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지하 3층은 미믹 동굴입니다. 살 아남은 자들 중 한 명이라도 던전 보스를 죽이면 클리어입니다.]
지하 3층 길잡이에 적힌 내용이었 다.
과연 ‘지하 3층은 미믹 동굴입니 다’라고 했을 뿐,던전 보스가 3층 에 있다는 말은 없었다.
김혜림도 그 점을 떠올려 냈는지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왜 ‘살아남은 자’란 말을 썼을까요? 어차피 살아남은 자는 지 하 3층으로 오게 되어 있잖아요.”
“아니. 지하 1층에도 살아남은 자 들은 있어.”
“아! 신욱 씨!”
김혜림이 금방 한 사람을 추측해 냈다.
과연 강현 일행에도 생존을 위해 스스로 낙오를 자처한 예가 있질 않 던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현이 덧붙였다.
“1-1 구역에는 나폴리 용병단에게 협박을 당했던 커플도 있었지.”
“잠시만요. 그것들은 다 공략이 끝 난 방이에요. 공략이 끝난 방에 던 전 보스가 있을 리 없잖아요.”
“던전 보스가 공략에 끝난 방에 가
지 말라는 규칙이 있었나?”
강현의 말에 김혜림은 말문이 막혔 다.
그의 말대로 던전 보스가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일반론에 불과 했다.
S등급 이하의 던전이 그러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우리도 지금까지 여러 구역을 오 갈 수 있었다. 던전 보스라고 그래 선 안 된다는 법은 없지. 아마도 던 전 보스 역시 ‘다른 구역’을 돌아다 닐 수 있는 게 틀림없어.”
즉 클리어된 구역도 포함하여 던전 보스를 찾아야만 했다.
“남은 건 찾아내는 것뿐이군.”
3층의 해답을 찾은 강현은 통로 안을 달리기 시작했다.
“같이 가요!”
이제 어느 통로가 정답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느 통로로 가든 1층으로 이어질 테니까.
강현은 거칠 것 없이 통로형 미믹 을 돌파해 나갔다.
이미 6개를 뚫어 놓은 시점에서 2 개를 더 부수니 미로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예상대로 미로의 끄트머리에는 문 이 있었다.
[1-H구역입니다. 인원이 1명 이상 이어야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강현 일행이 베킨스 던전에 처음 들어왔던 구역으로 연결되는 문이었 다.
문을 열자 위로 이어지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 3증에서 지하 1증으로 가는 계단인지라 여간 긴 게 아니었다.
김혜림이 혀를 내둘렀다.
“던전 구조가 참 불친절하네요. 마 법 엘리베이터 같은 것 좀 달아 두 지.”
“바라는 것도 많군.”
“뛰는 것밖에 답이 없겠네요.”
강현과 김혜림은 2층 분량의 계단 을 올라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여태까지는 내려오는 계단만 이용 해서 몰랐는데 생각 이상으로 경사 가 가팔탔다.
강현이야 체력 단련과 마나 순환으 로 인한 육체 강화 덕분에 호흡 하 나 흐트러지지 않았지만,김혜림은 숨넘어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아 하아,계단이 사람 잡네. 던 전 보스랑 싸우기도 전에 죽겠어 요.”
“적어도 발목은 잡지 말지.”
“그럴 일 없으니까 어서 가죠. 가 설이 사실인지 확인해 봐야죠.”
강현이 숨을 몰아쉬는 김혜림을 뒤 로한 채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 다.
강현과 김혜림이 통과한 문은
1-H구역의 6시 방향에 붙어 있는 문이었다.
지하 1층을 공략할 땐 없었던 문 이다.
지하 3층에서 올라오는 자가 있을 때 생겨나는 문인 듯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하신욱이 보였다. 안전을 위해 던전 공략을 포기하고 지하 1층에 남아 있겠다던 그는 싸 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허리가 동강난 채였다. 김혜림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살아남겠다고 남았는데 오히려 독 이 됐네요.”
정말이지 배배 꼬인 던전이다.
몬스터를 처리하여 클리어한 곳도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니.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가기도 했다.
크라이머 던전 3층의 늑인과 호인 이나,이곳의 세븐슬라임처럼 특수 성이 없는 한은 던전에선 한 번 죽 인 몬스터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즉 몬스터를 처치한 곳은 안전성이 확보된다고 보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야 SS랭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서로를 이간질시키고,
분란을 부추기는 것이 SS랭크 던전 의 성격이었다.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SS랭크인 만큼 살아남은 자들을 그냥 되돌려 보낼 리가 없었다.
강현은 걸음을 옮겨 하신욱의 시신 을 살펴보았다.
“단면이 매끄러워. 날카로운 것에 베인 건가.”
