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9 회: 19장. 설계 -- >
19장. 설계(2)
“보스! 오랜만임다!”
강현은 자신을 부르는 우렁찬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JS온라인에 접속하자마자 우락부락한 덩치의 사내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JS온라인 내에서 자신의 접속시간에 맞춰서 기다릴만한 사람들은 단 하나.
바로 다이내믹 코리아팀이었다.
사내들의 좌우에 서 있는 [ 퍼스트영 권채영 ] 과 [ 레드파이어 함수지 ] 때문에 겨우 이 팀이 다이내믹 코리아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현이 황당해하고 있으려니까. 함수지가 앞으로 나와서 자랑스러운 듯이 사내들을 돌아보면서 이야기했다.
“어떠삼? 이제 다들 쓸만해 보이지 않으삼?”
“그, 그렇군요.”
얼떨결에 대답한 강현은 사내 한명 한명을 유심히 살펴봤다. 사내들은 하나같이 우락부락한 근육에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다. 얼굴 근육도 인상을 쓴 채로 굳어버린 듯 세쌍둥이처럼 보였다.
이 세 사람이 다이내믹 코리아의 남자 멤버. 스타로드, 빅사이즈, 인텔파이브였다. 몇 주 만에 이렇게 개성을 싹 날려버리고 공장에 찍어낸 것처럼 만든 걸 생각하면. 입이 그냥 떡하니 벌어졌다. 그것도 그냥 공장에서 찍어낸 게 아니라. 특전사 공장에서 찍어낸 듯 보였으니까.
“누님 덕분입니다.”
“아냐. 너희가 나를 믿고 잘 따라와 준 덕분이지.”
“누님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희는 없었습니다!”
떨떠름한 강현과는 달리 다들 긍정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했는지 서로 공치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분이 좋아진 수지는 딱하고 손뼉을 한번 친 다음. 세 사람에게 명령했다.
“좋다! 다들 기쁨의 함성 5초간 발사!”
“우와아아아아!!”
시커먼 사내들이 있는 힘껏 다해 소리를 지르나 강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강현은 이 패거리들과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듯 거리를 두고 있는 채영을 불렀다.
“퍼스트영님.”
“네?”
“그래도 같은 나라 밥 먹는 사이이실 텐데. 좀 말리시지 그랬어요.”
“아뇨. 제가 뒤늦게 합류했을 때는….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 그렇군요.”
채영의 말을 듣고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봐서는 수지와 남자 셋이 했던 내기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결과였다. 그보다 짚고 넘어갈 사안이 하나 있었다. 강현은 세 사내에게는 들리지 않게 귓속말로 채영에게 물었다.
“누가…. 누구죠?”
도저히 육안으로 구분이 되지 않는 세 사람이었다.
그때. 그중 한 명이 강현에게 말을 걸었다. 강현을 무시하고 견제하는 느낌은 없었지만. 이렇게 나서서 물어보는 모습이 아마도 스타로드 같았다.
“그래서 보스! 우리가 할 일은 뭐죠?”
이두박근을 자랑하는 스타로드를 보며 강현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요. 일단. 팝콘부터 사러 갈까요?”
*****
“장이평님. 이곳은 다른 게이트보다 유난히 험하군요.”
회색 안대를 찬 사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피 묻은 검을 검집에 척하니 꽂아버렸다. 아무리 게임이라고 해도 검을 마구잡이로 다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장이평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장이평은 그런 표정을 금세 감추고 회색 안대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대의를 위해서는 지금 상대의 예의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클라우드님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우니. 능히 물리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아. 저 역시 덕분에.”
클라우드는 장이평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자. 황급히 어설프게 인사를 따라 하며 허리를 숙었다. 그 모습을 본 장이평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예를 모르는 상대라면 예를 알려주는 것도 대장부의 도리일 터.
그렇게 화답을 하고 있는 두 사내의 뒤편에는 수십 명의 부하가 몬스터의 시체를 밟고 서 있었다.
이곳은 F게이트의 동쪽 입구.
F게이트는 수풀이 우거진 원시림 같았다. 하나같이 나무들도 크고 굵어서 마치 몬스터의 비율에 맞게 조물주가 만든 것처럼 느껴질 정도. 이 안에서는 되려 인간들은 미니어처 장난감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간들이 작다고 해서 약하진 않았다. 장이평과 클라우드는 각각 부하들을 이끌고 F게이트에 들어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B급 몬스터들이 달려들었고, 두 집단은 맹렬하게 싸워 몬스터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도륙한 직후였다.
