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18화 (18/381)

18화

강현이 바깥으로 나오면서 베킨스 던전이 클리어 되었다는 소식이 전 해졌다.

출입을 통제하던 병사들이 던전 보 스 사망을 확인하였고,던전에 남아 있던 공략자들은 강현이 열어 낸 출 구를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

클리어를 완수한 강현과 김혜림은 보상을 받기 위해 올롬보르 자작가 로 향했다.

400골드의 보상 중 350골드는 강 현이 갖고,나머지 50골드가 김혜림 에게 주어졌다.

김혜림과 함께 움직였다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던전을 탐험하고 몬스터 들을 해치운 건 강현이었기 때문이 다.

상대적으로 적은 보상에 김혜림은 불만을 가질 만도 했지만,오히려 꽤 만족스러워했다.

50골드의 보상도 그녀의 수준에선 무척 큰 보상이었고,강현을 따라다 니면서 쏠쏠히 경험치도 얻은 덕분 이었다.

올롬보르 자작은 보상을 지급하며 또 하나의 포상이었던 기사 작위를 내렸으나 강현은 단호히 거절했다. 보상을 받고 자작가에서 나오는 길 에 김혜림이 물었다.

“왜 기사 작위를 거절했어요?”

올롬보르 자작가 기사단은 약하다.

그렇지만 올롬보르 자작은 드리안 공작가와 연줄이 닿아 있었다.

강현 정도의 실력이라면 금방 실적 을 쌓아 드리안 공작가에 지원할 수 있었을 거다.

황제파,드리안 공작파,케이델 공 작파로 나뉘는 제국 3대 세력.

그중 드리안 공작파의 주축이 될 수도 있는 발판을 스스로 걷어찬 셈 이었다.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답을 내놓았 다.

“언제든지 될 수 있으니까.”

오만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말이었 지만 강현에게만은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거짓으로 내뱉은 레벨만 하더라도

60대 후반이다.

고작 자작가 기사단에서 단계적으 로 출세할 경지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아무 기사단이나 가도 흔쾌히 받아들일 경지였던 것이다. 만약 실제 레벨을 밝히기라도 한다 면 제국 전역의 귀족가들이 강현을 탐낼 것이었다.

김혜림은 총총걸음으로 옆에 따라 붙으며 감탄을 자아냈다.

“와,저도 언젠가 그런 말 좀 해 보고 싶네요.”

“노처녀가 될 때까지 사냥만 하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으아,칙칙해라. 아무리 그래도 그 건 좀 고민되네요.”

아까부터 빨리 걷고 있는데도 총총 걸음으로 잘도 따라붙는 김혜림이었 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가며 계 속 따라오고 있었다.

보다 못한 강현이 걸음을 멈췄다.

“김혜림.”

“갑자기 웬 풀네임이에요? 설렐 뻔 했네.”

“따라오지 마라.”

“어차피 발데르로 갈 거잖아요. 저 도 거기 볼일 있어요. 같이 가시죠.”

강현이 발데르로 갈 것을 김혜림 또한 짐작하고 있었다.

베킨스 던전 지하 2층에서 박인환 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하나의 신 변을 팔아먹었다.

결과적으로는 다른 말을 하기도 전 에 목을 베어 버리는 바람에,이하 나가 발데르에 있다는 말이 유언이 되어 버리는 꼴을 보이고 말았다.

김혜림은 그때의 말을 단서 삼아 자신도 발데르에 용건이 있다며 빌 미를 지어냈을 것이다.

물론 강현도 발데르에 가 볼 생각 이었다.

박인환의 말이 사실이란 보장은 없 지만,적어도 가식이 벗겨진 후에 뱉은 말이니 조사해 볼 가치는 있었 다.

하지만 혹을 달고 갈 생각은 없었 다.

“방해된다.”

“저 예전에 발데르에서 반년 정도 살았었어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발데르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제국 북부 최고의 관광도시.”

“범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하죠. 가만히 걷기만 해도 소란에 휘말리기 십상이에요. 절 데려가면 좀 더 편하게 다닐 수 있을걸요?”

“볼일이 있다고 한 건 거짓말이었 나?”

“에이,어차피 믿지도 않았으면서 뭘 새삼스레.”

지금의 김혜림이라면 남작가 소속

의 기사단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단 구직이 아닌 강현을 따라가려는 건,강현과 함께 있는 게 레벨 업에 도움이 되 기 때문이리라.

발데르까지 함께하면서 데리고 다 니면 이득인 파트너라고 어필하려는 수작이었다.

적어도 강현의 생각은 그랬다.

어쨌든 그녀의 기대는 둘째치고 발 데르에서 도움이 될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발데르까지인 걸로 하지.”

“헤헤,잘 생각했어요.”

강현은 김혜림을 차갑게 바라보다

가 다시 걸음을 떼었다.

역시나 김혜림이 따라붙는 와중에 강현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거짓말은 방금 걸로 끝 내.”

이 한 마디만은 여태까지 해 왔던 어떤 말보다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넉살 좋은 김혜림조차도 쉽사리 농 담조로 받아치지 못했다.

