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화
변경된 능력치를 확인한 강현은 각 성의 서가 가진 효과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능력치 자체가 바뀌었다.’ 테라 시스템을 적용 받는 이세계인 들의 능력치 항목은 모두 동일했다. 공격,실드,회피,마나,회복 스텟 은 이세계인이라면 모두가 가지게 되는 스텟이었다.
모두가 같은 스텟을 쓰며 보너스 포인트를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따라 싸움 방식이 달라졌다.
한데 각성의 서를 습득하고 난 후 강현의 회피 항목은 왜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즉,각성의 서는 성질 자체를 각성 시켜 더 높은 단계의 능력치를 일깨 우는 스킬이었다.
'회피 스렛이 왜곡 효과로 변한 건 가? 아니지. 원래 회피였던 능력치 야. 회피의 기능을 기본으로 두고 왜곡의 특성이 더해진 건가?’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각성한 스텟에 대한 정보가 곧바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왜곡(회피 1차 각성 스뱃)]
[왜곡 스렛은 상대의 공격 궤도를 흐트러뜨리는 효과다. 기존 회피 스 렛의 효과는 그대로 유지된다.]
과연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기존 회피 스렛의 효과는 그대로 유지하고 왜곡이 추가된 것이었다. 아마 왜곡을 올리면 회피를 올릴 때처럼 계속 위기감지능력과 순발 력,동체시력의 효과가 상승할 거다. 단순히 공격을 왜곡시켜 주는 게 전부라면 ‘변화’라고 하지,‘각성’이 라 하진 않았을 거다.
아마도 상대의 공격이 날아들 때 그 궤도를 흐트러뜨리는 방식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 흐트러짐의 정도를 시험해 보려 면 다시 전갈과 대치해야 했다.
한데 스킬북을 습득하자마자 벽 너
머의 2층 입구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까드득! 까드득!
벽 틈 사이로 살펴보니 거대 전갈 이 계단 통로에 집게발을 넣고 동굴 벽을 긁어 대고 있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돔에서 우두 커니 서 있던 놈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안전지대가 해제된 건가?
강현은 각성의 서에 적혔던 문구를 되새겼다.
‘그러고 보니 스킬북 주변에 레벨 50이하만 들어설 수 있는 결계가 있다 했었나. 애초에 안전지대가 아 니라 각성의 서가 내뿜던 결계였던 거군.’
알고 보니 각성의 서를 중심으로 펼쳐진 결계 내에는 레벨 50이하만 들어설 수 있는 것이었다.
적용되는 건 사람뿐만 아니라 몬스 터도 포함되니 2층의 거대 전갈은 물론,1층의 데릭로우스도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자신이 각성의 서를 습득함 으로서 그 효과가 사라져 버렸다. 그로 인해 거대 전갈이 이처럼 좁 은 통로를 비집고 나오려는 것이었 다.
까드득!
계속해서 들려오던 집게발 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추었다.
강현은 벌어진 벽 틈으로 다시 바 깔을 살폈다.
거대 전갈은 계단 통로에 들어서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다시 돔으 로 돌아가고 있었다.
‘결계는 없어졌어도 계단 통로는 여전히 안전하다는 거군. 그래도 1 층에서처럼 안전지대 안에서 공격하 는 건 무리겠어.’
거대 전갈을 유인해 계단에 집게발 을 들이게 한 후 공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엔 자신도 집게발만 공격할 수 있었다.
하나,현재 가진 수단으론 집게발 을 뚫을 수 없었다.
더욱이 일이 잘못되면 빙백검이나 장창이 부러지거나 집게발에 잡혀 빼앗겨 버릴 수도 있었다.
계단 통로는 오로지 휴식처로만 이 용해야만 했다.
거대 전갈이 완전히 물러난 걸 확 인한 강현은 개구멍을 통해 계단 통 로로 빠져나왔다.
거대 전갈이 달려와 또다시 집게발 을 넣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놈은 경계태세만 유지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면 덤비겠다 이건가.’
강현은 빙백검을 쥐고 안으로 들어 섰다.
각성한 왜곡 스렛의 효과를 확인해
볼 참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 전갈이 다시 꼬리를 치켜세우고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
8개의 붉은 눈이 번들거리며 무언 의 압박을 주었다.
