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화
힐끗 뒤를 보니 화살이 날아들고 있었다.
‘화살? 맞은편 건물에서 날아든 건 가?’
창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이하나가 발데르 자작가의 지원을 준비하여 열어 둔 것이었다.
하지만 당황할 만한 공격은 아니었 다.
화살 같은 단일 투사체를 비껴 내 는 건 일도 아니었다.
퍼억!
가볍게 몸을 틀자,왜곡의 효과로 화살이 틀어져 버렸다. 벽에 틀어박힌 화살대 깃이 파르르 떨렸다. 강현은 창 옆의 벽을 엄폐물 삼아 몸을 숨기고 창밖을 보았다.
“쏴라! 놈을 벌집으로 만들어라!”
창밖 너머의 건물 지붕에 궁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곳에서 재차 화살 세례가 날아들 었다.
다가오는 위협은 그뿐만이 아니었 다.
방 밖에서도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 다.
“놈은 5층 끝 방에 있다! 방패병부 터 대열을 갖춰 올라가라!”
복도에서도 발소리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소리로 구분컨대 대략 30명쯤 되 는 머릿수 같았다.
‘복도로 가든,창문으로 가든 상대 해야 할 숫자는 얼추 비슷하겠군.’
또 한 번의 복수를 달성한 덕분일 까.
사방이 포위된 바나 다름없지만 정 신 상태는 더더욱 냉정해졌다. 복도냐,창문이냐.
어느 쪽이든 나가는 것 자체는 딱 히 어려움이 없었다.
창문 쪽은 쏟아지는 화살만 피할 수 있으면 불필요한 전투 없이 나갈 수 있다.
계단 쪽 또한 좁은 복도를 끼고 싸우면 어렵지 않게 길을 뚫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복도는 전투가 필연적이라 시체가 쌓이게 된다.
이하나를 처리한 이상 불필요하게 문제를 키울 필요는 없겠지. 소거법에 의해 선택지는 하나로 좁 혀 졌다.
‘창문으로 나가는 게 낫겠군.’
강현은 창문 양옆의 커튼을 잘라 침대 다리에 묶었다. 그러고는 걸레 를 짜듯 커튼을 빙빙 꼬았다.
그러자 즉석에서 간이 밧줄이 생겨 났다.
몇 번이나 간이 밧줄을 잡아당겨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확인했다. 팽팽하게 당겨 봐도 침대는 꿈쩍도안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서슴없이 간이 밧줄을 바깥으로 던 진 후 창문 너머로 뛰어내렸다.
“대놓고 창문으로 나와? 이게 우릴 뭘로 보고!”
“발데르 자작가를 우습게 본 놈이 다! 죽여도 상관없으니 화살을 아끼 지 마라!”
강현이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 리던 궁수들이 기다렸다는 듯 활시 위를 놓았다.
순식간에 화살들이 빗발처럼 쏟아 졌다.
그러나 강현은 화살의 숫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적중할 것 같은 것만 왜곡의 효과 로 궤도를 흐트리면 그만이었다. 강현은 레펠을 하듯 빠르게 간이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티딩! 티딩!
떨어지는 속도가 꽤 빨라서 화살들 은 강현이 지나친 자리에만 부딪쳐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 빠른 속도 탓에 간이 밧줄의 끄트머리도 금방 닿았다. 건물 3층 구간쯤에서 밧줄이 끝나 버렸다.
역시 커튼만으로는 안 되는군.
강현은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바닥까진 아직 꽤 높이가 있었다.
‘잘만 뛰어내리면 괜찮을지도.’
이미 여기까지 내려왔다.
더는 망설일 여유도,필요성도 없 었다.
타탓!
강현은 커튼을 놓음과 동시에 벽을 박찼다. 그러고는 발이 바닥에 닿는 즉시 바닥을 두 바퀴 구르며 낙법을 펼쳤다.
생각보다 충격이 없었다.
