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8 회: 19장. 설계 -- >
19장. 설계(1)
“으악. 완전 엉망진창이잖아.”
S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강현과 알렉스는 곧바로 루엘타워로 향했다. 루엘타워는 로비에서부터 몬스터들이 휘두른 폭력의 흔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흔적에 가슴 아파한 것은 루엘타워의 주인인 알렉스였다. 옆에서 같이 타워 지하로 내려가는 강현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 지하로 내려가는 길 내부는 몬스터의 침입이 있었는지 파괴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그걸 보면서 강현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갔을 때. 강현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현이었다.
“오빠!”
“그래그래.”
다현은 강현을 보자마자 달려와 안겼다. 강현은 그런 다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든든한 오빠의 품을 한껏 느끼고 있던 다현은 알렉스의 말에 겨우 떨어졌다.
“그래서 소유님이 안 깨어나고 계신다고요?”
“네.”
그렇게 대답하면서 다현은 소유에게 안내했다.
오는 길에 대략의 상황은 들었다. 몬스터의 습격을 받던 중 소유가 강현이 접속실에 남겨둔 예거를 먹고 능력이 발휘되었다 한다.
그 능력은 이제까지 도퍼의 주요 포지션이었던 탱커, 원거리 딜러, 근거리 딜러, 힐러와 달랐다. 강현과 같은 특이체. 그 능력은 몬스터 조련사. 테이머였다.
소유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처럼. 의료캡슐에 옮겨져서 누워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비슷하게 기절했었지?’
소유는 다현과 동물원에 놀러 갔다가 괴한들에게 납치당한 다현을 구하기 위해 앞에 나서서 막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동물원의 새들이 모두 소유의 말을 듣는 것처럼 나서서 괴한들을 공격했다고 강현은 전해 들었다.
그 일로 소유가 기절했을 때는, 강현이 힐을 쓰자 회복되어 깨어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강현이 있는 힘을 다해 힐을 해봤지만. 소유의 안색이 조금 편안해질 뿐 깨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느낌이 들어서 치료가 안 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그런 일이 닥치니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싶었다.
“음, 이건. 처음 얻은 능력을 너무 과도하게 썼을 때 벌어지는 증상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테스트용으로 보급하는 예거는 농도가 옅죠.”
알렉스가 그래도 예전과 달리 도퍼에 대한 이야기가 되니 전문가답게 나서서 증상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테스트용 예거가 농도가 옅다니 강현은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그렇다는 것은 소유가 이렇게 깨어나지 않는 건. 강현이 가지고 있었던 예거를 먹었기 때문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울먹이는 다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나 때문이야?”
“아니, 꼭 그렇다고는….”
알렉스가 당황한 나머지 그렇게 변명했지만. 다현은 들리지 않는지 그대로 소유에게 달려다가 소유의 손을 양손으로 꽉 잡았다.
“저번에도 나를 지켜주다가 다쳤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말하는 다현의 커다란 눈망울에서는 눈물이 툭툭 떨어져 내렸다.
-다현님. 아닙니다. 그때 다현님이 소유님께 예거를 권하지 않으셨다면 저도 이렇게 무사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어느새 나타난 세바스찬이 잔잔한 음성으로 다현을 위로했다. 하지만. 다현의 눈물은 그칠지 몰랐다.
“알렉스님. 혹시 다른 치료방법은 없을까요?”
의료캡슐을 살펴보고 있던 알렉스는 강현의 질문에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치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알렉스의 말에 다현이 고개를 휙 돌렸다. 충혈된 눈가는 눈물범벅이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엉망인 걸 깨달은 다현이 손목으로 눈물을 훔칠 때. 그 모습에 넋이 나간 알렉스가 중얼거렸다.
“우는 모습도 아름답….”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 쉽다는 방법이 뭐에요!”
강현이 말을 끊기 전에. 다현이 빽 하고 소리쳤다. 그 말에 알렉스는 당황한 채로 알렉스답지 않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니. 쉽다는 말은 아니고…. 간단할지도 모르겠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정말.”
