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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전사-96화 (96/113)

< -- 96 회: 20장. 상급 퀘스트 -- >

20장. 상급 퀘스트(3)

“저것도 몬스터일까?”

강현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존재를 보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내 고개를 내저어서 자기 생각을 부정했다. 어떻게 봐도 강현의 앞에 있는 존재는 몬스터가 아니라 10살 전후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그 여자애는 고급호텔에서 공수해온 것 같은 푹신해 보이는 원형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원형 침대 안은 별빛을 뿌린 듯 반짝거렸는데, 자세히 보니. 침대에 흩어져 있는 여자애의 기다란 은발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강현이 조심스럽게 한 발짝 다가가서 살펴봤다. 하얀색 네글리제를 입은 육체가 조금씩 아래위로 움직이는 걸로 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자는 걸까?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천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강현은 그걸 보고 확신했다.

괴물일 리 없었다. 이 정도로 완벽한 인간 형태의 몬스터를 본적도 있다는 말도 들은 적 없었으니까. 그나마 가장 인간 형태의 몬스터는 뉴욕에서 잡았던 S급 몬스터 뿐이었다. 그래도 경계를 쉽사리 풀진 않았다. 손에 든 검을 들어 누워있는 여자애를 조심스레 툭툭 건드렸다. 여자애는 귀찮은 듯 몸을 뒤척이다가 몇 번 더 건드리니까.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귀여운 짜증은 덤이었다. 그러다가 강현의 존재를 눈치챈 듯 눈을 크게 떴다.

“앗. 인간이다.”

여자애는 그렇게 말하며 강현을 똑바로 바라봤다. 순간 정신을 잃을뻔했다. 깊었다. 여자애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느껴졌다. 강현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넌. 뭐야?”

“난 나인데?”

당돌한 대답. 강현은 여자애를 힐끔 쳐다보니 강현의 반응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현은 여자애를 내려다봤다. 이곳에 있을 법한 사람이라면 같이 내려온 사람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이내믹 코리아팀은 물론, 중국팀이나 미국팀에서 비슷한 얼굴도 볼 수 없었다.

‘이 여자애가 보스 몬스터? 아니면, NPC캐릭터?’

그냥 봐서는 여자애는 전의도 없고 싸울만한 수단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되려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을 정도로 무방비. 강현은 다소 경계를 풀고 한숨을 쉰 다음 다시 어린애를 어르듯 차근차근 말했다.

“그래. 넌 너지. 혹시 이곳에 사는 괴물이나 몬스터. 본적 없니?”

여자애는 강현의 질문에 하얀 손가락을 들어 턱에 대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없는데? 여기는 쭉 나 혼자밖에 없었어.”

“그래?”

이곳은 JS 온라인이라는 가상세계. 알렉스 루엘가 설계한 곳이다. 그렇다는 것은 이 가상세계 모든 것에 알렉스의 의도가 들어있기 마련.

‘그런데 이런 지하에 몬스터 대신 여자애가 있다고?’

강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다른 이들이 봤다면 당장에 장난치느냐고 항의했을 터였다. 그렇게 여자애를 쳐다보며 어떻게 할지 고심하고 있을 때. 여자애가 물어왔다.

“그래서. 넌 뭘 원해?”

‘뭘 원하다니?’

강현은 새파란 여자애가 자신에게 반말했다는 것도 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거나. 강현에게는 상급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동료들과 합류하고 이곳의 보스 몬스터를 찾아 퇴치해야 했다.

“내 친구들도 같이 들어와야 하는데 못 들어왔거든. 혹시 못 봤어?”

“흐음~ 그 친구들이라면 다들 돌아갔는데?

여자애의 말을 들은 강현은 위화감을 느꼈다. 방금 대답은 마치 동료들이 어떤 상태인지 금방 확인한듯한 말투였다.

‘혹시 이 녀석이?’

의심하는 것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뒤로 물러선 강현은 검을 겨눴다.

