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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전사-84화 (8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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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S급 몬스터(3)

“그레이들이여. 정말 멋진 광경이지 아니한가?”

회색 두건을 쓴 사내가 극장스크린처럼 커다란 모니터화면을 보면서 감탄했다. 빠진 이빨 사이로 쉭쉭 거리는 소리가 나와서 음산한 뱀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런 기분 나쁜 사내의 뒤로 똑같은 두건을 쓴 사람들이 커다란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두건의 숫자는 뱀 목소리의 사내를 포함해서 전부 7개였다.

회색 두건이 보고 있던 화면에는 여러 개의 크기가 다양한 창이 뉴욕의 곳곳에 몬스터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에서 중앙에 전체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화면에 보이는 것은 S급 몬스터였다.

“그렇습니다. 그레이. 몬스터 코어의 액체를 동식물에 주입했을 경우 몬스터가 만들어지는걸. 확인했을 때 다음으로 짜릿한 발견이었습니다.”

늙은 사내의 말에 이은 건장한 사내의 낮은 목소리에도 만족스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거기다가 E급 몬스터 코어를 사용했을 때는 D급 몬스터가 발생하니까. 효율적이죠. 생산실에서는 그렇게 저급 몬스터 코어로 상급의 몬스터를 만들어내서 거기에서 몬스터 코어를 적출해 내는 중입니다. 벌써 창고가 가득가득 찼답니다. 몬스터 코어 가격이 폭락해버릴까 봐. 전부 내다 팔진 못하지만요.”

사내의 말을 이어받은 요염한 여자의 목소리.

“이번에는 일반 동식물이 아니라, 도퍼를 숙주로 삼아 몬스터 코어를 주입했어.”

“그래도 설마 A급 몬스터 코어로 S급이 만들어질 줄은 몰랐지만 말야.”

“도퍼들은 예거라는 몬스터 코어를 정제한 약을 지속적으로 섭취했잖아?”

“그 잔여물이 체내에 남아있어서 그렇다?”

“응.응. 내가 말이 그말이야.”

“응.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쌍둥이들이 한마디씩 주고받듯이 이야기를 했다.

“어쨌거나. 이걸로 우리 그레이는 세계의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되었군요.”

쌍둥이의 옆에 있던 남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쓰고 있던 안경을 추켜올렸다.

“제일 방해꾼이었던 알렉스군에게도 한 방 먹일 수 있게 되었고요. 호호.”

여자는 두건 밖으로 튀어나온 핑크빛 곱슬머리를 새하얀 손으로 배배꼬면서 말했다. 즐거운 목소리였다.

“좋아!”

쿵.

늙은 사내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소리가 멈췄다. 그 적막감을 음미한 늙은 사내는 이내 자신이 그 적막을 깼다.

“균형을 위한 혼돈을!”

늙은 사내의 선창에 모두 한목소리가 되어 외쳤다.

“균형을 위한 혼돈을!”

******

“꺅!”

다현이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앞을 지켜주던 방탄유리가 셀 수 없이 많은 균열을 내며 갈라졌기 때문이다. 어떤 화기로도 쉽사리 뚫을 수 없는 방탄유리에 이런 막대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는 몇 없었다.

다현의 두 배만 한 크기의 그 존재는 시커먼 껍데기로 둘러 쌓여있었다. 삐죽하게 튀어나와있는 두 개의 흉측한 더듬이가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면서 주위를 탐색했다. 흡사 거대한 바퀴벌레가 몬스터화 한듯한 혐오스러운 모습. 때문에 다현은 눈앞의 방탄유리에 금이 가서 흐릿하게 보이는데 다행이라 여길 정도였다.

바퀴 몬스터는 자신과 목표물을 가로막고 있는 투명한 막이 아직도 그 역할을 그만두지 않은 걸 보고는 다시 한 번 시커먼 날개를 펼치고 몸통 박치기를 해왔다. 딱딱하고 날카로운 껍질에 힘이 실려서 방탄유리에 굴복을 요구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더 넓게 펴지고 세세해졌다. 쩌저적하는 갈라지는 앞으로 얼마 못 버틸 게 분명했다.

“히이익! 언니!”

놀란 다현은 옆에 있는 소유의 품에 안겼다. 소유는 한 손으로 그런 다현을 껴안으면서 이를 질끈 다문 채 몬스터를 노려봤다.

-몬스터들이 여기까지 침입하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옆에 있던 세바스찬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깥을 쳐다봤다. 이곳은 루엘타워의 제일 지하에 예거시뮬레이션 접속기를 운영하고 있던 접속실이었다. 여러 방어시설을 부수고 쳐들어오다 못해. 여기까지 점령당할 판이었다.

