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9 회: 17장. 습격 -- >
17장. 습격(2)
“고무 인간인가? 재밌는걸.”
강현은 자신의 앞에 꼼짝도 못 하게 된 스킨헤드를 툭툭 건드렸다. 기다랗게 팔을 늘여서 자신을 잡으려고 하길래. 몇 번 피했더니. 자신의 팔에 스스로 휘감겨 엉켜버린 것이다. 허둥지둥하다가 결국에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강현은 그 꼴을 보고 안쓰럽다는 듯 혀를 차고는 재빠르게 다가가서 팔을 잡아당겨 묶어버렸다. 이제 자력으로는 못 빠져나올 터였다.
그런 다음 묶어놓은 팔 한쪽을 잡아서 당기니 쭈욱 늘어났다. 아직 한참 늘어질 거 같았다. 스킨헤드는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다음 얼굴을 붉히면서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강현은 FUCK이라는 말밖에 못 알아들었지만. 자신에게 욕하는 줄 알고는 복부를 걷어찼다.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명확하게 이해한 스킨헤드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강현의 눈치를 봤다.
“좋아 좋아. 조용히 하라고.”
강현을 협공하려고 대기 중이었던 선글라스는 벌써 줄행랑쳤다. 그와 더불어 총기를 쏘던 부하들도 자신들의 공격이 무용한 걸 깨닫고는 자리를 피했다. 이 모든 과정이 채 몇 분도 안돼서 일어났다. 딱히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뉴욕을 지키는 도퍼들이 출동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정말이지 예거를 미리 먹고 오길 잘했단 말이야. 어쨌든, 이쪽은 이걸로 해결됐고.”
강현은 고개를 힐끗 돌려서 알렉스 쪽을 쳐다봤다. 알렉스는 붉은 두건과 어울려 열심히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붉은 두건은 매고 있는 커다란 가방 안에서 공구를 계속해서 꺼내서 알렉스에게 던졌다. 드라이버. 망치. 스패너, 펜치, 롱노즈, 커터칼, 육각렌치, 소형 톱, 프라이어, 렌치, 라쳇핸들등 별의별 공구들을 집어 던졌다. 에너지가 실려있는 하나하나의 투척 물은 묵직하게 알렉스의 몸을 노렸다.
마구잡이로 던지는 거 같아 보여도 희한하게도 하나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알렉스는 더는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등에서 꺼낸 기다란 막대기로 자신을 노리면서 날아오는 공구를 쳐냈다. 차근차근 하나씩 쳐내면서 꽤 근접한 알렉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공격은 이제 나한테 안 통한다니까.”
그 상황을 보고 있던 강현은 뭔가 수상쩍음을 느꼈다. 그 징조는 알렉스를 상대하고 있던 붉은 두건의 표정. 자신의 공격이 번번이 무력화됐음에도 여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조심해!”
강현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붉은 두건이 움직였다.
“이거나 먹어라!”
붉은 두건이 가방을 들었다. 공구가 무한히 들어있을 것 같았던 그 가방의 안쪽은 텅 비어있었다. 알렉스가 그걸 확인하고 의문표를 떠올리기 전에 공격이 시작됐다. 시작점은 붉은 두건이 아니었다. 알렉스가 쳐낸 공구들이 중력을 무시하고는 천천히 떠올랐다. 알렉스가 이상함을 눈치챈 순간 빠른 속도로 공구들이 붉은 두건이 들고 있는 가방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경로에는 예거 아머를 입은 알렉스가 서 있었다.
퍼퍼벅. 수많은 쇳덩어리가 알렉스 루엘의 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크윽.”
예상치 못한 곳의 공격. 하지만. 알렉스에게 치명상을 입힐 정도는 아니었다. 애당초 예거 아머의 등판에는 로켓엔진이 달려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좋아. 이걸로 날아서 도망 못 치겠지.”
붉은 두건이 이죽거렸다. 그 말대로 예거아머의 로켓엔진 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하지만. 알렉스는 로켓 엔진보다 더욱 큰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알렉스님.
“알고 있어 세바스.”
알렉스는 세바스의 염려를 단번에 막았지만, 등줄기로 식은땀이 쭈욱 흘러내려 가는 게 느껴졌다.
‘이런. 몬스터 코어가….’