‘내가 너무 물렀어. 게임이라소 여자의 모습으로 변해 사람을 홀리는 몬스터가 있을 가능성도 있잖아.“

하지만 그런 강현과 달리 여자애의 모습은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소용없는 짓이야. 그런 거로는 날 해치지 못해.”

“너 정체가 뭐야?”

“나? 나는 나인데?”

똑같은 대답.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강현을 나무라는 여자아이. 하지만. 강현의 경계심은 극도로 높아진 상태. 조금만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면 공격해 들어갈 생각이었다.

이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상에서 최고등급인 1등급 근접딜러에 능력치를 높여주는 레어무기. 스탯버스터를 들고 있는 강현이 마음먹고 공격해 들어간다면 S급 몬스터에게라도 타격을 줄 수 있을 터였다.

강현이 금방이라도 공격할 기세로 살기를 뿜어내자. 여자애가 한숨을 내쉬었다.

“싸우는 거 말고…. 나에게서 뭔가를 얻어내려면 대가를 지불해야해.”

“대가?”

협상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인 강현은 살기를 누그러트렸다.

일단 상대가 이야기하자고 하는데 적의도 없는 상대를. 그것도 여자애를 먼저 공격하는 것도 입맛에 맞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여자애가 요구한 대가라는 게 뭘까? 강현이 이곳에서 지급할 수 있는 게 딱히 있을 리가 없었다. 기껏해야. 이거 정도? 강현은 여자애를 경계하면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강현의 인벤토리 안에 있는 몬스터 코어가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A급 몬스터 코어를 하나 집은 다음, 여자애 앞으로 굴려 보냈다.

“이거면 되나?”

여자애는 자신 앞으로 굴러오는 몬스터 코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침대 밑으로 뛰어 내려와서 몬스터 코어를 집었다. 그리고는.

“이런 건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 몬스터 코어를 꽉 쥐었다. 그러자 몬스터 코어가 토마토처럼 팍하고 터졌다. 그러자 시커먼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희한한 것은 금세 그 시커먼 액체가 여자애를 더럽힐 거 같았지만. 작은 태클도 여자애에게 묻지 않고 그대로 흘러내린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 모습을 보고 강현은 놀랐다. 저렇게 가냘픈 손으로 높은 강도를 자랑하는 몬스터 코어를 터트려버리다니. 엄청난 괴력이었다. 여자애는 손을 탁탁 털어서 몬스터 코어의 잔해를 털어낸 다음 강현을 보고 빙긋 웃었다.

“역시 인간은 안 되겠네.”

“?”

“모든 피조물은 원하는 게 있으면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고 있었거든. 그게 이 세계의 이치야. 물 밖으로 나가고 싶은 물고기는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포기하고 다리와 성대를 얻었던 것처럼.”

강현은 상대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갑자기 진화론?

“인간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지내왔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이후로 인간들은 아무것도 내지 않으면서 너무 많은 걸 누려왔어. 그것도 공짜로.”

이번에는 환경보호론자 콘셉트? 강현이 어이없다 못해 이제 슬슬 지루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인간들을 배제하기로 했지. 하지만 나에게서 많은 것들을 무단으로 얻어온 피조물답게 쉽게 적응하더군. 그래서 그들에게 최후의 기회를 주기로 했어.”

‘인간을 배제? 최후의 기회? 갈수록 가관이네.’

여자애의 오만한 태도에 강현은 어이가 없었다. 반면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인 강현을 본 여자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말을 못 믿겠나 보지? 너희 인간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안하무인이었지. 어차피 이곳도 너희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의 세계. 그 안에서 내 존재를 증명하기란 어렵겠지. 곧 직접 보게 될 테니 그때까지 내가 대답을 들을 수 있게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여자애가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시야에 새하얀 빛으로 채워졌다.

“머, 뭐야?!”

잠시 후.

강현이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알렉스와 채영이 보였다. 둘 다 놀란 표정이었다.

“흠.”

강현은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JS온라인 밖으로 나와진 모양이었다. JS 온라인 내 지하 100층에서 금방까지 만나고 있었던 여자애의 모습이 선명하게 어른거렸다. 강현은 그 여자애에게 최후의 말을 못 건넨 게 아쉬웠다.

