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화
강현은 데릭로우스에 대한 정보를 읽어 내려갔다.
[닭의 머리가 앞에 달려 있어서 착 각하기 쉽지만 실은 꼬리처럼 보이 는 뱀의 머리가 본체일세. 실제로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사냥했을 때 뱀의 머리를 잘랐더니 데릭로우스가 죽었다네. 놈이 잘 때도 닭의 머리 는 계속 경계를 서고 있으니 섣불리 잘 때를 노리는 방법은 쓰지 말게 나. 그 외의 주의점이라면 놈의 주 력인 앞발 공격일세. 철제 방패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는 위력이니 되도록 맞지 않는 편을 추천하네.]
그렇게 강현은 모든 기록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요약하자면 꼬리 부분의 뱀을 죽이 라는 게 핵심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꼼수는 없었다.
하긴 쉽게 당할 수준이라면 이 마 지막 생존자 역시 놈을 물리치고 살 아남았겠지.
그렇다고 이 단서들이 무의미하지 만은 않았다.
적어도 아무것도 모르고 상대하던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강현은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든 싸울 방법을 구해 내야 했다.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응용할지 깊 이 생각하는 게 강현의 장점이었다. 예전의 친구들,그러니까 자신을 팔아먹은 배신자들은 이런 모습을 단점으로 평가하고는 했었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 그런 식으 로 일일이 생각하고 행동하면 느려 서 안 된다고.”
맞는 말이다.
자기 레벨에 맞은 쉬운 의뢰를 수 행할 때 지나친 고민은 시간낭비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공격 한 방,한 방이 죽음과 직결 된다.
누가 뭐라 하건 신중하고 또 신중 해야 했다.
강현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좋든 싫든 단기전밖엔 방법이 없 군.”
안전지대에는 물도 음식도 없다.
그나마 있는 거라곤 발광이끼뿐이 다.
발광이끼는 영양가가 하나도 없어 식량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치료 효과가 있지만 그 건 상처가 생겼을 때나 쓰일 터다. 물 또한 1층 중앙에 있는 연못이 전부다.
하지만 연못에 다가가면 데릭로우 스가 덤벼 을 테니 목 축이려다 목 날아가는 수가 있다.
그러니 단기전이다. 기력이 떨어지 기 전에 승부를 내야 했다.
강현은 나름대로 작전을 세웠다.
“안전지대를 이용해서 싸워야만 해.”
데릭로우스를 바로 앞까지 유인한 다음 안전지대 안에서 공격하는 방 법을 취해 볼까 싶었다.
힘,속도,지구력 모두 상대가 월 등히 높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해야 했다.
강현은 검을 쥐고 안전지대 바깥으 로 한 발을 내딛었다.
과연 저만치 떨어져 있던 데릭로우 스가 달려왔다.
무거운 네 다리로 바닥을 쿵쿵거리 며 달려오는데,그것만으로도 긴장 감이 조여 왔다.
금방 코앞까지 도달한 데릭로우스 는 힘껏 닭의 부리를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삐져나온 자신의 발을 노 리고 수직으로 부리를 내리찍었다. 강현은 재빨리 안전지대 안으로 발 을 거두었다.
직후 데릭로우스의 부리가 고스란 히 땅을 강타했다.
카앙!
놈의 부리가 강타한 바닥이 부서지 며 돌조각과 홁가루가 사방으로 튀 었다.
돌조각과 흙가루는 안전지대와 무 관한 탓에 그대로 강현에게 튀었다. 황급히 두 팔을 교차시켜 얼굴로 튀는 파편들을 막았다.
퍼버벅!
돌조각에 맞은 팔이 욱신거렸다.
팔에 번지는 고통에 눈썹이 저절로 팔자를 그렸다.
“윽,공격 여파도 고려해야겠어.”
자그마한 요소를 빠뜨렸을 뿐인데 도 피해를 입고 말았다.
좀 더 깊이,좀 더 많이,과하다 싶을 정도로 계산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잠시 후 욱신거리는 팔을 내리자 깊이 파인 땅바닥이 보였다.
마치 대형 곡괭이로 찍어 부순 듯 한 흔적이었다.
