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그러고 보니 12시의 벽서는 타일 을 채워야 하는 게 ‘산 자’라고 했 지,‘사람’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강현은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으 며 말했다.
“빈자리는 제가 메우겠습니다. 두 분 다 원래 서 있던 자리로 가 주 십 시오.”
“네? 그러면 공격은 누가 하고요?”
“제가 해야죠.”
“방금 보셨잖아요. 타일에서는 한 번 공격할 때마다 타일 크기가 10 센티미터씩 줄어든다고요.”
“메우겠다고 했지,선다고는 안 했
습니다.”
강현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손을 빼 내자 8각형 모양의 돌멩이가 들려 나왔다.
크라이머 던전 3층 보스를 쓰러트 리고 얻은 전리품인 석상 낭인 소환 석이었다.
강현은 이어서 3시 방향의 타일 위에 소환석을 올려 두고 마나를 부 여 했다.
그러자 늑대 머리의 석상 낭인이 소환되었다.
“석상 낭인입니다. 석상이긴 해도 몬스터이니 산 자라고 해도 무방하 겠죠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네요. 그 나저나 소환석까지 가지고 계셨어 요? 소환석은 어지간해선 전리품으 로 나오지 않는다던데.”
“출처가 궁금합니까?”
“아뇨,제가 사족을 붙였네요. 자, 신욱 씨. 우리는 아까처럼 타일 위 에 서죠.”
김혜림과 하신욱이 아까처럼 6시와 9시 방향의 타일을 채웠다.
이로써 모든 타일에 ‘산 자’들이 올라가게 되었다.
과연 석상이라 해도 살아 있는 몬 스터로 인지했음인지, 서든트리의 실드가 사라졌다.
실드가 걷힌 이상 강현을 가로막는 건 없었다.
강현은 빙백검에 마나 오오라를 부 여하면서 서든트리에게로 달려들었 다.
서든트리는 자신의 사정거리 안에 적이 들어서자마자 손을 내리쳤다. 후응!
강현은 돌격하던 체중을 실어 사선 으로 움직였다.
서든트리의 손이 어깨 바깥으로 떨 어졌으나 왜곡의 효과로 완전히 비 껴 나갔다.
아슬아슬하게 피한 만큼 거리가 순 식간에 좁아졌다.
삽시간에 나무 기둥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나무 기둥 결이 선명하게 보일 만
큼 가까운 거리였다.
지금까지 입혀 놓았던 검흔은 말끔 히 사라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까 입힌 데미지가 박상혁에게로 옮겨 가면서 회복된 것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공략하는 거나 마찬 가지였으나 상관치 않고 빙백검을 내질렀다.
상처 하나 없는 나무 기둥에 빙백 검이 박히면서 파괴 스렛의 효과가 발휘되었다.
우드득!
나무 안쪽에서 충격이 퍼져 나가면 서 나무 기둥은 물론이고 나뭇가지 가 파르르 떨었다.
빙백검이 꽂힌 자리 주변으로 균열
이 일어남과 동시에 강현이 검을 빼 내었다.
서든트리가 어떻게든 강현을 잡아 보려고 손바닥을 넓게 펼쳤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서든트리의 손이 날아들 때마다 왜 곡의 효과를 십분 활용하며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해 냈다.
지금의 강현에게 있어 회피와 공격 을 동시에 행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크라이머 던전 2층에서의 수행 덕 분이었다.
서격! 서격! 서격!
공격이 이어질수록 나무 기둥에 난 균열은 점점 더 벌어졌다.
일정 데미지를 입다 보면 다른 기 술이 발동되는 건 아닐까 했는데 그 런 건 없었다.
첫 구역은 박상혁처럼 욕심을 부리 는 일만 없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 든 공략할 수 있는 구조인 것 같았 다.
다른 기술이 없다는 걸 안 이상 망설일 건 없었다.
강현은 벌어진 균열에 빙백검을 깊 게 꽂아 넣으며 마나 오오라를 한껏 발하였다.
우지끈!
균열이 기둥 둘레의 절반을 넘어가 면서 서든트리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죽은 서든트리의 몸체에서 푸른빛 이 서렸다.
강현이 전리품을 추출하자,나무 열매 모습의 소모성 영약 하나가 나 왔다.
[서든트리의 열매]
등급 : B
타입 : 영약
특징 : 서든트리의 열매. 섭취하면
1분 동안 실드 스텟이 100 증가한 다.
고작 1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지만
100이면 꽤 높은 수치인지라 긴급 상황에서 쓸모가 많을 것 같았다.
챙겨 두면 반드시 쓸모가 있을 터.
강현은 서든트리의 열매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그건 그렇고 SS랭크 던전치곤 보 상이 미약하고,상승한 경험치도 적 었다.
