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0 회: 17장. 습격 -- >
17장. 습격(3)
알렉스는 순식간에 몬스터들에게 포위됐다. 나타난 쥐처럼 생긴 몬스터들은 천적을 보는 것 마냥 흉흉한 눈초리로 알렉스를 봤다. 일촉즉발의 상황.
다행히 강현이 고층빌딩 위에서 파악하기에는 나타난 몬스터들은 C등급 전후. B등급을 혼자서 잡았던 예거아머의 성능이라면 알렉스 혼자서 포위망에서 빠져나올 수도,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도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거였다. 몬스터 레이더를 봤을 때, 알렉스를 둘러싸고 있는 몬스터의 수가 전부가 아니라. 이곳을 중심으로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일단 이 자리를 피하고 나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다만. 강현이 파악하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왜 안 올라오는 거지?’
알렉스는 몸을 피할 생각이 없는 듯 막대기처럼 생긴 무기를 든 채로 몬스터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 표정은 여지없이 결연해 보였다. 마치, “내가 도망치면 이 일대의 주민들은 누가 지키는가?” 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처럼.
“호오.”
강현은 의외라는 듯 알렉스를 쳐다봤다. 저 정도의 부자, 기득권자가 도망치지 않고 영웅처럼 외세의 침략에 맞선다. 이것도 한국에서 보기 힘든 노블레스 오블리주 라고 볼 수 있을까?
새삼 알렉스가 새로이 보였다.
몬스터들도 당당하게 맞서는 알렉스의 기백에 눌린 듯. 둘러싸기만 할 뿐 경계하고 있었다. 그때. 알렉스가 거리가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강현님!”
자신을 부르는 비장한 목소리에 강현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현과 소유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겠지만. 루엘타워에 이미 도착해서 보호받고 있을 만큼. 잠깐이라면 알렉스를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네. 알렉스님. 몬스터 쓰러트릴 거면 손 좀 빌려드릴까요?”
“아닙니다.”
단호한 거절의사. 전사의 바람이라면 기분 나쁘지 않게 들어줘도 되리라. 강현은 그 의기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루엘타워로 돌아가서 다현이와 소유씨를 보호하고 있겠습니다. 가능한 한 빠르게 처리하고 오세요.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강현은 포획한 두 녀석을 들쳐메고 뛰어가려고 했다. 그때. 알렉스가 다시 강현을 불렀다. 다급해진 목소리였다.
“강현님. 그게 아니라…. 지금 그쪽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네?”
“아까 이 예거 아머가 고장 났거든요.”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을 살짝 자신의 등 쪽으로 향했다. 자세히 보니 알렉스의 등 쪽에서 미세하게 연기가 피어올라 오고 있었다. 강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알렉스를 쳐다봤다.
*****
“강현님은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그렇다고 청혼하시면 떨어트릴 겁니다.”
강현의 빈정거림에 알렉스가 얼굴을 붉혔다. 예거아머가 부서져서 날 수 없는 알렉스를 품에 안은 채 열심히 점프해 가고 있던 강현은 순간 균형을 잃고 착지할 때 살짝 비틀거렸다.
물론, 금방 전까지 몬스터들 사이에 포위되어있던 알렉스를 강현이 뛰어들어가서 구해내긴 했지만 말이다.
한편, 이번 사태의 중요한 용의자인 붉은두건과 스킨헤드는 강현의 등에 매달려있었다. 그러다가 알렉스와 강현이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통에 대화의 내용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현의 품에 안겨있는 알렉스가 갑자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곤, 붉은 두건이 질색했다.
“히익. 이 동양인 게이 같아. 이 둘이 사귀는 사이 아냐?”
“뭐라고?! 나도 볼래.”
호기심이 동한 스킨헤드가 발버둥 쳤다. 그 때문에 다시 점프해서 눈앞에 보이는 고층빌딩 쪽으로 향하던 강현의 자세가 조금 흐트러졌다.
“가만히 좀 있어!”
겨우 무사히 착지한 강현이 소리치자. 눈치껏 무슨 말인지 짐작한 둘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둘의 대화를 알아들은 알렉스는 이번에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이 되었다. 그리곤.
‘저 녀석들을 살려 보내면 안 되겠군.’
속으로 이렇게 다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꺅. 이게 무슨 상황이야?!”
