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화
올름보르까지 가는 데에는 보름이 란 시간이 걸렸다.
한데 무슨 영문인지 올롬보르까지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서 드문 드문 용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용 병들과 마주치는 간극이 점점 잦아 졌다.
‘올롬보르에 용병들이 모여들고 있 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겼나 본 대.’
예상대로 올롬보르에 다다랐을 땐 많은 머릿수의 용병들이 모여 있었 다.
삼삼오오 조직을 이룬 용병 무리 사이를 걷다 보니 여러 이야기가 들 려왔다.
“이번 웨이브는 누가 공략했던 거 야?”
“빌토르 백작가와 슈타인 백작가 기사단이라더군.”
“뭐? 빌토르 기사단이 참가했었어? 확실히 SS랭크 웨이브는 다른가 보 군. 그 빌트로 기사단이 실패하다 니.”
웨이브는 공간이 일그러지며 웨이 브 보석이란 것이 나타는 것을 말한 다.
이때,웨이브 보석 안에 돌입하여 제한시간 내에 정해진 조건을 수행하고 보스를 처리하면 던전의 생성 을 막을 수 있었다.
웨이브의 수준은 던전처럼 C랭크 부터 SS랭크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는 했다.
C랭크 웨이브 공략에 실패하면 C 랭크 던전이,SS랭크 웨이브의 공략 에 실패하면 SS랭크 던전이 생겨나 는 형태였다.
아무래도 올롬보르 외곽에서 그
SS랭크 웨이브가 발생한 모양이었 다.
‘그리고 근처의 상급 기사단이 웨 이브 공략에 나섰지만 실패했군. 그 때문에 올롬보르 외곽 지역이 소멸 하면서 SS랭크 던전이 생성되었고.’
강현은 두 백작가의 이름이 낯익었 다.
분명 여기까지 오면서 간간이 보았 던 제국 귀족서 개정판에서 그 가문 들의 이름을 보았었다.
‘빌토르 기사단이라……. 분명 최 소 레벨 60이상의 이세계인만 받아 들이는 곳이었지.’
강현이 소환된 이곳,빌로스 제국 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수준 높은 기사단이었다.
그토록 강한 기사단이 웨이브 공략 에 실패했다 하니,용병들이 놀라워 하며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한 반응 이었다.
한편 강현은 이미 SS랭크 던전을
공략하는데 성공했던 경험이 있었 다.
때문에 공략 실패의 원인이 대강 짐작되었다.
인간의 본능을 시험하는 것이 SS 랭크의 특징이기에 원인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공적 욕심 때문에 내분이라도 일 어난 모양이군.’
그렇다면 이곳에 모인 용병들은 SS랭크 던전 공략을 위해 모여들었 을 터.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광경 이었다.
SS랭크 던전은 높은 위험성 때문 에 용병들이 공략을 꺼리고는 했다.
한데 이 머릿수는 대체 뭐란 말인 가?
게다가 SS랭크를 공략할 만큼 수 준이 높아 보이지도 않았다.
‘콩고물이라도 얻어 보려고 모인 건가.’
크라이머 던전의 경우는 도전자가 들어가면 문이 닫히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생긴 던전은 입장에 제한이 없는 듯했다.
올롬보르를 다스리는 영주 입장에 선 공략대가 많을수록 이득이고,어 중이떠중이들은 대박을 노릴 수 있 으니 모여든 것으로 보였다.
어차피 강현의 목적은 박인환이었
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박인환을 찾아내 는 것이었다. 올롬보르에 있다는 사 실은 알지만 정확히 어디에 사는지 는 알 수 없었다.
‘올롬보르에 있는 정보상이라도 찾 아가야 하나.’
박인환을 찾을 방법을 생각하는데 익숙한 글자가 적힌 입간판이 눈길 을 끌었다.
대륙공용어가 아닌,한글이 적힌 입간판이 었다.
[함께 던전에 입장하실 한국 분 구 합니다.]
입간판 뒤에는 세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20대 남녀 한 쌍과 40대의 중년 사내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생김새는 전형적인 한국인들 같았 다.
어째서인지 이곳에 모인 용병들은 새로 조직을 짜거나 임시적 동맹 등 을 짜서 움직이고 있었는데,저들도 그와 비슷한 인원 모집 같았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난 그저 박인환만 찾아내면 될 뿐.’
강현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같은 한국인인 만큼 박인환이 저들 과 접점이 있을 수도 있었고,그게 아니라 해도 단서를 얻을 수도 있었다.
입간판 뒤의 세 사람에게 말을 걸 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한국어로 말을 걸자 세 사람은 눈 에 띄게 기뻐했다.
그중 중년 사내가 유독 앞으로 나 서며 말했다.
“어서 오게. 던전에 들어가려는 게 지?”
급한 성격이군. 다짜고짜 합류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다니.