지금의 강현에겐 60레벨짜리 몬스 터 하나를 잡은 정도랄까.
서든트리는 베킨스 던전의 튜토리 얼 수준밖에 안 된다는 걸 증명하는 부분이 었다.
반면 타일을 채우고 있던 김혜림과 하신욱은 다른 모양이었다.
서든트리가 쓰러지자 달려온 김혜 림이 말했다.
“강현 씨,저도 레벨이 올랐어요.
아무래도 공략 조건을 수행하는 역 할에도 기여도가 주어지나 봐요.”
“저도 올랐습니다.”
김혜림은 레벨 20에서 21이,하신 욱은 레벨 15에서 17이 되었다.
레벨이 올랐다고는 해도 각자 1,2 수준 정도였다.
레벨 60짜리 몬스터가 주는 총 경 험치량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인 셈이다.
기여도가 주어지긴 해도 실제 몬스 터를 죽인 사람보다는 한참 적은 양 이 분배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경험치 분배보다 다음 방으 로 가는 문이 더 중요했다.
‘6시를 제외한 각각 하나씩인가.’
서든트리 처치 이후 총 3개의 문 이 생겨났다.
12시 방향의 벽에 하나,3시 방향 의 벽에 하나,9시 방향의 벽에 하 나.
강현은 먼저 12시 방향에 생겨난 문으로 가 보았다.
문 전면에는 대륙공용어가 새겨져 있었다.
[지하 2-H구역입니다. 인원이 8명 이상이어야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첫 구역인 이곳 1-H의 최소 인원 이 4명인데,두 번째 구역의 입장 조건은 8명을 요구하다니?
당연히 이상했다.
이럴 거라면 던전 입장 조건인 4 명 이상의 머릿수를 요구한 바부터 어 폐였다.
2-H구역의 원천 봉쇄를 위한 조 건은 아닐 테고,그만한 이유가 있 을 터.
강현은 3시와 9시 방향에 있는 문 도 살펴보았다.
과연 다른 문들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1-G구역입니다. 인원이 1명 이상 이어야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1-1 구역입니다. 인원이 1명 이상
이어야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12시 방향의 문은 아래층으로,3시 와 9시 방향의 문은 같은 층의 옆 방으로 가는 문이었다.
즉 인원이 모자라면 같은 층에서 머릿수를 채우라는 단서 같았다.
‘다른 구역을 돌아봐야겠군.’
아직 1층에 박인환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그게 아니더라도 놈과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 랐다. 겸사겸사 8명이라는 머릿수도 채우고 말이다.
그 전에 정리해야 할 게 있었다.
강현은 막 스텟 부여를 마친 김혜 림과 하신욱에게 입을 열었다.
“전 바로 1-1 구역으로 갈 겁니다. 두 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신욱이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저……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난 이도가 더 올라가겠죠?”
“지금 건 튜토리얼 수준이죠.”
“윽,그럼 전 빠지겠습니다. 이런 말하면 겁쟁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 지만 이 이상은 무리일 것 같습니 다. 전 여기서 다른 파티가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을 기다리겠습니다.”
하신욱은 당초의 목적대로 다른 파 티의 던전 클리어를 기다리기로 했 다.
공략에 참가하기만 하면 상금을 준 다고 했으니 안전한 장소에서 대기하는 것도 한편의 방법이다.
한 번의 실수가 즉사로 연결되는 곳이 던전이다.
연약한 정신으로 실수 한 번 없이 버티리란 보장은 없었다.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고 안전을 최 우선하는 것도 현명한 방식이었다. 그를 보고 겁쟁이라 비아냥거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어리석은 자라 할 수는 없으리라.
강현도 정서적으로 불안해진 사람 을 억지로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괜한 불화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 이다.
부족한 머릿수는 다른 구역을 돌면 서 모으면 될 일이다.
반면 하신욱과 달리 김혜림은 의욕 을 내비쳤다.
“전 따라가겠어요.”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자기 몸은 자기 스스로 지키십시오.”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그럼 긴말 할 필요 없겠군요.”
강현이 1-1 구역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서 기다란 원형 통로가 나타났다.
동굴 같은 느낌의 통로 안으로 발 을 들이고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갔 다.
통로 안에서 강현과 김혜림의 발소
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한참을 걷던 중 강현이 입을 열었 다.
“박인환이 들어갔다던 파티에는 어 떤 자들이 섞여 있습니까?”
“글쎄요. 저도 강현 씨가 오기 얼 마 전에 막 합류한 거라서 아는 게 많지 않아요. 죽은 상혁 아저씨 말 로는 오전에 어찌어찌 8명 정도 모 였었는데, 박인환이란 사람이 레벨 30이하는 방해만 되니 놓고 가자 했다나 봐요.”
