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33화 (33/381)

33

이튿날,드리안 공작가의 겔로그가 머무르는 고급 여관 안.

겔로그를 비롯한 드리안 공작가의 기사들은 별채 하나를 통째로 빌려 쓰고 있었다.

강현은 티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겔 로그와 마주 앉아 있었다.

겔로그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현의 방문을 제안의 수용으로 받 아들인 때문이었다.

“역시 드리안 공작가에 들어올 생 각이 들었나?”

무려 귀족 작위를 약속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거절은 없을 터다.

그런데 강현의 대답이 겔로그의 자 신감을 단번에 부숴 버렸다.

“아니.”

겔로그의 얼굴이 단번에 구겨졌다.

“귀족 작위를 거절하겠다고? 이만 한 제안은 어디서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그건 그쪽 사정이지. 내가 언제 귀족 작위가 필요하다 했었나?”

“허,그럼 대체 뭐가 필요하단 말 인가. 설마 그 이상을 원하나?”

“별로.”

겔로그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닌 무려 귀족 작위다.

귀족 작위가 뉘 집 개 이름인 줄 아나?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 아닌 이상 꿈도 못 꿀 자리 아니던가.

모두가 귀족 작위는커녕 준귀족인 기사 자리라도 꿰차려고 하는데,이 사내는 뭘 믿고…….

그때 별채에 딸린 여관 시종이 새 로운 사람의 방문을 알렸다.

“빌토르 백작가의 프라임이란 분이 방문하셨습니다. 안으로 들일까요?”

프라임이란 이름에 겔로그의 눈썹 이 크게 휘었다.

강현을 두고 경쟁하는 케이델 공작 가의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프라임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충

분히 주의를 기울였건만,설마 방해 하려고 온 건가?

어쨌든 강현과 함께 있는 것을 보 여 좋을 것이 없었다.

겔로그는 일단 케이델을 보내려고 했다.

헌데 대답을 채 꺼내기도 전에 강 현이 답했다.

“들여보내.”

겔로그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설마 자네가 부른 건가? 대체 무 슨 속셈이지!”

겔로그를 비롯한 철갑기마대 기사 들이 강현을 노려보았다.

사방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풍겨 왔 다.

불쾌함 섞인 기세가 바늘마냥 쏟아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현은 느긋하 기만 했다.

흡사 산책이라도 나온 듯했다.

어지간한 담력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겔로그는 강현을 섭외해야 하는 입장이다.

섣불리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순 없었다.

겔로그는 하는 수 없이 프라임의 방문을 인정했다.

“일단 들여보내도록 하지.”

잠시 후,프라임이 안으로 들어섰 다.

별채에 들어선 프라임의 표정도 썩 좋지만은 않았다.

다만 서로 기사의 직에 앉아 있는 터라 모양새만이라도 격식을 차렸 다.

“오랜만에 뵙습니다,겔로그 경.”

“어서 오십시오,프라임 경.”

“작년 더스트 왕자님의 결혼식 이 후로 처음이던가요.”

“그랬습니까? 전 왕자님의 결혼식 을 축하하느라 바빴던 터라 잘 기억 이 나지 않는군요.”

“철갑기마대 부단장 일이 힘드시긴 한가 봅니다. 벌써부터 건망증이 오 면 큰일인데 말이죠. 후에 제가 좋 은 신전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예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는지 신경 전이 오갔다.

강현은 검지로 탁자를 톡톡 두드려 두 사람의 이목을 모았다.

탁자 두드리는 소리에 두 기사가 헛기침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지금 중요한 건 저희들끼리의 신경 전이 아닌 강현 섭외였다.

강현의 손짓 한 번에 두 사람의 태도가 바뀌었다.

도저히 일개 용병과 고위 기사들이 모인 자리라곤 생각되지 않는 모양 새였다.

강현은 탁자에 올린 두 손을 깍지 끼고 두 기사를 보았다.

“양쪽 모두의 제안을 들었지만 썩

내키지 않더군.”

프라임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원하는가? 이리 자리를 만들었다는 건 따로 원하는 게 있어서겠지?”

운으로 기사단장이 된 건 아닌지 자리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강현은 머뭇대지 않고 본론을 꺼냈 다.

“내가 찾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말만 하면 찾아 주지.”

“최진철.”

프라임은 물론이고,겔로그도 고개 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적어도 유명한 자는 아니거나 정체 를 숨기고 있는 자라는 것은 확실했 다.

이번에는 겔로그가 입을 열었다.

“그자를 찾는 이유는?”

“복수.”

“복수라면 기사단에 들고 나서 해 도 될 텐데? 복수를 위한 지원은 충분히 해 줬을 걸세. 다른 이도 아 니고 같은 소속의 마나 마스터와 척 을 진 자이니 말일세.”

