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74화 (74/113)

< -- 74 회: 15장. 다이나믹 코리아 -- >

15장. 다이나믹 코리아(5)

“유령이라니…. 이 게임 안에서요?”

강현이 이해 안 간다는 듯이 되묻자. 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유령이나 귀신의 존재를 안 믿습니다만. 저희가 당한 일은 유령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겠네요.”

“그, 그렇삼. 미니 크랩의 집게발을 막으려고 하던 차에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심. 그런 다음에 마구 공격을 당하고 정신 차려보니. 게이트 밖으로 쫓겨나 있었단 말이삼.”

“그때 마지막 보였던 글자가 ‘유령’이었어요.”

채영과 수지가 서로 릴레이 하듯 이어 말했다. ‘유령’이라는 글자가 보였다고 유령이라니. 갑작스러운 상황에 채영이나 수지 둘다 어지간히 많이 당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세 명의 남자들을 둘러보았지만 이보다 나은 대답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모두 사망 페널티 때문에 얼굴에 그을음이 생기고 옷이 찢어진 모습이었으니까.

수지의 라이딩슈트도 찢어졌다. 허벅지와 팔목 쪽에 찢어진 부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왼쪽 어깨부터 비스듬하게 가슴팍까지 찢겨서 가슴이 옷 밖으로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페널티가 끝나면 옷도 자동 복구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도 수지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몸을 사리지 않고 움직였다.

고개를 숙여 강현에게 사과한다든가 팀원들의 어깨를 팡팡 치면서 다음번에 클리어하면 괜찮다고 위로하는 통에 가슴이 몇 번이나 탈출하려고 했으니까. 라이더 재킷이 고탄력인 탓에 겨우 막을 수 있었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타로드, 빅사이즈, 인텔파이브. 이 세 남자가 이상했다. 그렇게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이 이었는데, 희한하게도 수지가 친근하게 어깨를 두드리는데도 화내지 않는다니.

‘퀘스트 한번에 그렇게 친해졌나? 아니면….’

남자 셋이서 수지의 찢어진 옷 너머로 가슴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도 역시 남자라 그런가? 그래도 실제 모습을 알게 되면 이불에다 하이킥을 날릴 거라고 생각이 드니까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직 등급이 낮아서 약 1시간 정도면 사망 페널티가 해제될 터였다. 하지만 강현은 남자들의 트라우마를 고려해서 조처를 해주기로 했다.

“인벤토리.”

인벤토리 안에서 망토처럼 생긴 천 옷 계열 방어구를 하나 꺼냈다. 특별한 능력이 있거나 한 건 아니고 모습을 감출 때 유용할까 싶어서 구해둔 거였다.

“자. 이거 쓰세요.”

“고, 고마우심.”

“별거 아니에요.”

강현은 아무렇지 않게 망토를 수지에게 둘러주었다. 그러자 수지가 움찔했다. 보통 때는 대범해 보이지만. 가끔 저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강현은 웃기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빅사이즈와 인텔파이브는 강현과 수지의 모습을 보고 서로 투덜거리면서 속닥거렸다.

“젠장. 내가 먼저 할걸.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귀엽잖아.”

“어차피 넌 그런 거 없잖아.”

“뭐야? 왜 시비야. 너도 없으면서.”

점점 싸우는 목소리가 커지는 두 사람을 보고, 강현은 한숨을 내쉬면서 다가갔다.

“다들 그렇게 싸울 힘은 남아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때. 옆에 기운 없이 잠자코 있던 스타로드가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 그렇게 잘난 리더는 어떻게 할 거야? 어차피 등급을 떠나서 여기 초급 퀘스트를 클리어해야지. 그쪽을 도와줘도 도와줄 수 있는 거잖아.”

“네. 그야 그렇죠.”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강현은 솔직히 인정했다. 일단 이 팀을 추스르고 퀘스트를 진행해야지. 중급퀘스트건, 상급퀘스트건 클리어할 수 있을 테니까.

앞서 본 일본팀과 중국팀의 대결을 생각해봐도 혼자서는 답이 안 나왔다. 거기다가 이번 퀘스트를 해결하면 리더로서의 권위도 생길 터.

그렇다면 그 ‘유령’의 정체는 무엇일까?

‘게임 내의 숨겨짐 몬스터나 이벤트인가?’

처음 떠오른 생각은 그거였다. 강현은 슬쩍 몸을 돌려 [ 콩 ]에게 물었다.