하지만 강현은 표정을 차분하게 관 리 했다.
불편한 인상을 드러내면 정보를 얻 는데 득 볼 게 없었다.
“아직 생각 중입니다. 혹시 박인환 이란 사람 아십니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바로 본 론을 꺼냈다.
중년 사내는 호의를 보이면 강현에 게 긍정적인 대답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는지 잠시 생각하는 시늉 을 보였다.
“글쎄,이름은 잘 모르겠네만…… 아까 전에 한국인을 만나기는 했다 네. 혹시 자네 또래인가?”
혹시나 해서 말을 걸었는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도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한 차례 더 신중했다.
“그렇습니다. 혹시 외모가 어떤 사
람이 었습니까?”
대답은 중년인의 뒤편에서 들려왔 다.
강현과 비슷한 또래의 남녀 중 남 자가 말했다.
“피부가 좀 까무잡잡하고,덩치도 좀 있는 체격 아닙니까?”
“키는 어땠습니까?”
“으음,180 정도일까요?”
확실하군. 박인환이다.
대학 축구팀에서 대표로 활동할 만
큼,박인환은 체격이 좋았다. 태양빛 아래서 연습량이 많은 만큼 피부 또 한 까무잡잡했다.
“혹시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한데 이번 질문에는 다시 중년인이
끼어들었다.
“그 친구라면 이미 다른 사람들과 파티를 맺고 오전에 던전으로 들어 갔다네.”
강현이 중년 사내를 바라보았다.
정말 박인환의 행적을 목격한 건 지,아니면 던전을 함께 가기 위한 거짓말인지…….
여러모로 의심이 가는 중년 사내였 다.
그때 20대 남자가 중년인의 말에 덧붙였다.
“맞습니다. 저랑 아저씨는 오전부 터 인원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그 사 람이 왔었어요.”
마침내 놈의 행방을 찾아냈다.
‘다시 던전으로 들어가야겠군.'
강현은 주저하지 않고 판단을 내렸 다.
박인환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 리는 수도 있었지만,던전 안에서 죽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내 손으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강현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하고 몸을 돌렸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강현이 저희들 파티에 참가할 거라 여겨 호의적으로 대하던 중년 사내 가 눈썹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잠깐 기다리게. 같이 던전에 들어 가려고 한 게 아니었나?”
“단지 찾는 사람이 있었을 뿐입니 다.”
“아니,그게 아니라 그 사람을 찾 으러 혼자 던전에 들어갈 셈이냐 말 이야.”
“그럴 생각입니다만.”
중년 사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아무것도 모르고 온 모양이 군. 던전으로 들어가려면 최소 사인 조가 되어야 하네. 진입 당시 인원 이 네 명이 넘지 않으면 아예 들여 보내 주지 않는다네.”
그제야 이들을 비롯한 용병들이 어 째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번 던전에는 ‘최소 인원 구성’이
라는 입장 조건이 있던 것이다.
중년 사내가 인파 너머를 가리켰 다.
모든 것이 소멸된 듯 황량한 고원 처럼 변한 땅에,수십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들로 이어지는 길을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아직 밖으로 나온 사람이 없는 걸 로 봐선 들어가면 못 나오는 것 같 긴 한데,어차피 던전 보스는 하나 이지 않은가? 누구든지 던전 보스를 클리어하기만 하면 공략에 참가한 전원에게 상금을 준다니까 도전해 볼 만하지.”
어째서 이렇게 어중이떠중이 할 것
없이 몰려들었나 했더니만,던전 공 략 보상이 파격적이다시피 했다.
입장 인원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묻어가기 쉽다는 것.
게다가 운이 좋으면 던전 내에서 A에서 S급 스킬북을 얻어 인생 역 전도 노릴 수 있는 것도 한몫했다. 어쨌든 입구가 여러 개라는 점과 4명 이상이 모여야만 입장할 수 있 다는 조건은 이곳 SS랭크 던전의 특징인 것 같았다.
여기 있는 3명도 나머지 머릿수인 1명을 채우기 위해 인원을 모집 중 이었던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굳이 한국인끼리 모여 서 들어가려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결합심으로 안정감을 꾀해 보겠다 는 얄팍한 생각이로군.’
이왕 들어갈 거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끼리 같이하고 싶다 는 안일한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리 라.
아무리 봐도 이곳에 모인 3명은 강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강현 입장에선 파티원이 누구든 던 전 입장 조건만 채우면 그만이었다.
던전 공략 따윈 부차적인 것에 불 과하다. 1차 목표는 오로지 박인환 을 찾는 것이었다.
“그럼 저까지 포함해서 4명이 들어
가면 되겠군요.”
젊은 남자가 필요했던 건지 3명 모두 화색을 띠었다.
중년 사내는 리더라도 된 양 목소 리를 높이며 자기소개를 했다.
