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화
그림자들이 나무 사이에서 나타나 면서 가슴팍의 문양이 드러났다.
베이커 기사단 소속도 있었고,발 데르 기사단 소속도 있었다.
소속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부상자 들이었다.
기사들은 마주친 상대가 강현임을 확인하곤 몸을 움츠렸다.
“최강현이다. 저 사람만큼은 무리 야.”
“하지만 그냥 당할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싸워야만……
“기다려. 의외로 대화가 통할 수도 있어.”
기사들은 도망자들이나 할 법한 말 들을 늘어놓았다.
그것으로 보아 적어도 강현을 뒤쫓 아 온 건 아닌 것 같았다.
부상자 중 왼팔에 붕대를 두른 기 사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난 베이커 기사단 소속 다미안이 라고 하네. 지금의 우리는 록스 단 장이나 루카스 도련님에게 쫓기는 처지일세.”
강현은 아까 한꺼번에 9, 000포인트 가 오른 일과 관련이 있음을 직감했 다.
여기선 기사단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어 두는 게 나았다.
다만 관계의 고하를 확실히 해 두
기 위해 드세게 나가기로 하였다. 강현은 빙백검을 내밀고 검끝으로 기사들의 숫자를 세었다.
“총 다섯 명이군. 5, 000포인트인 가.”
강현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기사들이 아니었다.
화들짝 놀란 기사들이 부라부랴 무 기를 쥐었다.
허나 그들에게 전의라곤 눈곱만큼 도 보이지 않았다.
부상을 입기 전에도 강현에게 기선 제압을 당했던 기사들이다.
그때보다 숫자도 훨씬 적은데다 부 상까지 당했는데 어찌 당해 낼 수 있겠는가.
강현이 당장이라도 벨 태세를 취하 자 다미안이 무기를 놓으며 두 팔을 들었다.
“기,기다려 주게! 우리가 한 말은 진짜일세! 저들은 미쳤어! 웨이브의 규칙에 휘말려 미쳐 버렸다고!”
강현은 여전히 검끝을 세운 채로 말했다.
“그럼 그놈들도 베면 되겠군.”
“아니,그 말이 아니라…… 일단 이쪽 말을 듣기라도 해 주게. 자네 에게 절대로 도움이 될 걸세. 부탁 이네.”
“1분 주지.”
주어진 1분이 설명할 시간이라는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다미안이 얼른 사정을 설명했다.
“두 기사단은 아까 북서쪽에서 오 우거 세 마리와 마주했네. 그때 절 반 정도가 부상을 당했지. 자네도 알겠지만 부상자는 더 이상 사냥 포 인트를 쌓을 수 없으니 사신이 붙으 면 그 자리에서 처형당하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30초 남았군.”
“윽,부탁이니 제발 제대로 들어 주면 안 되겠나?”
“25 초.”
“아,알겠네. 아무튼 사신이 붙었으 니 동료를 죽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여겨서 우리끼리 살 방법을 찾았다네. 무리를 벗어나 출구를 찾고자 했지. 그 과정에서 전투가 벌 어졌고 결국 우리만 살아남은 거라 네.”
웨이브는 보스를 잡지 않아도 출구 를 통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보통은 공략이 불가능할 때 쓰는 방법이지만 부상자들은 살아남기 위 해 나가려는 것이었다.
강현은 빙백검을 거두고 말했다.
“그래서 내게 도움이 될 거란 얘기 는?”
“아마 루카스 도련님은 베이커 자 작님께 자네 얘기를 부풀려서 말했 을 걸세. 웨이브를 공략하더라도 베 이커 자작님은 자네를 체포할지도 모르지.”
“탈출을 도와주면 베이커 자작에게 대신 해명을 해 주겠다?”
“그래,밖으로 나가기만 한다면 이 곳에서 있었던 일을 모조리 폭로할 걸세. 그리하면 자네에게 씌워진 혐 의도 무죄임이 입증되지.”
부상자들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혐 의를 벗는다.
강현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 다.
하지만 성큼 받아들일 마음은 없었 다.
강현은 조직원을 찾는다는 목표를 달성하면 그만이다.
‘명분은 타당하지만 어찌 됐든 내 분을 유도한 것만은 확실하군.’
부상자들 중에 조직원이 있다.
힘으로 한 명씩 꿇리면서 심문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좀 더 유연하게 조 직원을 끌어내는 게 나았다.
그 방법은 이미 머릿속에서 하나둘 떠오르고 있었다.
“그 제안,받아들이지.”
강현에게서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 오자 부상자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 아졌다.
마치 벌써 탈출이 정해진 듯한 분 위기였다.
울라임 숲에서 가장 강한 강현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데서 오는 희 색이었다.
다미안은 손에 맺힌 진땀을 닦아내
고 말했다.
“일단 북서쪽에는 출구가 없었다 네. 북동쪽에는 있었나?”
