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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전사-86화 (8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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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S급 몬스터(5)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열이 뻗친 잭스네이크는 자기도 모르게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괴력에 손에 들려있던 애꿎은 태블릿 PC만 종이처럼 찌그러졌다. 잭스네이크는 몬스터의 대량출현으로 난리가 난 뉴욕을 구하기 위해서 국토안전부에서 파견한 선발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미 연방군 내 도퍼중에서도 성격 급하기로 유명한 잭스네이크였다. 뉴욕의 이상 사태가 발생한 소식을 듣고, 소집명령이 내리기 전에 벌써 자신의 휘하부대를 인솔해 뉴욕으로 향했을 정도였다.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는 항상 문답 무용으로 쓸어버린 그를 당황하게 만든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직속상관 앞에서 대머리의 부하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VIP의 부탁’이었기에 그냥 흐지부지 넘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캡틴. 알렉스 루엘의 요청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말도 안 되잖아. 몬스터를 치료하라니.”

잭스네이크는 머리를 얼싸안았다. 몬스터들을 치료하라니. 말도 안 되는 지시였다. 차라리 뉴욕의 모든 몬스터들을 깡그리 처리해버리라고 하면 모를까.

“애당초. 몬스터가 우리 편이 되어서 다른 몬스터에 대항해서 싸운다니. 그런 일이 가능한 거야?”

그렇게 되물었지만. 부하들도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녀석 하나 없었다. 결국, 잭스네이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결정을 했다. 바로 상부에 보고해 지시를 기다리고 대기한다는 결정이었다.

그때.

잭스네이크가 있는 임시막사에 부하의 제지를 무시하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분명 지금은 붕괴해버린 뉴욕 주 방위군 소속의 도퍼였다. 하지만 잭스네이크는 모르는 척 인상을 썼다.

“넌 뭐야?”

“주 방위군 메인탱커인 짐이라고 합니다.”

“흥. 패배자가 무슨 낯짝으로 여기까지 왔어?”

잭스네이크의 핀잔. 거기에 대꾸한 것은 짐이 아니라. 짐의 뒤에서 나타난 소피였다.

“패배자라니 말씀이 심하시네요.”

“이 여자는 또 뭐야.”

잭스네이크는 이 침입자를 나무라는 대신 출입구를 지키고 있던 부하를 노려봤다. 부하는 시선을 피하면서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보스. 워낙에 막무가내라.”

그 말에 잭스네이크는 부하를 나무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모욕준 짐의 반응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짐은 자신을 대신해 열 내고 있는 소피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니. 소피. 난 괜찮아.”

짐은 모욕을 꾹 눌러 참았다.

부대가 괴멸한 뒤 강현과 알렉스가 도와준 덕분에 간신히 이곳에 합류했다. 후방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지원군으로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원래 자신이 해야할 일. 즉, 뉴욕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더구나 자신이 소속된 부대가 괴멸한 만큼. 이곳의 지휘를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은인인 알렉스와 강현이 도움을 청하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잭스네이크는 짐과 그 뒤의 소피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앞서 짐을 도발했지만. 그건 짐의 기를 눌러놓기 위해서였다. 전우를 잃고 분노에 사로잡혀 작전을 그르치는 경우를 잭스네이크는 몇 번이나 목격했으니까.

이번에도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그걸 핑계로 부대에서 내보낼 요량이었다. 예를 들어 선두에 서서 몬스터를 다 쓸어버릴 테니까. 맡겨달라고 하던가 말이다.

“그래. 어차피 상급부대에서 지시가 올 때까지 시간도 좀 남았고, 무슨 용건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들어나 볼까?”

허락이 떨어지자. 짐은 발뒤꿈치를 딱 소리 내며 붙인 다음 꼿꼿이 서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누구보다 군인다운 자세. 그런 다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힐러를 동원해 몬스터를 치료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알렉스 루엘이 부탁이라고요.”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나 다름없지.”

잭스네이크가 짐의 말을 정정하면서 투덜거렸다. 잭스네이크는 짐도 자기 생각에 동의하리라 여겼다. 그 몬스터들에게 얼마 전에 전우를 뺏긴 당사자니까 말이다. 하지만. 짐의 반응은 달랐다.

“알렉스 루엘의 말대로. 몬스터들을 치료해야 합니다.”

