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1화 (1/381)

1 화

발광이끼가 가득 자라난 동굴 안.

강현은 벽을 마주 보고 있었다.

벽에는 뾰족한 돌로 새긴 듯 우둘 투둘한 벽서가 있었다.

[오른쪽 상자에 리빙고스트 스킬북 이 있네. 리빙고스트를 쓰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지만 다시 레벨 1이 되고 모든 능력치가 5로 고정된다 네.]

'다시 레벨 1로 돌아간다고?’ 문구를 읽어 내려가던 눈동자가 짙 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강현은 이어서 나머지 벽서를 살펴 보았다.

[계속 던전을 공략하려면 왼쪽 상 자를 참고하게. 지금까지 관찰한 몬 스터에 대한 일지가 있다네. 내가 아는 건 1층의 몬스터뿐이지만 도움 이 되길 바라지.]

강현은 바닥에 있는 두 개의 나무 상자를 보았다.

선택을 하기 앞서 이곳에 갇히게 된 일을 떠올리자 얼굴이 구겨졌다.

“빌어먹을 놈들!”

지금으로부터 1년 전,강현은 서울 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동갑내기 친구 들과 시간을 보내던 참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공간이 뒤틀리면서 강현을 포함한 친구들 모두 다른 차 원으로 소환되었다.

그 결과 도착한 곳이 이곳,가이아 대륙의 빌로스 제국이었다.

가이아 대륙은 한창 ‘웨이브’란 현 상을 겪고 있었다.

웨이브가 발생하면 웨이브 보석이 라는 거대한 보석이 나타난다.

그 보석 안에 들어가 제한시간 안

에 정해진 조건을 수행하고 보스를 처치해야만 했다.

공략에 실패하면 공간 주변이 소멸 하고 던전이 생겨나는 게 웨이브 현 상이었다.

강현 일행처럼 이곳에 소환당한 이 세계인들은 그 웨이브 현상을 공략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테라 시스 템’ 덕분이었다.

테라는 레벨을 올리고 스킬을 습득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세계인들은 그 테라 시스템을 이 용해 강해질 수 있었고,그 힘으로 웨이브의 공략이 가능했다.

그중에서 고레벨을 달성한 이들은

빌로스 제국 귀족들과 손을 잡으며 기사단에 들기도 했다.

기사단에 들면 귀족가로부터 많은 혜택과 지원을 약속 받을 수 있었 다.

하지만 갓 소환된 강현 일행과는 동떨어진 얘기였다.

일반인에 불과한 이들에게 기사단 에 들 만한 힘은 없었다.

그렇다고 테라 시스템을 이용해 레 벨을 높이자니 너무 어렵고 위험할 따름이었다.

이곳도 지구와 같았다.

다른 차원에서 온 이세계인이든, 가이아 대륙의 현지인이든 무능한 사람은 낙오될 뿐이었다.

강현 일행은 여지없이 낙오자가 되 어 버렸다.

그 뒤로 1년.

강현을 비롯한 친구들 넷은 제국 변방에서 용병 일을 하며 근근이 연 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강현이 홀로 동굴에 갇히기 사홀 전.

강현의 세 친구 중 한 명인 최진 철이 헐레벌떡 오두막집에 들어왔다.

“다들 들어 봐! 고르디 경매장에 스킬북이 나왔어! A급 스킬북이라고!”

고단한 일로 지쳐 누워 있던 강현

이 벌떡 일어났다.

“진짜야? A급 스킬북 맞아?”

“감정사가 직접 감정을 하는 것까 지 보고 왔어. 게다가 마침 우리에 게 필요했던 공격 스킬이야!”

다른 친구들인 이하나와 박인환도 화색을 띠었다.

스킬북은 ‘테라 시스템’이 적용되 는 이세계인만 습득할 수 있었다.

즉 가이아 대륙의 현지인은 습득이 불가능하고,이곳에 소환당한 이세 계인만 습득이 가능하다는 말이었 다.

지난 1년 동안 어찌어찌 적응하여 용병이 되었고 자잘한 몬스터 사냥 으로 살길을 개척하기는 했다.

