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34화 (34/381)

34화

마나 파편을 얻어맞은 검은 로브 아래로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강현은 간단하게 뒤처리를 한 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얼마쯤 숲길을 빠져나오자 나무 사 이에서 김혜림이 걸어 나왔다. 강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조직에서 접촉해 올 것을 예 상했다.

그래서 미리 김혜림에게 대기를 지 시해 두었다.

혹시 모를 검은 로브 사내의 도주 를 대비해서였다.

김혜림은 크로우 보우를 등에 걸치

며 입을 열었다.

“제 차례는 없었네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수확은 있었어요?”

강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 다.

조직원의 제안만으로도 여러 가지 를 예상할 수 있었다.

우선 최진철이 무슨 짓을 하고 있 는지 알아냈다.

로브 사내는 최진철이 두 공작파를 이간질시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했었다.

그것만으로도 수색 범위가 대폭 줄 어들었다.

두 공작파를 움직일 만큼 영향을

미치려면 어느 정도 작위가 높아야 한다.

강현은 커트라인을 잡았다.

“최소한 백작가 내에서 수작을 부 리고 있겠지.”

“사흘 동안 수집한 정보 중에 쇠락 해 가는 백작가는 거의 없었어요. 범위가 엄청 좁아졌네요.”

“그런 셈이지.”

지난 사홀간 정리한 자료와 두 공 작파에 모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 무 두 가지 정보에서 교집합에 해당하 는 가문은 한 곳뿐이었다.

“최진철은 슈타인 백작가에 있겠 군.”

“으음,슈타인 백작가라면……. 얼 마 전 올롬보르의 웨이브를 공략했 던 그 슈타인 백작가 말이죠?”

“그래,빌토르 백작가와 함께 들어 가서 공략에 실패했었지.”

그리고 그 실패로 생겨난 던전이 바로 베킨스 던전이었다.

그곳에서 강현은 김혜림과 만났고, 그녀와 함께 던전을 공략했었다.

올롬보르 시 웨이브 공략을 실패하 고 양측 백작가에서는 책임문제가 거론됐었다.

케이델 공작파의 빌토르 백작가, 드리안 공작파의 슈타인 백작가.

두 백작가는 책임전가를 위해 논쟁 을 벌였다.

그리고 슈타인 백작가가 책임을 떠 맡는 것으로 판결이 났다.

그 결과,현재 슈타인 백작가는 빌 토르 백작가와 올롬보르 자작가에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로 인해 가세가 크게 휘청거리기 시작했고,슈타인 백작은 궁여지책 으로 배상금 탕감을 위해 빌토르 백 작가와 정략결혼을 추진 중이었다. 한데 정략결혼 대상이 바로 빌토르 백작가의 둘째 아들이었다.

사실상 케이델 공작파와 드리안 공 작파 소속의 두 가문이 연을 맺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서로 경쟁 중인 두 공작파의 핵심 세력끼리 연을 맺는 만큼 정재계에서도 큰 화젯거리로 떠오른 일이기 도 했다.

“그런데 배상금 탕감을 위해 딸을 시집보내다니 슈타인 백작도 너무하 네요.”

“어쩌면 배상금 탕감은 핑계에 불 과할지도 모르지.”

“이 결혼식에 숨겨진 비밀이라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고작 배상금 탕감을 위해 외동딸 을 시집보내려는 건 아니겠지.”

“웬일로 귀족가의 정치 놀음에 관 심을 다 가지신대.”

“최진철이 뭔가 수작을 부리려면 결혼식 때뿐이야. 관심을 가질 수밖 에 없지.”

일단 최진철이 슈타인 백작가에 있 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놈을 잡기 위해서는 슈타인 백작가 로 가야 했다.

“떠날 준비해.”

“근데 최진철이 미리 연락을 받고 도망가지는 않을까요?”

“이제 와서 작전을 포기할 수는 없 을 거야.”

조직으로선 올롬보르 시 웨이브 공 략 실패부터 정략결혼 유도까지 손 을 써 왔다.

그만큼 공을 들여 놓고 이제 와서 발을 빼긴 힘들다.

즉 이제 와서 최진철을 철수시킬 리 없다는 거다.

강현은 여관으로 돌아가 짐을 챙기 며 슈타인 백작가로 가기 위한 루트 를 정했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게 좋겠군.”

*

달이 구름에 가려 유난히 어두운 밤.

발코니 난간에 기대 있는 적발 사 내에게 사람이 다가갔다.

“……님. 최강현에게 파견했던 조 직원이 사망했습니다.”

적발 사내는 여전히 등을 진 채로 태연하게 반응했다.

“역시 함정이었나.”

“놈을 그냥 놔두어도 괜찮을지 모 르겠습니다. 최진철이 목표라고 했 지만 사실은 저희를 노리고 움직이 는 게 아닌지……

“놔두어라. 이번 일로 그의 목표가 최진철인 것만은 확실해졌으니.”

