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화
나무 몬스터의 공격은 보기에도 무 거워 보였다.
저것에 얻어맞는다면 고작 타박상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터.
나무 몬스터의 손은 전직 대학생 하신욱에게로 떨어지고 있었다.
전직 BH기업 과장 박상혁이 하신 욱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신욱 군,피하게!”
하신욱은 허겁지겁 물러났다.
한 발 늦은 반응이었지만 나무의 공격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기세만 요란할 뿐,주먹이 떨어지 는 속도는 어지간한 일반인이면 피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하신욱이 멀리 물러서고 난 후에야 나무 몬스터의 손이 바닥에 떨어졌 다.
쿠우응!
팔 길이가 길고,손이 무거워서인 지 속도가 느림에도 불구하고 상당 한 위력이었다.
놈이 내려찍은 바닥이 움푹 파인 것만 봐도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 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위력이라 해도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강현을 제외하고,느릿한 공격 속 도에서 약점을 발견한 세 사람은 자 신감을 얻으며 공격 준비에 나섰다.
박상혁은 단검을,김혜림은 활을, 하신욱은 양날도끼를 꺼내 들었다.
“덩치만 크지,별거 아니구먼.”
“보니까 이동도 할 수 없는 것 같 은데요? 원거리에서 공격하죠.”
먼저 김혜림이 나무와 거리를 두며 화살을 겨누었다.
모두 SS랭크도 별거 아니라는 분 위기 속에서 공략을 시작하려 했다. 한편 강현만은 끝까지 현장을 관찰 했다.
나무가 나타나면서 돔 안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3시,6시,9시 방향의 가장자리에 사각형 타일이 생겨났고,12시 방향 의 벽에는 벽서가 새겨졌다.
저 글부터 읽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나머지 셋은 이 변화도 깨닫지 못했 다.
그사이,김혜림의 화살이 나무 몬 스터에게로 쇄도했다.
하지만 날아간 화살은 나무 몬스터 에게 채 닿지도 못하고 갑자기 튕겨 나왔다.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튕겨 나온 거 맞죠?”
“내 눈에도 그리 보였다네.”
“실드가 아닐까요? 어? 강현 씨가 없어요.”
하신욱이 의아함을 느끼고 나서야 세 사람은 뒤늦게 강현이 주변에 없 을 알아차렸다.
강현은 어느새 12시 방향의 벽서 를 살펴보고 있었다.
세 사람은 공간을 크게 우회하여 우르르 강현에게 다가왔다.
박상혁이 유달리 불쾌함을 드러냈 다.
“자네 혼자 여기서 뭐하는가? 다들 몬스터 공략하는 거 안 보이나? 단 체 활동에서 혼자만 따로 움직이다 니 대체 사회에서 어떻게 지낸 건 가?”
박상혁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강현 은 무덤덤하게 벽을 가리켰다.
“공략 방법입니다. 다들 읽으시죠.”
“뭐? 공략 방법?”
그제야 일행은 구경꾼들처럼 벽서
를 살펴보았다.
[베킨스 던전 길잡이(1-H구역)]
[서든트리는 물리,마법 무효화 실 드를 두르고 있다. 실드를 걷어내기 위해선 구역 내 존재하는 3개의 타 일 위에 산 자가 서야 한다. 만약 타일 위에 서 있던 자가 타일을 벗 어나면 서든트리가 입은 데미지는 모두 그에게 옮겨 간다.]
던전 길잡이란 이름의 공략법이 적 혀 있었다.
SS랭크 던전은 다른 던전들과 달 리 ‘법칙’에 어긋나는 특이점들이 있었다.
그것은 이곳 베킨스 던전도 마찬가 지일 터.
아마 여기 새겨진 공략법도 그러한 특이점 가운데 하나일 것이었다. 강현을 제외한 세 사람은 공략법을 보곤 화색을 띠었다.
