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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전사-102화 (10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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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 괴물들(1)

사내는 기다란 복도를 천천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상태. 군살 하나 없는 조각 같은 몸을 본다면 누구나 감탄할 터였다. 하지만. 그 사내의 주위에 나타난 여인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했다. 마치 마네킹같이. 여인들의 얼굴에 한 하얀 분칠을 해서 더욱 그렇게 보였다.

여인들은 각자 손에든 옷가지를 들고 조심스레 걷고 있는 사내의 곁에 다가갔다. 그다음 사내의 걸음걸이에 조금이라도 지장을 주지 않도록 섬세한 손놀림으로 차근차근 입혀나갔다. 사내가 길의 끝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옷을 다 갖춰 입었다.

길의 끝에 사내를 맞이하는 건 문이었다. 자동으로 열리는 문밖에는 낭떠러지가 보였다. 하지만 사내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발걸음을 허공에 내딛자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 바닥이 있었다.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자.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 보였다. 이내 사내의 몸이 천천히 올라갔다. 사내는 온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것이다.

엘리베이터 아래 보이는 곳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던 바위산. 사내는 그 바위산의 꼭대기에서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거대한 비행선 안으로 그 안에는 사내를 맞이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수호신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일동. 차렷. 경례.”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동시에 거수경례를 했다. 마치 자로 잰 듯 일제히 경례하는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는 감탄사를 자아냈다. 그렇게 경례하는 일본군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뜨거웠다. 엄중한 존경의 의미.

하지만.

수호신이라고 불린 사내는 그들의 경례를 받지 않고 그대로 걸어갔다. 무례한 태도. 다만 경례한 군인들은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지 않았다. 부처와 예수상에 기도하는데 반응이 없다고 무례하다고 생각지 않을 터. 그저 자신들의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 감사 감격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 수호신의 이제부터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 할 일이란 바로 몬스터로부터 일본을 지켜내는 것.

그야말로 일본의 수호신이라고 불릴 법했다.

사내는 비행정 중앙에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의자 팔걸이에는 두 개의 몬스터 코어가 놓여있었다. A급 몬스터 코어 두 개. 사내는 의자에 앉아 몬스터 코어에 양손을 올렸다.

그러자 일본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일본 전역이 눈으로 보인다기보다는 감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과 일본 근해 안의 몬스터 기척도 사내의 감각 내에 있었다.

몬스터 청정국가로 뭇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일본이었다. 그게 다 사내의 능력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수많은 신이 있다. 인간을 위한 몬스터를 조종하는 신이 있다 한들 일본인들에게는 전혀 새삼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도퍼를 양성하는데 소홀히 하거나 몬스터 코어를 수급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일도 없었다. 그저 몬스터를 움직여 무인도에 모아두고 도퍼들을 모아두고 손쉽게 사냥하면 되었으니.

“흠.”

그렇게 무료한 작업을 하고 있으려니 잡념이 어지럽혔다. 그 잡념의 원인은 한국인 이성제. 기껏 일본에 큰 선물을 가져온 공으로 대접을 해줬더니. 무식하고 미개한 조선인답게 이곳 성역 근처 유곽의 기생뿐만 아니라. 성역에서 일하고 있는 온갖 여자들을 다 건드렸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 때문에 성제가 더럽힌 여자들은 사내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지시해뒀다.

그런 패악질도 감수하게 할만한 큰 선물이란 바로 S급 몬스터 코어. 희한하게도 일본 근처에는 몬스터가 있긴 하지만, S급 몬스터는 없었다. 그 때문에 일본이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S급 몬스터 코어를 손에 넣기는 힘들었다. 그 때문에 현재까지 사내가 조종할 수 있는 몬스터는 최대 A급이 한계. 그것도 일본 전역을 담당하려면 B급 이상은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 때문에 S급 몬스터 코어 수급은 일본의 최우선 과제였다.

“음?”

그때였다. 사내의 감각을 건드리는 것은.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었다. 도퍼 능력으로서 느껴지는 게 아닌, 천적이 나타났다는 동물적인 감각. 이 감각은 천적도 분명히 감지했을 터였다.

‘어떻게 일본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 비행정 천공의 성까지는 함부로 못 올 터.’

사내는 수백 년 넘게 이어온 악연이 이곳까지 오기 위해서 악전고투하며 고생하게 될 생각 하니 오랜만에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조선으로 쳐들어갔을 때 고생했던 것보다 몇 배나 고생할 테니까.

“아니지.”

사내는 자신의 손에 잡힌 몬스터 코어를 쳐다봤다.