어디로 뛰든 틈만 보이면 바로 덤 벼들 것 같았다.
좋아,해 보자.
정면을 향해 한 발자국 내민 순간.
거대 전갈이 뒷다리를 들며 꼬리를 쑤욱 뻗었다.
쉬릭!
강현은 앞으로 내달리며 날아드는 독침을 피했다.
거대 전갈은 독침을 반쯤 되돌리며
연이어 내질러 댔다.
독침이 거대한 펜싱칼마냥 날카롭 게 날아들었다.
강현은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독침 을 피해 냈다. 그러면서 독침의 궤 도를 짧게나마 관찰해 보았다. 독침은 분명 직선을 그렸건만 강현 에게 적중하기 직전 틀어지며 바깥 으로 비껴 나갔다.
‘예상대로 상대의 공격을 홀려버리 는 효과다.’
하지만 아주 극적인 효과는 아니었 다. 미세한 차이로 명중률을 흐트러 트리는 정도랄까.
하지만 분명 굉장한 능력임에는 틀 림 없다.
왜곡 능력치를 잘만 이용한다면 십 중팔구의 치명타를 피할 수 있었다. 또한 약점을 노출하는 척해서 상대 의 노림수를 유도할 때도 그 안정성 이 한층 확보되었다.
물론 저 거대 전갈을 상대하는데도 그 효용성은 분명했다.
각성의 서를 습득하기 전에는 공격 을 피하는데 주의하느라 연속적인 공격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왜곡 효과를 이용하면 한층 더 움 직임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연속 공격이 한결 손쉬웠다.
싁! 싁!
계속되는 독침 공격이 먹히지 않자
거대 전갈은 드디어 집게발도 쓰기 시작했다.
덕분에 집게발 너머에 도사리고 있 던 8개의 눈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현은 날아드는 집게발과 독침을 피하며 빙백검을 깊숙하게 내질렀 다.
빙백검의 날이 8개의 눈 중 하나 를 찌르면서 눈을 부수었다.
뒤이어 거대 전갈이 양쪽에서 집게 발을 들이댔다.
허나 그마저도 강현이 한쪽 집게발 에 달려들어 궤도를 약간 틀어 버리 면서 두 집게발 사이에 빠져나갈 틈 을 만들었다.
강현은 만들어 낸 틈으로 몸을 비
집어 넣으며 재차 빙백검을 찔렀다. 과드득!
이로써 총 2개의 눈을 부수었다.
이대로 피하고 부수길 반복하면 8 개 모두 부술 수 있을 터였다.
같은 방식을 반복하다 보니 짧은 순간에도 벌써 5개나 눈알을 부수는 데 성공했다.
왜곡 효과로 불필요한 동작이 없어 진 덕분에 가능한 성과였다.
이제 남은 눈알은 3개뿐!
강현이 한층 기세를 높이고 달려들 려는 찰나였다.
그의 눈에 처음 파괴했던 눈알이 목격되었다.
순간,강현은 재빨리 거대 전갈의
사정거리에서 몸을 빼냈다.
어느새 처음 파괴했던 눈알이 완벽 하게 복구되어 있었다.
두 번째,세 번째로 파괴한 눈도 마찬가지로 거의 회복이 완료되어 가는 상태였다.
‘벌써 1분이 지났다고?’
설마 회복 속도가 빨라졌나?
아니,그건 절대 아니다. 그랬다면 두 번째,세 번째 눈알도 이미 복구 되어 있어야 할 테다.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이는 1분 안에 8개의 눈알을 모두 파괴하기에는 아직 공격 시간이 길 다는 걸 의미했다.
정리하면 여전히 효율이 떨어진다
는 소리다.
회피가 왜곡으로 각성함으로써 분 명 동작에 군더더기는 없어졌다. 하지만 집게발을 피하면서 공격을 해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 정도의 효율을 높인 것만으로는 1,2개 부술 수 있던 것을 4, 5개로 늘린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피한 다음 공격해선 안 된다. 피함 과 동시에 공격이 이루어져야 했다. 여기서 효율은 곧 검술 실력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검술 훈련을 받 은 적이 없으니 높은 효율성의 움직 임이 가능할 리 없었다.