“본 적이 없으니 없다고 할 수 있 겠지.”
“남쪽엔 입구가 있으니 출구는 아 마도 북쪽 끝에 있을 것 같군. 거기 로 이동했으면 하네. 우리야 보호받 는 입장이니 지휘는 자네에게 맡기 겠네. 중간에 사냥을 하든 다른 길 을 거치든 북쪽에만 데려다 주게.”
“그러지.”
“……이건 혹시나 해서 묻네만 아 까 단번에 3, 000포인트가 오른 건 자네가 사신을 사냥해서인가?”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상자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오오! 반사 능력 때문에 잡는 건 불가능하다 여겼는데 대단하군.”
“고레벨 이세계인은 확실히 차원이 다른데!”
“이제부터 우리한테 사신이 붙을 가능성이 높으니 자네가 사냥해 주 게나.”
부상자들이 감탄하는 중에도 강현 은 무덤덤하게 북쪽으로 몸을 돌렸 다.
강현의 무반응에 익숙지 않은 부상 자들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뒤를 따 라나섰다. 그러곤 김혜림에게 속삭 이듯 조용히 물었다.
“저기,아가씨. 우리가 무슨 말실수
라도 했나? 반응이 영 좋지 않아 보이네만.”
김혜림은 강현을 스윽 보곤 대수롭 지 않게 대답했다.
“저게 평소 모습이에요.”
“저게 평소 모습이라고? 음,애인 이 저리 무뚝뚝하니 아가씨도 참 힘 들겠어.”
“에이,애인은 무슨. 전혀 아니에 요.”
“아니었나? 이거 실례했군.”
김혜림은 특유의 해맑은 미소로 강 현 옆에 따라붙었다.
무리의 선두에 서며 다른 이들을 등지게 되자마자 정색하며 낮은 목 소리로 속삭였다.
“저들 중에 조직원이 있다고 생각 하는 거죠?”
강현이랑 하루 이틀 붙어 다닌 게 아니다.
강현 성격상 귀족과의 관계를 개선 하는 걸 이득이라 여길 리 없었다. 그리고 이득도 아닌 일에 성가신 부상자들을 끌고 다닐 성격도 아니 다.
강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다섯 명의 부상 입은 부위와 누가 이세계인인지 알아봐.”
“제가요?”
“그 편이 의심을 덜 살 테니까.”
“알겠어요. 부상 입은 부위랑 이세 계인 여부죠?”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춰 뒤로 가려 던 김혜림이 문득 생각난 게 있는 듯 말을 꺼냈다.
“아까 한 기사분이 말하는데 우리 가 연인 사이인 줄 알았대요.”
강현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김혜 림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일단 한 명은 시력 손상이로군.”
*
강현 일행은 출구를 찾아 20분 정 도 움직이다가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제 사신이 등장할 즈음이어서였 다.
자리를 깔고 모닥불을 피우는 동안
강현은 김혜림에게서 정보를 전달 받았다.
5명 중 4명은 팔이나 발,어깨 등 에 뼈가 다친 경우였고,단 1명만이 옆구리를 크게 긁혀 수시로 소독을 해야 하는 상태였다.
“이세계인에 대한 정보는?”
조직은 이세계인이 모여 이룬 집단 이므로 조직원 또한 이세계인일 여 지가 높았다.
이세계인으로 범위를 압축하면 용 의선상을 좁힐 수 있었다.
하지만 김혜림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없었어요. 전부 가이아 대 륙 기사래요.”
강현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거짓을 내뱉은 자가 있으리 라.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군.”
“이 안에 조직원이 있다면 그렇겠 죠
“그럼 이제부터 슬슬 확인해 봐야 지.”
강현이 모닥불에 작은 돌멩이 몇 개를 넣었다.
돌멩이가 데워지는 동안 바람의 방 향이 바뀌었다.
김혜림이 문득 자신 쪽으로 밀어닥 치는 연기에 기침을 했다.
“콜록콜록,웬 연기가 이렇게 많이 난담.”
옆을 보니 부상자들 쪽 모닥불에서 허연 연기가 마구 피어나고 있었다.
김혜림이 하늘 높이 피어오르는 연 기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연기를 많이 내면 어떡해 요! 우리 위치 알려 줄 일 있어요?”
부상자들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 적이며 양해를 구했다.
“조금만 참아 주게. 지금 쿠티 경 의 열이 높아져서 그러네. 이대로 죽게 놔둘 순 없지 않은가.”
옆구리에 부상을 당한 자가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댄 채로 숨을 몰아쉬 고 있었다.
소독용으로 물을 끓이는데 대충 잡 히는 생가지라도 모닥불에 넣은 것 같았다.
김혜림은 다친 사람을 앞두고 뭐라 할 순 없는지라 성질을 꾹꾹 눌렀 다.