“[ 콩 ] 들었지? 이 게임 관련해서 유령이라는걸 들어본 적 있어?”

-체크했습니다. 이 시뮬레이션 내에 관련된 콘텐츠나 유닛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그래?”

강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게이트가 열리면서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옷차림새가 엉망인 게 수지 일행과 똑같았다.

“젠장.”

“방금 뭐였어?”

“팬텀이라고 적혀있었는데…?”

“보스 몬스터 옆에 그런 거 있단 소리 들은 적 있어?”

“에잇. 짜증 나. 이거 별로 재밌지도 않구만 나 안해.”

“헤이. 매튜. 이거 투자받는데 얼마나 들었다고.”

자기네들끼리 한참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저쪽에도 수지네 일행이 보스 방에 마주쳤던 속칭. ‘유령’을 마주친 거 같았다. 거기에 문득 생각이 미친 후 게이트의 패널을 보니까, 금방 나온 게이트의 입장인원이 0명이 아니었다.

“이거 안에 다른 플레이어가 들어 있는 거 아냐? [ 콩 ] 어떻게 된 거야?”

-네 현재 이 게이트안에는 1명의 플레이어가 입장해 있습니다.

“게이트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어도 되는 거야?”

-초급 퀘스트의 게이트는 A95부터 Z95까지 랜덤으로 생성됩니다만. 최근 플레이어들의 급증한 관계로 여러 파티의 중복입장을 허용해둔 상태라고 합니다.

거기까지 이해가 갔다. 첫 번째 초급 퀘스트니만큼 파티를 안 맺고 있어도 클리어 되게 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진행이 빨라 질 테니까.

“그보다 알렉스 루엘이 나보고 설정 변경은 안 된다고 안 했었나?”

-체크했습니다. 게임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과 치팅은 다르니까요.

강현이 진정상한 투로 이야기하자. [ 콩 ]이 바로 정정했다. 이 플레이어가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클리어하는데 보조하게 되어있는 만큼. 그런 부분에선 예민해 보였다.

“뭐해? 리더. 뭐라도 좀 해보지그래?”

조금 기운이 낫는지. 뒤쪽에서 스타로드가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왔다.

그렇다면.

“퍼스트영님. 아까 몇 번 게이트로 갔는지 기억하세요?”

“사람이 그걸 어떻게 일일이 기억해? 바보야?“

“D95 게이트입니다.”

강현의 물음에 스타로드가 딴죽을 걸어왔다. 하지만. 채영이 즉답하니 그 뒤로는 입을 다물었다.

“좋아요. 사망 페널티 끝나면 해당 게이트로 따라 들어오세요. 아시겠죠. 레드파이어님?”

“알았삼. 근데, 혼자서 유령은 어쩌고...?”

그 말에 강현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유령이라는 거 잡으러 가보게요.”

*****

“어휴 지겨워.”

진은 동굴의 천장에 박쥐처럼 거꾸로 붙어서 하품을 했다. 그러자 하품에 반응했던지 아래쪽에서 철컥철컥 소리가 들렸다. 진의 아래쪽에는 이 던전안의 보스인 미니 크랩이 있었다. 다른 미니크랩보다 몇 배나 큰 이 보스는 한참 동안 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가. 다시 진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커다란 집게발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진은 킥킥거렸다. 하지만 이내 웃음을 멈추고 처음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거야? 나 같은 인재를 여기에 써먹다니 그레이님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참.”

진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천장에 붙여놓은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레이라는 조직에 들어가서 도퍼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이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는 그 자리에 펄쩍 뛸 듯이 좋아했었다. 그리고 이 안에서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차근차근 등급을 높여나가서 원딜 3등급을 획득했을 때도. 따로 불려가서 몇천 억대의 무기를 손에 쥐었을 때만 해도 말이다.

하지만.

진에게 주어진 특수임무라고는 초급 퀘스트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방해하는 하찮은 거였다. 거기다가 그에게 주어진 장소라고는 이 텐트뿐. 겨우 몸 하나 뉘일 만한 좁은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누워서 혼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혼잣말밖에 없었다.

“그래도 금방 왔던 파티는 좀 웃겼지. 신나서 전열도 흐트러트리면서 마구 달려오더니만. 제일 처음 들어온 게 아마 원딜이었지?”

금방 전의 습격을 회상하면서 진이 몸을 뒤척였다.