다현이 이해 안 간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눈물을 쏟아낼 거 같았다. 힘든 사건을 겪은 뒤 정신이 불안한 상태. 강현은 왠지 부모님의 장례식 때 다현의 모습이 겹쳐지는 거 같았다. 한쪽 구석에 아려오는 마음을 겨우 다잡고 다현을 진정시켰다.
“다현아, 그만해. 일단 소유씨부터 치료할 생각 해야지.”
“으응.”
다현은 강현이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진정이 되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알렉스가 간신히 들리도록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해요.”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강현이 한숨을 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이 상황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보고 있던 세바스찬이 있었다.
“세바스찬님. 다현이 좀 쉴 수 있도록 방으로 데려가 주세요.”
세바스찬은 강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현을 달래서 치료실을 빠져나갔다. 처음에는 소유옆에 있겠다며 버텼지만, 세바스찬이 어떻게 달랬는지. 이내 순순히 세바스찬을 따라갔다.
“죄송합니다. 알렉스님. 계속 말씀하시죠.”
알렉스는 다현이 나가는 모습에 정신이 팔려있다가, 강현의 눈빛을 보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간단하다는 건 이런 말이었어요. 예거의 효능이 발휘되지 않을 때. 강현님의 치료가 먹혔으니까. 예거 효능이 제거한 다음에 치료하자는 거죠.”
“그럼 기다리면 되겠네요.”
예거의 효능은 12시간. 12시간만 기다리면 된다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알렉스의 표정은 어두웠다. 알렉스는 강현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기다리는 걸로는 안됩니다.”
“네?”
“수면상태. 아니. 저렇게 의식불명 상태일 때는 체내의 예거 효능이 사라지는 게 너무 느립니다.”
“그게 어느 정도인가요?”
“약 10년 정도요.”
“네?!”
강현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생각보다 너무 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12시간까지 가는 약을 먹었는데 어떻게 해서. 10년이나 체내에 있습니까?”
“그게 몬스터 코어에서 추출한 물질을 농축시켜놓은 건데. 체내외 흡수된 다음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체외로 배출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던 알렉스는 소유를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유님 같은 경우에는 체내로 융합해버린 물질이 멈춰있는 상태라서요.”
“수술해서 제거하는 방법은요?”
“능력을 발휘한 뒤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너무 위험해요.”
알렉스의 말에 강현은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건 현 상황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현은 알렉스와의 대화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알렉스는 치료할 수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해버릴 성격이지. 이렇게 스무고개 하듯 문답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길 바라는 강현의 말에 알렉스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치료방법은 있습니다. 예거의 효능이 있건 없건 단순하게 도퍼의 능력을 가라앉히기만 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도퍼능력을 가라앉힌다?”
강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도퍼의 능력을 흡수하는 특이체 도퍼의 능력을. 알렉스는 직접 본 적 있었다.
*****
“안쪽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죠?”
강현이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안쪽상황이란 바로 [ JS온라인 ]내의 상황.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퀘스트 공략이 정체되어 있었다.
그 짬을 통해서 잠깐 다현이랑 놀아주려고 했던 차에 그레이에 의한 습격, 이어서 몬스터 폭탄이라는 위험한 사건을 겪었던 차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강현이 오프라인에 나와 있을 때 사건이 벌어져서 다행이었다고 할까?
S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후. 강현은 다현과 함께 루엘타워를 떠나서 알렉스가 마련한 비밀 벙커로 숙소를 옮겼다. 물론 [ JS 온라인 ] 접속기도 같이. 그 사이 외부에서는 루엘타워 및 파괴된 뉴욕의 복구가 진행되었다. 뉴욕 주에서뿐만 아니라 미 정부에서 강현을 찾았지만. 현재는 치료받는다는 핑계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쇼맨십이 강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강현은 한국에서 엄청나게 시달린 경험이 있음에도 스포트라이트 받는 데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극구 사양했었다.