‘이 능력이 있으면 그 기나긴 악연도 끝맺음할 수 있겠군.’

사내의 입에 기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그 안에서 짧은 길이의 수많은 촉수가 촘촘하게 붙어서 꿈틀대고 있었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모습. 사내의 정체를 안다면 지금 이곳에 있는 모두가 경악할 터였다.

‘아니면. 그래도 나를 수호신으로 떠받들 것인가?’

비릿한 미소로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또 한 번 사내의 감각을 건드리는 게 느껴졌다. 아니, 한번이 아니었다. 커다란 움직임을 중심으로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아니?”

사내는 그답지 않게 놀랐다. 그때에 인간의 형상을 흉내 내고 있는 안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수호신님! 지금 도쿄도 타치가와시 중심으로 몬스터들이 출현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사내의 뒤로 군인의 외침이 들렸다. 다급한 목소리가 지금 상황의 급박함을 대변해줬다.

“지금 저도 느꼈습니다.”

사내가 본 것은 군인이 말한 지역에서 몬스터들이 갑작스레 나타난 것. 사내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자신과 한 번도 교감하지 않은 몬스터들이었으니까. 그래도 사내는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이 최대한 느긋한 목소리를 연기했다. 당황스럽기는 해도. 통제 못 할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거기다가 현상에 대한 의문은 군인의 말로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그레이 놈들. 미국에서 몬스터 폭탄을 터트리더니 감히 우리 일본에까지.”

“그럼. 지금부터 몬스터를 몰아내겠습니다.”

“앗, 실례했습니다!”

군인은 자세를 고쳐잡고 앉은 사내에게 경례하고 사라졌다. 아니 사라져야 할 군인이 다시 사내의 뒤에 서 있었었다. 하지만. 이어서 들리는 말은 군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전에 일본말도 아니었다.

“괴이. 오랜만일세 그래.”

그 말에 사내는 몬스터 코어에서 손을 떼고 일어섰다. 경계하는 모습. 자신의 본질을 파악하고 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지금까지의 여유는 사라진 상태였다. 뒤돌아서 봤을 때 군인은 서 있는 게 아니라 떠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얼굴을 붙잡힌 채로. 그 얼굴을 붙잡은 건.

“혼괴. 아니 여기까지 어떻게?!”

혼괴였다.

혼괴에게는 20대 초반의 말쑥한 청년의 모습은 대부분 사라져있었다. 상의는 찢어져서 맨살을 드러냈는데, 마치 고릴라를 방불케 하는 단단한 근육질의 몸이 탈바꿈했다. 말 그대로 환골탈태. 혼괴는 거추장스러운 듯 머리통을 잡아올린 군인을 옆으로 내동댕이쳤다. 그 뒤로도 누구 하나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하긴 저도 놀랐네요. 전차에서 혼괴님이 갑자기 짜잔 하고 변신을 하시고는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으니까요. 게다가 날개까지 생겨서 하늘로 날아가시다니. 혼괴님이 이런 능력자였다니. 국장님께 잘 모시라는 말만 들었지. 이 정도 일 줄 저도 몰랐다니까요. 혹시 국장님도 다 알고 계셨을까요? 국장님 정도면 다 알고 계시겠죠. 음. 음. ”

혼괴의 커다란 덩치에서 삐죽이 얼굴을 내민 지훈은 한참을 떠들어 댔다. 괴이는 물밀 듯이 흘러들어오는 한국말에 살짝 현기증과 함께 짜증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짜증을 저런 하찮은 것에게 낼 때가 아니었다.

“여유로군. 혹까지 달고 날 치러 오다니.”

괴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인간의 껍질을 벗겨 냈다. 그러자. 괴이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말하자면 사람모양의 거대한 녹색 이끼 같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껍데기를 벗겨 낸 괴이의 몸 곳곳에는 수없이 많은 짧은 촉수가 꾸물꾸물 대고 있었다.

“저, 저기…. 몬스터세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건 지훈이었다. 몬스터 안전관리국 소속 관리자로서 여러 형태의 몬스터를 봤지만, 이렇게 끔찍하게 생긴 몬스터는 처음이었으니까.

괴이는 그 말에 슬며시 웃었다. 아니 얼굴 부분에 생겨난 타원형의 균열이 마치 웃는 것처럼 보였다.

“몬스터라. 그렇게도 부를 수도 있겠지. 다만.”

그렇게 말을 끊은 괴이는 그 손인 걸로 추정되는 걸 들어서 혼괴를 가리켰다.