“역시 한국 사람은 정이지. 다들 뜻하지 않게 이곳까지 왔는데 한국 사람끼리 뭉쳐야 하지 않겠는가. 이 리 모인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합세. 난 박상혁이라고 하네. 나이는 마흔넷이고 고향은 대전이라네. 한 국에선 BH기업 과장이었지.”
박상혁을 따라 젊은 남녀도 자신을 소개했다.
“전 하신욱이고 나이는 스물여섯입 니다. 한국에선 K대 재학생이었고 고향은 서울입니다.”
“어,저는 김혜림이고요. 나이는 스 물셋이고 한국에선 여러 일을 하면 서 지냈었어요. 고향은 인천이고요. 여기서 쓰는 무기는 활이고 적중률 은 6, 7할 정도 나오는 편이에요.”
강현은 한심하단 생각부터 들었다. 이곳에서 한국의 신분이 뭐였는지, 고향이 어디였는지 따위가 무에 쓸 모가 있단 말인가.
정작 서로 알아야 할 레벨이나 능 력은 아예 언급조차 없다.
힘을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직업 이나 고향이 더 중요하다 여기기 때 문이었다.
그나마 김혜림만이 단편적이나마
무기와 적중률을 말한 게 고작이었 다.
허나 강현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 다.
입장 조건만 채우면 그만인 사람들 이다.
딱히 기대할 것도,바랄 것도 없었 다.
대충 구색만 맞춰 주었다.
“최강현입니다.”
짤막한 소개에 나머지 세 사람이 강현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중년 남자,박상혁이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그게 끝인가?”
“무슨 문제라도?”
“나야 겉보기에도 나이 차가 있어 서 상관없지만 이쪽 두 사람하곤 호 칭 문제를 정리해야지 않겠는가.”
말투에서 자신이 예우 받는 건 당 연하다고 생각하는 심보가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따로 놀지 말고 분위기 맞 추라는 무언의 압박이 진하게 풍겨 져 나왔다.
강현에겐 오지랖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얼추 비슷한 나이이니 서로 존칭 쓰면 될 일입니다. 소개 끝났으면 들어가죠.”
강현이 휙 몸을 돌리곤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길로 향했다.
남은 세 사람은 저희들끼리 다시 남아 있을 수도 없는지라 강현을 따 라 움직였다.
이동하는 동안 박상혁이 혼잣말로 계속 구시렁거렸다.
“거참,젊은 친구가 저리 딱딱해서 야 제대로 사회생활 할 수나 있겠 나. 젊을수록 좀 더 싹싹한 면이 있 어야지 원.”
강현은 한 귀로 홀려 넘겼다.
공략은 친목을 도모하는 장이 아니 다.
공략과 무관한 말에 귀 기울일 필 요는 없었다.
잠시 후 던전 앞에 설치된 검문소 에 다다랐다.
사인조를 맞추었으므로 병사들은 별다른 제재 없이 일행을 들여보내 주었다.
벌판에 들어선 강현은 곳곳에 뚫린 구멍을 살펴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구멍이 아니라 흑색 일색의 원형 문이었다.
원형 문에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어 4명이 올라타면 안쪽으로 연결되는 구조인 것 같았다.
마법진이 없는 문은 이미 다른 인 원들이 입장한 곳이리라.
마법진이 남아 있는 원형 문중 한곳을 골라 을라섰다.
강현을 포함한 넷이 올라서자 하얀 빛이 일어나며 일행을 감쌌다.
파아아아앗!
주변이 온통 하얀빛으로 물드나 싶 더니 이내 곧 원상 복구되었다. 시야가 다시 확보되었을 때 강현은 자신이 돔 형태의 공간에 서 있음을 자각했다.
외벽과 천장,바닥까지 모두 동굴 구조였으며 발광이끼가 푸르스름하 게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그저 텅 빈 공간에 불과했다.
전반적으로 크라이머 던전과 매우 흡사한 환경이었다.
뒤이어 시야가 복구된 나머지 사람 들도 공간을 둘러보면서 저희들끼리 떠들어 댔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우리 던전 안에 들어온 거 맞죠?”
“SS랭크 던전은 원래 이런 거려나. 전 c급 던전만 다녀 봐서 뭐가 뭔 지 잘……
다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주변 만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뜬금없이 공간 중앙에서 싹이 트나 싶더니 순식간에 3미터짜리 나무로 자라났다.
그러더니 나무 기둥이 벌어지면서 사람 얼굴 형태가 나타났고,굵은 가지 몇 개가 엮여서 팔이 되고 손 이 되었다.
사람처럼 번쩍 눈을 뜬 나무 몬스 터가 강현 일행을 발견했다.
침입자의 존재를 용서할 수 없다는 양 부릅뜬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나무 몬스터가 감출 것 없이 공격 의사를 드러내며 육중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책상만 한 크기의 주먹을 떨어트렸다.
후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