이 정도 높이는 아무렇지 않게 뛸 정도로 능력치가 높아진 덕분이었 다.
옥상에서 약이 바짝 오른 궁수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놈이 아래로 도망쳤다! 건물 뒷골 목에 놈이 있다!”
이하나의 방 창문에서도 고개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복도를 통해 들이닥친 자들이 이제 야 들어선 것이었다.
창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기사들 이 멀쩡한 강현을 보곤 괜한 화풀이 를 해 댔다.
“젠장! 저기까지 내려가는 동안 한 발도 못 맞췄다는 거냐!”
궁수들은 욕지거리를 멈추고 난감 해했다.
“그,그게…… 이상하게 놈한테는 화살이 맞질 않아서……
“시끄럽다! 지금 변명 따위를 할 때더냐! 전원 내려가서 놈을 쫓아 라!”
기사들이 허겁지겁 건물을 내려왔 다.
그사이 강현은 유유히 골목을 빠져 나와 발데르 외곽으로 움직였다.
발데르의 특성상 밤에도 낮 못지않 게 사람이 많았다.
과연 유흥업이 발달한 도시다웠다.
갈대밭마냥 술렁이는 인파와 도시 가득 깔린 어둠은 추격을 끊기에 더 할 나위 없었다.
인파에 뒤섞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다.
강현은 도시 외곽으로 빠지며 아공 간 주머니에서 검은색 로브와 모자 를 꺼내 들었다.
잠시 후 외곽 지역을 완전히 나왔
을 때 강현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 다.
몸에 걸친 고급 망토 대신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고,금발은 모자를 깊이 눌러 써 완벽하게 가려 냈다.
비록 그뿐이었지만 강현의 행색은 귀공자의 모습에서 칙칙한 여행자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여기서의 볼일은 끝났고. 슬슬 그 바보와 합류해야겠군.’
완벽하게 추격을 따돌렸음을 확인 하고는 발데르 외곽을 크게 돌아 남 쪽 부두로 향했다.
*
럽럽한 민물 냄새가 가득한 부두.
선착장은 야간 작업을 준비하는 어 부들과 유람선을 찾은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부두에 도착한 강현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김혜림을 찾아 움직였다. 밝은 곳을 지나 어두운 부두 구석 에 다다랐을 즈음,구석에 쌓인 짐 더미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현 씨. 여기예요,여기.”
짐 더미 사이로 김혜림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그녀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인답시 고 숨어 있던 모양이다.
짐 더미 틈을 비집고 가까이 다가
가니 그녀가 대뜸 강현의 머리카락 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웬 금발이래요? 이미지 체인지라 도 하고 싶었어요?”
“변장.”
“으음,나쁘진 않는데 흑발 쪽이 더 제 취향인 것 같아요.”
“농담은 그쯤 해 두지.”
“피,농담 아닌데.”
“배는 잡아 놨나?”
“당연히 잡아 놨죠. 저쪽 나루터예 요.”
김혜림이 약간 떨어진 강가를 가리 켰다. 그곳에 작은 나루터가 있었다. 물가에는 이,삼인승의 소형 나룻 배들이 줄을 서 있고 나루터 옆에는 관리사무소 비슷한 건물도 있었다. 아마도 개인 소유 같았다.
강현은 늘어선 나룻배를 보며 말했 다.
“나룻배를 잡았나?”
“잡았다기보단 아예 한 척을 샀어 요. 많이 낡았기는 하지만 빌리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요. 사공을 달고 멀리까지 갈 수는 없잖아요.”
나룻배를 빌리면 배를 모는 사공이 딸려 온다.
대여 종료시 배의 회수와 도난 방 지를 위한 감시역이었다.
게다가 대여를 하면 도시 바깥으로 는 나가지 못하는 제약이 생기니 빌 리지 않느니만 못했다.
그래서 김혜림도 아예 나룻배를 사 버린 것이었다.