하지만 레벨도 낮고 마땅한 스킬도 없는 강현 일행이었다.

지금까지 고가의 의뢰는커녕 잔심 부름 등의 잡일 처리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최선이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강현을 포함한 모 두의 실력은 빈약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A급 스킬북이 있다면 얘기 가 달라진다.

A급 공격 스킬이라면 레벨이 낮아 도 전투가 가능하다는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바로 귀족가의 기사단에 합류해서 레벨을 올릴 수도 있다는 거다.

강현 일행이 홍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그렇지만 그 A급 스킬북의 출처가 경매장이라는 게 문제였다.

강현이 그 점을 지적했다.

“경매장에 나왔다는 건 팔 생각이 라는 거겠지?”

“안 그래도 상인과 얘기를 해 봤 어. 보름 안에 300골드를 지불하면 경매장에 내놓지 않고 우리에게 바 로 주겠대.”

“300골드? 너무 비싸잖아. 우리가 모은 돈을 다 합쳐도 70골드밖에 안 돼.”

1년 동안 네 사람이 모은 자금은 고작 70골드.

보름 안에 남은 230골드를 모으기 란 불가능했다.

상인이 기다린다 해도 그사이 더 큰 금액을 제시하는 경쟁자가 나타 나면 어쩔 텐가?

십중팔구 그냥 팔아넘길 것이다.

그런데 최진철이 검지를 까닥까닥 흔들었다.

“부족한 돈은 벌면 돼. 듣고 놀라 지나 마. 무려 200골드나 얻을 수 있는 일을 알아 왔어.”

“200골드? 우리한테 200골드짜리 일이 들어왔다고?”

“조금 위험한 임무이기도 해. 이번 의뢰만 성공하면 270골드가 모여. 모자란 30골드는 상인들과 흥정을 해 보지 뭐.”

“근데 우리한테 맡기는 일인데도

200골드씩이나 준다면 조금 위험한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들어나 봐. 르네프 산의 던 전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일이야.”

최진철은 세 친구의 이목을 끌어 모으며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영주가 직접 던전을 공략 하러 갔다가 후퇴했는데,그때 가보 인 검을 잃어버렸다나 봐. 그 검만 찾아서 가져오면 200골드야. 물건만 가져오면 되는 일인데 해 볼 만하지 않겠어?”

영주의 공략대가 후퇴했다면 상당 한 난이도의 던전일 거다. 그 위험 성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을 터. 하지만 던전 공략이 아닌 물건 회수다.

그것만으로 200골드를 준다니,이 만한 일거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 다.

강현은 신중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강현이 생각할 틈 도 없이 적극적으로 찬성의견을 밀 어붙였다.

“하자. 우리에게 언제 또 이런 기 회가 오겠어?”

“그래,어쩌면 우리에겐 유일한 기 회일 수도 있어.”

친구들이 너무나 적극적으로 나서 자 강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한번 해 보자.”

강현의 말에 이하나와 박인환은 고

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해야지.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얼른 출발하자. 르네프 산이라고 했었지?”

이하나와 박인환은 들뜬 목소리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강현도 자신의 짐을 꾸렸다.

그러다 문득 중요한 부분을 깨달았 다.

“그런데 A급 스킬북은 하나 아냐? 얻으면 누가 습득하지?”

스킬북은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진 다.

따라서 한 명이 A급 스킬을 습득 하면 나머지는 그 친구보다 뒤떨어지게 된다.

강현의 질문에 친구 세 명이 주춤 거렸다.

하지만 이내 최진철이 입을 열었 다.

“현이 네가 레벨이 가장 낮으니까 네가 습득하도록 해. 우리 셋은 그 나마 13레벨이잖아.”

“그게 좋겠다. 현이 네가 배워.”

“나도 찬성이야.”

강현은 친구들의 배려가 고마울 따 름이 었다.

지난 1년간 친구들이 없었다면 절 대 버티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현은 이렇게 생 각했다.

이 친구들이라면 목숨을 내놔도 아 깝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돌이켜 보면 참 멍청한 생 각이 었다.

