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3 회: 15장. 다이나믹 코리아 -- >
15장. 다이나믹 코리아(4)
“발사!”
스포츠머리 사내의 외침과 함께 그의 손에 들려있던 총기에서 불을 뿜었다. 검은빛을 뿌리는 탄환이 재빠르게 뛰쳐나와 목표를 향해 달려다가 목적지에 닿기 직전, 팟하는 소리와 함께 쪼개지고 퍼졌다. 그리고는 거대한 집게발에 빠짐없이 부딪혀갔다.
그 파편들은 집게발에 꽂혀 하나하나가 점이 되었다. 그다음 순간, 그 점들이 시뻘겋게 타오르면서 점과 점이 연결되어 무수히 많은 선으로 변해 집게발에 균열이 생겼다.
그대로 조각난 집게발은 부서져서 바닥에 어지럽게 떨어졌다.
“내 실력 봤지?”
스포츠머리의 사내가 의기양양하게 뒤에 있는 자신의 팀원을 돌아봤다. 그 모습을 아까부터 못마땅하게 보고 있던 6대4 가르마의 남자를 코웃음을 쳤다.
“흥, 그거야 빅사이즈 네 힘이 아니라. 뭐 뭐냐. 이 게임용어로 템빨이지. 이 용어가 이렇게 쓰이는 거 맞지? 퍼스트영?”
“네. 인텔파이브님. 템빨이라고 합니다.”
채영은 자신의 동의를 구하려는 6대4 가르마, 인텔파이브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꾸했다.
“어허. 템 좋은 것도 능력이지. 원래 군사력이라는 게 좋은 무기에서 비롯되는 거 아니겠어? 인텔파이브. 너도 나랑 비슷한 돈 들여서 무기 사놓고 징징거리는 소리 좀 그만하지그래?”
“뭐. 이 자식이.”
빅사이즈의 말에 인텔파이브가 멱살을 잡으려고 덤벼들었다. 그 사이를 채영이 끼어들어서 말렸다.
“싸우지 마세요.”
어차피 이 게임 내에서 파티 플레이 중인 플레이어 간의 데미지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줄 수 없어서 사소한 다툼까지 말릴 필요는 없지만. 아직 퀘스트 도중이었다.
던전에 들어온 직후에는 수지가 먼저가서 유인해온 온 미니 크랩을 협공해서 손쉽게 퇴치했다. 첫 번째 전투. 첫 번째 승리. 다들 수고하겠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어 다들 금방까지 있었던 떨림은 잊었던 듯. 좀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
채영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다들 공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할 일은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려움이 가시자마자 빅사이즈와 인텔파이브는 서로 원딜로서 뛰어나다는 걸 증명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빅사이즈의 무기는 산탄총 형태의 장총, 인텔파이브는 날렵해 보이는 석궁이었는데. 예산에 맞춰 비슷한 무기를 샀음에도 무기의 성향 때문에 데미지의 차이가 역력해서 빅사이즈가 전투 효율은 월등히 높았다.
일단, 빅사이즈의 무기는 미니크랩의 집게를 한 방에 날릴 정도로 데미지가 셌다. 반면에 인텔파이브의 무기는 그저 단순한 석궁처럼 보였다.
“자, 다음 몬스터 나오니까 대비하삼.”
수지, 레드파이어가 멀리서 달려오면서 외쳤다. 그 뒤에는 미니 크랩 한 마리가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용케도 걷나 싶었지만, 그 높이가 5미터는 족히 넘다 보니 수지가 적당히 뛰어야만 이동속도를 맞춰서 원활하게 몬스터와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유인.
초보자투성이인 이 팀에게 수지가 제안한 사냥방식이었다. 수지가 한 마리씩 유인해 온 몬스터를 일제히 공격. 전투 속도는 느리지만, 최대한 변수를 줄여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수지는 앞쪽에 자신의 팀원들이 보이자. 그대로 발을 멈춰 브레이크를 걸었다. 반동으로 한 바퀴 앞으로 구른 다음 그대로 일어났다.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휘익!”
그 모습을 보고 빅사이즈가 휘파람을 불었다. 수지의 모습을 보고 멋있다는 칭찬의 의미였다. 수지가 씩 돌아보면서 시원스레 웃었다.