그녀가 손가락 10개를 모두 펼쳐 보이며 말했다.
“무려 10골드나 들었다고요.”
10골드면 만만찮은 금액인데 용케 도 구입했다.
당찬 성격이 씀씀이에도 묻어났다.
금액을 말한 김혜림이 칭찬을 기대 하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강현은 그 눈을 본체만체하고 곧장 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로 움직이지.”
“우씨,10골드나 들였는데.”
김혜림이 투덜거리며 구입한 나룻 배를 가리켰다.
강현은 김혜림과 함께 배에 올라타 며 노를 쥐었다.
이내 노가 차가운 물을 걷어 내면 서 배가 나아가기 시작했다.
첨벙거리는 물소리와 낡은 배 특유 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메트로놈마냥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올롬보르 특유의 요란함이 없는 정 적에서 도시를 벗어났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김혜림은 한시름 놓았는지 작은 빵 을 꺼내 우물거리다 수면 위로 뻐끔 거리는 물고기들과 눈싸움을 하였 다.
“쉬쉬,저리 가. 너희 거 아냐.”
나룻배가 물의 흐름을 탈 즈음,강
현은 주머니에서 5골드를 꺼내 김혜 림에게 주었다.
“나룻배 값 절반이다.”
김혜림은 빵가루 묻은 손가락을 핥 으며 5골드를 받아 챙겼다. 그러곤 강현에게 물었다.
“일은 잘 처리했어요?”
“그래. 정보 수집은 어떻게 됐지?”
“안 그래도 그걸 말하려던 참이었 어요. 우릴 암살하려 했던 용병들과 이하나란 여자가 접촉하는 걸 목격 한 사람이 있어요.
죽은 용병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던 정보원인데 20골 드를 주고 소문을 내 달라고 했어 요. 그 외에도 죽은 용병들이 의뢰 에 나서기 전에 술집에서 큰돈을 받았다고 떠들어 댄 모양이에요. 술집 에도 손을 써 놨으니 조만간 효과가 나타날 거예요.”
“손을 써 놨다는 건?”
김혜림이 맨다리를 살짝 보여 주며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미인계죠.”
“손을 안 써 놓은 거나 마찬가지 군.”
“제대로 먹혔거든요? 술집 주인이 홀딱 넘어가서 협조해 줬다고요.”
“술집 주인 눈이 삐었거나.”
“정말이지 머릿속에 예쁜 말 회로
라곤 조금도 없다니깐.”
강현은 공작비로 쓴 20골드 중 절 반인 10골드를 추가로 김혜림에게 건네주며 재차 입을 열었다.
“베이커 영지에 도착하면 헤어지도 록 하지.”
“베이커 영지? 거기 옆 영지잖아 요. 좀 더 멀리 가는 게 낫지 않아 요?”
“볼일이 있어.”
“그럼 저도 갈래요.”
“네 역할은 발데르 안내까지였을 텐데?”
“이미 그 이상 엮여 버렸는걸요.”
귀족가를 적으로 돌린 상황인데도 곁에 머물 모양이다.
강현이 그녀였다면 떠났을 거다. 발데르 자작가의 주목표는 어디까 지나 자신이다.
그녀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떨어지 는 게 안전했다.
하지만 강현에게 있어선 오늘 김혜 림이 보여 준 수완을 감안하면 좀 더 함께해도 나쁘지 않았다.
본인이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겠다 는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다.
“그리 말한다면 돕게 해 주지.”
“어이구,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려 하네요.”
강현은 김혜림이 혀를 낼름 내미는 걸 보다가 다시 노를 잡았다.
*
저택에서 병력을 모은 후 업소로
돌아온 루카스는 이를 갈았다. 눈앞에는 덩그러니 이하나의 시신 이 놓여 있었다.
루카스는 안절부절못하는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무능한 놈들. 기사라는 것들이 고 작 용병 놈 하나 감당 못해?”