그 정도의 눈치는 있는 여자였다.

“네,알겠어요.”

*

올롬보르에서 발데르에 가려면 동 쪽으로 일주일 정도 가야만 했다.

가는 동안 숲길이 잦은 탓에 일주 일 중 사나흘은 숲속에서 노숙을 해 야만 했다.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지 사흘 째 되는 날.

강현과 김혜림은 나인 포레스트란 이름의 숲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다. 김혜림은 나뭇가지를 긁어모아 바 닥에 깔고는 그 위에 앉으며 말했 다.

“여기가 왜 나인 포레스트인 줄 알 아요?”

강현은 나뭇가지를 겹겹이 쌓아 모 닥불을 지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면 좋아라 하며 수다를 시작할 게 뻔했다.

한데도 김혜림은 무시당하는 게 익 숙해졌는지 저 혼자 떠들어 댔다.

“원래는 벌판이었는데 지나가던 상 인이 과일을 먹고 버린 씨가 싹을 렀대요. 그때 자란 나무가 아홉 그 루라서 나인 포레스트라 이름을 붙 였다고 해요.”

“숲이 생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노숙을 하려면 허허벌판에서 해야 했다는데 그에 비하면 우린 양반인 셈이죠.”

“에휴,돌하르방이랑 얘기하는 기 분이네. 그냥 밥이나 먹죠. 이전 마을에서 절인 양배추랑 고추 양념을 사서 같이 통에 넣어 뒀어요. 이걸 로 수프 끓이면 김치찌개처럼 되던 데 어쩔래요?”

“냄비가 없어.”

밤이 되고 나서 ‘여기서 노숙하도 록 하지’ 이후로 처음 꺼낸 말이었 다.

반응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즐거웠 는지 김혜림이 보조개를 만들며 배 냥을 열었다.

배낭 안에서 팔뚝만 한 철제 보관 용기가 나왔다.

“이거 그대로 불에 올려서 고기만 조금 넣고 볶은 다음에 물 부으면 돼요.”

“괜히 식료품점에 오래 있다가 나 온 게 아니었군.”

“핀잔 들을 가치가 있는 일이었 죠

김혜림은 가이아 대륙에 와서도 비 슷하게나마 한국 요리를 해 먹었었 는지 능숙하게 김치찌개를 끓여 냈 다.

보관 용기를 모닥불에 올린 지 얼 마 되지 않아 물을 붓자 보글보글 끓나 싶더니 이세계 버전 김치찌개 가 되었다.

맛을 보니 약간 싱겁긴 해도 고향 에서 먹던 맛과 얼추 비슷했다.

같이 먹는 게 빵인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나쁘지 않군.”

“헤헤.”

“웃음소리는 기분 나쁘고.”

“꼭 안 해도 될 말을 한다니까. 가 끔씩 한식 비슷하게 만들어서 먹고 는 했어요. 고향 생각 날 때마다요. 지금쯤 원래 세계에선 어떻게 됐으 려나. 분명 부모님들이 실종신고를 했겠죠?”

강현도 가끔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가이아 대륙에는 상당히 많은 이세 계인이 있었다.

인종도,성별도,국가도 가리지 않 고 많은 사람들이 차원이동을 당했 다는 뜻이다.

원래 세계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

하고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쩌면 시간이 멈춰 있을 수도 있 고,실종된 사람을 찾느라고 세계적 으로 난리가 났을 수도 있고,아니 면 아예 없던 인물처럼 삭제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 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 고서야 알 수 없었다.

돌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오래전 부터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웨이브를 계속 공략하면 원래 세계 로 돌아갈 수 있는 문이 열리리란 소문이었다.

허나 그저 소문에 불과할 뿐 확실 한 건 아니었다.

김혜림은 말이 나온 김에 은근슬쩍

원래 세계에서의 강현에 대해 물었 다.

“강현 씨는 원래 세계에서 뭐 했었 어요?”

“또 돌하르방 모드에 들어가셨네. 뭐 저 같은 경우엔 계속 일만 했어 요. 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셨거든요. 어머니 혼자 너무 고생하셔서 조금 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온갖 일을 다 했었죠.”

“강현 씨는요?”

강현은 대답 대신 검지를 입에 붙 였다.

조용히 하란 뜻이었다.

김혜림이 볼을 부풀리려던 찰나, 강현이 빙백검에 손을 올리며 캄캄 한 나무 사이를 노려보았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싁! 쉬릭! 싁싁!

화살 개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전방뿐만 아니라,좌우 측면과 후 방에서도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강현은 자세를 낮추며 전방으로 뛰 어들었다.

기습적으로 날아든 화살이었지만 강현에겐 너무나도 느리게 보였다. 땅을 박참과 동시에 빙백검을 휘둘러 앞쪽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두 동 강 내고,뒤편에서 날아든 화살은 고개를 젖혀 왜곡 효과로 흘렸다. 직후 몸을 날려 나무 사이로 들어 서니 막 활을 놓고 메이스를 쥐는 복면괴한과 마주칠 수 있었다.

복면괴한은 강현의 빠른 반응이 예 상 밖이었는지 크게 당황했다.