그건 잠시. 이내 눈빛을 바꾸고 공격을 시도하려고 하는 미니 크랩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봤다. 비싼 방어구로 몸을 두르고, 몇 번이나 사냥을 반복한 뒤라 등급도 올랐다. 속된 말로 눈 감고도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상대였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미니 크랩이 거대한 집게발을 휘두르는걸. 왼쪽 팔목으로 막았다. 눈으로 보이는 중량감에 비하면 너무 가볍게 막아서 현실성이 떨어질 정도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집게발의 연속공격은 오른쪽 팔목으로 막았다. 미니 크랩이 마치 벽을 치는 듯이 수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 공격하삼!”
수지의 말에 빅사이즈가 인텔파이브에게 눈치를 줬다. 이번에는 네가 먼저 공격해보라는 의미였다. 인텐파이브는 이를 악물고 집게발을 노려 석궁을 발사했다. 화살이 집게발을 뚫고 그대로 벽에 박혔다.
공격을 받고 움찔했던 미니 크랩은 데미지를 입긴 하지만. 그대로 전투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빅사이즈가 웃음을 참는척하면서 비웃었다.
“킥킥. 아 좀 잘해봐.”
“아, 썅!”
열이 뻗친 인텔파이브가 들고 있던 무기를 내동댕이쳤다. 뒤의 상황을 힐끗 본 수지가 눈을 부라렸다.
“지금 장난하삼?”
수지의 박력에 인텔파이브가 움찔했다.
“그러게. 좀 제대로 해.”
빅사이즈가 인텔파이브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자신의 무기를 발동시켜 미니 크랩을 그대로 벌집으로 만들었다.
“수고했삼.”
수지가 가볍게 손을 털면서 나왔다. 그 모습을 어깨에 걸친 빅사이즈가 황홀한 모습으로 쳐다봤다.
‘역시 멋진 여자야.’
자욱한 먼지를 뒤로하고 여유 있게 걸어 나오는 수지의 모습에 여기가 가상세계인 걸 알면서도 저절로 마음이 갔다.
‘이 팀의 리더가 무조건 성별에 맞춰서 캐릭터를 만들라고 지시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점 하나는 좋군. 거기다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현실에서 도퍼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외모도 평균이상일 테고 어디 한번 꼬셔볼까?’
빅사이즈의 눈빛이 금세 음흉하게 바뀌었다.
“레드파이어님 고생했어요.”
“별거 아니셈.”
수지는 앞서 나와서 반기는 빅사이즈와 함께 하이파이브를 한 뒤. 인텔파이브가 구석에 버려둔 석궁을 집어들었다.
“원딜이 무기를 버리면 어떡하삼?”
“그러게 말야. 레드파이어님이 목숨 걸고 탱킹하고 있는데. 그러면 쓰나.”
수지의 말을 빅사이즈가 거들었다. 수지가 석궁을 들 때부터 속으로 웃으면서 준비한 멘트였다. 인텔파이브는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는지 고개를 떨궜다.
“...”
“내가 원딜이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심. 하지만 꼭 위력적인 무기가 최고는 아니지 않슴? 잘 보면 뭔가 특수 능력이 감쳐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삼. 적어도 게임 아이템은 돈값은 한다고 들었단 말이셈.”
수지의 말에 인텔파이브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러자 수지가 석궁을 인텔파이브의 손에 얹어줬다.
“그리고 이렇게 무기를 내팽개쳐버리면 무기가 가엽잖음.”
“아.”
수지의 말에 인텔파이브는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낌새를 전혀 눈치 못 챈 듯 수지는 석궁을 건네주고 통로로 몸을 돌렸다.
“이제 잡몹은 안 보이심. 슬슬 보스몬스터를 잡으러 갑셈.”
*****
수지가 미니 크랩을 싹싹 긁어모았던지. 통로를 향하는 몬스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선두에 선 수지도 별로 경계하는 기색 없이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모두 잠자코 수지를 따라가는 와중에 맨 뒤에 있던 인텔파이브가 채영의 옆에 바짝 붙었다.
“저기. 저기 레드파이어님 말이야.”
“네?”
또 무슨 귀찮은 요구를 할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채영은 인텔파이브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이름에 살짝 놀랐다.
“쉿. 조용히. 다 들리겠어.”
“네에.”
인텔파이브가 다급한 목소리로 채영을 나무랐다. 다들 그 때문에 뒤로 한 번씩 쳐다봤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다시 걸어갔다. 인텔파이브는 매우 조심스럽고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수지에 대해 다시 물어왔다.
“직접 아는 사이야? 이름이라든지 어디 사는지?”