로켓엔진 사이에 있던 예거 아머의 동력원이 파괴된 듯 전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게 느껴졌다. 한편 알렉스를 묶어두는 데 성공한 붉은 두건은 주위를 둘러보고 혀를 찼다.
“이런 멍청한 녀석들. 보디가드 하나 제대로 못 처치하다니.”
스킨헤드는 쓰러졌고, 선글라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쪽에는 강현이 멀쩡하게 서 있었다. 강현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보디가드라는 말에 주변을 둘러봤다.
‘경호원이라니. 나 말야?’
“역시 이번 습격의 리더인 내가 둘 다 해치워버려야지.”
붉은 두건의 말과 함께 파공음이 들렸다. 두리번거리는 강현의 뒤를 노리고 날카로운 일자 드라이버가 날아갔다.
*****
루엘 타워로 향하는 레스큐 드론. 그 안에는 다현과 소유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다현은 어두운 표정으로 타임스퀘어 쪽을 쳐다봤다. 그쪽에는 싸움이 한창인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뉴욕에 오고 나서 갖은 사건에 휘말리고 있는 다현이었다. 주위에 걱정을 끼칠까 봐 평소에는 아무 일 없는 듯 밝은 모습이었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많았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시내 한복판에서 폭탄테러와 함께 총알 세례까지 받았다. 보통의 여자아이라면 트라우마가 걱정될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거나 마찬가지. 어두운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다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오빠는 괜찮을까요?”
펭귄인천상륙대첩때는 방송에서 강현의 강함에 대해서 몇 번이나 특집으로 다뤘지만. 이전에도 얼마든지 강했던 도퍼들이 싸우다가 죽었다는 기사를 몇 번이나 본 적 있었다.
게임 폐인으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오빠도 볼썽사나웠기에. 도퍼라는 직업을 가지고 몬스터를 퇴치하는 일을 하는 오빠를 말릴 생각은 없었지만. 걱정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강현씨는 몇 번이나 날 구해줬는걸.”
옆에 앉아있던 소유는 그런 다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줬다. 부드러운 손길이 닿자 다현은 조금 안정이 되는 거 같았다. 그때 갑자기 소유의 손짓이 멈췄다.
“근데 금방은 강현씨더러 알렉스씨 도와주라고 했잖아.”
“그야. 그 사람은 천재라고 주위에서 떠받들어주는 것치고는 허술해 보여서요.”
다현이 쭈뼛거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소유가 아무 말 없이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걸 보고는. 그대로 소유에게 달려들어 가슴팍에 안겼다. 풍덩 하며 절묘한 쿠션 감을 느끼며 얼굴을 가슴에 파묻었다.
“걱정된단 말이에요. 오빠도. 알렉스도.”
그 말에 소유는 재차 다현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을 거야. 강현씨라면.”
*****
“한번 안 통하는 거 알면. 그만둘 때 안됐어?”
강현은 뒤로 날아온 일자 드라이버를 보지도 않고 왼손으로 잡았다. 정확히는 암쉴드화 된 [ 콩 ]이 강현의 손을 자동으로 움직여서 잡은 거였지만. 강현이 자신의 무기를 잡아내자. 붉은 두건이 웃음을 터트렸다.
“멍청한 녀석. 이번에도 잡을 줄 알았다!”
그렇게 외치며 붉은 두건이 자신의 공구가방을 열었다. 자신의 무기를 잡은 강현을 빠르게 끌어들일 계획이었다. 이대로라면 여러 가지 공구와 부딪혔다가 가방에 그대로 쳐박혀서 엉망이 될 터였다.
하지만. 강현은 전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 가방을 쓸 거 같았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대꾸한 강현은 [ 콩 ]을 순식간에 건틀릿소드 모드로 바꿨다. 게 한 바퀴 휘둘러서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구를 막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잘라냈다. 쇳덩어리를 종이 자르듯 잘라낸 다음. 정면을 향해 겨눴다. 여전히 빠른 속도로 쏟아져 가고 있었다. 그 도착점에는 붉은 두건이 있었다.
“히익.”
강현의 기세에 놀란 붉은 두건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잡아당기는 힘이 약해졌지만. 강현은 그대로 뛰어들어서 건틀릿 소드를 휘둘렀다. 놀란 붉은 두건이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천재일우로 살았지만. 공구가방은 푸욱 하는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붉은 두건은 가방이 찢어진 것 따윈 중요하지 않은 듯 그대로 무릎을 꿇고 손을 들었다.
