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3 회: 19장. 설계 -- >
19장. 설계(6)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요?”
“나중에 문제라도 생기면 외교 문제가….”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게요….”
다이내믹 코리아팀의 세 남자는 그렇게 한마디씩 던졌다. 우려 섞인 반응. 강현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됐다. JS온라인에 같은 팀으로 있지만. 원래 각자 정부관계자들이기도 했으니까.
현재 다이내믹 코리아팀은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무 아래 한참 떨어진 곳에서는 그레이팀과 미국팀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전황은 그레이팀이 유리. 그레이팀이 중급퀘스트 클리어를 위해 레이드 위주의 팀을 준비해온 미국팀을 기습했기 때문이었다.
그 기습은 미국팀이 한창 레이드중 일 때 이뤄졌다. 앞쪽에는 레이드 중이었던 몬스터, 뒤쪽에는 그레이팀의 기습. 이 때문에 미국팀은 제대로 손도 못 쓰고 밀렸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다이내믹 코리아팀의 리더 강현은 결정했다. 일단 대기. 그 말인즉, 위기에 처한 미국팀을 모르는 척하는 거였다.
결정사항을 말하자. 다른 남자팀원들은 처음에는 반대했다. 한미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위기에 처한 미국팀을 도와줘야 한다고 말이다. 반면에 그레이팀은 범죄자 집단. 적대시해도 꺼릴 게 없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강현의 생각은 달랐다.
“금세 미국팀이 역공에 나설 겁니다. 동맹인 일본팀의 전력도 분산되어있을 뿐 아직 건재하죠. 곧 지원 올 겁니다. 반면에 중국팀은 앞서 함정 때문에 전력손실이 컸죠.”
“그렇다면 일본팀이 나서기 전에 먼저 우리가 나서서 미국팀을 도와주면 더 좋잖아요!”
강현이 일본팀을 언급하자. 스타로드가 열을 내며 끼어들었다. 그 말에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미국팀에 다소 빚을 지우게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미국팀의 지시를 받게 될 겁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게 좋아요.”
지금 상황에서 어느 팀과 연합을 이룰 수는 있지만. 우승해서 예거아머를 손에 넣을 생각이라면 수동적으로 끌려다녀서는 안 됐다. 강현은 그 점을 명심 하고 있었다.
전투 양상은 앞서 중국팀과는 달랐다. 일본팀의 함정에 괴멸한 뻔한 중국팀과는 달리. 미국팀은 먼저 몬스터에게 떨어진 다음. 차근차근 후퇴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는 있었지만. 후방에 미국팀의 지휘관인 올리버가 치료를 위해 빼둔 전력이 지원 오자 충분히 버텨냈다.
“히야~ 미국팀이 역시 저력이 있구먼.”
빅사이즈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그 뒤 그레이팀의 좌측을 흩어진 병력을 추스른 일본팀이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난전 양상이 됐다.
“역시. 일본팀이 들어오기 전에 미국팀을 도와줬어야 했던 거 아닌가?”
“시끄렇삼. 결정한 일에 왜 이렇게 토를 다삼.”
인텔파이브가 걱정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수지가 쏟아 붙였다. 수지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는데. 국제관계니 그런 데 관심은 있는 건 아니고. 마냥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 보였다. 강현은 그 뒤로 인텔파이브가 수지에게 찍소리도 못하는 걸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전황은 다소 팽팽해진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일본팀의 지원에 사기가 오른 미국팀이었지만. 결정적으로 조합상의 문제로 우세를 점하긴 힘들어 보였다. 그때.
“저쪽에서 또 부대가 나타났습니다.”
아래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채영이 말했다. 그 말에 다들 채영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중국팀이 달려오고 있었다. 선두에는 장이평이 멋들이진 자세로 검을 겨누면서 미국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인원들의 모습은 희한하게도 말쑥해 보였다.
“기존에 페널티 있는 멤버들은 다 로그아웃시키고. 새 팀원들을 데려온 모양이네요.”
컴퓨터 기억력을 가진 채영이 금세 답을 내놓았다. 인해전술의 중국답게 게이트앞에 대기시켜준 제2진을 데려온 온 것이다.
‘하긴 총 7개 팀이 있다고 한 것만큼. 아까 봤던 숫자는 이러한 중요한 작전에 참여한 인원으로는 확실히 적었지.’