“어떻게 알고……

강현은 괴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빙백검을 그었다.

괴한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을 땐 강현도 이미 등을 돌린 후였다.

뒤를 돌아보니 김혜림이 바닥을 구 르면서 강현에게로 오고 있었다. 강현이 열어 놓은 활로로 따라 들어온 김혜림이 활에 애시드 애로우 를 걸었다. 그러곤 보이지 않는 어 둠 저편을 겨냥하며 말했다.

“강도일까요?”

“확인해 보면 알겠지.”

“엄호할 테니까 측면으로 돌아 들 어가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김혜림이 맞은편 나무 사이를 향해 애시드 애로우를 날렸다.

적을 맞춘다기보단 숨기 좋은 나무 를 겨냥했다.

애시드 애로우에 적중당한 나무가 산성액에 녹아내리면서 옆으로 기울 어 졌다.

뿌드드드! 쿠응!

쓰러진 나무 주변으로 그림자 여럿 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측면으로 돌아 들어간 강현은 또 다른 괴한 이인조와 맞닥뜨렸다. 강현의 접근을 이미 목격했는지 벌 써 손에는 근접무기를 쥐고 있었다. 무기에는 약간의 마나도 서려 있었 다.

최소한 마나유저 초급은 된다는 뜻.

강도는 아니로군.

강현도 빙백검에 마나를 불어넣었 다.

빙백검 특유의 눈보라 현상이 일어 나며 마나유저 상급 수준의 마나 오 오라가 전개되었다.

이인조가 복면 사이로 헛숨을 들이 켰다.

“흐억! 마나유저 상급이란 말은 없 었잖아!”

마나의 수준만으로도 이인조의 어 깨가 움츠러들었다.

싸우기도 전에 싸울 의지를 상실한 상대를 베는 건 일도 아니었다.

빙백검이 푸른 잔상을 일으키자 이 인조의 목이 떨어졌다.

남은 괴한들은 포위망을 형성한 게 되려 독이 되었음을 깨닫고 곧바로 작전을 변경했다.

“전부 뭉쳐! 한꺼번에 놈을 친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4명의 괴 한이 모여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현은 괴한들을 집합시킨 자에게 다가갔다.

“제 발로 죽으러 오는…… 컥!”

서격!

제 발로 다가온 강현을 비웃기 무 섭게 그의 목도 바닥을 굴렀다. 그제야 남은 4명의 괴한은 빙백검 에 깃든 마나유저 상급의 마나 오오 라를 발견했다.

그들 역시 먼저 목이 떨어진 이인 조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런 미친! 마나유저 상급이라 고?”

“의뢰인이 우릴 속였어!”

“그냥 덤벼! 놈은 혼자고,우린 넷 이야!”

강현의 경지를 깨달았지만 이제 와 서 등을 돌릴 수도 없었다.

차라리 머릿수가 한 명이라도 더 줄기 전에 승부를 내는 게 유리했 다.

순식간에 강현을 에워싼 괴한들이 동시에 합공을 펼쳤다.

싁! 쉬쉬식!

강현은 날아드는 공격들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내며 검을 휘둘렀 다.

왜곡 스텟의 효과 덕분에 움직임이 대범하다시피 했다.

빙백검이 한 번 움직이면 괴한 하 나가 고꾸라졌다.

서격! 서격! 서격!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머리 셋이 바닥을 굴렀다.

마지막으로 남은 괴한이 주춤주춤 뒷걸음쳤다.

강현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단순히 마나유저 상급의 오오라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검술 실력 또 한 비교가 안 되는 경지였다.

“마,말도 안 돼. 아무리 마나유저 상급이라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 고……?”

강현은 평소의 건조한 얼굴로 괴한 에게 다가가 무기를 쳐 냈다.

빙백검의 차디찬 검신이 괴한의 무 기를 튕겨 내며 청명한 쇳소리를 홀 렸다.

챙!

겁에 질린 괴한이 강현의 힘을 이 겨 낼 리 없었다.

빙백검에 부딪친 그의 무기가 손아 귀에서 튕겨 나가더니 저 멀리 날아 가 버렸다.

강현이 그의 목에 빙백검을 붙이고 말했다.

“의뢰인이라 했던가?”

괴한의 낯빛이 누렇게 떴다.

강현이 마나유저 상급이란 사실에 놀라 엉겁결에 흘린 말이 화를 자초 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는 노릇이다.

괴한은 말을 더듬으며 변명했다.

“기,기다려. 우린 그냥 B급 용병 이야. 이건 그냥 의뢰를 맡은 것뿐 이라고!”

“사족이 많군.”

강현이 빙백검을 슬며시 밀어 넣었 다.

검날이 목 언저리에 닿자 서늘한 느낌이 살결을 타고 홀렸다. 의뢰인을 밝히라는 무언의 압박이 서늘한 검신을 타고 전달되었다. 괴한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 마른침을 삼켰다.

“여,여자야. 망사 모자를 뒤집어써 서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분명 여자가 우리에게 의뢰를 했었어.”

여자란 말에 강현은 불현듯 발데르에 있을 누군가가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