강현과 알렉스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루엘타워의 로비에 나와 있던 다현과 소유가 한 덩어리가 되어 돌아온 남자들을 보고 놀랐다. 강현이 로비에 들어서고 문이 닫힌 후. 알렉스를 내려주고, 스킨헤드와 붉은 두건을 내동댕이쳤다. 그 때문에 둘은 기절했다. 다현은 재빨리 다가와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팔꿈치로 강현의 옆구리를 꾹꾹 찔렀다.
“공주님 안기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아냐.”
“소유 언니. 우리 오빠 안 뺏기려면 긴장해야겠는걸?”
다현이가 뒤쪽으로 소유를 쳐다보면서 이야기했다. 소유는 재밌다는 듯 미소로 답했다. 다현의 장난에 강현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알렉스가 허리를 굽혀 강현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평생 이렇게까지 타인에게 고개 숙인 적이 없었다.
“강현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다현이 들으라는 듯, 다현 쪽을 힐끗 본 다음 큰 소리로 말했다.
“왜 감사하냐 하면 예거아머가 고장 나서 로켓엔진을 쓸 수가 없었는데. 강현님이 친히 운반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연극조의 딱딱한 말투. 다현은 웃겨주겠는지 한 손으로는 배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소유의 어깨를 짚은 채 간신히 주저앉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알렉스는 괜히 소리를 질렀다.
“세바스찬!”
“네.”
세바스찬은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즉답하면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알렉스는 바닥에 엎어져 있는 스킨헤드와 붉은 두건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이 녀석들, 지하감옥에 처박아둬.”
“네 알겠습니다.”
늘 그렇듯 정중하게 대답한 세바스찬은 직접 두 괴한에게 다가갔다. 강현은 순간 걱정이 됐다. 꽉 묶어둔 탓에 저항할 순 없겠지만. 그 질량이 얼핏 봐도 세바스찬의 두 세배는 되어 보였으니까.
“저기 도와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세바스찬은 하얀 장갑을 낀 손바닥을 들어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 다음 그 두 사람을 번쩍 들어서 사라졌다. 강현은 의외의 괴력에 깜짝 놀랐다.
“저기. 알렉스님. 세바스찬님은 도퍼아니죠?”
“네? 아닌데요? 무슨 일이라도….”
“아, 아닙니다.”
세바스찬이 사라진 후 모두 지하의 통제실로 내려갔다.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알렉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태블릿 PC를 조작하고 있었다. 뻘쭘하게 있던 강현이 알렉스에게 물었다.
“밖의 상황은 어떤가요?”
“뉴욕 각지에서 몬스터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난리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태블릿 PC를 강현에게 내밀었다. 마침 화면에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몬스터가 출현해서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 뉴욕 곳곳의 상황을 비춰주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난립하고 있으니 대피하라는 자막이 각종 언어로 계속 나왔다. 이어서 속보가 나왔는데, 일전에 예거 아머를 입은 채 나왔던 알렉스의 모습이었다. 앵커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뭐라고 영어로 떠들고 있었다. 그걸 듣다가 갑갑했던 강현은 알렉스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는 건가요?”
“몬스터 발생 현장에 예거아머를 입고 나타났던 알렉스 루엘이 사라져서 사망으로 추정된다고….”
거기까지 한국말로 읽어주던 알렉스가 말을 멈췄다. 그때 마침 엘리베이터도 딱 멈췄다. 알렉스는 통제실의 수화기를 들어서 여기저기 연락하기 시작했다.
“이런. 난 건재하다고 언론사에 알려. 곧 출동해서 몬스터들 쓸어버릴 거라고!”
영어로 말했지만. 대충 알아들은 다현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했다.
“또 싸우러 가는 거예요? 알렉스님은 도퍼도 아니잖아요.”
다현의 말에 강현도 놀랐다.
“괜찮습니까? 예거 아머도 고장 났다면서요.”
“아직 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알렉스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 대 더 있으니까요.”
알렉스가 이야기한 건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 우승자에게 지급할 예정이었던 예거 아머였다. 어차피 알렉스 거였으니 어떻게 사용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였다. 여차하면 고장 난 알렉스 전용의 예거아머를 수리해줘도 될 테니까.