“저희는 뒤늦게 소식을 접한 터 라……
“변명은 집어치워라!”
“고정하십시오,도련님. 지금은 수
습이 먼저입니다. 순찰조에게 들어 보니 이하나가 암살 의뢰를 했다는 목격 증언이 늘어나고 있다 합니 다.”
김혜림의 공작이 효과를 보인 것이
었다.
루카스가 바락바락 소리쳤다.
“누가 그 따위 소문을 흘리느냐! 당장 수습해라!”
“발생지가 한두 곳이 아니라 수습 이 어렵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가문 의 명예에 누를 끼치게 됩니다.”
발데르 자작가로선 좋지 않은 소식 이었다.
일개 창부의 암살 의뢰를 덮으려고 발데르 자작가에서 무고한 이에게 누명을 씌웠다.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세간의 비웃음을 면치 못하리라.
루카스로선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 다.
“크윽,지명수배를 취소하고 이 계 집과 가문 간의 관계를 지워라. 알 겠나?”
루카스의 지시는 냉철했다.
이하나가 죽음으로 매료 스킬이 풀 렸기 때문이었다.
반면 루카스의 말을 들은 기사들은 의외라 여겼다.
지금껏 이하나에게 붙어 살던 루카 스의 입에서 나을 말이 아니었던 것 이다.
허나 불필요한 의문을 드러내진 않 았다.
루카스가 그 빌어먹을 여자에게서 관심을 땐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성 과였다.
하지만 아직 문제는 남아 있었다.
강현에 대한 처분이었다.
“도련님,그러면 최강현은 어떻게 할까요?”
놈은 무려 자작가의 기사와 병사들 을 상당수 베어 버렸다.
비록 누명 때문이라지만,귀족가문 이 일개 용병에게 농락당한 것을 그 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
적반하장을 운운하기에는 너무 깊 은 골이 생겨 버렸다.
루카스가 길길이 날뛰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느냐? 반드 시 놈을 처리해라! 이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지명수배는 걸지 못한다.
루카스 자작가에서 누명을 씌움으 로 강현에겐 정당방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결국 자작가 입장에선 명분을 떠나 강현의 단순 폭력으로 사태를 마무 리 짓는 게 최선이었다.
기사들도 일개 용병에게 농락당한 사실을 잠자코 넘길 수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자신들의 명예 역시 곤 두박질치고 말았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놈에게 도 련님과 저희의 명예가 모욕당했습니 다.”
“머저리 같은 것들! 정녕 그리 생 각한다면 당장 나가서 놈이 어디 있 는지를 알아내란 말이다!”
루카스가 또다시 길길이 날뛰었다. 강현은 놓치고 그의 행방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여기서 탁상공론을 하는 시간마저 답답했다.
기사들이 안절부절못하던 중 병사 들이 뛰어 들어오며 보고를 올렸다.
“도련님! 놈이 종적을 알아냈습니 다!”
애타게 보고를 기다리던 기사들이 바로 반응했다.
“놈은 어디 있느냐! 당장 보고하거 라!”
“부두에서 나룻배로 하류를 타고 갔다고 합니다.”
“젠장 하구 쪽으로 도망친 건가.”
“아닙니다. 모어 강을 따라 내려가 지 않고 그레닌 강줄기 쪽으로 빠진 것 같습니다.”
병사의 보고가 끝나자,기사들이 의견을 내놓았다.
“그레닌 강? 베이커 영지 방향이 아니더냐.”
“추격에 혼란을 주려는 게 아닐 까?”
“아니,놈은 베이커 영지로 간 게 맞는 거 같군.”
“그렇다고 해도 추격대를 보내면 베이커 자작님이 불쾌하실 겁니다.”
“차라리 협조를 요청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베이커는 발데르와 비슷한 규모다.
하지만 그 내실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었다.
베이커 자작가는 무려 뒷배로서 제 국 공작인 케이델 공작을 두고 있 다.