“대부님. 명령대로 이 일대의 몬스터를 모두 제거했습니다.”
“클라우드님. 저희 구역도 처리 완료했습니다.
장이평과 클라우드에게 각각 부하가 다가와서 보고했다. 그걸 보고 클라우드가 장이평에게 미소를 지었다.
“일단 진입은 성공적이군요.”
장이평도 클라우드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발짝 앞으로 내밀었다.
“그럼 먼저 앞장서겠습니다.”
입구 초반부터 B급 몬스터들이 달려드는 이곳은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감춰져 있는 곳이었다. 그 입구를 찾아서 돌파하는 게 중급퀘스트 클리어의 조건. 원래 장이평의 중국팀 혼자서 클리어에 도전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이곳 F게이트 무난히 드나들었던 터였다. 그런데 그다지 내키지 않는 그레이쪽과 함께 진입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슉-
짧은 파공음이 들렸다. 미세한 소리였지만. 장이평은 그 소리의 정체를 눈치채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장이평의 눈을 노리고 날아들었던 수리검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비켜갔다. 그 수리검은 장이평의 뒤를 따라오던 부하가 검으로 쳐냈다.
챙-
“장이평님 기습입니다!”
부하가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금방 날아왔던 것과 같은 모양의 수리검이 날아왔다. 아니, 비처럼 쏟아 내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많은 수리검이 북쪽에서 날아왔다.
“매복이다!”
뒤쪽에서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런 다음 각자 들고 있는 무기를 쉴 새 없이 휘둘러서 수리검을 쳐냈다. 하지만. 탄막처럼 펼쳐진 수리검을 모두 쳐낼 수 없었던 부하들 대부분은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부하의 비명에 악이 바친 클라우드가 성난 기색으로 명령을 내렸다.
“에잇. 수리검이 날아온 방향으로 쫓아가라!”
“네!”
“잠깐 기다리시오! 적의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장이평은 클라우드를 말렸지만. 혼란스러운 와중에 클라우드는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북쪽의 수풀 너머로 달려가 버렸다. 장이평은 연락책으로 날쌘 자신의 부하를 클라우드쪽에 붙이고는 클라우드가 남기고 간 그레이쪽의 인원과 자신의 부하들을 추슬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들 한 가닥 하는 탓에 거동을 못할 정도로 치명상을 입은 부하는 한 명도 없었다.
장이평은 바닥에 무수히 떨어져 있는 수리검을 하나 집어들었다. 분명. 일본팀에서 자주 쓰는 암기였다.
‘비열한 르번 구이즈(日本鬼子)놈들.’
장이평은 불쾌한 듯 두꺼운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애당초 그레이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일본과 미국이 손을 잡았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일본만이라면 중국의 상대가 절대 못 된다.
하지만. 미국의 배경을 업고 있는 일본이라면 사정이 달랐다. 때문에 그레이와 공조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제의하면서도 서로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초입부터 손발이 안 맞아서 떨어질 줄이야.
장이평은 씁쓸함을 느꼈다.
게다가 그 사이에 돌아와 상황을 보고해야 할 자신의 부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클라우드의 부하들이 흔적을 쫓아 부대에 합류하고자 했기 때문에 별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클라우드의 부하들을 선두에 세우고 클라우드의 흔적을 찾아서 움직였다. 그 동선은 기이했다. F게이트 내부를 크게 빙 둘러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클리어를 위해서라면 방향을 찾을 필요없이 이 구역을 지탱하는 것처럼 보이는 중앙의 거대한 기둥을 향해서 움직이면 될 터.
‘혹시 양동작전?’
자신들을 이곳 F구역 외곽에 묶어두고, 미국과 일본 팀들은 중앙에서 한창 공략중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국가의 막대한 돈을 투자한 것뿐만 아니라. 몇 개월 동안 이 가상세계에서 노력했던 것을 헛되이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결국, 장이평은 손을 들어 행군을 멈추려고 했다.
그때.
다시 한 번 수리검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남쪽에서 뒤를 노리고 날아왔다. 하지만. 다들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던 탓에. 아까보다 훨씬 피해가 작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수리검을 무단투기하고 도망치는 수리검의 주인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신에 검은 천으로 된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모습. 일본팀의 닌자 모습 그대로였다.