유리문 앞에는 방탄유리를 부수고 들어오려는 몬스터 외에도 각종 소형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했다. 세바스찬이 오랫동안 루엘가의 집사로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폴. 이곳의 도퍼는 당신만 남았나요?

“네. 그렇군요.”

예거를 먹어 눈앞의 바퀴 몬스터 못지않게 몸을 부풀리고 있는 폴이 대답했다. 피곤한 기색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앞서 루엘타워 방어를 위해서 상주하고 있던 도퍼들은 모두 몬스터들한테 쓰러진 채였다.

“그래도 이상하네요. 몬스터들이 이렇게 집요하게 건물 내부까지 들어오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곳에 뭔가 있는 거 아닌가요?”

-알렉스 루엘님께서 뭔가 만드신 장치가 있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도움이 못 되어드리겠네요. 그래도. 조금만 버티면 분명 구하러 오실 겁니다. 그러니까. 두 분은 최대한 뒤쪽에 숨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세바스찬은 다현을 슬쩍 쳐다봤다. 부족한 자신의 몸이 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주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다만 아쉬운 건. 주인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도퍼가 아니라는 것.

쿵.

세바스찬의 상념을 깨듯이 다시 한 번 방탄유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하러 오실 거면 조금만 서둘러 줬으면 하는데요.”

폴은 그렇게 실소를 흘린 다음. 다시 긴장한 표정으로 앞쪽을 쳐다봤다. 다음번 충돌할 때는 못 버티고 부서질 거 같았다.

한편. 다현은 연구실 구석에 있는 접속캡슐 뒤에 웅크린 채 조금이나마 몸을 숨기려 했다. 어차피 문이 뚫려서 몬스터가 쳐들어오면 다 죽은 목숨이었지만. 실내를 뒤흔드는 기분 나쁜 굉음과 토악질할 만큼 느끼한 냄새가 구석에 틀어박혀 있게 했다. 그때. 캡슐 한쪽에 엄지손가락만 한 케이스를 발견했다. 익숙한 모양의 케이스였다..

“이건…. 오빠가 먹는 약이 들어있는 케이스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케이스를 얼른 낚아챘다.

“오빠가 이걸 먹어야 몬스터랑 싸울 수 있다고 했어.”

그 안에는 예거가 들어있는 케이스였다. 무방비하게 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곳 접속실까지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은 애당초 알렉스와 강현과 채영. 그리고 직접 손수 청소하러 들어오는 세바스찬외에는 출입할 수 없는 기밀장소였다.

“다현아. 그거 함부로 먹으면 안 돼.”

소유는 도퍼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 수지 덕분에 예거의 존재에 대해서 잘 알았다. 예거 한 알의 가격도. 도퍼에게 얼마나 중요한 약인지도. 소유의 만류에도 다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죽게 생겼는데 이것저것 가리게 생겼어요?”

다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냉큼 예거를 삼켰다. 예거가 식도를 넘어가는 걸 느끼면서 다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마지막으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장창 하면서 유리가 떨어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작게 들렸다. 방탄유리의 특성상 잔뜩 금이 간 채로 떨어져 나간 탓이었다. 폴은 접속실안으로 굴러들어온 바퀴벌레 몬스터를 몸으로 받아냈다.

“크윽!”

이대로 바퀴벌레 몬스터를 방패막이로 삼아서 떨어진 방탄유리 부분을 메꿀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퀴벌레 몬스터가 날개를 펼치자마자 폴은 못 견디고 구석에 나가떨어졌다.

그때. 눈을 감았던 다현이 눈을 부릅뜨면서 외쳤다.

“죽어라!”

세바스찬과 소유. 심지어 눈앞의 인간들을 찢어 죽일 작정이었던 바퀴벌레 몬스터까지 다현의 박력에 움찔했다. 하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에잇 글렀어.”

다현이 분하다는 듯 발을 굴렀다. 그 작은 틈 사이에 다시 몸을 일으킨 폴이 다현의 앞을 막아섰다. 바퀴벌레가 휘두르든 날카로운 앞발을 양 팔뚝으로 막아냈다.

“세바스찬님의 힘이 되어드려야 하는데. 오빠는 뭐하는 거야? 언니도 얼른 먹어봐요.”

“자, 잠깐.”

발을 구르던 다현은 이번에는 예거를 다현에게도 밀어 넣었다.

꿀꺽.

소유가 예거를 삼키고 있을 때. 폴이 다시 나가떨어졌다. 이번에는 치명상을 입은 듯 엎드린 채 신음을 흘리고 있어서. 다시 나서서 방어하기 힘들어 보였다. 여기에는 힐러도 없으니까. 그렇게 비어있는 공간에 세바스찬이 양팔을 벌려 소유와 다현.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나를 죽이기 전까지 두 사람에게 손을 댈 순 없다.