강현은 다시 계단 통로로 돌아섰
다.
그러곤 집게발이 닿지 않도록 통로 중앙 부근에서 생고기를 뜯으며 공 략법을 떠올려 보았다.
‘빙백검의 냉기를 이용해 볼까?’
데릭로우스의 뱀 머리를 처치했던 것처럼 얼려 버린다면 재생 속도를 늦출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에는 마나 스렛이 너무 낮았 다.
냉기를 이용할 수는 있으되,그 동 결 효과와 유지 시간은 부족할 것이 었다.
‘어쩌면 놈에게도 공격 패턴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다.’
데릭로우스에겐 움직임의 정형화된 양식 같은 게 있었다.
정면으로 대치할 때는 부리를 사용 했고,등을 보였을 때는 앞발을 사 용했다.
그 패턴이나 습성 따위를 알아낸다 면 효율성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제일 높은 가능성을 따져 보자. 적어도 힘이 모자라서 공략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니까. 놈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나만의 동작을 만들어 가 면 돼.’
거대 전갈을 상대하며 실전으로 검 술 실력을 쌓는다.
고민 끝에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어차피 앞으로 올라갈 층에서도, 그리고 크라이머 던전을 나가서도 검술은 필수적 요소였다.
대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이었다.
그동안 필요한 물과 식량은 1층의 연못과 데릭로우스의 고기,그리고 스킬북이 있던 방의 버섯으로 충당 하면 될 듯했다.
‘전갈을 처리하면 마나 스렛을 올 려 둬야겠군. 빙백검의 냉기로 오랫 동안 고기를 얼려 둬야 하니. 근데 전갈도 해체하면 살이 나오려나?’ 테라 시스템 적용자는 가이아 대륙 사람들과 달리 마나 호흡을 하지 못 했다.
현지인들은 마나 호흡으로 최대 마
나량을 늘리고,마나 회복을 할 수 있었다.
허나 테라 시스템 적용자인 이세계 인은 마나 호홉 자체가 불가능했다. 때문에 마나 스텟을 올려서 최대 마나량을 올리거나,회복 스텟을 올 려 마나 회복량을 올려야만 했다. 당장은 마나량이 너무 적기 때문에 마나 스텟을 올리는 게 급선무였다. 생각을 갈무리한 강현은 노곤함이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자 둬야겠군.’
강현은 돌계단에 누워 휴식 겸 명 상에 들어갔다.
자기 전까지 거대 전갈과의 전투를 되짚어 볼 생각이었다.
놈의 동선을 분석하고,자신의 동 선을 최적화시키는 시물레이션이었 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 강현은 지 그시 눈을 감았다.
*
이후 거대 전갈과의 전투,휴식, 반성,다시 전투하는 방식을 반복했 다.
안타깝게도 거대 전갈의 움직임에 는 패턴이 없었다.
놈을 쓰러트리려면 오로지 자신의 움직임을 갈고닦는 수밖에 없었다.
던전 안은 태양빛이 들지 않았기에
시간을 알지 못했다.
그저 피곤하면 쉬고,회복하면 전 투하는 식의 생활이 계속됐다.
시간의 흐름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수련을 빙자한 목숨을 건 싸움이 수 십 차례 반복되었다.
사람 하나가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 을 환경이었으나 강현에겐 오히려 득이 되었다.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마음속엔 오직 복수를 하겠다는 일 념 하나만을 남긴 채로 매일같이 수 련에 몰두하였다.
수련을 반복할수록 제법 요령이 생 기는지 한 번의 전투로 부술 수 있는 눈의 개수도 점점 많아졌다.
5개가 6개로,6개가 7개로.
그리고…….
과드득!
강현의 검 놀림에 또 한 개의 눈 알이 부서졌다.
이로써 8개의 눈알 중 7개를 부서 트렸다.
마침내 하나의 눈알만을 남겨 두게 된 것이다.
‘슬슬 40초 째인가. 20초면 충분 해.’
지금껏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시도를 해 보았다.