“네 옆에 있는 저 치처럼 아마 너희 인간들이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몬스터는 아닐걸세.”

그 말에 지훈이 혼괴를 쳐다봤다. 해명을 요구하는 지훈의 눈빛에 혼괴는 딱히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괴이의 빈틈을 노리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괴이의 경우에도 눈앞의 하찮은 인간과 문답을 한 것은 혼괴와 인간의 관계를 파악해 혹시나 허점을 만들어 볼까 하는 탐색의 일환이었다.

때문에.

“그, 그러시군요. 어, 저는 가봐도 될까요?”

지훈이 그렇게 말하며 도망치기 위해 뒷걸음질쳤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

없었다.

폭발음도 파공음도 없었다.

격돌은 순식간에.

조용하지만 격렬하게 이뤄졌다.

먼저 나선 것은 괴이였다. 지훈이 비행정에서 내려갈 곳을 못 찾아 안절부절못하는 걸 본 혼괴가 ‘거슬리니까 밀어서 떨어트려 버릴까?’ 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 틈을 노리고 괴이가 수많은 촉수를 쉴 새 없이 움직여 미끄러지듯이 혼괴에게 달라붙기 위에 뛰쳐나왔다.

혼괴는 그걸 보고 뒤로 몸을 날려서 뛰었다. 한 번의 회피. 하지만. 두 번은 무리일 터. 그렇게 판단한 괴이가 계속해서 혼괴에게 달려들었다. 제대로 붙들기만 하면. 촉수에서 나오는 맹독이 순식간에 혼괴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 중독시킬 것이다.

하지만. 혼괴는 그런 괴이의 바람을 저버렸다. 등 뒤에 숨겨놓은 날개를 펼쳐서 날아오른 다음 천장에 발을 딛고는 괴이를 향해 찍어버릴 듯 손을 휘둘렀다. 날아다니기에는 좁은 천장이었지만. 삼각 뛰기를 할 디딤벽 대신 이용하기에는 충분했다. 거대해진 손은 단단한 기운으로 감싸져 있어서. 괴이가 맞으면 그대로 찌푸려질 것만 같았다.

괴이는 피하지 않았다. 피하기보다는 촉수의 기운을 단번에 모아서 그 공격을 일부는 흘러내고 일부는 버텨냈다. 대신 공격을 받아낸 충격에 바닥이 움푹 패였다. 대부분의 공격을 흡수할 수 있는 괴이의 몸인데도 그 정도 충격이 바닥까지 전달되는 걸 보면. 혼괴의 손날치기가 얼마나 무거운 공격인지 짐작이 될 정도였다.

“내 본거지에 이렇게 쳐들어오다니. 나이를 먹더니만 간덩이가 부었나 보군.”

“원래 다른 일이 있었지만. 네가 이렇게 눈에 띄는 곳에 있는데 모른척하고 지나갈 수가 있어야지.”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 힘을 겨루고 있었다. 괴물들의 싸움답게 단순히 완력만 겨루고 있는 건 아니었다. 서로의 음험한 기운이 맞부딪혔다. 괴이가 내뿜는 초록빛 기운은 독 안개같이 천천히 퍼져나갔고, 혼괴의 부풀어 오른 기운은 보랏빛을 연하게 띠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싸움은 혼괴가 밀렸다.

“크윽.”

기 싸움에서 밀린 혼괴의 신음. 그 울림에 괴이가 미소 지었다. 바보같이 자기에게 접근한 이 어리석은 친구를 요리할 생각 하니. 온몸의 곳곳이 쾌락에 꿈틀대는 것이다. 하긴 자신과의 상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미 기 싸움에서 보여주는 힘의 차이는 명백했다.

“크크크. 우리 같은 괴물들 말고 다른 괴물들이 나타날지는 꿈에도 생각 못 했지 뭔가. 그간 처녀의 피로 손톱만큼 강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야.”

괴이는 몬스터를 조종하면서 양손에 쥔 몬스터 코어의 기운을 조금씩 흡수하고 있었다. 그렇게 몬스터가 출현하고 나서 이내 일본에 자리를 잡고 힘을 비축해온 지 수년째. 그 힘으로 괴물 특유의 지배력을 다른 몬스터에게 발휘했다. 괴이에게는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섭섭한데. 너만 그렇게 준비해왔다고 생각하다니.”

혼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유 있는 말투도 그렇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연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__)

게다가 주인공도 안나오는 화라니...ㅠㅠ

내일 연재는 무사히됩니다.

앞으로는 연재가 못할 사정이 생기면

댓글로라도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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