“네? 어째서 그런 확신을……?”

“내가 괜히 상층부의 정보를 담보 로 내놓았겠느냐.”

보고하러 온 자가 고개를 숙였다. 과연 사내는 날카로웠다.

강현이 조직을 노리고 있었다면 상 층부의 정보라는 미끼를 허투루 여 기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강현은 그 미끼를 걷어차고 최진철을 쫓았다.

말단 한 명의 목숨으로 강현의 진 짜 목적을 확인했다면 싸게 먹힌 것 이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요? 몽발리에 서 놈의 행적을 놓쳤습니다만……

“최진철에게 최강현의 종적을 전해 둬라. 그 외엔 필요 이상으로 놈을 자극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예의 그 일을 시행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계획 대로 슈타인 백작가의 결혼식에 보 낼 황족은 에르델 황녀로 정해졌습 니다.”

“이동 수단은?”

“배를 타고 갈 것으로 보입니다.”

사내는 구름 사이로 달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 다.

“슈타인 백작가에 도착하기 전에 제거하도록.”

*

빌로스 제국에는 수많은 강줄기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크레데릭 강은 제국 내 에서 가장 큰 강이었다.

제국 북동쪽에서 남서쪽을 가로지 르는 강으로,너비는 육안으론 그 끝을 확인할 수 없었고,깊이는 닻 을 내려도 한참을 떨어져야 바닥에 닿는다고 한다.

처음 크레데릭 강을 본 자는 바다 로 착각할 정도라 하니 그 크기를 쉬이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는 강현과 김혜림도 예외가 아니 었다.

“우리 제대로 찾아온 거 맞죠? 바 다에 온 거 아니죠?”

크레데릭 강을 본 김혜림의 첫 마 디 였다.

강현도 그녀의 감상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다.

강임에도 불구하고 건너편에는 수 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부두로 쓸려 들어오는 민물 냄새가

아니었다면 바다라고 착각했을 거 다.

몽블랑 동쪽에 위치한 본스마 영지 는 항구도시라도 되는 양 수많은 선 박이 드나들고 있었다.

선박에 오르내리는 인파 사이에서 강현이 걸음을 옮겼다.

“여객선을 찾아봐야겠군.”

부두 한켠에는 커다란 여객선만 정 박하는 선착장이 있었다.

숫자나 종류도 다양했고 1등선부터 5등선까지 각종 여객선이 정박해 있 었다.

여객선마다 이동 거리와 목적지가 달라서 자세히 알아봐야 했다. 강현과 김혜림은 접수원에게 물어 슈타인 영지까지 가는 배를 알아보 았다.

알아본 결과 1등선 하나만이 슈타 인 영지 근처까지 간다는 걸 알아냈 다.

김혜림은 1등선 탑승 가격을 듣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20 골드요?”

1등선에 올라타는데 20골드나 든 다니.

3등선이 3골드이니 거의 7배에 달 하는 가격이었다.

반면 강현에겐 그리 큰 액수가 아 니었다.

던전과 웨이브를 공략한 보상금으 로 수백 골드가 남아 있었다.

게다가 언제든 돈으로 바꿀 수 있 는 보구도 몇 개 있으니 돈 때문에 곤란할 일은 없었다.

강현은 어렵지 않게 20골드를 꺼 내며 말했다.

“돈 없나?”

김혜림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지금 12골드 남았어요.”

올롬보르 시의 베킨스 던전 공략으 로 50골드를 받았던 김혜림이다. 원래대로라면 지금도 충분히 많은 돈이 남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발데르에서 이하나를 찾던 과정 중 지출한 나룻배 비용이나 정 보료가 컸다.

지출의 절반은 거기서 나간 거라 할 수 있었다.

그 뒤에 여행 경비를 비롯하여 여 러모로 쓸 곳이 많았던 터라 12골 드만 남게 되었다.

김혜림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현 을 올려다보았다.

“빌려주면 안 될까요?”

“이자가 비쌀 텐데?”

“이자는 받으면 안 되죠. 누구 때 문에 돈이 떨어졌는데.”

강현은 김혜림의 몫까지 지불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무이자로 빌려주지.”

“으으,20골드가……

“몸으로 때우던가.”

강현의 말에 김혜림이 양팔로 자신 의 몸을 감쌌다.

“뭘 시키려고요?”

강현은 여느 때처럼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요리.”

다른 걸 생각했던 김혜림은 몸을 감쌌던 팔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그럼 그렇지. 저야 뭐 밥해 주는 사람이죠 뭐.”

“자각하고 있어서 다행이군.”

“우씨,나중에 꼭 복수할 거예요.”

“불가능한 일을 꿈꾸는군.”

“찌개에 엄청 매운 거라도 넣어 버 릴까 보다.”

“요리라는 유일한 장점마저 버릴

셈인가.”

되로 주면 말로 돌려주는 강현이었 다.