“입단식,자대 배치,기사교류회 참 가,인근 귀족과의 인사. 내가 기사 가 될 경우에 기본적으로 참석해야 할 행사들이지. 며칠이나 낭비될 거 라 생각하나?”

“그건……

겔로그는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 도 못 찾았다.

강현이 말한 것만 해도 기본적으로 한 달은 소요되는 행사들이었다. 귀족들의 입장에서 강현의 복수는 사적인 일에 불과하다.

공과 사는 구별하라며 최소 한 달 은 행사에 참석시킬 게 뻔했다. 본인도 겪어 본 절차인지라 할 말 이 없었다.

강현은 겔로그의 입을 닫은 후 본 론을 이어 갔다.

“각자 돌아가서 내 말을 그대로 전 하도록. ‘최진철의 정보를 먼저 알 려 주는 조직에 가담하겠다고. 내 요구만 충족시켜 줄 수 있다면 어떤 임무’든 받아들이지.”

그러면서 강현은 두 장의 종이를 꺼내 각각 겔로그와 프라임에게 내 밀었다.

최진철의 인상착의와 바뀐 신분을 예상하는 내용이었다.

프라임은 종이를 받아 들며 말했 다.

“그러니까 자네의 목적을 위해 두 세력을 경쟁시키겠다 이거군.”

“해석은 알아서 하지.”

강현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바로 일어났다.

프라임과 겔로그는 굳이 강현을 막 지 않았다.

강현이 두 세력의 정보망을 이용하 려 한다는 걸 대놓고 드러냈지만 상 관없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제안은 무리수 가 분명했다.

한데 최진철이란 찾는 것만으로 강 현을 섭외할 수 있다면 오히려 본인 들로서는 훨씬 이득이 크다.

강현이 떠난 후,두 귀족도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리고 각자 이 사실을 자신들이 섬기는 공작들에게 전하기 위해 바 삐 움직였다.

*

여관으로 돌아온 강현은 곧바로 방 에 들어갔다.

방문을 열자 뒹굴거리던 김혜림이 강현을 맞았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일은 잘 풀렸어요?”

“그럭저럭.”

“의도대로는 됐다는 말이네요. 그 들이 최진철을 찾을 수 있을까요?”

“못 찾겠지.”

“으음……? 그럼 왜 굳이 두 세력 에게 알린 거예요?”

“네가 말했지 않나? 두 세력을 정 보 창구로 쓴다고.”

김혜림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 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성격 이 아닌 것을 잘 아는 김혜림이다. 김혜림이 양반 다리를 하며 나름대 로 생각해 보는 동안 강현의 눈길이 테이블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 못 보던 것이 있었다. 강현은 대용량 사이즈의 원형 용기 를 톡톡 두드려 보았다.

강도가 제법 되는 걸로 보아 장인 의 손길을 거친 물건인 듯했다.

“비싸 보이는군.”

김혜림은 대번에 상념에서 벗어나 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시장에서 4골드나 주고 샀어 요.”

“굳이 내 방에 놔둔 이유는?”

“후후,그 안에 있는 물건이나 보 시죠.”

용기의 뚜껑을 열자 매콤한 냄새가 올라왔다.

안에는 고춧가루 양념으로 절인 양 배추가 들어 있었다.

김혜림이 가슴을 한껏 펴며 우쭐거 렸다.

“용량은 2배,무게는 절반이라고 요. 게다가 보관 마법까지 걸려 있 죠강현이 뚜껑을 닫으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무늬오징어로 승격시켜 주지.”

김혜림은 기대도 안 했다는 듯 피

식 웃었다.

“그거 참 고맙네요.

*

강현과 김혜림은 도시 외곽으로 숙 소를 옮겼다.

원래 숙소보다 훨씬 허름한 곳이었 고,그만큼 더욱더 인적이 드물었다. 숙소를 옮긴 곳에서는 사홀을 더 머무르며 나름대로 정보를 모았다. 두 공작파의 정보망을 이용한다곤 했지만 그들이 생각대로 움직이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이윽고,창문 너머로 그림 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강현의 방은 1층 제일 안쪽으로, 창문 너머는 곧 여관 뒷마당이었다. 서류에서 손을 떼고 빙백검을 쥐었 다.

“올게 왔군.”

문으로 나갈 것도 없었다.

그림자를 목격한 강현은 창문을 통 해 곧장 뒷마당으로 나갔다. 어른거리는 그림자는 사라진 지 오 래고 뒷문이 열려 있었다. 따라오라는 의미였다.

뒷문을 지나 여관 뒤편으로 이어진 숲으로 들어갔다.

얼마쯤 숲길을 따라가자 완전히 인 적이 닿지 않을 만한 곳에서 목소리 가 들려왔다.