강현이 전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새로이 전력을 데려온 중국팀이 참전했다. 그와 동시에 균형의 축이 확 기울었다. 그렇게 미국팀과 일본팀은 퇴패했다.
*****
JS온라인의 게이트 밖 통로에는 돈을 내면 쓸 수 있는 스페이스가 있다. 거길 상점화해 여러 가지 아이템이나 몬스터 코어를 파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온라인 게임상에 존재하는 길드아지트 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아지트 중에서 크기로 거대한 몬스터를 가져놔도 들어갈 법한 그곳에는 테이블 하나밖에 없었다. 그 테이블은 사내 넷이 둘러싸고 앉아있었다. 패배감에 휩싸여 입을 다문 사내들이 만들어낸 무거운 분위기는 모르는 사람이 들어갔어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 공기를 깬 것은 날 선 목소리였다.
“올리버님. 이게 일본팀 때문입니다.”
테일러가 벌떡 일어나서 삿대질했다. 그 손끝에는 일본팀의 두목 하지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오와루가 역시 고개를 숙인 채 있었다. 두 사람이 별다른 반박하지 않자. 신이 난 테일러는 더욱 몰아붙였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내가 말한 데로. 일본팀을 모아서 중국팀이 그레이팀에 합류 못 하도록 막아냈어야 했어!”
숨돌릴 틈도 없이 그렇게 말한 테일러는 내내 팔짱을 낀 채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올리버를 돌아봤다.
“혹시 제 책임이라고 하지 않겠죠? 전 어디까지나 참모. 계획을 입안할 따름입니다.”
그 모습을 빠짐없이 보고 있던 하지메와 오와루는 쓴웃음을 지었다. 테일러는 두 사람의 반응을 봤지만. 모른척했다. 테일러에게 중요한 건 문책을 피하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그걸 결정하는 건 이 두 사람이 아니라. 미국팀의 리더인 올리버였다. 이정도까지 말하면 꼴사납지만. 올리버의 성격상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지는 못할 거라는 걸 테일러는 잘 알고 있었다. 올리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알고 있네.”
“역시 올리버 대장님이라면 알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테일러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상관이라도 멋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부터 그 참모 직을 그만두게.”
올리버의 말에 테일러는 혹시 잘못들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런 말도 안 되는.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
“보고서를 본 바로는 무리한 지시였어. 그리고 나도 때마침 일본팀이 응원 오지 않았더라면 위험했지.”
“그건 올리버님이 잘못하신….”
테일러는 정말 억울하다는 투로 말하다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저 막무가내인 올리버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 하지만. 올리버는 테일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래. 자네 지적이 맞을 수도 있어. 내가 지휘하는 데서 실수한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이렇게 우리끼리 책임 회피하려고 떠드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잖나?”
“저, 전. 잘못 없습니다.”
테일러는 말까지 더듬으며 뒷걸음질치다가 넘어졌다. 그런 테일러는 올리버는 무표정하게 내려다봤다.
“그건 나중에 따질 일이고. 일단은 돌아가 있게.”
올리버의 말에 테일러는 황급히 로그아웃했다. 그 모습을 본 올리버가 혀를 차고는 뒤를 돌았다. 거기에는 하지메와 오와루가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부끄러운 꼴을 보였군.”
올리버의 말에 두 사람은 시선을 피했다. 잠깐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하지메가 일어섰다.
“저는 일단 사망 페널티 때문에 어차피 게이트에 입장도 못 하고 하니.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하지메의 말과 동시에 오와루도 일어섰다. 올리버가 인사만 받는다면 바로 돌아갈 기세였다. 올리버는 그 모습을 보면서 턱을 긁었다가 입을 열었다.
“오와 우군은 페널티가 없는 걸로 아는데?”
“그렇습니다.”
하지메가 대답했다. 오와루는 의외의 질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무표정한 가운데서도 눈을 크게 뜨고 슬쩍 하지메와 올리버를 번갈아 봤다.
“그럼 오와루라도 남겨두게”
“감사합니다. 올리버님.”
