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36화 (36/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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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델 황녀를 베라고?

심상치 않은 외침에 이어 누군가 요란하게 문을 두드렸다.

광광광!

“황녀님! 여기 계십니까! 황녀님!”

호위기사 라디스트의 외침이었다. 에르델은 얼른 문을 열려 했다. 강현은 그녀를 가로막는 대신 미리 마나를 끌어올려 두었다.

에르델이 문을 열자 라디스트를 비 롯한 그녀의 호위기사들이 숨을 헐 떡이며 서 있었다.

라디스트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말 했다.

“역시 여기 계셨군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절 베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어떻 게 된 건가요,라디스트 경?”

“대다수의 상인들이 암살자들로 변 모했습니다. 처음부터 황녀님을 노 리고 잠입한 것 같습니다.”

에르델 황녀를 노리는 자들이 상인 과 호위무사로 변장하고 배에 오른 모양이었다.

아까 연회장에서 본 상인의 수만

20명쯤 된다.

그들 중 대다수라 하면 대략 15명 또는 16명은 될 터.

그들 한 명당 호위무사를 5, 6명씩 대동했다 쳐도 적의 병력은 8, 90명 쯤이다.

애당초 목적이 금품갈취가 아닌, 에르델 황녀인 것으로 보아 처음부 터 계획된 습격인 듯했다.

그때 에르델 황녀는 기사들의 제복 에 남은 검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여기까지 오는 길에 수차례의 전투를 치른 것이리라.

“현재 우리 전력은 어떻게 되죠?”

“루이 장과 나가모토가 사망했고, 남은 13명 인원 중 3명이 경상을 입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대 략 W명가량을 베었습니다.”

“호위대 중에 이세계인 기사들부터 노렸군요.”

“적은 철저하게 저희의 전력을 분

석한 것 같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갑판 위의 선장실을 중심으로 농성을 펼쳐야 합니다.”

승객의 대다수가 적인 이상 적어도 배의 조종권만은 손에 넣어야 했다. 에르델은 라디스트의 의견이 최선 이라 여겼다.

그녀가 강현을 돌아보고 말했다.

“강현 씨. 상황은 보시는 대로예요.

같이 갑판으로 가요.”

한데 강현은 관심 없다는 양 태연 히 침대에 걸터앉았다.

“무사하길 바라겠습니다.”

사실상 협상 결렬이나 다름없었다. 에르델 황녀로선 갈수록 강현의 생 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얘기 못 들었어요? 탑승객의 대부 분이 적이라고요!”

높은 목소리에 기사들이 놀란 눈으 로 그녀를 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냉정을 잃지 않 고 이지적인 인상을 지켜 왔던 에르 델 황녀다.

그런 그녀가 평소 모습을 잃고 언 성을 높이고 있었다.

강현은 에르델이 화를 낼수록 차분 하게 대응했다.

“도와주길 바라십니까?”

“돕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저들의 목적은 제가 아닌,황녀님 인 걸로 압니다만.”

순간,에르델 황녀는 말문이 막히

고 말았다.

이 배에서 강현의 정체를 아는 자 는 에르델 황녀 일행뿐이었다.

적들의 목표가 에르델 황녀인 이상 강현은 별개의 인물이었다.

에르델 황녀가 머뭇거리자 강현이 비로소 제안을 내밀었다.

“슈타인 백작가에 잠입은 물론,최 진철을 벤 후의 뒤처리,그리고 S급 보구나 영약 하나를 주십시오. 그러 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인가요?”

“물론 두 백작가의 암약을 캐는 일 은 제외하는 조건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황녀님,놈은 그저 불한당에 불과

한 작자입니다. 무시하시고 갑판 위 로 올라가시지요. 선장실만 장악하 면 저희로도 충분합니다.”

참다못한 라디스트가 쿵 하고 문을 닫았다.

닫히는 문 사이로 라디스트의 적개 심 어린 눈빛이 보였다.

미운 털이 박힌 정도가 아니라 증 오하는 빛이었다.

쾅!

강현은 입김으로 촛불을 끈 후 가 만히 앉아 있었다.

기사들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 아 문이 열리면서 허둥지둥 김혜림 이 들어왔다.

그녀는 문을 잠그는 것도 모자라

끙끙거리며 테이블을 밀어 문앞을 막았다. 그러곤 손등으로 이마의 땀 을 훔쳐내며 말했다.

“후우,이걸로 안심이에요.”

강현은 김혜림의 마구 헝클어진 머 리로 그녀가 방금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뒤늦게 소란을 느끼고 허겁지겁 강 현에게로 도망 온 것이었다.

직후,복도에서 다수의 띔박질 소 리가 들려왔다.

타다다다!

“황녀가 갑판으로 갔다!”