반면 루카스 자작가는 든든한 뒷배 가 없었다.
그런 형편에 병력을 이끌고 가는 건 여러 모로 부담이다.
평소의 루카스라면 좀 더 고민했을 거다. 그러나 분노에 사로잡힌 지금 은 완전히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루카스는 큰소리치며 추격을 강행 했다.
“무엇을 고민하느냐! 말을 탈 수 있는 인원들은 바로 준비를 해라!
즉시 놈을 쫓는다!”
루카스가 먼저 나서서 준비를 하자 근위기사가 물었다.
“도련님께서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 까? 저희에게 맡겨주시면……
루카스의 수준은 고작 마나유저 초 급이 다.
지휘력이라도 좋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다.
본인만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성격 더러운 귀족가 도련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강현을 직접 추격하기에는 기량이 확실히 모자랐다.
그러나 루카스는 고집을 부렸다.
“일처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 주제
에 말이 많구나! 당장 추격대를 편 성하라는 말이 안 들리느냐!”
“네……. 명에 따르겠습니다.”
*
뱃길을 통해 베이커 영지로 들어선 뒤에는 적당한 곳에 배를 버렸다. 나룻배는 강에 떠내려가게 두었다. 강가에 배를 남긴다면 종적을 알아 서 드러내는 꼴밖에 안 된다.
강현과 함께 물에 내린 김혜림이 물었다.
“베이커 영지에는 무슨 볼일이에 요?”
이하나가 밝힌 어떤 조직과 그에
속한 끄나풀,그리고 최진철의 위치 등.
가진 정보는 많았지만 전부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아직 강현은 김혜림을 완전히 신뢰 하고 있진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 었고 말이다.
강현은 김혜림에게 최소한의 정보 만 알려 주었다.
“베이커 영지의 기사에게 볼일이 있어.”
“으음,설마 베이커 자작가까지 적 으로 돌리는 건 아니죠?”
발데르 자작가는 누명을 썼기에 정 당방위가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경우 가 다르다.
강현이 먼저 마찰을 일으킬 경우,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지명수 배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하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강현은 하늘을 보더니 곧 말을 꺼 냈다.
“자작가를 기웃거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베이커 영지 하늘에는 균열이라도 일어난 듯 공간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 아래로는 루비와 비슷한 팔각형 모양의 붉은 보석이 빛나고 있었다. 베이커 영지에 웨이브가 생겨난 것 이다.
웨이브가 생겨나면 공간에 균열이 생기면서 던전 크기만 한 보석이 생겨났다.
그 보석 안에 들어가 웨이브를 공 략하지 못하면 그 일대가 소멸하며 던전이 생기게 된다.
‘붉은색은 S랭크 웨이브였던가.’
웨이브 보석은 급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강현이 알기로 s랭크 웨이브 보석 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S랭크 웨이브 정도면 용병들을 모 집하지 않고 자작가에서 직접 공략 중일 거다.
아마도 베이커가의 기사들이 나섰 을 터.
그 말은 베이커가의 기사로 잠입한 조직원도 저 웨이브 안에 있다는 말이 된다.
‘조직의 목적은 제국 귀족들에게 타격을 주는 것이다. 웨이브 공략이 실패할수록 귀족들의 힘은 약해지겠 지.’
웨이브 공략에 실패하면 일정 구역 이 소멸하며 던전이 되어 버린다.
그 말인즉 웨이브 공략이 실패할 때마다 귀족들은 땅덩이를 잃게 된 다는 뜻이다.
잃은 영지만큼 귀족들의 힘은 약화 된다.
조직에서 조직원을 기사로 심어 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웨이브 발생 시 공략 실패를 유도하기 위함이리라. 조직원은 웨이브 안에 있어. 그것만은 확실해.
웨이브 안에 조직원이 있다면 망설 일 게 없다.
강현은 웨이브 보석을 보며 말했 다.
“우리도 웨이브 공략에 참가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