“공략법이 적혀 있었네요. 이 방법 대로 공략하면 되는 걸까요?”
“SS랭크 던전은 공략법이 참신하구 먼. 난 던전이라 하면 몬스터를 때 려잡는 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말일 세.”
“음,이 내용에 따르면 세 명이 타 일에 서고 나머지 사람이 공격해야 하니까 입장 당시 최소 네 명이 필 요했던 거군요. 그럼 타일에 설 사람이랑 공격할 사람을 정하죠.”
단순히 공략법 대로 하면 된다고 여기는 세 사람이었다.
반면,강현은 지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배 꼬인 SS랭크 던전이 친절하 게 공략법을 알려 주는 데엔 다른 이유가 있겠지. 분명 밝히지 않은 장치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아.’
언뜻 보면 타일 위에 있는 게 편 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기엔 신경 쓰이는 문구가 하나 있었다.
타일에서 벗어나면 서든트리가 받 은 데미지가 전부 옮겨 간다는 것. 분명히 뭔가 더 있을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공격자가 되는 게 나았다.
강현의 뒤에서는 세 사람이 서로 레벨을 논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강한 자를 공격자로 뽑자는 게 중론이었다.
듣자 하니 박상혁은 24레벨,김혜 림은 20레벨,하신욱은 15레벨이었 다.
박상혁이 아직 레벨을 밝히지 않은 강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몇 레벨인가?”
83레벨이지만 호들갑을 원치 않았 기에 적당히 둘러댔다.
“65레벨입니다.”
강현도 자기들과 비슷한 레벨이라 여겼던지 놀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65요? 정말이세요?”
“상급 기사단에 들어가도 될 레벨 이잖아요! 그 정도 레벨인데 왜
“허허,아무렴 어떤가. 공격은 우리 65레벨 친구에게 맡기면 되겠군.”
강현의 레벨을 듣자마자 세 사람의 태도가 바뀌었다.
특히 박상혁은 ‘우리’라는 말까지 들먹이며 친한 척까지 해 댔다.
전형적인 스펙 선호자의 모습이었 다.
박상혁이 강현의 어깨에 팔을 두르 고 강하게 쥐며 말했다.
“당연히 자네를 믿긴 하네만,우리
도 경험치를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서든트리를 공략하면서 우리 도 공격할 수 있게 틈을 만들어 주 게나.”
다수가 협동하여 몬스터를 처치하 면 기여한 정도에 따라 경험치가 분 배되 었다.
몬스터에게 입힌 피해 비율이 곧 경험치 분배 비율이나 다름없었다. 박상혁은 그 경험치를 얻으려고 공 격 기회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몬스터와 직접 맞닥뜨리는 위험성 은 강현이 뒤집어쓰고,자신은 경험 치만 얻어 가겠다는 심보였다. 강현은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경험치를 분배하는 게 아까워서가 아닌,밝혀지지 않은 잠재된 위험성 때문이었다.
“그냥 타일에 가만히 서 있는 게 좋을 겁니다.”
“에이,같은 한국 사람끼리 이러지 말자고. 이국땅에서 다 같이 고생하 는 마당에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박상혁의 이야기를 듣던 김혜림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강현 씨는 SS랭크 던전 공략 경험이 있는 거 맞죠?”
강현의 냉정함과 차분함을 보고 추 측한 것일까?
강현은 잠시 정적을 끌었다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혜림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강현 씨 지시대로 따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김혜림은 아까 서든트리에게 화살 을 날린 것도 그렇고,세 사람 중 그나마 공략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박상혁은 경험치를 얻는 것 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우리도 공략을 하는 건데 경험치 는 같이 얻는 게 당연한 거 아닌 가?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자자,아저씨 화내지 말고 진정하 세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옳은 소리를
하는 걸세.”
하신욱마저도 박상혁을 말리려다가 한소리 듣게 되었다.