“선장실 쪽이다! 얼른 쫓아라! 놓 쳐선 안 된다!”

황녀의 위치가 알려지자 모든 이목

이 한쪽으로 쏠렸다. 다시 말해 황 녀 외의 인물은 안중 밖이라는 거 다.

방 안에만 있어도 안전은 저절로 확보되는 셈이었다.

복도에서의 소란이 가라앉자 김혜 림이 말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방금 일어나서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탑승객 대다수가 황녀를 노리고 잠입한 암살자들이었지. 그것만 알 아 두면 돼.”

“에휴,예뻐도 맘 편히 지낼 수 없 으면 다 소용없죠.”

“못 생기고 맘 편히 지내는 게 낫 다는 거군.”

“꼭 날 못난이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려요?”

“네가 그렇다고 말한 적은 없어.”

괜히 지레짐작했다가 제 무덤을 판 김혜림이었다.

그녀는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 시켰다.

“크흠크흠,아무튼 황녀를 노리고 있다는 거네요. 우린 어떻게 할 거 예요?”

어차피 처음부터 황녀는 구해 줄 생각이었다.

황녀의 호위를 빌미로 슈타인 백작 가에 들어가는 건 상당히 매력적이 다.

강현은 선실에 딸린 원형 창문을 열며 말했다.

“우선 협상부터 해야겠지.”

*

갑판 위는 이미 적들로 가득했다.

본모습을 드러낸 암살자들은 무참 하게 일반 승객들을 도륙하고 있었 다.

몇 안 되는 일반 승객들은 영문도 모르고 숨줄이 끊어졌다.

그 와중에 에르델 황녀를 비롯한 기사들이 갑판 위로 올라섰다.

에르델 황녀는 둘째치고 기사들의 제복은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당연히 암살자들의 이목이 집중되 었다.

“황녀가 저기 있다!”

“이세계인 기사들은 이미 베었다! 스킬은 없다! 숫자로 밀어붙여라!”

갑판을 점거한 삼십여 명의 암살자 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갑판 아래에서도 암살자들이 꾸역 꾸역 올라왔다.

라디스트는 검과 방패에 마나를 부 여하며 서둘러 지시를 내렸다.

“삼각대형으로 움직인다! 내가 길 을 열 테니 측면에서 황녀님을 지켜 라!”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만 들고 마나를 일으켰다.

라디스트가 마나유저 상급,나머지 는 모두 마나유저 중급이었다.

적은 숫자였지만 어지간한 자작가 기사단은 누르고도 남을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대형을 갖추자 돌진이 시작되었다.

선두에 선 라디스트가 무참하게 적 들을 베어 나갔다.

암살자들의 머릿수가 많다지만 대 부분 마나유저가 아니었다.

간결함이 특징인 제국검술이 펼쳐 지면서 삽시간에 갑판을 절반이나 주파했다.

순식간에 상당한 숫자의 암살자가 드러누웠다.

하지만 적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

갔다.

갑판 아래 있던 자들까지 합류한 탓이었다.

이대로라면 머릿수에 밀리고 말 터.

더욱이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곧 대형 뒤편에서 기사들의 단말마 가 들려왔다.

“으억!”

“황녀님 어서 선장실로…… 크악!”

“네르베 경! 조르만 경!”

대형 후열에서 두 명의 기사가 쓰 러 졌다.

쓰러진 기사들 앞에는 마스크헬름 을 뒤집어쓴 거한이 서 있었다. 손에는 추에 돌기가 달린 메이스를 쥐고 있었다.

그 크기만도 흡사 사람 머리통만 한 것이,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한데도 거한은 그 거체의 메이스를 제 수족처럼 다루었다.

후응! 후응!

거한이 메이스를 휘두르며 다가오 자,측면을 맞던 기사 몇이 후방을 메우고자 방패의 방향을 바꾸었다. 방패에는 마나유저 중급의 마나가 담겨 있었다.

메이스의 무게를 감안해도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

허나 그 예상은 곧바로 뒤집어졌다. 별안간,거한의 메이스에서 마나유 저 상급의 마나 오오라가 피어났다.

그를 본 기사들이 어금니를 꽉 깨 물었다.

“쳐 죽일 놈들,마나유저 상급의 실력자까지 준비했더냐.”

이리된 이상 놈을 상대할 수 있는 실 력 자는 라디 스트뿐이 었다.

허나 그는 앞에서 길을 뚫고 있었다. 그렇다고 뒤편에 황녀가 있으니 메 이스를 흘릴 수도 없는 상황.

즉 자신들끼리 마나유저 상급의 공 격을 무조건 받아 내야 한다는 것이 었다.

기사들은 닥쳐올 결과를 알았기에 더더욱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메이스가 방패를 강 타했다.