최근 여러 사건 때문에 [ JS온라인 ]에 신경을 못 썼었다. 하지만. 강현을 대신해서 계속해서 게임 내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던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은 강현의 질문에 수화기 너머로 대답했다.
-계속해서 각 세력 간의 상황이 변하고 있습니다. 산발적인 전투는 아직 벌어지긴 하지만. 예전처럼 대규모 전투는 없습니다. 대신 전투원을 회복시키고 장비확보에 주력하는 등,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제 예상으로는 근일 내에 F 게이트로 JS온라인의 대부분이 세력이 집결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 상황을 담당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사람은 채영이었다. 현재 채영은 여러 가지 사정상 한국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 때문에 타임스퀘어에 놀러 갈 때도 동행하지 않았다.
이어서 강현의 앞에 있는 모니터에 현재 JS온라인 내의 정보가 차례로 떴다. 채영다운 알기 쉽고 중요한 정보들이 빽빽한 보고서였다. 그걸 보던 강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채영이 말한 데로 대부분 다른 구역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던 세력 간의 다툼이 멈췄다. 하지만. 이것은 폭풍전야나 마찬가지였다. 그 증거로 다툼을 멈췄던 각국의 세력들은 꾸준히 F게이트에 정찰병을 보냈으니까.
원래 JS온라인 내의 상황은 각 세력의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때문에 예거 아머 획득을 위한 중급퀘스트 공략은 요원해 보였었다. 지금 변화를 일으킨 당사자는 다름 아닌 강현이었다. 게임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모든 분쟁지역마다 들려서 쪽지를 남겼다. 쪽지의 내용은 각각 달랐다.
특히나 사이가 나쁜 일본과 중국에서는 서로 간의 선전포고를 했다. 그레이와 미국에는 각각 적대 세력에 대한 거짓 정보를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도퍼의 능력을 빼면 일반인이 여러 나라를 홀릴 치밀한 계획을 설계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최대한 성실히 정보를 수입해서 파악한 만큼. 세력별로 약점을 노린 서신을 보냈었다. 그건 좋은 빌미가 되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상대방이 도발했다는 명분으로 삼아서 상대방을 짓밟는 데 주력할 터였다.
그레이와 미국에는 각각 일본이 미국과 손잡고, 그레이와 중국이 손잡을 거란 소식이 일차적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함께 F게이트를 공략해 중급퀘스트를 공략할 거라는 소식. 여기에 도저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일본에서 미국을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일전에는 은근히 거절의 의사를 비췄을 때와 달리 일찍 내민 손을 잡으면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일본과 미국이 협력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중국 측에서는 당장에 그레이에게 연락을 취했다.
JS온라인 내의 파벌이 두 가지로 나뉘고, 상대 측이 중급퀘스트 공략을 하는지 감시하고 있었다. 서로 감시하는 게 들킬 때마다 상대방이 중급퀘스트 공략을 준비한다는 소식에 힘을 실어줬다.
그렇게 강현이 뿌려둔 씨앗이 싹을 틔우려고 하고 있었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예상대로.’
머릿속으로 그러진 설계도를 점검한 강현은 채영에게 몇 가지를 더 전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럼 그쪽에서 시간 맞춰서 접속하시기 바랍니다.”
-네.
전화를 끊은 강현은 옆방의 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그곳에는 의료캡슐에 평온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소유와 소유의 곁을 지키다가 잠든 다현이가 보였다.
강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알렉스의 말을 떠올렸다. 그 말 때문에 강현은 예가 아머를 한층 더 필사적으로 얻어야 했다. 그레이에게 예거로 활성화된 도퍼 능력을 흡수할 수 있는 특이체가 있다는 정보. 일전에 다현의 구출작업을 벌이면서 대대적으로 그레이 조직을 소탕하려 했지만. 놓쳤다고 했다. 결국, 강현이 예거아머를 얻은 다음 그레이측과 협상을 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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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연참이 예정되어있습니다.;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