이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스킬북 습득 얘기를 꺼냈을 때 괜 히 주춤거린 게 아니라는 것을.

던전 탐색 준비를 마친 강현 일행 은 사흘이 걸린 끝에 르네프 산에 도착했다.

르네프 산 깊숙한 곳에 거대한 문 이 열려 있었다.

그 문 앞에는 던전임을 의미하는 알림판이 꽂혀 있었다.

[크라이머 던전],[SS랭크]

SS랭크면 백작급 기사단이나,미스 릴급 용병단도 클리어하기 힘든 곳 이었다.

강현은 검 회수 의뢰를 맡긴 샤이 먼 남작이 SS랭크 던전에 도전한 것에 혀를 찼다.

“귀족들은 속도 편하군. 웨이브에 대비해도 모자랄 판에 SS랭크 던전 에 도전했다가 검이나 잃어버리고.”

던전의 몬스터는 던전 밖으로 나오 지 못했다.

때문에 공략이 어렵거나,공략할 능력이 안 되면 그냥 방치되는 경우 가 많았다.

그런 방치된 던전을 공략하는 건 ‘보구’라는 강력한 힘을 지닌 마법 물품이나,섭취시 특정효과를 발휘 하는 ‘영약’을 얻으러 가는 용병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도전하는 등급은 대 개가 S랭크까지였다.

SS랭크 던전은 공략된 적이 드물 정도로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강현은 사이먼 남작이 멋모르고 도 전했다가 쫓겨난 거라고 여겼다.

“우리는 물건만 가져오면 되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다들 조심하면서 가자고.”

강현이 장검을 뽑으며 기합을 넣었 다.

한데 갑자기 등을 떠미는 손길이

있었다.

얼떨결에 홀로 던전에 들어선 강현 이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짓이야?”

한데,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강현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싸늘했다.

“뭐야? 왜 그래?”

불길함에 강현의 얼굴이 딱딱해졌 다.

던전 입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모양새가,마치 자신만 홀로 동떨어 진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한 분위기에 강현이 던전 바깥 으로 발을 내디뎠다.

한데 이상하게도 발이 중간에 멈춰

버렸다.

마치 입구에 투명한 벽이라도 세워 놓은 듯했다.

“뭐야,왜 막혀 있는 거지?!”

그 때 세 친구 중 스킬북과 던전 얘기를 꺼냈던 최진철이 나섰다. 그 가 볼일 다 본 것마냥 무덤덤하게 말했다.

“너랑은 여기까지야. 원망하진 마 라.”

“여기까지라니? 무슨 말이야,진철 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일이냐고!”

탕! 탕! 탕!

강현이 앞을 가로막은 투명한 벽을 때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분노 어린 외침에도 세 사 람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리될 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표정에도 한 점 변화가 없었 다.

그리고 그 순간,열려 있던 거대한 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닫혀 가는 문틈 사이로 최진철이 말을 이었다.

“이 던전은 특이하게도 몬스터가 바깥으로 나올 수 있다더라. 대신 도전자가 들어서면 문이 닫히고 2년 동안은 열리지 않는다더군. 샤이먼 남작가는 대대로 제물을 바쳐 던전 을 닫아 왔어.”

SS랭크의 던전은 다른 던전들과

달리 ‘법칙’에 어긋나는 특이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 크라이머 던전의 특이 점은 바로 몬스터가 바깥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현은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너,너희들…… 날 재물로 팔아넘 긴 거야?”

거짓말이었다. 가보를 되찾아 오라 는 의뢰 자체가.

의뢰는 빌미일 뿐이었고 사실은 제 물을 구하는 일거리였던 것이다.

평생 함께하리라 여겼던 세 친구가 강현을 200골드에 팔아넘긴 것이었 다.

강현의 얼굴이 절망으로 어두워지 는데,최진철이 세 친구 중 홍일점 인 이하나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보다시피 하나와 난 떨어질 수 없 는 관계야. 그리고 인환이는 너보다 레벨이 높지. 네 사람 모두 밑바닥 을 기는 것보다 세 사람이라도 강해 지는 게 낫지 않겠어?”

