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8 회: 23장. 폭풍전야 -- >
24장. 폭풍전야(4)
콰와아아앙-
하늘을 훑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지나간 다음에는 거대한 폭발음이 연속해서 이어졌다. 수지에게 다가오던 해파리 몬스터는 그 폭발에 휘말렸는지 다가오던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듯 지축을 뒤흔드는듯한 굉음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 가운데 있던 수지는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의 탱커 능력을 활성화해서 버텼다.
문제는 도퍼의 탱커 능력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몬스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물리 방어력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라서 수지처럼 뛰어난 탱커라도 총알 정도라면 모를까? 폭탄에 직격으로 맞으면 버텨낼 수 없었다.
그때 가까워 보이는 폭탄 하나가 수지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집중하고 있던 수지는 못 봤지만.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정말 끝장이삼….’
그 생각을 지워버린 건 몸을 뒤흔드는 폭발음. 생각조차 날려버리는 듯한 파괴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지는 죽음을 직감했다. 아니 이미 폭발에 휘말린 몸이 산산조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
이내 폭발음이 잦아들고. 수지는 다정한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최후의 순간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다.
“괜찮아요?”
눈을 질끈 감았던 수지가 천천히 눈을 떴다. 혹시라도 자신이 생각했던 그 사람이 눈앞에 있기를 바랐다. 죽은 뒤의 환각이라도 그 순간에는 상관없었다.
그리고.
눈을 뜨는 순간 정말로 그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강현 님아….”
수지는 눈앞에 보이는 강현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 그대로 기절했다.
*****
“수지씨 정신 차리세요.”
강현은 자신의 품에 안겨 기절한 수지를 흔들었다. 하지만.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강현이 힐을 보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그분 설마 다쳤나요?”
그렇게 말하면서 예거 아머를 입은 알렉스가 강현의 곁으로 날아왔다. 강현은 알렉스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폭격 전에 분명히 쉴드를 둘러뒀습니다. 딱히 다른 외상도 안 보이고요. 힐도 안 통하네요.”
그 말에 알렉스는 좀 더 가까이 다가와서 수지를 살펴봤다.
“정신적으로 충격받으신 거 같네요. 쯧쯧. 남자분이 심지가 굳어야지. 일단 여기에 뒀다가 있다가 옮겨가죠. 수지라는 분부터 얼른 찾으셔야죠.”
혀를 차며 그렇게 말한 알렉스는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까지 써서 생존자를 찾으려고 하는 걸 보고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분이 수지인데요. 어차피 다른 생존자는 없었으니 이제 철수하면 됩니다.”
그 말에 알렉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지를 다시 살펴봤다.
“정말이요? 수지라는 분 여자 아니었나요? 전 소유 씨랑 동거하신다길래. 여성분인 줄 알았네요.”
“그러니까. 수지씨는 여자가 맞는데요?”
“네?”
알렉스의 머리 위로 점점 커지는 물음표를 보면서 강현은 한숨을 내셨다. 그러고는 수지를 안아 올렸다. 수지는 심비오트 슈트를 입은 강현보다 더 큰 덩치였지만. 안는 데 힘이 들지는 않았다. 알렉스는 강현이 커다란 덩치의 인간을 공주님 안기로 드는 걸 보고는 질색했다. 강현은 모른척했다.
“그럼 얼른 돌아가죠.”
“...네.”
그렇게 말하면서 두 사람은 임시 건물에서 벗어나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두 사람의 아래쪽에는 몬스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강현의 몬스터 레이더 상으로는 인천항 외곽에는 아직도 몬스터들이 늘어나고 있었지만. 적어도 수백 미터 내에는 몬스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금방까지는 이곳에서도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했었다. 수지에게 다가가던 몬스터는 강현이 레이저 버스터로 제거했지만. 그 외에 수많은 몬스터들을 일거에 제거한 건 바로.
“그나저나 예거 봄버(Bomber) 위력이 대단하네요.”
“이것도 강현님 덕분이죠”
강현의 인사치레를 알렉스가 싱긋 웃으면서 받았다.
인간들의 무기는 몬스터에게 안 통한다는 건 상식이었다. 무기가 안 통하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인간은 예거 드럭(Drug)을 먹고 능력을 발휘해 몬스터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는 건 극소수뿐.
