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40화 (40/381)

40

간밤의 습격으로 강현 일행은 속도 를 높였다.

중간에 무릎이 까진 김혜림이 아프 다며 업어 달라고 조르기는 했지만 가볍게 무시해 주었다.

동이 트고 해가 중천에 뜰 즈음 일행은 슈타인 백작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빌로스 제국의 결혼식은 지역과 계 층마다 다른 형식을 띠었는데,개중 남서 지방 귀족들은 신부의 집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편이었다.

그래서 백작가 저택은 결혼식 준비 로 분주했다.

“선물은 쌓아 두지 말고 전부 안으 로 옮겨! 명단 작성 잊지 말고!”

“누가 미리 장식을 해 둔 거야! 장 식 담당 누구야!”

먼저 도착한 각 지방 귀족들,축하 를 전하겠다며 인맥을 트려는 상인 들,그들의 호위 병력까지.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인들 은 결혼식 준비로 곤혹을 치르고 있 었다.

또한 생소한 손님이 많은 만큼 문 지기들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 다.

강현 일행이 다가서가 문지기들이 창을 교차하고 문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라. 어디의 누구인지 밝혀라.”

문지기들은 강현 일행이 하객이라 고는 생각지 못했다.

다른 하객들은 다들 기품이 넘치 고,호위대를 끌고 온 탓이었다.

반면 강현 일행은 고작 세 명. 게 다가 행색도 영락없는 여행자 몰골 이었다.

선두에 있던 강현이 뒤편에 눈길을 주었다.

에르델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섰다.

“엘리오스 킨 에르델. 황가를 대표 하여 두 백작가의 결혼식을 축하하 러 왔답니다.”

그러면서 황가의 상징인 금패를 꺼 내 보였다.

화들짝 놀란 문지기들이 허겁지겁 문양 명부에 금패를 맞춰 보았다. 음각으로 새겨진 페이지에 금패가 딱 들어맞았다.

금패에 새겨진 독수리 문양은 여지 없이 그녀가 황족임을 증명했다. 에르델의 신분이 확인되자 문지기 들이 딱딱하게 굳어서는 얼른 경례 자세를 취했다.

“자,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황녀 님. 슈타인 백작님께 알리겠습니다.”

“아뇨,제가 손님이니 먼저 인사를 드려야 마땅하죠.”

“그,그래도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면 됩니다.”

문지기 한 명이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가며 외쳤다.

“에,에르델 황녀님이 오셨습니다! 지금 막 에르델 황녀님이 방문하셨 습니다!”

에르델의 방문이 알려지자마자 저 택 내의 북적거림이 멎었다.

결혼식 준비는 대번에 중단되었고 하객으로 참석한 귀족들이 입구로 모여 들었다.

모여든 귀족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 었으며,그사이에서 슈타인 백작이 바쁘게 뛰어나와 에르델 앞에 예의 를 차렸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황녀님.”

에르델은 여객선 침몰 사실이 전해 졌음을 알아차렸다.

“경사스러운 날을 앞두고 제가 폐 를 끼쳤군요.”

“아닙니다. 제국의 귀족으로서 어 찌 황녀님의 안위를 도외시할 수 있 겠습니다. 안 그래도 소식을 접하자 마자 기사단을 파견했습니다. 라디 스트 경의 시체가 발견되어 지레짐 작했는데 기우로 그쳐 정말 다행입 니다.”

“라디스트 경이……. 그랬군요. 그 는 나름대로 임무를 다했으니 후에 그 공을 기려 주어야겠군요.”

어젯밤 마스크헬름 거한의 추격으 로 보아,라디스트가 누구에게 죽었 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에르델은 다소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을 느끼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 며 본래의 기품을 드러냈다.

“다소 사고는 있었지만 이는 황실 의 일이에요. 제게 벌어진 일은 황 실의 일로서 수습할 테니,슈타인 백작님을 비롯한 여러분은 앞으로 결합할 두 분의 축하에 힘써 주세 요.”