수만 번의 찌르기와 베기,속공, 지공,허수 등을 몇 번이나 조합해 보고 시도했었다.
하루에 몇 번이나 거대 전갈에게 덤벼 왔던 몸짓들은 피와 살이 되어 이제는 검술이라는 형태로 완성되어 있었다.
지금의 강현은 실전검술의 달인이 라 해도 손색이 없을 실력이었다. 거대 전갈도 하나 남은 눈알에 초 조해졌는지 양쪽 집게발로 머리를 감싸고 독침만으로 공격해 왔다. 하나,이 또한 예상된 반응이었다.
‘눈의 개수가 1개만 남으니까 더욱 더 수비적으로 나서는군.’
집게발을 수비적으로 활용한다면 거대 전갈에게 남은 공격 수단은 독 침뿐이다.
그렇다면 독침의 움직임만 주시하 면 될 일이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독침을 흘려 내곤 대놓고 집게발 위로 뛰어올랐 다.
강현이 올라서자 거대 전갈이 집게 발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무게중심 을 무너트려 그를 털어 내려는 수작 이었다.
그 순간,강현이 눈을 빛냈다.
‘됐어! 노림수가 통했다!’
놈의 집게발이 크게 움직일수록 감 춰 두었던 눈알이 노출되었다.
단순히 무턱대고 위험을 무시한 채 뛰어오른 게 아니었다.
거대 전갈의 큰 동작을 유도하여
눈알이 노출되도록 틈을 만든 것이 었다.
그리고 지금의 강현은 그 빈틈을 충분히 노릴 만한 실력이 있었다. 강현이 서슴없이 하나 남은 눈알에 빙백검을 쑤셔 박았다.
과직!
마침내 8개째 눈알까지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거대 전갈이 파르르 떨더니 이내 늘어지면서 몸체에서 옅은 빛을 뿜 었다.
강현은 레벨 업을 확인하기에 앞서 전리품부터 확인해 보았다.
거대 전갈의 사체에 손을 대고 추 출을 하자 스킬북 하나와 천주머니 하나,고구마 같은 열매 하나가 나 왔다.
제일 먼저 천주머니에 감정서를 붙 여 보았다.
[아공간 주머니]
등급 : A
타입 : 보관함
특징 : 안쪽에 아공간이 존재하는 주머니. 종류,개수,무게에 관계없 이 무한정 물건을 넣을 수 있다. 넣 을 땐 주머니 입구에 물건을 대고 빨려 들어가는 이미지를 그리고,빼 낼 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원하는 물건이 나오는 이미지를 그리면 된 다. 아공간 주머니 안에선 그 어떤 물건도 상태가 변하지 않는다. 단, 살아 있는 생명체는 넣을 수 없다.
등급은 A에 불과하지만 효율은 S 급에 못지않다는 아공간 주머니였 다.
제국에서 손꼽히는 고위직이나 들 고 다닐 수 있다는 희귀품이기도 했 다.
주머니의 특징을 보자 바로 생각나 는 건 식량이었다.
어떤 물건도 상태가 변하지 않는다 니,굳이 식량을 얼릴 필요 없이 보 존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던전을 탐색하 거나,여행길에 오를 때 필요한 물품 등을 손쉽게 보관할 수 있을 터 였다.
강현은 다음으로 스킬북을 확인했 다.
스킬북의 능력은 방어형 지속스킬 이었다.
[세이덴의 독주머니(등급 : S)]
[세이덴은 만독에 면역인 몬스터이 다. 그 특성을 따라 이 스킬북을 습 득한 자는 만독에 면역을 띤다.]
‘전갈 이름이 세이덴이었나……. 만독 면역이라면 모든 독에 면역이 라는 건가.’
대륙에 손꼽히는 강자라도 던전에
서 주의해야 하는 게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독이었다. 얼마 전엔 제국에서 최고로 손꼽히 는 유명한 기사도 웨이브 안에서 중 독되어 죽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이 세이덴의 독주머니 는 상당한 이점의 스킬이었다. 강현은 마지막 전리품도 확인하기 위해 고구마 형태의 영약을 쥐었다. 한데 그때였다.
죽은 세이덴의 껍질이 갑자기 녹아 내리면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났다. 독 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