진중한 말투의 세바스찬이었지만. 바퀴벌레 몬스터는 볼일 없다는 듯. 더듬이로 세바스찬을 밀어버렸다. 소싯적에 무술을 배우고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아 괴력을 발휘하는 세바스찬 이었지만, 몬스터의 공격에는 마치 종잇장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세바스찬님!

다현이 그런 세바스찬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듯 불렀다. 이대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현은 정신 나간 것처럼. 소유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졌다.

“우리 어떻게 해요. 언니. 언니도 꽝인 건가요? 아니면. 뭔가 힘이 생기는 거 같아요?”

하지만. 소유는 도퍼의 힘을 발휘하기는커녕 되려 탈력한 모습이었다. 처음 다현은 소유가 공포 정신을 잃고 눈이 뒤집힌 거 같았다. 절망한 다현이 소유를 안은 채로 주저앉았을 때. 소유의 입가에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느껴져….”

그리고. 그런 두 사람에게 바퀴벌레 몬스터가 가위를 여러 개를 겹쳐놓은 듯한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두 사람을 잘게 찢어낼 기세였다.

*****

“강현님. 도착했습니다.”

알렉스는 강현을 데리고 최고속으로 루엘타워로 날아왔다. 얼마 안 걸린 시간이었지만. 루엘타워속으로 몬스터들이 침입해 들어왔다는 연락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통신이 뚝 하고 끊어졌다.

“네. 고생하셨어요.”

그렇게 말한 강현은 알렉스가 쓰고 있는 헬멧 위에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원래는 안고 날아올 생각이었지만. 강현이 자신이 알렉스에게 안겨있으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 못 한다는 말에 하는 수 없이 다른 수단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서 타다니. 예상 밖이었어.’

강현은 자신이 딛고 있던 알렉스의 헬멧을 박차고 옆의 건물에 뛰어올랐다. 원래라면 다현과 소유를 구하기 위해서 루엘타워 내부로 곧바로 진입해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바뀐 현장의 상황이 강현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보다. 저 몬스터들이 왜 저러는 거죠?”

루엘타워에 들러붙어 있는 몬스터들은 어느새 떨어져 나왔다. 되려 지금은 루엘타워를 지키듯 서 있었다. 지키는 대상은? 루엘타워로 천천히 향하고 있었던 S급 몬스터였다. S급 몬스터가 기다란 팔을 휘둘렀다. 손끝에 달린 촉수로 루엘타워를 휘감으려 할 때. 커다란 귀를 가진 늑대 형태의 몬스터가 촉수를 향해 뛰어들어서 촉수를 물려고 했다.

이어서 다른 몬스터들이 S급 몬스터를 향해서 뛰쳐나갔다. 몬스터들 중에서는 S급 몬스터보다 훨씬 큰 몬스터도 있어서 S급 몬스터는 그대로 찌그려 질 것처럼 보였다.

“몬스터들끼리 싸우는 거죠? 저거.”

강현이 알렉스쪽으로 돌아보면서 물었다. 하지만. 알렉스는 지금 몬스터들끼리 벌이고 있는 아비규환을 질린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알렉스는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사람이 만든 병기가 몬스터에게 통하지 않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냈었다. 동양사를 배울 때 알게 된 사자성어를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이이제이. 사람의 공격이 안 통한다고 한다면. 몬스터끼리 싸우게 만드는 거였다.

문제는 몬스터끼리 싸우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몬스터는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가지고 있는 적개심이 매우 높았다. 마치 몬스터의 생의 목적이 인간을 배제하는 것처럼. 하지만. 몬스터끼리는 복종하는 경우는 가끔 보여도 서로 다른 개체끼리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이거나 하지 않았다. 즉. 단순히 가둬둔다고 해서 서로 싸우는 게 아니었다.

결국, 거기서 등장한 게 인간을 미끼로 싸우는 둘 사이에 둬서 서로 인간을 공격하게 만들고, 그 공격을 서로 맞게 유도하는 거였다. 그런 식으로 해서 겨우 두 몬스터가 싸우게 만들어서 최초의 몬스터 코어를 획득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S급 몬스터에 대항해서 각각 다른 몬스터들이 무리를 이뤄 싸운다? 이제까지 몬스터를 연구해온 알렉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삐삐삐

그때 넋이 나가 있던 알렉스에게 연락이 왔다. 연락이 온 곳은.

“루엘타워에서 세바스찬으로부터입니다.”

알렉스가 기쁜 목소리로 강현에게 발신처를 알렸다.

============================ 작품 후기 ============================

연재 복귀기념 연참중입니다.

추천 응원 많이 부탁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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