자신의 일을 황실의 일로 분명히 하면서 선을 긋는 에르델이었다. 황녀의 습격을 황실의 일로 못 박 아 두면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첫째는 사건 자체가 황실 관할이 되면서 황실의 활동폭이 넓어진다. 즉,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연관성을 명분으로 황실이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에르델 황녀 습격 사건의 범인을 황실의 적으로 확정 지었다 는 거다.

만약 범인이 다른 황족,즉 황녀의 친혈육지간이라면 에르델의 권한만 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황 실 자체의 권한이라면 얘기가 달라 진다.

에르델은 이 같은 배경까지 염두에 두고 다수의 귀족 앞에서 선언해 둔 것이었다.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귀족 들은 에르델의 배려에 감사를 표했 다.

“황녀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 립니다.”

“이 이야기는 이만 접어 두고 머물 곳을 안내해 주지 않겠어요? 제법 무리해서 왔거든요.”

슈타인 백작이 고개를 조아리고 가 까운 가인들에게 외쳤다.

“뭣들 하느냐! 얼른 황녀님을 안으 로 모셔라!”

일단의 가인들이 즉시 그녀에게 따 라붙었다.

에르델은 당연히 저택 본채에 딸린 방으로 안내 받았다.

한편 강현과 김혜림은 수행원으로 분류되어 뒷마당에 마련된 숙소를 배정 받았다.

서로 각자의 거처로 떨어지며 에르 델이 강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 였다.

‘길을 터 준다는 약속은 지켰어요.’

강현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 드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

안내 받은 방 앞에서 강현과 김혜 림의 움직임이 멎었다.

“죄송합니다만 방이 하나밖에 없습 니다. 같이 쓰셔도 괜찮으실는지 요?”

강현은 서슴없이 문고리를 잡으며 말했다.

“상관없어.”

무덤덤하기 짝이 없는 강현과 달 리,김혜림은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 었다.

“아니아니아니, 그거 좀 이상하잖 아요. 이 넓은 저택에 방이 없다니 요.”

하녀가 난처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미 다른 객실이 전부 차 버렸습 니다. 이 방도 다른 기사 분들이 두 분을 위해 비워 주신지라…… 원래라면 이틀 전에 도착했어야 했 다.

하지만 여객선의 습격으로 인해 늦 어지면서 숙소가 가득 차 버린 것이 다.

늦게 온 손님은 저택 바깥에서 숙 소를 잡는 게 예절이었다.

하지만 황녀의 수행원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애써 방 하나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러쿵저러쿵 불평할 순 없는 노릇이다.

강현은 김혜림에게 무심히 한 마디 던졌다.

“마구간도 제법 아늑해 보이더군.”

김혜림은 눈을 가늘게 여몄다.

“오기로라도 방에서 잘 거예요.”

안전한 걸로 치면 강현 옆만 한 곳도 없었다.

여러 의미에서 말이다.

강현은 방에 들어가기 앞서 하녀에

게 물었다.

“주의사항은 없나?”

“식사는 정해진 시간이 없으십니 다. 식사를 원하실 때 저희에게 하 명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잠시 후 명패를 가져다 드릴 겁니다. 손님용 출입증이니 항상 소지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끝인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저택 뒷산 은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저택을 나 서실 때는 반드시 정문으로만 출입 하셔야 합니다.”

“출입금지?”

“저희 백작가의 규칙입니다. 저도 이유까지는 잘……

강현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하녀를 돌려보냈다.

별채에 딸린 숙소라기에는 방이 꽤 넓었다.

객실인데도 불구하고 가구 또한 고 급스러운 것들로 가득했다. 과연 귀 족가답달까.

아무래도 귀빈만을 위한 객실 같았 다.

한데 강현이 짐을 풀지 않은 채로 있자,김혜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짐 안 풀어요?”

“바로 움직여야지.”