지금까지는 세계의 균형을 잡는 데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지만. 몬스터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세컨드 웨이브 때를 생각하면 그 정도로는 힘들었다. 그 때문에 예거 드럭을 먹고도 몬스터를 상대할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몬스터를 상대할 수단을 만들어 낸 게. 현재 알렉스가 착용하고 있는 대 몬스터 전투 슈트 예거 아머(Armor)
거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게. 금방 알렉스 인천항을 초토화할 때 썼던 예거 봄버(Bomber)였다. 몬스터 코어가 연결된 예거 아머의 동력원을 폭탄에 폭발 직전까지 연결해뒀다가 폭발을 일으키면 몬스터가 그 충격을 받는 원리를 이용한 무기였다.
단점은 예거 아머 사용자가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것. 케이블을 아무리 두껍게 제작해도 폭발에 안 휘말릴 수 없었다. 거기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시점에서 이번에는 강현의 쉴드가 제대로 위력을 발휘했다.
알렉스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예거아머라도 몇 대 더 있으면 사용이 쉽게 좀 더 연구해 볼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그 말은 강현은 깜빡하고 있었던 일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다크매터 이야기를 하다 말았었죠. 이건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낫겠네요. 잠시만 수지씨 좀 부탁할게요.”
“네? 네.”
공중에서 엉겁결에 수지를 떠맡은 알렉스가 균형을 잡기도 전에 강현의 심비오트 슈트가 불을 뿜으면서 저편으로 사라졌다.
*****
‘여기는…?’
수지는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내고 간신히 눈을 떴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건 온통 하얗고 뿌연 세상이었다. 몸도 누워있다기보다는 붕 떠 있는 느낌으로 몸에 힘이 안 들어갔다. 그러기를 잠깐. 수지의 얼굴 위로 쑥 하고 먼가가 나타났다.
“수지야 괜찮아?”
분명히 소유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흐릿하게 보였지만. 언제나 눈길을 끄는 가슴의 융기도 확실히 존재감을 과시했다.
“소유? 너도 죽은 거삼?”
“아냐…. 수지야. 넌 이제 괜찮아.”
소유가 고개를 내저으면서 수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수지는 그제야 눈의 초점이 잡혀서 하얀색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몸에도 힘이 들어왔다.
“그럼, 나 죽은 게 아니삼?”
“으응. 괜찮아 수지야.”
소유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새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을 닦아냈다.
“영영 못 깨어나는 줄만 알았는데 다행이야.”
“그게 무슨 말이삼?”
“수지 너 일주일 만에 깨어난 거야.”
“일주일?”
생각보다 긴 시간에 놀란 수지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 어떻게 여기 있는 거심? 인천항에 몬스터들은 어떻게 됐삼?”
“강현님이 구해주셨어.”
“강현님아가?”
수지는 기절하기 전 마지막 순간. 보였던 강현의 모습이 사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생각하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간신히 진정한 수지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강현님아는?"
"그게 많이 바쁘셔서…. 나도 최근에 얼굴 보기 힘들어."
그렇게 대답한 소유는 왠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수지가 눈치 못 채게 빠르게 표정을 거둔 다음 수지를 향해 속 편한 미소를 지었다.
"몸이 좀 괜찮으면 여기저기 안내해줄게. 여기 쉘터 은근히 구조가 복잡하거든."
"쉘터…. 라고 했삼?"
*****
“강현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이랄게 있나요? 이제부터 알렉스님이 고생이죠.”
한차례 지상을 훑고 지상으로 통하는 쉘터 입구로 돌아온 강현을 맞이하러 나온 건 알렉스였다. 알렉스의 마중에 강현은 등에 메고 온 커다란 가방을 알렉스에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강현이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만들어온 다크매터가 잔뜩 들어있었다. 알렉스의 귀중한 연구 재료들이었다.
"와. 오늘도 많이 담아오셨네요.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이지만.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시죠?"
다크매터를 들고온 캐리어에 옮겨 담은 알렉스는 강현의 심비오트 슈트를 힐끗 훑어봤다. 몬스터들의 피와 체액. 거기에 먼지와 다크매터의 잔여물의 뒤섞여서 엉망진창이 모습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먼지가 좀 묻은 거뿐이니까요."
그렇게 대답한 강현은 어깨에 묻은 먼지를 떨어내는 제스쳐를 취했다.
-마스터. 해제하겠습니다.