김혜림도 감상에서 벗어나며 좌우 를 살폈다.
“던전 보스도 문을 이용한다고 가 정했을 때 크기는 사람 정도겠네 요.”
“단정 짓는 건 좋지 않아. 일단 1-1 구역으로 가 보지. 가설대로라면 살아남은 자를 찾아다닐 가능성이 높아.”
3층 미로가 1층으로 이어지는 것 으로 추측하면 던전 보스는 낙오자 들을 처리하고 있을 여지가 높았다.
1-1 구역에는 나폴리 용병단에게 협 박당하던 커플 한 쌍이 있었다.
던전 보스는 그들 또한 처리하러 갔을지도 모른다.
강현과 김혜림이 1-1 구역으로 들어 서려는 순간이었다.
일단의 사람들이 다른 문을 통해 나타났다.
말끔한 복장이나 다섯 명이라는 머 릿수로 보아 아마도 뒤늦게 진입한 공략대 같았다.
“어? 사람이 있잖아.”
“먼저 들어온 자들이겠지. 잘됐군. 거기 두 사람. 언제 들어왔지?”
실실 쪼개며 말을 걸어오는 게 던 전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티가 팍팍 났다.
“지금 던전 보스 공략 중이다. 바 쁘니까 실례하지.”
강현이 차갑게 말했다. 어중이떠중이들에게 할애할 시간도 아까웠다.
강현이 돌아서려는데 용병 중 하나 가 어깨를 붙들었다.
어깨를 잡은 그가 박상혁,하신욱 의 시신을 힐끗 보더니 비웃음을 홀 렸다.
“풋,이제 지하 1층인데 던전 보스 는 무슨. 그러지 말고 우리랑 합류 하자고. 보아하니 지하 1층에서 개 고생하고 겨우 살아남은 것 같은데. 2층부터는 우리가 클리어해 줄 테니 까 머릿수만 채워 주지? 그편이 서 로서로 좋잖아?”
보다 못한 김혜림이 발끈하며 말했 다.
“지금 그쪽이랑 말씨름할 시간 없 어요! 그쪽도 살려면 대형 갖추고 대기하도록 하세요.”
용병들이 김혜림을 보더니 끈적한 눈빛을 띠었다.
땀에 젖은 김혜림의 모습은 욕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곧바로 희롱에 가까운 말들이 서슴 없이 튀어나왔다.
“하하하,거기 아가씨 지하 1층부 터 험한 꼴 당했나 보구만. 우리가 지켜 줄 테니 이쪽으로 오지 그래?”
그때 강현이 어깨에 올라온 용병의 손목을 잡아 쥐며 냉기를 풀풀 풍겼 다.
“바쁘다고 했을 텐데?”
강현에게 손목을 잡힌 용병이 한껏 미간을 찡그렸다.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그러는 모 양인데……
“관심 없다.”
“이 자식 말하는 꼴 봐라. 죽고 싶 어?”
“마지막으로 말하지. 방해하지 마 라.”
차갑게 내뱉고 빙백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1-H구역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김혜림이었다.
“강현 씨, 바닥이 이상해요!”
평범한 돌바닥에 불과했던 바닥에, 어느새 사각형 타일이 다닥다닥 깔 려 있었다.
타일 한 개의 크기는 한 사람이 들어서면 꽉 차는 정도일까.
흑과 백이 번갈아 가며 깔린 모양 새가 마치 거대한 체스판 같은 느낌 이었다.
강현은 즉시 경계심을 세웠다.
던전 안에서의 변화는 곧 위기를 의미했다.
“너희들 멍하니 있다간 죽는다.”
“이 자식,그렇게까지 원한다면 본 때를 보여……
그 순간이었다.
“어어! 뭐야!”
갑작스레 들려오는 고함에 강현과 시비가 붙은 사내가 뒤를 돌아보았 다.
고함을 외친 동료의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림자는 저들끼리 얽히고설키더니 곧 하나의 형상을 갖추어 갔다. 그것의 정체를 알아채는 찰나,그는 자신의 눈이 의심스러운 나머지 자문했다.
“사마귀?”
바로 그러했다.
그림자의 정체는 무려 3미터의 크 기에 이르는 거대 사마귀였다.
놈이 나타나는 방식으로 보건데 그 림자 형태로 몸을 바꿀 수 있는 듯 했다.
그림자로 변신하여 이동하는 능력 이 있기에 가까이 접근해 오는 동안 에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 다.
그림자 사마귀의 겹눈이 뒤룩뒤룩 사방을 탐색했다.
겹눈에 용병들의 모습이 알알이 반
사되 었다.
사냥감들을 감지한 그림자 사마귀 가 기다란 팔을 휘둘렀다.