하지메가 고개를 숙였다. 아직 다시 대기병력이 있는 미국팀과 달리 일본팀은 오와루를 포함한 몇몇을 빼고는 전멸한 상태. 그런 상황에서 올리버가 오와루를 쓴다는 건. 아직 미·일 동맹이 지속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깊숙이 숙인 고개를 든 하지메는 화면에 보이는 콘솔을 조작한 다음 사라졌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사라지는 걸 본 올리버는 오와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럼 더 늦기 전에 이쪽도 움직여 볼까?”
“어디로 갑니까?”
오와루가 올리버가 하는 말뜻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와루의 모습을 보고 올리버가 비릿한 웃음 띠었다.
“우리가 못 먹으면 상대가 못 먹게 해야지.”
*****
한편 F 구역 내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하하. 장이평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미·일 팀을 쫓아버렸네요.”
“클라우드님이야 말로. 혼자서 미·일 팀 모두 상대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서로의 속내는 알 수 없었지만. 한차례 전투 끝에 무사히 공적을 물리친 뒤였다. 게다가 앞으로 이 지역의 보스 몬스터인 S-급 몬스터를 상대하려고 하면 서로 힘을 합쳐야 했다. 중국팀과 그레이팀의 리더인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부하들을 수습한 뒤에 마무리를 지으러 중앙으로 향했다.
“자 어서 레이드 개시하죠”
그 뒤에 이어진 S-급 몬스터 레이드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중국팀 26명. 그레이팀18명가량. 도합 44명. 모두 현실로 따지면 1급 도퍼에 해당하는 능력을 갖춘 플레이어였다. 거기다가 현실과 달리 다소 무리한 플레이어를 해도 사망 페널티밖에 없으니. 다들 과감하게 자신의 강함을 뽐내며 몬스터를 공격했다.
거기다가 다들 근접딜러 위주의 편성. 중국팀의 장이평이 교체인원 대부분을 레이드 특화 인원으로 데려온 탓에 뒤로 물러나 있는 인원이 있긴 하지만. 몬스터를 둘러싸고 싸우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 같은 모습의 보스 몬스터는 나무줄기를 휘둘러서 공격했지만. 온 사방에서 공격을 해오니까. 금세 무너질 것 같았다.
잠시 뒤.
S-급 몬스터의 생명력이 줄 듯. 달린 이파리의 색이 생기를 잃고 바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장이평과 클라우드가 거의 동시에 손짓했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함께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려도 최후의 일격을 가한 인원이 소속된 파티만이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권한을 얻는다는 걸 그간의 조사로 잘 알 수 있었다. 물론, 파티원이 또 다른 파티를 만들어서 권한이 없는 플레이어를 초대해서 같이 내려가는 방법도 이미 가능한 걸로 확인했다.
문제는 여기까지 와서 상대팀을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 그 때문에 최후의 일격을 가할 팀이 어느 팀인지 아직 정하질 못했다.
때문에 장이평과 클라우드는 레이드 한참일 때 떨어져 나와서 그에 관해 상의했다. 결과는, 장이평이 소속된 중국팀이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로 했다.
“이제 마지막이군요. 장이평님.”
클라우드가 미소를 지으며 장이평에게 다가왔다. 장이평은 클라우드가 확실히 그레이팀의 병력을 빼놓은 걸 보고 기분 좋은 상태였다.
“아니죠. 상급 퀘스트까지 있으니까. 이제 시작입니다. 그보다 다행이네요. 저희 교체인원도 이제 얼마 없어서 레이드가 길어졌으면 큰일 날뻔했습니다.”
“아. 사망 페널티 없는 교체인원이 이제 별로 없나 보죠.”
“네. 그렇게 됐습니다. 일본팀 때문에 전력손실이 너무 커서….”
장이평이 입맛이 쓴 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은 듯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건 다행이군요.”
“네? 무슨 소리를….”
장이평은 클라우드의 말에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그때 등에 불이 난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래를 보니 등에서부터 칼이 찔러와 자신의 가슴으로 칼 끄트머리가 튀어나왔다.
“이런 무도한….”
배신.
그 글자가 장이평의 머릿속을 스쳤다. 옆을 보니 클라우드의 공격이 신호였는지. 그레이팀이 무방비상태의 중국팀을 공격했다. 장이평은 피가 머리로 쏠리는거 같았다. 다시 클라우드를 돌아보니. 클라우드는 장이평을 끝장내기 위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지막을 예감한 장이평이 분노로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돌멩이가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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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 모두 즐거운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