“금방 자리 잡고 사냥하길래 결정적인 순간에 이 암막을 던졌지. 그랬더니 으아악! 으아아악!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더라니까. 그것도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대박이었어. 으아악! 으아아악!”

비명소리를 따라 하면서 한참을 킬킬대던 진은 갑자기 몸을 멈췄다.

“그보다 이제 초급 퀘스트하러 오는 플레이어들도 적은데. 다음 교대 때는 진짜 그레이님한테 여기 좀 빼달라고 연락해야겠다. 혼자서 일하니까 정말 사람이 망가지는 거 같아. 혼잣말만 늘고.”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위쪽에서 울리는 알람을 보고는 표정을 바꾸었다.

“새로운 먹잇감이 도착했네. 이번에는 한 번에 끝낼 게 아니라. 좀 괴롭혀 볼까?”

*****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강현은 느긋하게 통로를 가로질렀다. 이 게이트 안의 미니 크랩들은 수지 일행이 잡고 나서 새로이 생성되기 전이라 그런지 한 마리도 없었다.

“그럼 여기 인던이라고 하면 안 되겠네? 안 그래 [ 콩 ]?”

-체크했습니다. 마스터. 인던은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인던이란 인스던트 던전의 줄임말로…. 아, 아니다.”

강현은 [ 콩 ]에게 설명하려다가 말았다. 게임용어를 이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게이트 종류가 많아도 게이트 별로 똑같은 던전이 생성되면 인던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느새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거기에는 미니 크랩의 보스 몬스터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강현의 기억보다는 다소 작은 모습이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만 해도 아직 정식 오픈전이라 커다란 집게발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거대했던 버그가 있었으니까.

‘오랜만이로군.’

강현이 천천히 다가가면서 무기를 꺼내려고 할 때. 갑자기 시야가 깜깜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타났다?’

강현은 침착하게 재빨리 뒤로 굴렀다. 이내 바닥을 때리는 둔탁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리고는 시야가 깜깜해진 이유를 깨달았다. 공간이 어두워진 게 아니었다. 강현이 뒤로 구른 만큼 시커먼 비닐 같은 게 온몸을 옮아내고 있었다. 꼼짝달싹할 수 없어 보였다.

그때 강현의 머리 위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혼자 들어온 녀석답게 대처가 좋은데? 그 상황에서 뒤로 굴러서 피하다니. 어차피 단번이 쓰러지지 않게 힘 조절을 했지만. 어쨌거나 심심하지 않겠어. 이제부터 내가 마음껏 가지고 놀아줄게.”

남자의 의기양양해하는 말에 대한 강현의 감상은 딱 하나였다.

‘사내자식이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네.’

“엉? 뭐라도 대꾸해봐. 너 벙어리야? 아니면 언어장애인 인척 하는 거야? 이거 너무 겁을 집어먹었나 보네. 너 아직 살아있으니까 뻐끔뻐끔 이야기 해도 돼.”

강현이 말이 없자.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거기에 머리가 아파진 강현은 그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결국 자신의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이거 풀어주고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내가 미쳤다고 정정당당하게 상대해? 너라면 그러겠느냐? 얌전하게 맞으면서 앓는 소리나 들려주지그래. 너라면 좋은 소리를 낼 거 같은데. 억울하고 분하지? 어쩌느냐. 그게 네 운명인데.”

말을 마친 남자는 강현에게 다시 공격을 가했다. 강현도 딱히 저 남자가 풀어줄 거라는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단지 순간적으로 자신의 말을 듣게 해서 주의를 끌 생각이었으니까. 부웅! 하고 남자가 둔기를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강현을 노린 공격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이미 그 둔기가 범위 안에 있지 않았다.

“뭐야?”

남자가 예상 밖의 상황에 놀라서 소리쳤다. 강현은 남자의 주의를 끄는 동안 단도를 꺼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막을 잘라냈다. 자신의 처음으로 산 무기에는 못 미쳤지만. 이런 용도로 항상 구비 해둔 상급 품이었다.

강현의 눈앞에 드러난 남자는 왜소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망치를 들고 있었다. 그 망치 끝에는 여러 개의 뿔이 송곳처럼 달려있어서 무시무시해 보였다.

하지만. 강현은 전혀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그럼. 이 녀석을 잡아서 내막을 들어볼까?’

============================ 작품 후기 ============================

오늘 날짜를 보니 12월12일이네요.

다들 즐거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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