콰지직! 쿠응!

메이스에 얻어맞은 방패가 우악스 럽게 구겨지며 기사들이 튕겨 나갔 다.

라디스트가 급히 전방의 적을 베어 내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놈을 맡겠다! 내 자리를 채 워라!”

다른 기사가 대신 전방을 맡으면서 라디스트가 후방으로 위치를 옮겼 다.

마스크헬름 거한이 또 한 명의 기 사를 후려치려 할 때,그가 가까스 로 끼어들며 메이스를 막아 냈다.

터영!

검으로 둔기를 막아 내니 그 소리

가 둔탁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내리치는 힘이 어찌나 드세 던지 무릎이 크게 꺾였다.

라디스트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 우겨우 버려 내며 이 갈리는 소리를 뱉었다.

“으옥,네 이놈.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이따위 짓을 벌이느냐.”

마스크헬를 거한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내리친 메이스에 체중을 더할 뿐이었다.

메이스가 더욱 무거워지며 라디스 트의 자세가 서서히 무너져 갔다. 게다가 상황은 더욱더 악화되고 있 었다.

전세가 기울자 적의 공격들은 더욱

거세어져만 갔고,대비되듯 호위 기 사들의 상처는 점점 늘어만 갔다. 기사들로부터 보호 받는 에르델 황 녀도 난처할 따름이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적이 너무 많아……!’

머릿수뿐만이 아니다. 무력에서도 확실하게 밀린다.

게다가 갑판 너머는 망망대해와도 같은 물속이라 퇴로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필패.

몰살은 시간 문제였다.

기세 좋게 선장실을 점거하고자 했 지만,물고기 밥이 되고 말 신세였다.

그렇듯 곤란하기 짝이 없던 때였다.

난간 너머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들 려왔다.

“곤란해 보이는군요.”

에르델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엉덩 방아를 찧을 뻔했다.

난간 너머에서 강현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강현은 난간에 손을 걸친 채로 단 번에 갑판 위로 올라섰다.

에르델은 구세주라도 만난 양 희색 을 보였다.

“도와주시려고요?”

그럴 리가.

“아까의 조건에 100골드를 추가하 겠습니다.”

급해 죽겠는데 아직도 거래 타령이 라니!

사람이 죽게 생겼다고! 진짜로 죽 는다고! 악마냐!

에르델 황녀는 평소의 이지적인 이 미지고 뭐고 발을 동동 굴렀다.

“아직도 그 소리인가요? 상황이 좋 지 않아요! 일단 도와주세요!”

“150골드.”

“도와줄 거 다 도와주고 S급 영약 에 150골드를 달라고요?”

“200골드.”

에르델 황녀로선 밑져도 보통 밑지 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쉬운 쪽은 에르델 황녀였다.

아쉬운 쪽이 굽힐 수밖에.

“알아요! 알겠어요! 조건을 맞춰 줄 테니 어서 도와주세요!”

“구두계약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이 사람이 정말! 황녀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 테니 제발요!”

명예를 건 맹세라면 서면만큼이나 확실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황녀의 입에서 나온 맹세이니 계약서만큼의 값어치 를 하고도 남았다.

강현은 빙백검을 쥐고 난간을 박차 며 단번에 후방으로 뛰었다.

막 자세가 무너진 라디스트가 메이 스에 어깨를 강타당하고 검을 놓친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스크헬름 거한이 재차 라 디스트의 머리에 메이스를 내리치려 는 때였다.

빙백검이 은빛 호선을 그렸다.

째앵!

빙백검에서 마나 블레이드가 돋아 나며 메이스 기둥을 동강 내 버렸 다.

무려 마나유저 상급의 마나 오오라 가 피어나던 메이스였건만,마나 블 레이드 앞에서 수수대처럼 토막 나 버렸다.

메이스가 크게 튕겨 나가면서 거한 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여태껏 침묵으로 일관하던 마스크 헬를 거한도 마나 블레이드 앞에선 외마디를 토해 낼 수밖에 없었다.

“크헉!”

강현은 이어서 재차 빙백검을 휘둘 렸다.

두 번째 검격은 더욱 빠르고 예리 한 속도였다.

빙백검에 맺힌 마나 블레이드가 가 차 없이 거한의 갑옷을 베어 냈다.

쩌정!

거한의 갑옷이 반듯하게 갈라지며 피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거한의 몸이 기울면서 갑판 위에 나동그라졌다.

과자작!

덩치가 덩치다 보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갑판 바닥의 나무판자가 와자 작 부서졌다.

이로써 가장 성가신 적을 베어 냈 다.

나머지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강현이 빙백검에 맺힌 마나 블레어 드를 겨누며 말했다.

“물고기 밥과 내 검. 어느 쪽으로 죽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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