이하나와 박인환도 그와 마찬가지 로 강현을 버리는 걸 합리화시켰다.

“우리도 지쳤어. 언제까지고 이렇 게 살 수는 없잖아.”

“이해해 줘. 우리도 널 버리고 싶 진 않았어.”

즉 세 사람은 강현이 4인조 중 가 장 쓸모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강현은 입술을 짓씹었다.

원래 세계에서 10년이나 함께 지 내 왔던 친구들이다.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힘을 합쳐 살아 보자고 서로를 격려 해 왔다.

고된 일을 마친 후엔 먼지 범벅이 된 몰골로 서로 웃으며 의지해 왔던 사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리 쉽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해해 달라고? 날 팔아 버리고 너희만 살아남겠다고? 너희가 사람 이야? 말해 봐,이 개자식들아!”

쉴 틈 없이 거친 말이 쏟아져 나 왔다.

하지만 그것도 마지막에는 울분이 차올라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강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닫혀 가는 문 틈 사이로 사라져 가는 친 구들을 노려보는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던전의 문이 완전히 닫히 면서 할 수 없게 되었다.

끼이익! 광!

문이 닫히자 사방에 어둠이 앉았 다.

그나마 던전 안에서 빛을 발하는 발광이끼들 덕분에 보름달이 뜬 밤 정도의 시야가 확보되었다.

발광이끼의 불빛 한가운데서 강현 은 주먹을 쥐었다.

어찌나 주먹을 강하게 쥐었는지 손

톱이 파고들어 핏방울이 떨어졌다. 가까스로 울분을 삼킨 강현이 겨우 목소리를 쥐어왔다.

“개자식들.”

뭐가 친구냐.

뭐가 우정이냐.

뭐가 평생이냐.

믿은 게 잘못이었다.

날 속일 리 없지,날 버릴 리 없 지,계속 함깨겠지.

안이한 마음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 었다.

의심했어야 했다. 강해지려고 발버 둥 쳤어야 했다. 방법이 없으면 만 들어야 했다.

함께니까 괜찮을 거라는 미지근한

생각 따윈 하지 말았어야 했다. 혼자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용당하기 전에 이용해야만 했다 는 것을.

그렇게 분에 차 있을 때,동굴 안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

육중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동굴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두 개였음인지,소리는 오른쪽 통로에 서 들려오고 있었다.

강현은 머릿속을 차갑게 했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

빌어먹을 배신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이 빌어먹을 상황을 타 개하기 위해서라도.

“젠장,이딴 식으로 죽을까 보냐.”

강현은 기척의 반대편인 왼쪽 통로 를 향해 뛰었다.

왼쪽 통로로 들어서고 미친 듯이 달리는데 무언가 뒤따라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 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무언 가’가 정체를 드러냈다.

“피에엑!”

강현을 추격하던 것은 닭의 머리에 곰의 몸,꼬리가 뱀으로 이루어져 있는 몬스터였다.

검처럼 날카로운 부리와 우악스런 앞발,살벌한 독니.

그중 하나에 스치기만 하더라도 즉 사할 만큼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더구나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강 현과 몬스터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 에 좁혀졌다.

이내 강현의 등 뒤까지 따라붙자 몬스터는 거침없이 발톱을 휘둘렀 다.

쒸익!

놈의 발톱이 정확히 등 한가운데로 날아들었다.

한데 그 순간 몸이 기우뚱하더니 강현이 철푸덕 넘어졌다.

쿵!

“으옥!”

넘어진 바닥은 얼음장마냥 차가웠 다. 아니,말 그대로 얼음장이었다. 동굴 안쪽의 연못이 얼어서 생겨난 빙판 위였던 것이다.

덕분에 몬스터의 발톱은 쓰러진 강 현의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운 없는 전개가 생명을 구한 것이 다.

그러나 아직 위기가 끝난 게 아니 었다.

몬스터는 발톱에 이어 부리를 힘껏 들어 올렸다.

그대로 부리를 찍어 내리려는 속셈 이었다.

“피에에엑!”

과자작!