“제 컬러로 도색은 못 했지만. 이럴때를 위해서 만든거니까요.”
그렇게 말한 알렉스는 스위치를 누르면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세바스 들었지? 예비 예거아머 기동준비 시작해. 어차피 저번에 시동가동은 무사히 마쳤으니까. 테스트는 됐고. A급 몬스터 코어부터 꺼내서 장착하도록.”
-네 마스터.
그렇게 지시한 알렉스는 한쪽으로 가서 섰다. 그러자 로봇팔들이 알렉스에게 달려들어 고장 난 예거 아머를 하나둘씩 분리하기 시작했다.
강현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
분명히 예거 아머를 입은 알렉스는 강하다. B급 몬스터도 단독으로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니까.
문제는 몬스터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 방송화면에서도 보이고, 강현의 몬스터 레이더에 표시되는 몬스터의 숫자만 해도 백 단위였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알렉스가 혼자서 예거 아머를 입고 설쳐서 될 일이 아니었다.
다현이 안절부절못하면서 강현과 알렉스를 쳐다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까 방송 보니까 몬스터들이 많던데 위험하지 않나요?”
알렉스는 다현의 말에 다소 굳은 표정을 풀고 평소처럼 웃으면서 응대했다.
“어머. 다현씨가 제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흥. 몰라요. 몰라. 언니 우리는 가요.”
“앗.”
다현이 얼굴을 붉히면서 알렉스의 발등을 꾹 밟고는 소유의 팔을 잡아끌고서 사라졌다. 소유는 웃으면서도 강현 쪽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렉스님. 여기는 안전하겠죠?”
“물론입니다. 루엘타워의 지하 벙커는 핵폭탄이 와도 끄떡없습니다. 이론상 A급 몬스터의 공격도 방어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자신 있게 말한 알렉스는 화면을 조작해 여러 개의 CCTV 화면을 띄웠다. 화면에는 벙커 내부에 숨어서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외부에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모습이 각각 지역별로 비쳤다.
“이렇게 뉴욕 곳곳에 저희 루엘사에서 미리 만든 벙커에 시민들이 대피하고 계시죠. 저쪽 벙커는 B~C급까지는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오!”
강현이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전 세계에서 돈을 끌어다 모으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있을 줄이야.
“그렇다면 나머지는 미군이라도 출동하기를 기다리면 되겠군요.”
“아뇨. 최대한 일찍 몬스터들을 퇴치해야 합니다. 인명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야죠.”
알렉스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다시 한 번 내쉬고는 생각해둔 말을 꺼냈다. 지금 시점에서 알렉스가 가장 고대하는 말이기도 제안이었다.
“그럼.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알렉스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강현을 쳐다봤다. 재벌가의 총수답게 강현이 도와주는 조건으로 뭔가를 요구할 거라는걸.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조건의 내용.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지금 준비 중인 예거 아머를 달라고 하시는 거면 불가능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아닌 사람이 입고 있으면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거기다가 도퍼들이 착용했을 때 예거 아머의 성능이 기존의 도퍼들의 능력에 더해서는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한가지 능력만을 가지고 있는 도퍼라면 다른 능력이 생기는 셈이니까 좋을 수도 있지만. 모든 능력을 다 갖추고 있는 강현님은 아니죠. 말하자면 강현님이 이 예거 아머를 쓰시는 건 낭비입니다.“
강현의 말에 알렉스가 폭풍처럼 대답했다. 그 말에 강현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한쪽에 한참 준비 중인 새로운 예거 아머를 봤다.
“그래도 날아다니는 건 꽤 괜찮아 보였는데요.”
강현의 대답에 알렉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걸 보고 강현이 손을 내저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예거 아머건은 제대로 JS온라인에서 우승해서 가져갈 테니까요. 제가 말하는 조건은 다른 겁니다.”
그렇게 분위기를 환기한 강현은 자신의 조건을 말했다.
“제가 원하는 건….”
============================ 작품 후기 ============================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서 어영부영하다보니
눈깜짝하는 사이에 3일이나 연재를 쉬어버렸네요.ㅠㅠ
정말 죄송합니다.__)
항상 이야기하지만 연중은 절대 없습니다;ㅁ;
ps.16장은 이전처럼 조절해야될거 같네요. 자르거나 이름을 바꾸거나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