박인환은 박상혁과 하신욱이 어렵 게 긁어모은 사람들을 가로채서 평 균 레벨 30이상의 파티로 재구성하 여 던전에 입장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남의 뒤통 수를 치는 성격은 여전했다.
강현은 김혜림의 말로써 놈의 레벨 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박인환도 레벨이 30 이상이라는 말이 되는군.’
최진철에게 버려진 이후에도 어찌 어찌 활동을 이어 가 레벨을 올린 모양이었다.
김혜림은 강현의 무뚝뚝한 얼굴을 힐끗 보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강현 씨 목표는 박인환이란 분을 찾는 거였죠?”
“그렇습니다.”
“왜 찾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왜 물어보는지 묻고 싶군요.”
“단순한 잡담이죠. 서로 목적을 명 확히 해 두는 게 행동하기 편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성격 엄청 딱딱하시네요. 원래 그 런 성격이셨어요?”
“그쪽은 보기보다 시끄러운 성격이 고요.”
“관계의 시작은 대화에서 비롯되니 까요.”
“저는 박인환을 찾고 그쪽은 업혀 가며 떨어지는 경험치를 받으면 됩 니다. 잡담이 필요한 관계는 아니 죠서로 목적도 명확히 했겠다 조용히 하라는 말이었는데 김혜림은 아랑곳않고 재잘거렸다.
“그럼 잡담이라 하지 말고 정보공 유라고 하죠. SS랭크 던전의 특징이 나 기본적인 주의사항 등을 말해 주 세요. 물론 정보료를 지불할게요.”
김혜림이 천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냈다.
다 합쳐 봐야 1실버 6브론즈밖에 안 되었다.
그마저도 홁이며 맷자국이 묻은 돈 이었다.
강현은 그제야 김혜림의 얼굴을 바 라보며 눈을 마주쳤다.
“콩고물을 얻으러 온 것치곤 필사 적이군요.”
“처음에는 저도 신욱 씨처럼 클리
어 파티가 있길 바라고 참가했죠. 근데 강현 씨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 어요. 65레벨과 함께할 수 있는 기 회는 흔치 않잖아요. 이용할 수 있 는 건 전부 이용해 봐야죠.”
저레벨로 살아가는 것에 진절머리 를 느끼고 필사적으로 레벨 업을 노 리는 거였다.
대놓고 이용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꿍꿍이나 숨기며 뒤통수치려는 것보 단 나았다.
저리 말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쉽 지 않을 텐데 말이다.
강현은 김혜림의 동전을 손에 쥐어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그 녀가 원하는 정보를 내주었다.
“던전 공략법이 배배 꼬여 있다는 것. 아무도 믿지 말 것. 두 가지만 명심하면 됩니다.”
“첫 번째는 잘 알겠어요. 근데 두 번째 말은 어폐가 있네요.”
“어 폐라면?”
김혜림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첫 번째 구역에선 강현 씨 말을 믿은 덕분에 살았거든요.”
생글생글한 미모에 화사한 미소가 더해지며 전에 없던 매력이 돋보였 다.
만일 한국에서 보았더라면 꽤 인기 를 끌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꼬실 상대를 잘못 골랐습니다.”
“말했잖아요. 뭐든 이용할 건 이용 해 봐야죠.”
“다른 호구를 찾으면 써먹으시죠.”
“글쎄요. 현재까지 1전 1패 성공률
0퍼센트라 다른 사람한테 시도하기 애매하네요.”
이후에 강현이 대답을 하지 않으면 서 대화가 끊어졌다.
이제 좀 조용히 가나 했는데 1분 도 채 되지 않아 김혜림이 말을 꺼 냈다.
“나이는 물어도 되죠?”
질리지도 않는군.
강현은 그녀의 재잘거림을 멈추고 자 짧게 대답했다.
“스물여섯.”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솔직히 서 른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제 쪽 이 훨씬 어리니까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그러지.”
“와,빠르기도 하셔라.”
“이제 그만 조용히 해. 통로에 함 정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함정이라는 말을 들먹이자 그제야 김혜림이 말을 멈췄다.
끝까지 함정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덕분에 시끄러운 잡소리는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나가자 통로 끝을 암시하는 문이 나타났다.
그 문을 열어젖히자 1-1 구역이 모 습을 드러냈다.
1-1 구역은 1-H구역과 마찬가지로 돔 형태의 넓은 공간이었다.
이미 공략이 끝났는지 서든트리가 널브러져 있었고,공간 구석에는 시 체 두 구가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공략 도중 죽은 자들이리 라.
헌데 그런 것치곤 공간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12시 방향의 문 앞에는 8명이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6명이 두 명을 둘러싸고 윽 박을 질러 댔다.
“잔말 말고 따라오란 말이야! 죽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