일본팀도 이 교란작전에 꽤 인원을 투입한 듯. 닌자 복장의 인원도 꽤 많은 수였다. 눈에 띄는 숫자만 해도 대여섯은 됐다.
“쫓아라!”
장이평의 말에 편대를 이룬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추격을 개시했다. 부하들은 이미 두 차례의 공격에 잔뜩 약이 오른 상태였다. 이를 악물고 날 듯이 쫓아갔다.
클라우드의 부하들은 중간에서 갈팡질팡해 했지만. 일단은 장이평에 합류해 있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탓인지. 장이평을 따라 닌자를 추적했다.
하지만. 빠르게 도망치던 닌자들은 연막을 훌뿌리면서 손쉽게 추격을 따돌린 뒤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젠장.”
장이평이 땅바닥을 걷어찼다. 엄청난 각력에 땅이 움푹 패였다. 하지만. 애꿎은 화풀이에 불과했다. 장이평이 쫓던 일본 닌자들은 다시 한 번 숲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피해는?”
“큰…. 피해는 없습니다. 다만….”
장이평의 물음에 부하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이미 몇 번이나 반복된 기습이었다. 의외의 방향에서 수리검을 던지고 주의를 끈 다음 다시 모습을 감췄다. 단 한 명도 전투불능으로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공격력에 부상자는 없지만. 계속되는 혼란과 추격 끝에 흩어진 부하들이 몇 있었다.
‘오판이었나?’
장이평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행이었던 건 갈수록 수리검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과 몇몇 일본 닌자는 추격 끝에 잡아서 무기를 뺏고 팔다리를 부러트려 전투불능상태로 만들었다는 것 정도.
하지만. 흩어진 클라우드의 상황도 알 수 없었고, 일본 닌자들에게 너무 시간을 많이 뺏겨버렸다는 게 문제였다. 여기서 선택해야 할 것은 최악의 상황만은 면하는 것. 그건 혹시라도 중급 퀘스트를 미·일 연합팀이 클리어하는 걸 확인하고. 최대한 저지하는 거였다.
“좋아! 앞으로는 공격을 무시하고 중앙으로 돌진한다.”
장이평은 검을 휘두르면서 부하들을 독려했다. 부하들은 장이평이 선두에 서는 것을 보고는 용기백배해서 뒤를 따랐다. 하지만. 십 미터도 채 못 나가서 발바닥이 닿은 지면이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이건…. 함정이다.’
장이평은 함정에 빠지기 전에 먼저 허공을 차고 올라 함정을 벗어났다. 하지만. 뒤따라오던 대부분 부하는 함정 아래에 처박혔다. 아래쪽에는 이쑤시개만 한 가시가 무수히 많이깔려있었다.
“이런 잔꾀를 부리다니!”
“으으윽.”
“장이평님.”
부하들이 신음을 내뱉었다. 장이평은 그 소리를 무시하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장이평이 이곳에서 중앙으로 향할 것임을 예측해 함정을 팔 정도로 영리한 자가 겨우 구덩이 함정으로 만족하지 않으리라는 것 정도는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나무 위쪽에서 장이평을 향해 검을 내리꽂으며 떨어지는 닌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정면에는 무사복을 입은 자들이 발도자세를 취한 채로 달려오고 있었다. 얼핏 봐도 그 숫자는 십여 명.
장이평이 닌자들의 공격을 겨우 뿌리치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때 흙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 뒤로 함정 구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에는 적. 뒤에는 함정이라.’
그야말로 사면초가. 이것을 자초한 것은 장이평 자신이었다. 일본에서 이렇게 중국팀을 무너트릴 줄이야. 중국 당국에서 지원받은 걸 생각하면. 자신의 인생은 끝난 장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생각하며 장이평은 결심을 굳혔다.
그 결심을 바로.
‘마지막이지만. 뒤를 보이지 않겠다.’
마지막까지 결사 항전하는 것. 비록 온라인 시뮬레이션 상이었지만. 이때만큼은 그 정도의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장이평은 자신의 검을 고쳐 쥐었다. 눈앞에 일본 무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들의 승리를 확실하며 의기양양한 모습. 그 얼굴을 하나라도 일그러트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먼저 박차고 뛰쳐나가려는 찰나.
장이평과 일본 무사들의 사이로 세 명의 거한이 내려섰다. 일본무사와 장이평이 둘 다 어리둥절해 있을 때. 위쪽에서 사내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휴~ 아직 마음 편히 팝콘 먹을 때가 아닌가?”
“팝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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