헌데 몬스터가 앞발을 딛자마자 빙 판의 일부가 깨지면서 앞발이 쑤욱 빠져 버렸다.

덕분에 균형을 잃은 몬스터가 자신 처럼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깨진 빙판 주변으로 균열이 점점 번져 갔다.

이대로라면 몬스터와 함께 연못에 빠질 판이라,재빨리 빙판 너머로 넘어갔다.

빙판은 자신의 체중을 견딜 만큼은 단단했기에 다행이 연못을 건널 수 있었다.

연못 반대편으로 넘어간 뒤에는 즉 시 이어지는 통로로 몸을 날렸다.

이 틈에 몬스터와의 거리를 벌려 두어야 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도 못해 강현은

멈춰 서고 말았다.

“통로 끝이 막혀 있다니……

절로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확히는 새로 나타난 문은 완전히 잠겨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문을 밀고 당겨도 꿈쩍도 안 했다.

아무래도 저 몬스터를 처리해야만 열리는 문 같았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완전히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허억허억,어떻게든 방법을 생각 해 내야 해. 이딴 곳에서 죽을 순 없어.”

다행히 문 옆에 방 하나 크기의 좁은 공간이 있었다.

발광이끼가 적게 깔려 있어 다른 곳보다 더 어두운 곳이었다.

채앵!

강현은 검을 빼 들었다. 자잘한 몬 스터라도 사냥하려고 구한 10실버 짜리 싸구려 장검이었다.

퇴로가 없는 이상 기습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차라리 포기했겠지 만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와 혼자 가 전부라는 고독함이 끈질긴 집념 을 이끌어 냈다.

강현은 문 옆 공간의 벽에 기대고 검을 가슴에 붙였다.

투응! 투응!

연못에서 발을 빼낸 몬스터의 발소

리가 서서히 가까워졌다.

소리가 가까워 올수록 검을 쥔 손 에 꾸욱 힘을 주었다.

놈이 모퉁이를 도는 순간 목을 잘 라 버릴 생각이었다.

일격에 끝내지 못하면 죽는 건 내 가 되고 말겠지…….

이마에서 방울진 땀방울이 흘러내 리는 때,바짝 검을 끌어당겼다.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시간이 지나도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고,대신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려 왔던 것이다.

돌아가는 건가? 여기까지 와 놓고 대체 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살며시 모

퉁이 너머로 시선을 돌려 보았다. 몬스터는 빙판 위에서 자신이 있는 곳을 힐끗 보는가 싶더니,이내 으 르렁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쪽으로는 오지 못하는 걸지 도……;

분명 자신의 존재를 알아첸 눈치였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의만 드러냈 다는 건 이곳으로 오지 못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강현은 조심스럽게 공간 바깥으로 발을 내디뎌 보았다.

분명히 돌아가던 몬스터가 획 반전 하더니 다시 이쪽으로 뛰어들려 했 다.

그 즉시 시험 삼아 내밀었던 발을 재빨리 거둬들였다.

그러자 다시금 으르렁거리며 돌아 가는 몬스터였다.

“아무래도 여기는 오지 못하는 구 역인가 보군. 일단 살아남은 셈인 가.”

그제야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골 랐다.

어느 정도 숨을 고르니 흥분이 가 라앉으면서 냉정함을 되찾을 수 있 었다.

가까스로 살아남긴 했으나 그렇다 고 상황이 나아진 건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싸울 수밖에 없어.’

도망칠 길이 없는 이상 싸워야 한 다.

몬스터를 해치우는 것만이 살아남 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 생각한 강현은 작은 공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저 몬스터를 해치울 무언가를 찾아 야만 했다.

그것이 한낱 돌조각이 따위더라도.

그러다 벽에서 돌로 새긴 듯한 장 문의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뭐지?”

강현은 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대륙공용어는 처음 소환되었을 때 통역마법을 부여받았기에 어렵지 않 게 읽을 수 있었다.

