찬가지로 에르델까지 옆을 지나 쳤을 때,라그나로스의 불길이 흑 밀려왔다.
강현은 마나 블레이드 없이 빙백검 의 순수한 효과인 냉기 방출 능력만 을 한껏 발휘하며 검을 휘둘렀다. 치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