하녀에게 명패를 건네받으면 바로 최진철 수색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밤을 지새웠음에도 불구하고 쉴 생각이 없었다.

반면 김혜림은 지친 기색을 드러내 며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도 안 쉬고 바로요?”

“이제부턴 시간 싸움이야.”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네 요.”

“쉬고 싶으면 쉬어도 돼.”

“그런 것치곤 한심하다는 눈치인데 요? 에휴,알겠어요. 옷부터 갈아입 고요.”

배낭에서 주섬주섬 옷을 꺼내던 김 혜림이 강현을 흘겨보았다.

옷을 갈아입는다는데 강현은 미동 조차 하지 않았다.

“옷 갈아입는다니까요?”

“그랬었지.”

“최소한 등이라도 돌리죠?”

“그래 주지.”

강현이 인심 쓰듯 등을 돌려 주었 다.

김혜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아주 그냥 상전 납셨구만.”

김혜림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강현 은 창밖을 보았다.

막 저택 정문으로 화려한 행렬이 들어서고 있었다.

다름 아닌 빌토르 백작가의 행렬이 었다.

저 행렬에는 빌토르 백작과 신랑이 될 빌토르 드 아인도 함께하고 있을 터.

슬슬 에르델이 두 백작을 상대로 기 싸움을 시작할 거다.

‘주역들은 모두 모인 셈인가. 최진 철은 이미 움직이고 있겠군.’

먼저 슈타인 백작가에 잠복한 만큼 최진철의 움직임이 더 빠를 거다. 그렇다면 억지로 놈의 계획을 막기 보단 어느 정도는 흘러가게 놔두는 게 나았다.

정보를 모은 다음 추격해도 늦지 않아.

때로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보다 묵 직하게 행동하는 게 나을 때도 있었 다.

김혜림이 옷을 다 갈아입고 잠시 후 하녀가 명패를 전해 주었다.

각자 명패를 챙기고 앞으로의 방침 에 대해 논했다.

“수색은 어떤 방식으로 할 거예요? 저택 안의 모든 사람들을 털어 볼 수는 없잖아요.”

슈타인 백작가에 고용된 기사,병 사,시종 중에 최진철이 있을 거다. 허나 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건 시간 낭비다.

게다가 황녀 습격을 주도한 건 조 직이다.

그리고 강현이 그 습격을 막았다.

조직은 강현과 에르델이 백작가에 온 사실 또한 알고 있을 터.

조직에 속한 최진철도 이미 내 존 재감을 알아했겠지.

놈은 과연 어떻게 움직일까?

몸을 사릴 수도 있고,자신의 눈을 피해 저택 바깥에서 계획을 추진 중 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놈의 계획을 파악한다.’

어쨌든 최진철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 임무를 쫓다 보면 꼬리가 잡힐 터.

생각을 정리한 강현이 말했다.

“금지 구역으로 가 보도록 하지.”

“네? 수색은요?”

“상대의 작전을 알아 두면 대응책 은 생겨나는 법이야.”

“최진철의 임무가 금지 구역과 관

련 있다고요?”

“글쎄. 현재로선 금지 구역 외에 다른 특이점은 없어.”

“에르델 황녀님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바로 출발해요?”

“그 여자와의 계약은 끝났어. 계약 을 갱신하지 않는 이상 신경 쓸 필 요 없지.”

분명 에르델과의 계약은 슈타인 백 작가에 무사히 데려다주는 것까지였 다.

더 이상은 동선을 공유할 이유가 없었다.

김혜림도 강현의 성격을 뼈저리도 록 알았기에 납득했다.

잠시 후,둘은 저택 뒷산으로 향했 다.

저택 안팎으로 사람들이 워낙 많은 지라 누구도 두 사람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뒷산에 들 어섰다.

뒷산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사들이 경계 중인 초소와 맞닥뜨 렸다.

초소 위치가 워낙 절묘하여 몰래 지나치는 건 힘들어 보였다.