“I Surrender! Surrender!”
절박하게 외치는 말의 뜻은 강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용납하기에는 김이 샜다. 아무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마구 집어 던지고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강현은 붉은 두건을 몇 번 걷어찬 다음에 스킨헤드 쪽으로 끌고 가 스킨헤드의 늘어나는 팔을 이용해 서로 꼼짝 못 하게 묶어버렸다.
그런 다음 주위를 둘러보니 사태가 심상치 않았던 걸 느꼈던지 다른 녀석들은 이미 줄행랑 친지 오래였다. 이곳에는 스킨헤드와 붉은 두건밖에 남지 않았다.
“이 녀석들은 어쩌죠?”
“금방 주 방위 도퍼들이 도착할 테니 인계하고 철수하죠.”
강현의 말에 굳은 표정으로 알렉스가 대답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저기압이래?’
알렉스의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강현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순식간에 바뀐 상황에 이제는 신경 쓸 수 없었다.
땅이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
크와아아아아앙-
땅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균열이 아니었다. 공간이 흐트러지면서 마구잡이로 구겨지고 비틀어졌다.
‘좋아. 멋진 소리야.’
1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선글라스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현상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스위치가 야기한 결과였다. 리무진을 폭파했던 지점 근처에. 미리 몬스터 폭탄을 심어뒀었다.
‘나라도 이걸 터트리고 싶어서 터트리는 건 아니란 말이야.’
굳이 잘못을 탓하자면 자신들을 무참히 짓밟은 저 알렉스 루엘과 보디가드 때문이다. 선글라스는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다. 자신의 동료 둘은 이미 무력화되었다. 서로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선글라스는 자신이 동료 둘보다는 조금은 더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의 양산을 살펴보고 있으려니. 이쪽의 승산이 도저히 점쳐지지 않았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그레이께서 안배해두신 게 이 몬스터 폭탄이었다.
민간에서는 도퍼 범죄조직이라고 부르는 그레이였지만. 선글라스는 이 조직의 상부에도 발을 담금만큼. 그 실체를 잘 알고 있었다. 곧 다가올 몬스터 세컨드 웨이브를 사전에 막는 것이 그레이의 일차적인 목표였다. 그걸 위해서라면 다소간의 희생은 불가피. 그레이가 벌이는 범죄들은 세컨드 웨이브에 비하면 미미한 피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스킨헤드와 붉은 두건도 숭고한 희생을 하는 셈.
“너희 희생은 그레이님께 꼭 전하지.”
선글라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
땅의 비명이 끝나고 폭탄이 심어져 있던 곳을 중심으로 굵직한 파동이 지나갔다. 강현은 불안한 예감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진이야?”
-체크했습니다. 마스터. 이건….
[ 콩 ]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즉각적인 대답을 못 했다. 하지만. 이내 [ 콩 ]도 강현도 자신들의 센서에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말도 안 돼….’
분명히 예거를 먹고 몬스터 레이더가 활성화되어있을 터였다. 강현이 감지할 수 있는 범위는 적게 잡아도 1키로미터 내외. 그런데 갑자기 땅에서라도 솟아난 듯 수십 수백의 점이 몬스터 레이더에 잡혔다. 몬스터 레이더에 표시됐다는 말은? 몬스터라는 소리였다.
그때.
“헤이! 나 좀 풀어줘. 젠장.”
“이것 좀 제발! 몬스터가 우릴 죽이러 올 거야.”
한쪽 구석에 묶여있던 강현은 뭐라고 소리치는 스킨헤드와 붉은 두건을 쳐다봤다. 뜬금없는 지진에 어리둥절해하고 있던 알렉스가 강현이 쳐다보다 황급히 통역해줬다.
“풀어달라는데요? 몬스터가 나올 거라나.”
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알렉스. 하지만. 강현은 한 덩어리가 되어있는 스킨헤드와 붉은 두건을 집어들고 일단 가장 튼튼해 보이는 빌딩 꼭대기로 뛰어 올라갔다. 그런 다음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알렉스님도 이리로 올라오세요!”
그때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벽돌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건물 안에서 몬스터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내일은 일정상 휴재할거 같습니다.
요즘 추운데 바쁘기까지 하니 괴롭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