잭스네이크는 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경황이 없어서 제 보고가 제대로 전달 안 됐나 본데, 저희 부대가 주 방위 부대긴 하지만. 어지간한 몬스터에게 전멸당할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습니다.”

“그거야. 워낙에 대규모로 또 동시다발적으로 몬스터들이 출현한 것 때문 아닌가? 그에 대비한 훈련을 받거나 경험한 적 없을 테니.”

“아닙니다.”

짐은 잭스네이크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눈에 힘을 주고 잭스네이크를 쳐다봤다.

“부대가 전멸한 것은 S급 몬스터 단 한 마리 때문입니다. 캡틴의 포지션과 등급은 모르겠지만. 1등급 탱커인 제가 겨우 일격을 방어해낼 정도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짐의 말에 주위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알렉스 루엘이 S급 몬스터 사냥에 성공한 이후로, S급 몬스터의 사냥이 어렵지만 가능하다는 말만 전해질뿐. 무지막지하게 세다는 것 빼고는. 그 공격력이 얼마나 되는지 데이터가 없었다. 알렉스가 레이드에 성공했을 때도 정석으로 싸운 게 아니었으니.

“아니. 그건 방어해낸다고도 할 수 없죠. 그냥 일격에 즉사를 면할 정도니까요.”

“....”

짐의 정정에 잭스네이크가 입을 다물었다. 더욱 머리가 복잡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몬스터들을 치료해 방패막이로 쓰는 게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어떻게 몬스터들끼리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치료하기 위해 다가간 힐러들이 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상태에서 소중한 부하를 보낼 수는 없었다.

“지금은 움직일 수 없다.”

“이대로라면 S급 몬스터를 퇴치할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되어버릴지도 몹니다.”

“그럴 리가. 차라리 몬스터끼리 싸움이 끝나고 남은 몬스터를 처리하는 게 나아. 일거양득이잖아.”

“지금 상황에서는 S급 몬스터가 쉽게 이겨버릴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힘이 많이 빠졌을 거야.”

잭스네이크와 짐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유쾌한 걸음걸이로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멋대로 길러 산발이 된 검은 머리 아래에는 술과 담배에 찌든 아저씨의 모습이 있었다.

“지저분하게 남자 둘이 면상을 붙이고 왜 이렇게 꽥꽥거려?”

남자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독설을 뱉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에 대놓고 화내지 못했다. 저 사람에게 걸려서 좋은 꼴은 못 본다는 건 두 사람도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때.

“퍼스트 도퍼!?”

뒤에 있던 소피가 뒤늦게 정석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깜짝 놀랐다.

*****

“오. 여기도 미인이 있잖아.”

정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소피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익숙한 듯 빠르면서도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순식간에 소피는 정석의 품에 안겼다. 정석은 느끼한 목소리로 소피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우리 몸이나 풀러 갈까?”

“꺅.”

소피는 난데없는 성희롱에 있는 힘을 다해 정석을 밀어내고 탈출했다.

“크크.”

정석이 재밌다는 듯이 소피의 엉덩이를 보고 웃고 있을 때 그 사이에 짐이 끼어들어 왔다.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장난이야 장난. 여기 분위기가 너무 무겁길래.”

정석의 변명에 짐이 항의하려 할 때. 이번에는 잭스네이크가 짐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보다 상부의 지시를 받고 내려온 것인가요?”

퍼스트도퍼라면 미국 내에서도 알아주는 1급 도퍼였다. 이런 그가 국방부의 명령으로 지원, 아니. 부대를 이끈다면 이보다 좋은 상황이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잭스네이크의 기대와 달리 정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S급 몬스터가 등장했다는 말에 온 거야. 근데 왜 여기서 대기 중이야?”

“아, 그러셨군요. 조만간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올 겁니다. 이쪽에 앉아서 쉬시지요. 곧 음료를 내오라고 하겠습니다.”

잭스네이크는 개인적으로 왔다는 정석의 말에 실망했지만. 부드러운 어조로 정석에게 자리를 권했다. 퍼스트 도퍼라면 추후 작전할 때에 든든한 전력이 될 테니까. 정석은 자리를 권하는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남자 엉덩이로 데운 자리에 앉으라니. 그건 무슨 신종 고문이야. 그건 됐고, 알렉스 루엘과 유강현이 힐러가 필요하다고 연락 왔다며.”

“그걸 어떻게?”