저 부리에 찍혔다면 뼈가 박살났을 뿐만 아니라,다리 자체가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를 괴력이었다. 오싹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반면 데릭로우스는 또 기회를 놓친 것이 열 받는지 성난 울음소리를 질 러 댔다.
“피에엑!”
통로 가득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는 가운데 데릭로우스가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꼬리 부분의 뱀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강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안전 지대 바깥으로 검을 휘둘렀다. 허리를 한껏 비틀어 휘두른 검이 기다란 반원을 그렸다.
검은 다행이 안전지대 바깥까지 닿 았고 정확하게 뱀의 머리로 떨어졌 다.
한데…….
쨍강!
데릭로우스의 뱀 머리에 부딪친 검 이 반 토막 나 버렸다.
그나마 약점이라던 뱀 머리도 상당 한 강도였던 것이다.
싁,쉬식.
뱀이 허탈해 하는 강현을 비웃듯
혀를 날름거리며 멀어져 갔다. 강현은 반 토막 난 검을 내려다보 았다.
“강도에서 밀릴 줄이야…… 원래대로라면 검의 강도가 낮다 해 도 부러질 일은 없었다.
검이 부러지려면 그만큼 내리치는 힘 또한 강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 그만한 힘 은 없었다.
이유라면 워낙에 조잡한 검이었다 는 것,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제대 로 관리를 못했다는 것.
즉 수명이 다한 검이었던 거다. 어찌됐든 유일한 무기마저 박살나 버리고 말았다.
이제 무엇으로 놈을 쓰러트린단 말 인가?
혼란과 좌절이 올 만도 하건만 강 현은 반 토막 난 검을 바닥에 내려 놓고 심호흡했다.
‘평소에 준비가 소홀했던 내 잘못 이야. 장비를 항상 정비해 둔다는 기본적인 것도 못했으니 이런 꼴을 당해도 싸지.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야. 안전지대 안에서 놈을 공격 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안 것만으로 도 큰 수확이다.’ 제대로 된 무기만 얻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공략을 재개할 수 있다. 강현은 무기로 쓸 만한 게 있을지 싶어 안전지대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분명 이전 공략대가 쓰던 무기가 있을 텐데…….
‘잠깐,내가 이 안에서 무기나 유 골 같은 걸 본 적이 있던가?’
그러나 이전 공략대원들이 쓰던 무 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유골이야 데릭로우스가 모두 소화 시켜서 없다손 쳐도 무기나 장비류 가 없는 건 이상했다.
대부분의 무기가 강현의 것처럼 부 서졌다고 가정해도 한두 개 정도는 남아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던 순간 머 릿속에 연못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연못이 얼어 있었어.
던전 안이 한겨울처럼 추운 것도 아 닌데 어째서지?’
던전 안은 춥기는커녕 오히려 후덥 지근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못은 자신이 뛰어다녀도 될 만큼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왜지? 어째서 얼어 있을까?
적어도 데릭로우스의 능력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진작 그 능력으로 자신을 잡아먹었을 터다.
생각해 내야 해. 맨몸이나 다름없 는 지금 할 수 있는 건 생각하는 것뿐이야.
강현은 냉정하게 추리를 계속해 갔
다.
그리고 곧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전 공략대가 사용하던 물건이 연못에 빠진 게 틀림없어. 아마도 냉기의 힘을 가진 보구일까? 연못 아래까지 얼지 않은 걸로 봐선 물 위에 뜨는 가벼운 물체겠지. 얼음만 깨부술 수 있으면 빼낼 수 있을 거 야.’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겠지만 데릭 로우스와 싸울 수 있는 무기일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높았다.
냉기의 보구를 취하기 위해선 커다 란 장벽 두 개를 넘어야 했다. 하나는 통로를 지나 연못까지 가야 하는 것이고,또 하나는 얼음을 부 숴야 하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얼음을 부수는 거야 데릭로우스를 유인하면 될 일 이다.
연못의 얼음이 강현의 무게는 버텨 도,데릭로우스의 무게는 못 버틴다 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문제는 연못까지 가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만 나가도 데릭로우스 가 달려오는데 그것을 어떻게 뚫고 지나갈 것이냐.
‘지금 내게 이것저것 가릴 여유 따 윈 없어. 백 퍼센트 안전한 길은 존 재하지 않아.’
리스크가 없으면 그 보상 또한 초
라하다.