“이번 프로젝트의 플레이어에 관한 개인정보는 비밀입니다.”
딱 잘라서 말하는 채영. 인텔파이브는 ‘그랬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뭔가를 고민하다가 다시 한 번 채영에게 말했다.
“그게 어떻게 좀 안될까?”
“혹시 그녀에게 무슨 문제라도…?”
“아냐. 별달리 문제가 있는 건.”
인텔파이브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채영은 그런 인텔파이브의 모습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럼?”
“그냥…. 그렇지 그냥 관심이 있어서 그래.”
“관심이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채영을 보고. 인텔파이브는 헛기침을 하고는 채영의 어깨를 잡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그리고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아니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그냥 잊어. 알았지?”
“네.”
채영이 대답하는 걸 보고 인텔파이브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연애에 둔감한 이 목석 같은 여자는 쉽게 발설할 거 같진 않았다.
‘일단. 복귀하면 경찰력을 동원해서라도 알아내면 되지. 그전에는 일단 친해 줘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인텔파이브는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 게 느껴졌다. 아까 석궁을 수지로부터 받았을 때부터 생겨났던 두근거림이었다.
한편.
강현이 리더인 거부터 딴죽을 걸었던. 샤기컷. 스타로드는 왠지 모르게 기운 없이 일행의 뒤를 터덜터덜 따라가고 있었다. 힐러의 역할을 맡고, 힐을 강화해주는 스태프를 손에 든 스타로드는 뒤쪽에서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이거 힐러는 편한 게 좋은데, 활약할 일이 너무 없잖아.’
몬스터를 끌어오는 방법으로 사냥하는 탓에 수지를 제외하고는 데미지를 입은 사람도 없을뿐더러. 수지도 몇천 억대의 방어를 장착하고 있어서 미니 크랩의 공격을 맞아도 끄떡없을 터였다. 그마저도 한 번도 방심하지 않고. 차근차근 싸워나가는 모습은 얄미워 보이기까지 했다.
“자, 요 앞만 지나면 보스몬스터가 기다리고 있삼.”
수지의 말에 모두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뒤쪽에 있는 채영과 스타로드에게 다가왔다.
“퍼스트영. 스타로드. 이제까지 별로 할 일 없어서 긴장을 늦추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삼. 지금부터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두 사람이셈.”
그 말에 스타로드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래. 원래 주역은 제일 마중에 등장하는 법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좋아. 갑시다.”
스타로드는 스태프를 휘두르면서 기운차게 앞서 갔다. 그 모습을 본 빅사이즈와 인텔파이브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뒤쫓아갔다.
“다들 기운차 보이는 게 좋지 않삼? 다들 허튼소리 해서 좀 그랬는데. 겪어보니까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들 같지 않으심.”
남자들이 앞장서서 보스몬스터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수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 가요?”
채영이 믿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말에 수지가 팔짱을 끼고 방금 남자들이 뛰쳐들어간 방향을 향해 고갯짓했다.
“탱커가 먼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도 저런 강단을 발휘하는 모습은 첨 봤지 말이삼.”
“아하.”
채영이 이제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수지의 말뜻을 금방 파악하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얼른 들어가세요. 탱킹해야죠.”
“그래그래 알았삼.”
*****
“그래서…. 실패했나요?”
잠시 후. 강현은 초급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한 게이트 앞에서 수지 일행을 만났다. 다들 하나같이 피로한 기색으로 널브러져 있었는데 면면이 하나같이 엉망이었다.
“리더한테 위임받아서 진행했는데, 면목이 없삼.”
수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주위에서 남자들이 죄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근데, 뭐 때문에 실패한 거예요?”
강현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확히 어떤 무기인지 모르지만. 원딜들이 들고 있는 무기라면 잡몹은 한두 번 공격하면 퇴치할 터였다. 보스 몬스터는 강현 자신은 우연히 버그로 잡았지만. 레이드 팀을 운영하는 수지도 있고, 이 정도 팀이면 실패하기가 더 힘들 터였다.
“혹시 탱커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잡은 거예요?”
“아뇨….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지만. 그건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보스몬스터가 덤벼들기 전에 레드파이어님이 들어와서 탱킹을 시작했으니까.”
“그럼?”
강현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채영이 힘겹게 입을 뗐다.
“뭔가 유령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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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나 쉬어버렸네요. 연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쓸 여력이 없었네요.ㅜㅜ
늦춰진 연재일정을 바로 따라잡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