“주위에 도퍼들에게 무전을 때렸던데.”

그 말에 잭스네이크가 시선을 부하에게 돌렸다. 부하는 황급히 몇 군데에 연락을 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 잭스네이크는 입맛이 씁쓸했다.

“아무리 VIP라도 해도 이렇게까지 멋대로 굴어도 되는 거야?”

잭스네이크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문뜩 떠오른 생각에 절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알렉스 루엘이라고 해도 돈으로 도퍼들을 움직일 순 없겠지.”

알렉스의 루엘의 경우에는 이미 미국 내에서도 미국의 이익보다 돈을 긁어모으는 데 급급한 수전노라는 이미지가 강해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때문에 대부분 우수한 도퍼들은 돈이 풍족한 만큼. 돈으로 회유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상부에서는 이 기회에 예거를 빌미로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눈엣가시 같은 알렉스를 망신줄 절호의 기회로 여길지도 몰랐다. 실제로 알렉스가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예거 제작 특허 같은 걸 무시하고 유사품을 마구 만들어 낼 수도 있을 테니까.

“캡틴!”

그때 막사 안으로 부하가 뛰어들어왔다. 점점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막사의 주인인 잭스네이크는 버럭 화를 냈다.

“또 무슨 일이야?”

“임시막사 앞에 도퍼들이 잔뜩 모여들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왜?”

그렇게 되물으면서 잭스네이크는 아예 막사 밖으로 나갔다. 차량이 통제되어 비어있는 도로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있었다. 잭스네이크가 나오자. 대표인듯한 사람이 얼른 나서서 말을 걸어왔다.

“알렉스 루엘과 미스터 유가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 모두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대표가 그렇게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자. 하나같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의용군이었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그에 맞춰서 부대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잠깐. 알렉스 루엘의 무전에 따르면 매우 급박한 상황이라고 들었는데요. 저희는 그들을 도우러 온 겁니다.”

“음.”

의용군 대표의 말에 잭스네이크가 입을 다물었다. 대화에 이상한 기류가 보이자. 대표의 뒤에 있던 의용군 측에 서 있던 한 남자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와서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몬스터가 점거한 부모님의 땅을 미스터 유가 돌려줬다!”

그러자 옆에서 “옳소!”라는 외침이 연이어 들렸다. 거기에 덧붙여. “우리 집도 역시.” 라든가, “정부에서는 모른척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라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렇게 의용군으로 모인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하자.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강현은 미국에 건너와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몬스터 레이드를 벌였다. 미국내의 도퍼들과 사냥터를 겹치지 않기 위해서 택한 곳은. 미국 정부에서도 관리, 혹은 포기한 지역. 그곳을 차례로 회복한 한국인 도퍼에 대한 영웅담은 미국 내에서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잭스네이크가 정부에 불만을 표출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도퍼들을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지을 때. 잭스네이크 옆으로 한 남자가 쏙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과장된 몸짓으로 손뼉을 쳤다.

“좋아. 좋아. 다들 한마음이지? 얼른 도와주러 가자. 다들 내 얼굴은 알 테니까 따로 소개는 않겠어.”

그 소리에 의용군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가 남자의 정체를 눈치채고는 함성을 질렀다.

“퍼스트 도퍼다!”

“근데, 정부 측 사람 아냐?”

“글쎄. 난 도울 수만 있다면 상관없어.”

의용군의 반응에 퍼스트 도퍼는 만족한 듯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린 방향은 몬스터들이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이었다.

.”좋아 여기서부터는 우리 팀이 지시한다”

그 말과 함께 정석과 함께 움직이는 도퍼들이 좌·우측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정석이 발걸음을 뗄 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퍼스트 도퍼!”

그 소리에 정석은 발걸음을 멈췄다. 돌아보니 잭스네이크였다. 이곳의 지휘관임에도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처사 때문인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쪽도 도와주러 오고 싶으면 오라고.”

“이렇게 가버린 걸 상부에 보고하면 미국에서도 안 좋게 볼 거요.”

미국을 등에 업은 협박. 하지만 정석은 가소로운 듯 씩 웃었다.

“한번 나라 버린 몸, 두 번 못 버릴까?”

그렇게 말하면서 정석은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어차피 곧 나라가 무의미해질 때가 올 텐데 뭘.”

============================ 작품 후기 ============================

달립니다. 달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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