김혜림으로선 항상 느끼는 거지만 말로는 절대 강현을 이길 수 없었 다.

말할수록 자기만 바보가 되는 것 같아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 다.

그렇게 배 값을 지불하고 배에 을 라타는데 뒤편에서 소란이 일었다.

“죄송합니다, 이미 자리가 다 차 버려서……

“이분이 누구인지 알고 하는 소리 더냐? 당장 주인을 불러오거라. 그 와 직접 얘기하겠다.”

아래쪽에 하얀 제복 복장에 금실 재질의 견장을 찬 기사들이 으름장 을 놓고 있었다.

그런 기사들 사이에는 망사가 달린 모자를 쓴 여인이 서 있었는데,손 을 모으고 선 자세나 단아한 드레스 만 보아도 무척 높은 신분임이 예상 되었다.

아무래도 탑승 인원수에 문제가 생 긴 듯했는데 강현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신경을 끄고 갑판 위로 올라가는데 접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까지 두 자리가 있었습니다만 저분들이 먼저 지불을 하셔서……

기가 눌린 접수원이 강현과 김혜림

을 팔아먹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기사 한 명이 다가 와 강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봐,잠깐 말 좀 묻지.”

어깨를 잡는 손에 상당한 힘이 실 려 있었다.

말을 묻는다는 건 핑계고 압박을 하려는 것이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고운 법이다.

강현이 기사의 팔을 낚아채 옆으로 꺾었다.

그 손짓이 어찌나 빨랐던지,기사 가 채 반응도 못했다.

“으으! 이게 무슨 짓인가!”

강현이 기사의 팔을 뿌리치며 차가

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군. 누가 날 만지는데 민감 해서 말이지.”

“무례하구나! 당장 사과부터 하지 못할까!”

기사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 다.

기세 좋게 압박을 가하려다 역으로 당했으니 부끄러운 탓이었다.

자신의 무능을 덮기 위해 괜한 강 현 탓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이 었다.

한데 강현은 기사가 무안할 정도로 쉽게 되받아쳤다.

“원래의 용건은 안중에도 없나 보 군.”

원래는 배의 자리 때문에 말을 걸 었던 기사다.

이처럼 좁은 발판 위에서 실랑이나 벌일 때가 아니었다.

개인적인 감정이 앞서,모시는 이 를 등한시하는 무례를 범한 셈이었 다.

게다가 높아진 언성 때문에 하나둘 구경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 못한 다른 기사가 급히 그를 돌려 세웠다.

“자네는 내려가게. 내가 이야기하 겠네.”

“하지만 이놈이……

“황녀님을 그대로 둘 셈인가.”

“윽,죄,죄송합니다.”

뒤이어 온 기사의 직위가 더 높은 모양이었다.

성질을 내던 기사는 강현을 노려보 다가 결국 발판 아래로 물러났다. 새로이 다가온 기사가 강현에게 사 정을 설명했다.

“우린 에르델 황녀님의 호위기사단 일세. 요즘 뱃길이 흉흉하다 하여 호위 인원을 추가했는데,추가 인원 은 미처 예약을 못했다네. 그래서 두 명 분의 자리가 부족한데 양보해 줄 수 있겠나?”

강현은 기사의 어깨너머로 망사 모 자를 쓴 여인을 보았다.

어딘가의 귀족가 영애겠거니 했는 데 황녀라니.

황녀가 이 배를 탈 이유는 하나뿐 이다.

그녀 역시 슈타인 영지의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함이리라.

백작급 이상의 가문에서 결혼식이 있을 때면 예의상 황족이 참석하고 는 했다.

보통은 후작 급의 황족이 참석하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공작가가 배후 에 있는 만큼 황녀가 직접 참석하는 모양이었다.

‘황제파도 이번 결혼식에 암계가 있다 여긴 거군.’

하지만 이 여객선을 타야 하는 건 자신도 마찬가지.

이번 여객선을 놓치면 결혼식에 늦 기 때문에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거절하지.”

“돈 때문이라면 승선권을 원래 가 격의 2배로 지불하지.”

“그쪽이 두 명을 덜 태우면 될 일 일 텐데?”

슬슬 기사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 작했다.

그의 눈이 강현의 옷차림을 위아래 로 훑었다.

허름한 차림을 하고 있는 것들이 어째서 1등선에 타려 하는가.

기사는 대놓고 불쾌한 심기를 드러 냈다.

“말이 안 통하는 놈이로구나.”

“협상 결렬이군. 우린 올라가지.”

“이놈! 황녀님의 안전을 위해서라

하지 않았더냐! 좋은 말로 할 때 양 보하거라!”

기사가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태세 를 취하였다.

점잖은 척하더니 결국 실력 행사를 하려 했다.

기사의 손이 검에 닿는 것을 보자 강현은 차갑게 한 마디 날렸다.

“원한다면 직접 인원 두 명을 줄여 주지.”

강현도 빙백검을 엄지로 밀어 푸른 검신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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