강현에겐 이 시간마저도 아까웠다. 이러는 사이에도 박인환은 더 아래 층으로 이동했거나 이미 죽었을 수 도 있다.
박상혁이 어떤 태도를 내비치든 간 에 서둘러 공략을 마치고 싶은 마음 뿐이 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전 제 싸움에 집중하겠습니다. 틈 은 알아서 찾으십시오.”
기여도를 챙기는 걸 막지는 않을 테니 재량껏 챙기라는 것이었다. 박상혁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다가 이내 받아들였다.
“확실하게 틈을 만들어 주면 고맙 지만 뭐 거기까지 할 실력이 안 된 다면 어쩔 수 없지. 자네는 그냥 공 격에만 집중해 주게나. 하아,한국인 이라면 정이었는데 어쩌다 이리 되 었는지 모르겠구먼.”
방금까지만 해도 강현이 고레벨인 것을 기뻐하더니,자신의 요구를 받 아 주지 않자 바로 퉁명스럽게 말하 는 박상혁이었다.
강현의 레벨을 듣고 나니 던전 공 락까지도 바라는 욕심이 커진 것이 었다.
잠시 티격태격하는 말이 오갔지만 그래도 공략을 해야 하기에 상황은 금방 정리되었다.
네 사람은 위치를 정한 후 자신의 자리로 움직였다.
먼저 박상혁이 3시 방향의 타일 위에 서자,김혜림과 하신욱은 6시 방향과 9시 방향으로 향했다.
서든트리를 피해 벽에 붙어 이동하 던 중 하신욱이 김혜림에게 귓속말 을 속삭였다.
“혜림 씨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기여도를 챙기실 겁니까?”
“전 일단 강현 씨가 말한 대로 가 만히 지켜보려고요. 경험자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죠. 신욱 씨는 요?”
“저야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으니
어쩔 수 없죠. 괜히 도끼를 잘못 던 졌다가 강현 씨에게 맞을 수도 있으 니까.”
박상혁과 달리,두 사람은 지켜보 기만 하는 걸로 얘기를 마치며 각자 6시,9시 방향의 타일 위에 섰다. 모든 타일에 사람들이 올라서자 서 든트리를 두르고 있던 실드가 걷혀 졌다.
여기까지는 12시 방향의 벽서 내 용대로였다.
강현은 빙백검에 마나 오오라를 부 여하고 서든트리에게 달려들었다. 강현을 인식한 서든트리가 손을 휘 둘렀다.
그러나 하신욱이 피한 걸 강현이
못 피할 리 없었다.
강현은 떨어지는 서든트리의 손을 피함과 동시에 안쪽으로 파고들어 나무 기둥에 빙백검을 쑤셔 박았다. 빙백검이 반쯤 틀어박히자,파괴 능력치의 효과로 마나 오오라가 진 동을 일으켰다.
뿌득!
헌데 나무 기둥을 부숴 버리는 데 까지 이르진 못하고 약간의 균열을 만드는데 그쳐 버렸다.
강현은 그사이 뻗어 오는 서든트리 의 손을 피해 기둥 반대편으로 돌아 들어갔다.
싁! 싁!
빙백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서든트
리의 표면에 흠집이 늘어났다. 이것저것 살펴보며 약점을 찾아보 는데,3시 방향의 박상혁이 자꾸만 훈수를 두었다.
“왼쪽! 왼쪽 조심하게! 아! 지금! 지금 오른쪽으로 가게나!”
제 딴에는 조언을 하는 것이었으나 도움은커녕 오히려 소음만 일으켰 다.
강현은 아예 박상혁의 목소리를 배 제한다는 생각으로 흘려 넘기며 공 격에 집중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서든트리를 베어 넘기던 강현이 공격을 피해 9시 방 향으로 움직였을 때였다.
박상혁의 시점에선 강현의 모습이
반대편으로 사라지고,서튼 트리의 몸체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순간이었 다.