[이 글을 보게 될 자는 아마 치기 어린 마음에 공략을 하러 온 자겠 지. 나도 비슷한 경우일세. 여기가 SS랭크인 줄 누가 알았겠나. 두 마 리 중 한 마리를 겨우 처리하고 나 니 나 빼곤 전부 죽어 있더군. 아무 래도 이곳은 몬스터가 들어오지 못 하는 안전지대인 듯하네. 아마 이곳 에 갇힌 나도 굶어 죽거나 몬스터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잡아먹히게 될 테지.]

이 던전이 처음 생겼을 때 공략하 러 왔던 자들 중 마지막 생존자가 남긴 글 같았다.

그리고 내용으로서 추측컨대 원래 는 두 마리였을 몬스터 중 한 마리 를 사냥하고,한 마리만 남게 된 듯 했다.

강현이 슬쩍 공간 밖을 곁눈질했 다.

‘그놈이 바로 저놈이겠지.’

만약 두 마리가 모두 살아 있었더 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고 잡아 먹혔으리라.

강현은 계속해서 글을 읽어 보았 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잡아 뭔가 나오긴 했는데 스킬북이더군. 리빙 고스트란 스킬북인데 사용하면 유체 화가 되어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모 양일세. 다만 레벨 40 이하만 배울 수 있으니 주의하게나. 나는 레벨 40을 넘긴 처지라 쓰진 못하지만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거라 여겨 안 쪽에 있는 상자에 넣어 두었네. 오 른쪽 상자에 리빙고스트 스킬북이 있네.]

벽에 적힌 대로 공간 안쪽 구석에 나무상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오른쪽 상자를 열자 별 조각을 뿌 린 듯 표면이 반짝이는 스킬북이 들 어 있었다.

벽서에서 밝힌 리빙고스트 스킬북 이었다.

이어서 남은 왼쪽 나무상자를 확인 하기에 앞서 문장의 마지막 부분을 마저 읽었다.

[리빙고스트를 쓰면 여기서 빠져나 갈 수 있지만 다시 레벨 1이 되고 모든 능력치가 5로 고정된다네. 만 약 계속 던전을 공략하려면 왼쪽 상 자를 참고하게. 지금까지 관찰한 몬 스터에 대한 일지가 있다네. 내가 아는 건 1층의 몬스터뿐이지만 도움 이 되길 바라지.]

리빙고스트를 써서 당장 바깥으로 나가느냐,일지를 참고하여 던전을 공략하느냐.

공략을 하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리빙고스트를 쓰는 방법까지 포함하 면 총 세 방향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리빙고스트를 쓰는 것만은 절대 안 돼.’

리빙고스트로 살아 나간다 한들 그 이후에는 어찌할 건가?

강현은 자신의 능력치를 되새겼다.

[최강현 (lv.10)]

공격 : 10

실드 : 9

회피 : 12

마나 : 8

회복 : 6

보너스 포인트 : 0

보유스킬 (없음)

가이아 대륙에 소환된 모든 사람들 은 레벨 1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능력치들은 개인차가 있 었다.

강현의 경우는 레벨 1 때 평균 5 의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다.

대부분은 평균 6부터 시작했으니, 강현의 경우 평균치보다 낮은 수치 였다.

그런데 여기서 살기남기 위해 리빙 고스트를 습득하면 평생 그 레벨 1 로 살아야만 했다.

자신을 이리로 밀어 넣은 친구들,

아니 배신자들에게 복수하기는커녕 도리어 피해 다녀야 한다는 거다. 강현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 자식들이 잘나가는 동안 피해 지내야 한다고?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다.

그럴 바엔 조금이라도 발버둥치겠 다.

보란 듯이 강해져서 놈들에게 당한 것 이상을 돌려주겠다.

강현은 서슴없이 왼쪽 나무상자를 열었다.

나무상자 안에는 지도 한 장이 있 었는데 지도 뒤에 숯으로 쓴 글이 적혀 있었다.

벽서의 생존자가 말한 크라이머 던

전 1층의 몬스터에 대한 정보였다.

[데 릭로우스 (lv.80)]

데 릭로우스란 이름이 었던가.

문제는 이름 옆에 적힌 레벨의 수 치였다.

실로 경악할 레벨이었지만 강현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난 80짜리를 상대로 살아남은 셈 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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