그 최후의 말이란 바로.

“나더러 어쩌라고.”

였다.

자신이 인간의 대표도 아니고 그렇게 거창한 것들은 생각해본 적도 대답해줄 필요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속을 식히려고 하고 있을 때.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알렉스의 눈초리가 이상한 건 느꼈다. 채영도 늘 그렇듯 평정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상황이 이해 안 되는 듯 보였다.

“뒤에 누구예요?

“누구라니?”

그렇게 물어오는 채영의 시선은 자신의 뒤를 향해 있었다. 그래 봤자. 접속 캡슐 안. 별다른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강현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채영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봤다가. 깜짝 놀랐다. 금방까지 JS 온라인에서 봤던 은발의 여자애가 있는 거 아닌가?

“으아악. 뭐야!”

강현이 기겁하면서 예거 캡슐을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소란에 여자애가 깼는지. 아까처럼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앗, 아까 그 인간이다.”

******

“어떻게 된 거예요?”

채영이 물어왔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궁금한 건 강현도 마찬가지였다. 왜 1인용인 접속캡슐에 여자애가 같이 들어와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갔다.

“알렉스도 봤잖아요. 혼자 들어가는 거. 그 뒤로 여기에 들어온 사람 없죠?”

강현이 그렇게 항변을 했다. 여자애는 다행히 얌전히 앉은 채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알렉스는 CCTV를 살펴보고 있었다. 접속실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출입구 쪽에 확인했다. 하지만. 강현의 말처럼 강현이 캡슐에 들어가는 장면을 돌려봐도 혼자였고. JS 온라인에 접속한 사람도 어느 화면에도 잡히지 않았다.

“네. 저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밀실에 혼자 들어가서 둘이 나왔다면. 그럼 가능성이….”

알렉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혹시 임신?!”

“하하. 알렉스 님. 혹시 한국 전통 중에 사랑의 매라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강현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저런 저질 농담에는 응징이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살기에 놀란 알렉스는 펄쩍 뛰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괜찮습니다. 일단 JS 온라인 시스템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상급 퀘스트는 어떻게 된 거죠?”

“아참. 그것부터 알려드려야죠.”

그렇게 말한 알렉스는 채영은 쳐다봤다. 아무래도 마지막까지 강현과 있었던 채영이 이야기하는 게 나을 거로 생각한 거 같았다. 채영이 알렉스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마지막 상황은 이랬다.

99층을 클리어하고 100층의 문을 강현이 건드리자. 여느 때처럼 강현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래층으로 전이하는 일반적인 상황.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문도 같이 사라져버렸다. 그 때문에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덕분에 수십 명이 그 자리에 묶여버렸다. 별다른 수도 없어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때. 전체 시스템 공지가 떴다. 그 내용은.

< 축하합니다. 1234님이 상급 퀘스트 클리어에 성공하셨습니다! >

공지를 본 것은 상급 퀘스트를 진행 중이었던 인원뿐만 아니라. 게임 내에 있던 모두가 봤다.

그 이후로 모두 시스템에서 튕겨서 로그아웃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어이. 네가 한 짓이야?”

강현은 여자애를 불렀다. 옆에서 채영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던 여자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안 했어.”

거기에 알렉스가 거들어서 자세히 설명했다.

“원래 전체 로그아웃은 퀘스트 클리어 시 작동하게 되어있습니다. 서버를 완전히 비우기 위해서요. 다음에도 도퍼들의 훈련장소로 쓰기 위해 다시 오픈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말한 알렉스는 여자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저도 지하 100층에 몬스터 대신 이런 꼬맹이가 있을 줄 몰랐네요. 버그일까요?”

강현은 여자애가 JS온라인 상에서 몬스터 코어를 터트릴 정도의 괴력을 발휘하는 걸 기억하고는 알렉스더러 조심하라고 경고하려고 했다. 그때.

우득.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 이어서 알렉스의 비명.

과감하게도 세계재벌의 손목을 으스러트린 여자애는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날 버그 취급하는 거야?”

============================ 작품 후기 ============================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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