“내용은 전달 받았다. 네가 말한 조직이란 우리 조직을 말하는 것이 겠지?”

뒤를 보자 검은 로브를 깊숙이 눌 러쓴 사내가 서 있었다.

스스로 조직원임을 증명하는 말이 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홀 전 강현은 ‘정보를 먼저 알려 주는 조직에 가 담하겠다’고 말했다.

두 공작파의 심부름꾼들 앞에서 굳 이 '조직’,‘가담’이란 단어를 고를 필요는 없다. 거기에 ‘임무’라는 단 어도 확실히 부자연스럽다.

허나 이 단어들이 유일하게 어울리 는 세력이 있다.

그게 바로 이세계인 조직이었다.

케이델 공작파든, 드리안 공작파든 조직원이 잠입해 있을 터.

강현은 프라임과 겔로그를 채널로 이용하여 암중에 숨어 있을 조직원 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조직에 있어서도 마나 마스터의 가 담은 무력에 엄청난 도움이 될 테니 접촉해 올 거라 예상했다.

“최진철의 정보를 알려 줄 건가?”

“그쪽의 대답에 따라 달렸지. 그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라서 말이야. 협상할 순 없 나?”

최진철은 내주기 싫고,마나 마스 터는 가지고 싶고.

강현의 귀에는 그리 들렸다.

강현은 빙백검에 손을 올렸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이 지.”

검은 로브 사내는 말이 끝나지 않 았다는 듯 급히 손을 저었다.

“성질이 급하군. 우리 입장에서 최 진철이냐,그쪽이냐를 물으면 열에 아홉은 그쪽을 택하겠지. 하지만 그 쪽이 한 일을 생각하면 쉽게 신용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야.”

이미 강현은 이하나와 다미안을 베 었다.

조직원을 둘이나 벤 것이다.

그 때문에 조직은 최근까지 강현을 적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하니,조직 입장에서 강현을 쉬이 믿을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그건 강현도 마찬가지.

“그건 피차일반일 텐데?”

“신용은 행동으로 증명하는 게 빠 르지. 우리 조건을 말하겠다. 겔로그 가 지금 따로 행동하고 있다. 먼저 케이델 공작가 기사단에 입단해라. 그리고 케이델 공작가 소속으로 드 리안 공작가 소속인 겔로그를 베도 ?록강현으로 하여금 케이델 공작가의 기사 신분으로 드리안 공작가의 기 사를 베라고 한다.

그리되면 드리안 공작파와 케이델 공작파의 전면전이 벌어진다.

즉 조직은 두 공작파의 분열을 원 하고 있었다.

강현은 여전히 빙백검에 손을 올린 채로 말했다.

“신용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만.”

“임무 수행 중 우리 측 상층부와 접촉하게 될 거다.”

“상층부에 대한 정보를 인질로 잡 아 주겠다?”

“서로 숨줄을 쥐는 걸로 신용을 대 신하자는 거지.”

“최진철의 위치는 언제 알려 줄 건 가?”

“일이 끝나면. 지금 최진철은 두 공작파 사이에 분열을 유도하는 작전을 수행 중이다. 그쪽이 먼저 임 무를 수행해 주면 우리로서도 최진 철은 필요가 없게 되지.”

조직의 상층부에 대한 정보.

그것만 퍼뜨려도 조직의 존재 자체 가 흔들린다.

강현이 조직의 핵심을 쥐는 바나 마찬가지이니,조직으로선 쉬이 강 현을 배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현 또한 스스로에게 족쇄 를 거는 셈이 된다.

조직원으로서 두 공작파를 이간질 시켰으니,조직의 존재를 밝히면 강 현의 정체 또한 드러나 버리는 꼴이 다.

‘준비를 많이 했군.’

단순히 강현을 적으로 치부하기에 는 마나 마스터란 전력이 너무나도 매혹적 이 었으리 라.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강현이 빙 백검에서 손을 떼었다.

“나쁘지 않군.”

“받아들일 텐가?”

“한 가지만 묻지. 그쪽은 조직에서 어느 정도 위치이지?”

“나 역시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마 나 마스터에게 고위 조직원을 보낼 정도로 어수룩한 양반들은 아니라서 말이지.”

“그렇군. 그럼 더 이상 볼일은 없 는 셈이군.”

“뭐?”

검은 로브 사내가 당황에 물들었 다.

분명 거래가 성립되는 분위기였지 않은가.

하지만 어느새 강현의 손은 다시 빙백검 위에 올라간 후였다.

“정말로 쥐새끼들이랑 손잡을 거라 생각했나?”

검은 로브 사내가 반응하기 직전,

마나 블레이드가 부서지며 마나 파 편이 쇄도했다.

퍼퍼버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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