강현의 제스쳐를 신호로 [ 콩 ] 이 심비오트 모드를 해제했다. 그러자 심비오트 모드의 본체는 왼쪽 손목에 압축되어 사라졌고, 그 외에 이물질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건 언제봐도 부럽네요."
알렉스는 심비오트 모드를 해제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자신의 예거 아머를 기초로 만들어진 슈트라는 건 들었지만. 기계에 가까운 예거 아머의 모습과 달리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늘어나고 줄어들고 변형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오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알렉스와 강현 두 사람은 쉘터 아래쪽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이곳 지상으로 연결되는 쉘터층에는 몬스터가 만에 하나 지하로 뚫고 들어오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 경고장치만 있을 뿐.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의 귀를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보다 그동안 밖의 정보는 들어온 게 있나요?”
인천의 몬스터를 쓸어버리고 일주일. 강현은 다현을 비롯한 자신들의 지인들을 데리고 알렉스의 인맥을 이용해. 미군이 비밀리에 국내에 만들고 있었던 비상 쉘터로 대피했다. 각지의 도퍼들이 몬스터를 쓰러트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했지만. 도퍼들이 몬스터들을 쓰러트리는 숫자보다. 몬스터들이 늘어나는 속도가 빨랐다. 게다가 몬스터를 한 마리를 단체로 사냥했던 도퍼들은 다수의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대부분 익숙지 못했다. 그 때문에 초기에 도퍼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결국에는 도퍼들도 몬스터와 싸우는 걸 포기하고 숨는 데 주력했다.
그걸 보고 부평 서브웨이 스테이션을 비롯해. 각 서브웨이 스테이션에 거점으로 삼고 숨어지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이 맞았다며 서브웨이 스테이션은 대부분 몬스터로부터 숨기에는 적절치 못한 환경이었다. 소형 몬스터 한두 마리의 침입에 초토화되기 일수였다.
그 사이 강현은 쉘터에서 전국의 상황을 모니터하다가 위험한 지역에 투입해서 인명을 구해서 쉘터로 옮겨오는 데 주력했다. 그게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히 몬스터들이 위성이나 통신망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건 아니어서. 각 쉘터별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거였다.
“어디나 난리죠. 그래도 재미난 보고를 오늘 미국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렇게 말한 알렉스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강현에게 내밀었다.
“이건 현재 루엘 타워 내의 분석실에서 확인한 몬스터 증가패턴입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뉴욕 몬스터 폭탄 사건 때와 유사하다는 결과죠.”
“그렇다는 것은?”
“그레이가 전 세계에 마구잡이로 몬스터 폭탄을 터트리고 있는 거죠.”
몬스터 폭탄. 그걸 사용해서 뉴욕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이 나타난 걸 강현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레이에서 왜 그런 일을 벌인 거죠? 그레이도 나름 세컨드 웨이브에 대비하는 조직 아니었나요?”
“글쎄요…. 그들의 진의까지는 아직 파악이 안 되었으니까요.”
알렉스의 말대로 현재의 사태를 그레이에서 초래했을 거라는 예측은 처음부터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예측이 무색할 만큼 그레이에서 어떤 성명도 발표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후로 처음부터 그런 조직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레이의 상부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 정보를 각 나라에 풀게 되면. 모든 나라에서 그레이와의 전면전을 택할 겁니다.”
알렉스는 씩 웃으면서 휴대폰을 다시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강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쉽게 될까?’
하지만. 뜻밖에 그레이라는 공적이 만들어지자 전 세계는 쉽게 단결했다. 일본측에서만 한국의 도퍼들이 몬스터들을 일본으로부터 지켜주던 수호신을 죽여버렸다고 주장하며 한국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이미 일본은 국가의 기능을 상실할 만큼 파격을 받은 상태라 세계의 어느 나라도 귀 기울여 듣는 나라가 없었다.
한번은 한국이 만행을 저질렀다며 열변을 토하는 일본총리의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방송을 보며 강현은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정말 했는지도 모르지만. 인간에게 죽는 수호신이라니. 이미 수호신이라는 의미가 퇴색해 버린 게 아닌가?”
어쨌든. 세계의 여론은 세컨드 웨이브를 일으킨 건 그레이로. 세컨드 웨이브는 결국 인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여론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전 세계가 합심해서 그레이의 본거지 쳐부술 논의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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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