지금은 위험을 줄이는 게 아닌,위 험을 극복해야 할 방법이 필요했다. 강현은 사소한 부분까지도 세세히 생각했다.
‘분명 녀석은 앞발과 부리를 번갈 아 사용했어. 앞발은 등을 내보였을 때만 사용했었지. 나와 정면으로 대 치할 경우 놈은 부리로만 공격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는 거야.’
확신할 순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했 다.
부리 공격은 대개 수직 공격이다.
움직임을 안다면 어느 정도 놈의 공격 수단을 예측할 수 있었다. 강현은 몸을 풀고 준비에 나섰다.
기회는 단 한 번. 실수하면 죽는 다.
철저하게 각오를 다진 직후,안전 지대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먼저 데릭로우스가 오기 전에 통로 를 최대한 주파해야만 했다.
강현이 데릭로우스와 맞닥뜨린 건 통로를 절반쯤 주파했을 때였다.
“피에엑!”
마주 달려오던 데릭로우스가 부리 를 높이 들었다가 내리찍었다.
과연 놈의 부리는 수직으로 떨어졌 다.
그 움직임을 예상했기에 강현은 시 기를 맞춰 데릭로우스의 측면으로 몸을 날렸다.
꽝!
부리가 바닥을 찍는 굉음이 터지고 돌조각 파편이 등을 두들겼다.
“크옥!”
곧이어 등허리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굴 렸다.
달리는 자세에서의 가속도를 최대 한 살려 내야 했다.
그리고 다시 발이 바닥에 닿는 동 시에 상체를 수그렸다.
쒸익!
이어서 데릭로우스의 발톱이 뒤통 수 위로 스쳐 지나갔다.
이 또한 예상대로의 공격이었다.
놈이 등을 목격하면 발톱을 세울 것이라는 예측도 맞아떨어진 것이 다.
연이은 두 번의 공격 실패로 데릭 로우스는 크게 휘청거렸다.
제 힘에 휘둘려 무게중심이 흔들린 것이었다.
강현은 그 틈에 필사적으로 얼어붙 은 연못까지 달려갔다.
“하아하아,일단 첫 번째 조건은 클리어한 건가.”
하지만 숨 고를 틈도 없이 데릭로 우스가 연못 앞까지 쫓아왔다.
놈은 빙판 한가운데에 서 있는 강 현을 발견하더니 냅다 빙판 위로 뛰 어들었다.
쿠응! 과지직!
아니나 다를까 빙판은 데릭로우스 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놈이 뛰어든 곳을 중심으로 거미줄 처럼 펼쳐진 균열이 빙판 전역으로 번지더니,이내 조각조각 부서져 버 렸다.
순식간에 출렁거리는 바닥에 데릭 로우스는 물론 강현까지 얼음장 같 은 물에 잠기고 말았다.
갑자기 물에 빠지자 냉기 때문에 숨이 턱 막혀 왔다.
수온이 어찌나 차가운지 정신마저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가까스로 멀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기저기 팔을 휘젓자 제법 큰 빙 판 조각이 걸려들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린 조각이었 지만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호수 밑으로 가라앉을 판이라 죽을힘을 다하여 빙판 조각 을 끌어안았다.
“허억,허억.”
절로 나오는 거친 숨결에 하얀 입 김이 스며 나왔다.
그렇지만 이걸로 큰 위기를 넘겼 다.
데릭로우스의 무게라면 십중팔구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이었다. 강현은 놈이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데…….
“피에에에엑!”
데릭로우스는 조금 허우적거리나 싶더니 곧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강현의 낯빛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탈색되었다.
“저 자식,헤엄도 칠 수 있는 건 가.”
그러고 보니 몸뚱이가 곰의 그것이 다.
놈에게 헤엄쯤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냥 익숙한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꼬리 쪽의 뱀 머리는 냉기에 취약 한지 눈을 감은 채 움직임이 멎어 있었다.
더욱이 헤엄을 치는 속도는 그나마 달리기보단 느려서 차라리 다행이었 다.
강현은 서둘러 주변을 살피기 시작 했다.
놈과의 거리가 다시 좁혀지기 전에 보구를 확보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수면에 떠 있는 한 자루 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검신이 푸른색으로 빛 나는 검이었다.
“보구는 검이었나.”