강현과 김혜림은 아슬아슬하게 초 소의 시선에 닿지 않는 데에서 멈춰 섰다.

“이 이상은 갈 수 없을 것 같은데

요? 다른 길을 찾아볼까요?”

초소가 하나라는 법은 없다. 다른 길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강현은 초소 너머의 꽃밭을 발견하 고는 김혜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끌어당겼다.

“내 허리에 팔을 감아.”

별안간 강현의 품에 안긴 김혜림은

당혹감에 물들었다.

“가,갑자기 왜 이래요?”

“초소를 지나갈 거야.”

“아,연인 연기를 하라고요? 난 또

뭐라고.”

뒤늦게 말뜻을 이해한 김혜림이 이 때라는 양 냅다 강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어찌나 진득하게 들러붙는지 걷기 가 불편했다.

어차피 끈적하게 보일수록 좋았기 에 강현은 별말 없이 걸음을 옮겼 다.

초소에 다다르자 병사들이 경계심 을 세우고 창을 겨누었다.

“누구냐? 이 앞은 슈타인 백작가의 사유지이니 썩 물러나라!”

강현은 태연하게 손님용 명패를 내 밀었다.

말투에 교양을 섞는 것도 잊지 않 았다.

“결혼식에 온 하객일세.”

명패를 확인한 뒤에야 병사들이 경 계심을 낮추며 창을 거두었다.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죄송합니다만 이 앞으로는 가실 수 없습니다. 이만 내려가 주십시오.”

“그러고 싶지만 이 사람이 저 위의 꽃을 가지고 싶다고 해서 말이지. 잠시만 들여보내 주지 않겠나?”

이를 위한 연인 행세였다.

꽃밭에만 들른다는 빌미로 금지 구 역 내부를 살펴볼 셈이었다.

헌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유는 알겠습니다만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위로는 마법 결계 가 펼쳐져 있습니다. 슈타인 백작가 분들이 동행하지 않으시면 결계 때 문에 크게 곤혹을 치르실 겁니다.”

즉,병사들은 괜히 마법 결계에 걸려 생기는 불상사가 없도록 경계를 서는 것이었다.

강현은 다시금 초소 너머를 보았 다.

금지 구역의 마법 결계,그리고 그 결계를 통과하려면 백작가의 혈통과 동행해야 된다라…….

강현은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런가. 실례했군.”

몸을 돌려 초소에서 멀어지자마자 김혜림에게서 팔을 빼냈다.

여전히 김혜림은 허리에 매달려 있 었다.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헤죽거 리며 말했다.

“조금 더 이렇게 있죠?”

강현은 마저 김혜림을 떼어 내며 말했다.

“그럴 시간 없어. 빨리 저택으로 돌아가야 해.”

김혜림으로선 아쉬운 듯 입맛을 다 시며 팔을 풀었다.

“뭔가 알아냈어요?”

“금지 구역에 뭔가 있는 것만은 확

실해. 그런데 저 안에 들어가려면 슈타인 백작가 혈통이 필요하지.”

“슈타인 백작가 혈통이라면……

“슈타인 백작 혹은 슈타인 백작의

딸. 둘밖에 없어.”

최진철이 노릴 구석이라면 거기밖 에 없다.

그리고 둘 중 노리기 쉬운 사냥감

은 슈타인 백작의 딸이었다.

강현은 최진철이 움직였다면 반드 시 슈타인 백작의 딸을 노렸으리라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강현과 김혜림이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일이 벌어진 후였다.

저택 본채에 들어서자마자 에르델 과 마주쳤는데 그녀가 다급한 걸음 걸이로 다가왔다.

“대체 어디 갔었나요? 한참 찾았다 고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에르델이 심각하게 굳어진 표정으 로 말했다.

“신부가 사라졌어요.”

그리고 그 직후였다.

에르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한 땅울림이 울렸다.

쿠구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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