후응!
벼리고 벼린 검처럼 날카로운 팔이 널찍하게 반원을 그리며 용병들을 훑고 지나갔다.
워낙 빠르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 었다.
용병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멀뚱히 자신의 허리를 내려다보았 다.
“이 괴물은 대체……
직후 강현의 경고를 등한시했던 용 병들의 허리가 두 동강 났다.
단 한 번의 팔짓으로 대다수의 용 병들이 죽음을 맞고 말았다. 순식간에 다수의 용병들을 베어 낸 그림자 사마귀는,이어서 강현을 다 음 표적으로 삼았는지 팔을 휘둘러 왔다.
강현은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여기 공략했던 게 아니었……?”
서격!
강현과 가까이 있던 용병이 대신 사마귀에 팔에 적중당했다.
강현의 말을 무시한 대가는 참혹했 다.
그의 몸 또한 두 동강이 나서 바 닥에 엎어졌다.
한순간에 무시무시한 참사가 벌어
졌다.
단 두 번의 팔짓으로 모든 용병단 원들이 몰살당한 것이다.
그야말로 짧은 순간에 주변 환경이 처참하게 변했지만 강현은 오로지 그림자 사마귀를 분석하는데 집중했 다.
‘주력기는 측면 베기인가. 공격력 과 범위가 상당하다. 양쪽 팔을 동 시에 휘두르면 피할 곳이 거의 없겠 어.’
단순히 싸우기만 한다면 상관없지 만 아무래도 바닥에 생긴 흑백 타일 이 신경 쓰였다.
‘문제는 이 타일이 무엇이냐인데.’
분석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림자
사마귀의 공격이 재개되었다.
또다시 측면에서 날붙이 같은 팔이 날아들었다.
마치 수십 배 사이즈로 커진 낫이 날아드는 듯했다.
이번에는 바닥을 비질하듯 낮은 위 치에서의 공격이었다.
적중당한다면 그대로 발목이 두 동 강 나 버릴 터.
한데 강현은 뒤로 피하는 게 아닌, 도리어 낫 쪽으로 파고들었다.
쉬이익!
먹잇감이 제 발로 찾아드는 격에 사마귀가 힘껏 팔을 휘둘렀다.
‘단순하군.’
강현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몸을
회전시키며 뛰어올랐다.
몸짓을 읽고 공격을 유도했건만 고 스란히 그 생각대로 움직여 주는 사 마귀 였다.
갑작스레 강현의 몸이 허공에 떠 버리자 거대한 낫은 맥없이 허공을 젓고 말았다.
사마귀의 하단 공격을 발밑으로 홀 려보낸 강현은 이어서 공중에 뜬 채 로 마나폭검을 시전했다.
파파파파팟!
빙백검에서 폭발한 마나 파편들이 일제히 사마귀에게 틀어박혔다.
‘직 격이다.’
강현은 공격이 주효했음을 확신했 다.
더욱이 파편들은 정제마나의 효력 을 더하여 스렛 포인트의 2배 효과 를 발했을 터.
분명 적지 않은 손상을 입혔으리 라.
그러나 이는 착각에 불과했다.
틀어박혔다고 여겼던 마나 파편들 이 뜬금없이 사마귀에게 흡수되었 다. 아니,정확히는 사마귀의 몸 주 변에서 흡수되었다.
마치 실드 같은 투명한 막이 있는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쏘아 낸 마나 파편의 기운들이 덩 어리를 이루더니,반대로 쏘아져 오 기까지 했다.
“콕!”
예상 밖의 반격에 강현은 급하게 몸을 틀어 마나 덩어리를 피해 냈 다.
이어서 바닥을 굴러 거리를 벌리고 는 상황을 정리했다.
자신이 날린 마나 파편과 똑같은 기운이 덩어리를 이루어 반격이 날 아왔다.
“반사 능력인가!”
쉬익! 푹!
한데 생각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저편에서 날아든 녹색 화살이 그림 자 사마귀의 배에 적중했다.
먼 곳까지 물러난 김혜림이 날린 애시드 애로우였다.
자신의 마나 파편은 튕겨 나온 반 면,김혜림의 애시드 애로우는 튕겨 나오지 않고 그림자 사마귀의 겉껍 질을 녹이고 있었다.
화살을 맞춘 김혜림 본인도 화살이 통한 게 신기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 고 있었다.
“어라? 내 공격은 통하네.”
강현은 자신과 김혜림의 공격을 비 교해 보았다.
똑같은 원거리 공격이며,똑같은 마나 공격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강현은 김혜림이 선 곳과 자신이 선 곳에서 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은 흰색 타일인데 반해,김혜 림은 검은색 타일에 서 있었다. 강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거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