검은 무게가 가볍고 강도 또한 높
은 소재 같았다.
만약 검의 무게가 무거웠다면 호수 밑으로 가라앉았을 것이고,강도가 약했다면 강현의 검처럼 이미 반 토 막 난 모습이었을 것이었다.
좌아악!
때마침 데릭로우스가 일으키는 물 살에 검이 근처까지 떠밀려 왔다. 강현은 필사적으로 오른손을 뻗어 검을 잡아 냈다.
한데 그와 동시에 왼손이 미끄러져 잡고 있던 빙판 조각을 놓치고 말았 다.
“윽! 쿨력! 쿨력!”
갑자기 물을 먹은 탓에 자맥질할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차갑다 못해 시리기까지 한 냉기가 또다시 몸속에 들어차자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더욱이 데릭로우스는 어느새 5미터 거리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강현은 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남 은 숨으로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대로는 물 밖으로 나간다 해도 안전지대까지 돌아갈 여유가 없어. 차라리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해!’
더욱이 물 밖이라면 데릭로우스는 운신이 자유로워진다. 반면 수중이 라면 놈의 움직임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놈과의 실력 차이를 생각하면 조금 이라도 빈틈을 이용해야 했다.
강현은 더욱 과악 검을 그러쥐었 다.
이 검만이 놈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정확히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자체적으로 냉기를 내뿜 는 성질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 증거로 물속에 잠긴 검신 주변 으로 얼음 결정체가 생겨나고 있었 다.
“후웁……
강현은 크게 심호흡하고는 잠수했 다. 그러고는 크게 얼어붙은 얼음 덩어리에 발을 붙였다가 힘껏 몸을 뻗었다.
얼음 덩어리를 받침대 삼아 수중에
서 몸을 쏘아 낸 것이었다.
‘놈보다 깊은 곳에서 기습한다.’ 수면 위로 접근하면 정면 승부를 피할 수 없지만 수중을 통한다면 모 습을 감출 수 있었다.
때문에 시리디시린 냉기를 무릅쓰 더라도 물속으로 빠져든 것이었다. 고여 있는 호수에는 물결이 없으므 로 강현의 몸은 의도대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놈의 배 아래쪽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꼬리 부분의 뱀을 공격하기 위해 시기를 노리는데 그 순간 데릭로우 스와 눈이 부딪쳤다.
놈은 생각보다 영리하고 또한 노련 했다.
수중으로 잠긴 강현이 아래쪽으로 왔음을 알아했던 것이다.
놈은 강현을 발견하자 곧장 부리를 내리찍었다.
위아래의 위치라지만 정면으로 부 딪친 것과 같았기에,습성에 따라 부리를 쓰는 것이었다.
마치 물총새가 송사리를 낚아채듯 닭 머리가 직선을 그리며 쏘아져 왔 다.
강현은 황급히 검을 내찔렀다.
쉬익!
하지만 안타깝게도 검신이 놈의 뒷 발 발톱에 박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데릭로우스의 부리도 자신의 다리에 적중했다.
“피에에에엑!”
다리를 낚아채는데 성공한 데릭로 우스가 강현을 수면 밖으로 들어 올 렸다. 그러고는 힘껏 다리를 물어뜯 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긁히는 통증 에 강현이 크게 비명을 터트렸다.
데릭로우스는 다리를 뼈째로 부숴 먹으려는 셈인지 거리낌 없이 부리 를 휘둘렀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죽을 목숨이 었다.
하지만 주둥이에 걸려 대롱대롱 매 달린 꼴인 이상 다른 수가 없었다. 검도 발톱에 박혀 버려서 반격이 불가능했다.
이대로라면 필사.
말 그대로 죽음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픽,픽……
갑작스럽게 놈의 부리에서 힘이 빠 져나갔다. 그러더니 균형도 잃어버 리고 바동거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놈의 부리에서 벗어난 강현 도 다시 수중으로 몸을 숨길 수 있 었다.
물속에서 강현은 데릭로우스가 갑 자기 왜 저러는지 그 이유를 알아챘 다.
‘저것은……!’
놈에게 잡히기 전 뒷발에 찔러 넣
었던 검이 결빙 현상을 일으키고 있 었다.