“잘 찾아보면 마른가지가 있으니까 마른가지 위주로 넣으세요.”
최대한 안전하게 움직이기 위해 얼 마나 신경을 쓰는지 알기는 하나? 그러나 기사들은 듣는 둥 마는 둥 손을 휘휘 저었다. 심지어 아예 긴 장이 풀렸는지 아예 엉덩이를 바닥 에 붙이는 자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김혜림이 기껏 모은 마른가지를 탐내기까지 했다.
“여기 마른가지 쌓여 있구먼.”
“그건 이쪽에서 쓰려고 쌓아 둔 거
예요.”
“미안한데 조금만 쓰면 안 되겠나? 우리 모두 부상자라 마른가지를 찾 기가 힘들어서……
“아니,조금만 찾으면 많은데……
“에이,조금 나눠 쓰면 어떤가. 고 작 나뭇가지 가지고.”
김혜림은 뭐라 말은 못하고 인상만 찌푸렸다.
거절하면 괜히 속 좁은 사람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기사들의 입장에선 불을 피우거나 떨감을 구하는 잡일들은 병사들이 대신 하고는 했다. 그런 만큼 자신 들이 수고를 들이지 않는 것을 당연 시 여겼다.
기사들은 그에 그치지 않고 배를 문지르며 말을 붙였다.
“저기 미안하지만 먹을 게 있으면 좀 나눠 주게. 우리 짐은 전부 기사 단 쪽에 있어서 말일세.”
“먹을 거요?”
“급하게 도망 나오느라 미처 챙기 지 못했네. 나중에 반드시 갚도록 하지.”
“이제 곧 사신이 나타날 거예요. 지금 식사를 하는 건 좋지 않아요.”
“별 시답잖은 걱정을 하는군. 우리 한테는 강현 군이 있지 않은가.”
김혜림은 답답함에 가슴을 툭툭 때 렸다.
항상 강현을 상대하다가 다른 사람
이랑 대화하려니 답답해 죽을 지경 이다.
새삼 강현의 성격이나 말투가 호쾌 한 편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김혜림의 짜증이 누적되던 중,강현이 몸을 일으켰다.
강현은 손에 들고 있던 다섯 개의 돌을 기사들에게 차례대로 획획 던 졌다.
“받도록.”
돌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들자, 기사들이 반사적으로 돌을 받았다가 몸부림을 쳤다.
“앗 뜨거!”
“으앗! 달군 돌이잖나!”
강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서 대
수롭지 않게 받았다가 부상 여부도 잊고 크게 움직이고 말았다.
그로 인해 상처가 벌어지자 부상자 들이 각각의 부상 부위를 감싸 쥐었 다.
그러나 단 한 명.
다미안만은 멀쩡하게 두 팔을 허우 적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인……
다미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현의 빙백검이 뽑혀 나왔다.
서격!
빙백검이 가차 없이 다미안의 오른 팔을 베어 냈다.
베인 단면이 얼어붙으며 출혈은 멎 었으나 고통은 가중되었다.
다미안이 잘린 단면을 움켜쥐며 뒤 로 물러났다.
“크옥!”
강현은 다미안이 물러난 만큼 다가 서며 찬 숨을 뱉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군.”
조직원이 부상자들의 내분을 유도 하려면 본인도 그 무리에 속해야 했 을 터.
하지만 진짜로 부상을 당한다면 살 아남기 힘들 테니 부상을 입은 척만 했을 터다.
그렇다면 부상이 아니라는 것만 증 명하면 된다.
강현은 조직원이 가장 방심할 때를 기다렸고 쉬운 방법으로 거짓 부상자를 가려냈다.
강현은 곧바로 본심을 드러냈다.
“최진철의 위치를 말해라.”
굳이 조직의 이름을 꺼낼 것도 없 었다.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 주 는 것이었다.
최진철이란 이름이 언급된 것만으 로 다미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처음부터 강현의 목적이 자신의 색 출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챈 것이었 다.
다미안은 입을 다물고 눈알을 굴렸 다.
적당히 때를 살펴 도망을 치려는 수작이었다.
강현이 그를 두고 볼 리 없었다.
강현이 빙백검으로 다미안의 다리 를 잘라내려던 찰나였다.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 다.
“여기에 있었군! 음? 최강현도 있 었나! 차라리 잘됐어. 전부 이곳에 서 묻어 주지.”
부상자들을 추격하던 록스와 루카 스가 연기를 보고 쫓아온 것이었다. 그때,김혜림의 등 뒤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사신까지 나타 났다.
도망치려는 다미안.
기습을 시작하는 록스와 루카스.
김혜림을 노리고 나타난 사신.
“칫.”
강현은 짧은 순간,판단을 마치곤 빙백검을 휘둘렀다.
빙백검이 셋 중 한 곳을 향해 휘 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