서든트리 입장에선 등을 보인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
박상혁이 이 틈을 놓칠 새라 얼른 단검 세 자루를 내던졌다.
‘맞아라!’
파팍!
세 자루 중 두 자루가 서든트리의 몸체에 적중했다.
박상혁이 홉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제 어느 정도 기여도는 챙겼다고 여겼다.
한데 6시 방향에 있던 김혜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바닥! 바닥요!”
갑작스런 외침에 박상혁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 변의 길이가 30센티미터 정도 되던 타일이 어느덧 10센티미터로 줄어들어 있었다.
박상혁이 서든트리를 공격했더니 타일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타일 위에 선 자가 공격을 맞추면 일격당 10센티미터씩 줄어드는 법 칙이 있었던 것이다.
강현의 예상대로 공략법에 적혀 있 지 않은 숨은 장치였다.
박상혁의 발은 이미 반 이상 타일 바깥을 밟고 있었다.
박상혁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욕지 거리를 내뱉는 것밖에 없었다.
“이런 젠……
그마저도 여태껏 강현이 서든트리 에게 입힌 데미지가 옮겨 가면서 끝 까지 내뱉지 못했다.
박상혁의 몸에 검흔이 생겨나더니 이내 곧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박상혁이 사망하면서 타일 하나가 비고 말았다.
서든트리가 실드를 되찾으면서 빙 백검이 튕겨 나오자 강현은 얼른 사 정거리 바깥으로 물러섰다.
하는 수 없이 사정거리 바깥에서 작전을 다시 짜야만 했다.
타일을 지키던 김혜림과 하신욱은
급히 3시 방향으로 달려갔다. 김혜림이 가까이서 박상혁의 시신을 살피다가 눈을 깊게 감으며 고개 를 저었다.
“이미 늦었어요. 아무래도 데미지 를 받자마자 즉사한 것 같아요.”
반면 하신욱은 시신을 보고 헛구역 질을 해 댔다.
저레벨인 만큼 사람 시체를 본 적 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신욱이 시신에서 등을 돌린 채 힘겹게 말했다.
“우욱!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이 런 경험이 없어서……
“아뇨,그럴 수도 있죠. 신욱 씨는 피해 계세요. 시신은 제가 구석으로 치워 놓을게요. 후우,솔직히 상혁 아저씨를 신뢰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당한 걸 보니 안됐긴 하네요.”
짧게나마 애도의 뜻을 표하며 박상 혁의 시신을 구석으로 옮기는 김혜 림이 었다.
그사이 강현이 공간을 크게 우회하 여 두 사람에게로 합류했다.
막 시신을 구석에 치워 놓은 김혜 림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인원이 3명으로 줄었으니 더 이상 공략은 어렵겠네요.”
시신이 눈앞에서 안 보이자 겨우 정신을 차린 하신욱이 고개를 끄덕 였다.
“다른 사람들이 던전을 클리어하길 바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식 량은 넉넉하게 들고 왔으니 버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강현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무뚝뚝하 게 말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요.”
“으음,강현 씨는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거네요.”
“없으면 만들면 됩니다.”
“그렇다면 저도 생각해 볼게요. 적 어도 가만있는 것보단 낫겠죠.”
김혜림은 제법 단단한 구석이 있었 다.
박상혁의 시체를 치우는 것도 그렇
고,하신욱처럼 쉽게 체념하지도 않 았다. 적어도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일 줄 아는 여자였다.
물론 신뢰는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 다고 배척할 필요까진 없는 유형이 었다.
레벨이 낮은 게 흠이긴 하다만 처 음부터 기대한 바도 없기에 강현은 그녀에게 관심을 거두고 공략법을 고민해 보았다.
단서는 의외로 김혜림의 무심한 중 얼거림 속에서 얻을 수 있었다.
“적어도 타일에 산 자 3명은 올라 가야 한다는 건데……
김혜림의 말을 들었을 때,강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