즉,뒷발에 얼음이 달라붙으며 놈 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검에 의한 공격이라기보단 뒷발을 봉쇄한 효과였다.
때문에 데릭로우스도 자맥질이 불 편하고 움직임이 어색해진 것이었 다.
더불어 냉기의 영향을 받았음인지 꼬리 부분의 뱀도 새로 생겨난 얼음 덩이에 갇혀 있었다.
아무리 강도가 강하더라도 얼린 상 태에서 충격을 받는다면 깨어질 터. 강현이 필사적으로 헤엄쳐 갔다. 하지만 마땅한 무기가 없었다.
검은 여전히 데릭로우스의 뒷발에 박혀 있었다.
그렇지만 강현은 한낱 무기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빨이 없다면 잇몸으로!’
아직 강현의 허리에는 싸구려 검을 담고 있던 검집이 남아 있었다.
그 검집을 끌러 낸 강현이 있는 힘껏 얼어붙은 뱀 머리를 내리쳤다. 쩌저적!
그리고 마침내,균열이 일어나며 뱀 머리통이 얼음 덩어리와 함께 산 산이 조각 나 버렸다.
그 즉시,수면 위에서 데릭로우스 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삐에에에!”
거친 비명을 토하던 데릭로우스가 잠깐 동안 버둥거리는 듯했으나 이 내 힘을 잃고 추욱 늘어져 버렸다. 끝내는 놈을 쓰러트리고 말았던 것 이었다.
“허억,허억,허억……
호수 위에 떠다니는 놈의 사체를 보면서 강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 다.
끝까지 방심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정말이지 무서운 놈이었다.
*
강현은 주변에 떠 있는 빙판 조각 에 의지하여 호수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즉시 주변의 발광이 끼를 뜯어 상처 부위를 감쌌다.
비록 미미한 치료 효과라지만 지금 은 그나마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지혈이 되면서 어느 정도 통증이 가실 즈음,강현은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능력치를 확인해 보았다.
[최강현 (lv.42)]
공격 : 10
실드 : 9
회피 : 12
마나 : 8
회복 : 6
보너스 포인트 : 64
보유스킬 (없음)
레벨 80짜리를 잡았더니 단번에 레벨 32가 올랐다.
“하아하아,세상사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군.”
강현은 쓰게 미소 지었다.
누가 나더러 쓸모없다 했던가.
여태껏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 못했을 뿐이다.
단 한 번이지만 생애 처음으로 전 력을 다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강현은 피가 멎자마자 손과 발을 비벼 피가 돌게 하였다.
던전은 후덥지근하기에 크게 움직 이지 않아도 몸이 곧 따뜻해졌다. 한동안 휴식을 취한 다음에는,얼 어붙은 채로 물가에 밀려온 데릭로 우스의 사체에 손을 올렸다.
죽은 데릭로우스의 사체에는 옅은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전리품 표시였다.
테라 시스템으로 전리품을 얻는 방 법은 단순했다.
“추출.”
강현의 말에 푸른빛이 사체에서 빠 져나오더니 한데 뭉치며 두 개의 물 건이 나타났다.
하나는 고대어가 새겨진 팔찌였고, 또 다른 하나는 산삼처럼 사람 모양을 띤 영약이었다.
그냥 봐서는 이것들이 무슨 효과를 지녔는지 알 수 없었다.
강현은 안전지대에 놔두었던 자신 의 가방을 챙겨 왔다.
가보 탐색을 수행하기 위해 챙겨 온 소지품 가방이었다.
‘가보 탐색은 거짓 의뢰였지만 이 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이야.’
쓰게 웃은 강현은 가방에서 감정서 를 꺼내 들었다.
“이걸 이제야 쓰다니……
언젠가 몬스터 토벌에 참가하면 쓰 려고 사 둔 것이었는데,수준 낮은 몬스터만 사냥하고 보잘것없는 전리 품만 얻었으니 마땅히 쓸 일이 없었다.
전리품과 검에 각각 감정서를 붙였 다.
그러자 백지였던 감정서에 물건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빙백검]
등급 : A
타입 : 검
특징 : 검신에서 냉기를 내뿜는 검. 검신에 부여하는 마나의 양에 따라 냉기의 양을 조절 가능하다.
[아이로스 팔찌] 등급 : S 타입 : 팔찌
특징 : 팔찌를 찬 상태로 레벨 업 을 하면 보너스 포인트를 2배로 얻 을 수 있다.
[36계 산삼]
등급 : S
타입 : 영약
특징 : 걸을 수 있어 심마니를 피 해 다니며 천 년 이상을 살아온 산 삼. 먹으면 기존의 회피 스렛이 2배 로 상승한다.
일단 빙백검을 쥐고 마나를 불어넣 어 보았다.
빙백검 안에 담겨 있던 이전 주인 의 마나가 흩어지고,자신의 마나가 들어찼다.
마나의 양을 조절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냉기가 약해지나 싶더니,몇 번 조절을 해 보자 냉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이어서 살펴본 아이로스 팔찌는 스 렛을 대폭 올려 줄 수 있는 물건이 었다.
보너스 포인트를 2배씩 얻을 수 있다는 건,1레벨 상승으로 2레벨 상승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레벨 50까지는 2의 보너스 포인트가 들어오지만,레벨 51이상 부터는 3의 보너스 포인트가 들어온 다.
따라서 레벨 51부터는 더욱 빠른 능력치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었다.
‘남은 건 영약이군.’ 마지막으로 36계 산삼을 살펴보았 다.
기존의 회피 능력치를 2배로 상승 시켜 주는 효과였다.
회피 스텟이 10일 때 복용하면 20 이고,100일 때 복용하면 200이다.
‘즉 회피 스렛이 높을 때 복용할수 록 그 효과를 더욱 크게 볼 수 있 단 말이군.’
하지만 마냥 복용을 아끼는 것도 멍청한 짓이었다.
혹시 죽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아끼 느니만 못했다.
강현은 다음 층으로 향하는 문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저 위쪽부터는 데릭로우스 보다 강한 몬스터를 만날 것이다. 대비를 한답시고 어설프게 보너스 포인트를 분배할 여유 따윈 없어. 게다가 2층부터는 직접 몬스터를 관찰하고 공략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너스 포인트의 분배와 영약의 복용 여부는 신중하 고 또 신중해야 했다.
깊은 생각을 계속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모조리 회피에 투자한다.”
공격과 실드,마나,회복 등에 보 너스 포인트를 투자한 대도 그 능력 치들이 어중간했다.
그럴 바에는 아예 회피에 모든 포 인트를 투자하고,영약을 복용한다. 테라 시스템의 특성상 회피에 투자 하면 위험감지능력과 동체시력, 순 발력이 높아졌다.
강현이 노린 것은 어설픈 공격력과 방어력이 아닌,절대적인 회피력이 었다.
‘나중이 아닌 지금 살아남아야 한 다.’
회피에 포인트를 쏟아부은 직후, 이어서 36계 산삼까지 복용했다. 그러고는 능력치를 확인해 보았다.
[최강현 (lv.42)]
공격 : 10
실드 : 9
회피 : 152
마나 : 8
회복 : 6
보너스 포인트 : 0
보유스킬 (없음)
152의 능력치라면 대략 70레벨까 지의 포인트를 모두 회피에 투자한 바나 마찬가지다.
이 정도면 웬만한 공격은 거의 피 할 수 있을 터.
강현은 2층에 올라가기에 앞서 배 를 채우기로 했다.
데릭로우스의 사체로 돌아가 생고
기를 발라냈다.
식량은 모두 박인환이 챙겨 왔었기 에,자신의 소지품에는 마땅한 식료 품이 없었다.
발라낸 생고기를 손에 든 강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구워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 만……
아쉬운 마음에 중얼거렸지만 배부 른 소리일 뿐이었다.
강현은 생고기를 뜯어 질근질근 씹 었다.
역한 냄새와 질긴 육질 때문에 하 마터면 그대로 뱉어낼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씹어 서 결국엔 삼켜 냈다.
정말이지 역겨운 맛이다.
누군가가 신던 구두를 씹는 느낌이 었다.
질기고 역하며 비리다.
그래도 먹는다.
살아남아서 더 역겨운 그 자식들을 베어야만 하니까.
녀석들을 벨 때까지 절대로 이 맛 을 잊지 않으리라.
그 옛날 쓸개를 씹어 복수심을 되 새긴 자가 있듯,강현은 악에 받친 모습으로 고기를 잘근잘근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