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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전사-71화 (71/113)

< -- 71 회: 15장. 다이나믹 코리아 -- >

15장. 다이나믹 코리아(2)

“죄송합니다.”

속삭이듯 귀를 파고든 소리에 강현은 걸음을 멈추고 그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그쪽에는 채영이 난처한 표정으로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걸까? 의문을 띄우고 있을 때. 뒤에서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 어서 갑시다. 길 몰라요?‘

아까부터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는 샤기컷이었다. 강현을 비롯한 한국팀원들은 모두 인파를 해치고 중앙통로를 거쳐 골드샵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강현은 채영을 슬쩍 보면서 눈썹으로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신호를 보내고 샤기컷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알렉스 루엘이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을 공개한 뒤 이제 좀 시일이 지난 탓인지 예전보다는 훨씬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호기심으로 접속한 사람들도 빠지고, 예거 아머를 탐내고 접속했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사람들도 사라졌다. 남은 건. 본격적으로 노리는 팀들과 재미삼아 플레이하는 소수. 그리고 이곳에서 돈벌이를 위해 하는 사람들 정도였다.

강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 게임이 오픈하면 처음에 사람들이 서버 폭주할 정도로 몰려들었던 게, 점차 접속인원이 줄어들면서 교통정리가 되는 것과 비슷한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 여기서 필요한 장비를 마음껏 고르세요. 모르시는 거 있으시면 1234님한테 물어보시고요.”

골드샵에 도착해서 채영이 말했다. 하지만 다들 대답이 없었다. 무기백화점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골드샵의 위용에 정신이 팔려버린 것이다. 강현은 그 모습에 처음 자신이 들어왔을 때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 쓴웃음을 지었다.

“예산은 얼마까지입니까?”

“1조입니다.”

이번에도 묻는 건 샤기컷이었다. 채영이 기다렸다는 듯이 즉답했다. 샤기컷은 생각보다 적은데 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쪽도 예산을 쓸 겁니까?”

샤기컷이 강현을 보면서 물었지만. 강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채영에게 들은 바가 없었으니까. 대신 채영이 나서서 이야기했다.

“아뇨. 이건 어디까지나 1234님을 위한 팀 지원금으로 나온 예산이니까요. 나머지 다섯 명이 맞춰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2천억씩 되겠지요.

옆에서 듣는 강현은 조 단위의 금액이 언급되는 순간부터 머리가 아찔한 걸 느꼈다. 그러는 강현 자신도 거의 천억대에 가까운 무기부터 들고 시작하긴 했지만. 어쨌든. 슬슬 나서서 정리해야 하겠다 싶었던 강현이 입을 열었다.

“저기. 일단 예산이 한정되어있으니 포지션에 맞춰서 아이템을 고르세요. 포지션은 도퍼들이 레이드할때와 같습니다. 다들 포지션은 정하셨죠?”

강현의 말에 서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전에 이야기가 없던 눈치였다. 강현이 채영을 쳐다보자 채영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현은 왠지 아까 채영이 미안하다고 말한 의미를 슬슬 알 거 같기도 했다.

샤기컷이 강현에게 너는 무슨 포지션이냐는 눈치를 줬다. 강현은 한숨을 쉬면서 알아서 대답했다.

“전 근접 딜러 포지션으로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탱커, 원거리 딜러, 힐러. 포지션이 있습니다.”

“어떤 포지션이 있는지는 우리도 알아. 그래서 어떤 포지션에 몇 명이나 필요한 거야. 그 정도면 한 번에 보고해야지.”

‘보고?’

이번에는 샤기컷 말고 짧은 스포츠머리가 약간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것 좀 설명해줬다고 뭐가 그리 창피했는지 티 나게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것보다 강현은 스포츠머리가 한 보고라는 표현이 신경 쓰였지만.

“탱커 한 명, 원거리 딜러 두 명, 힐러 두 명. 이렇게 필요합니다.”

강현은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이야기했다. 좀 더 공격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원거리 딜러를 세 명까지 넣는 포지션도 있겠지만. 일단 팀의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안정적인 레이드가 가능한 조합을 짜기로 마음먹었다. 이 상황에서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리더의 자격 운운하는 걸 떠나서 팀 자체가 붕괴하여버릴 것만 같았다.

“탱커가 한 명을 뽑는 거니까. 탱커쪽이 높은 건가?”

“아뇨, 매뉴얼에는 힐러가 제일 좋다고 했으니까. 힐러를 선택해야 하는 거 아냐?”

“저 1234라는 사람은 왜 제일 안 좋다는 근접딜러를 택한 거지?”

샤기컷과 스포츠머리, 나머지 조용히 눈치 보고 있던 6대4 가르마의 남성도 서로의 질문을 해가면서 의논하고 있었다. 강현이 보기에는 실속이 없는 대화였지만 말이다.

세 사람 옆에 있던 수지는 대화에 끼지 않고, 멀뚱멀뚱 강현과 채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1234라는 이름과 원래 강현의 외모와는 다른 모습의 캐릭터를 사용하고 있는 강현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태연하게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당분간은 수지에게 정체를 비밀로 하기로 했다.

수지는 세 남자의 대화가 길어지는 게 짜증 났던지. 세 사람에게 다가가서 당당하게 말했다.

“탱커는 내가 하겠삼. 어차피 원래 레이드할때도 탱커였심.”

그러자 서로 말없이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세 사람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재빠르게 각자 포지션을 정해나갔다.

“그럼 난 원거리 딜러.”

“좋아. 나도.”

“그렇다면 내가 힐러를 하겠네.”

6대4가르마와 스포츠머리가 원거리 딜러. 샤기컷은 힐러 포지션을 맡게 됐다. 그리고 채영은 하나 남은 포지션인 힐러 역할을 맡게 됐다.

“그럼 됐지?”

샤기컷이 채영을 쳐다보자. 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신호로 다들 우르르 몰려가서 아이템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휴우.”

강현은 사람들이 멀어지자.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한가지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서로 경계하듯 가시가 돋친듯한 모습이 정신적으로 피로했다.

그때 채영이 강현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강현님은 따로 필요하신 아이템 없으세요? 앞에서는 이야기 안 했지만. 강현님 개인으로 3천억이 배정되어있습니다.”

3천억을 마음대로 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치고는 채영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보다 저 사람들 어떻게 된 거예요? 아니 뭐라고 하고 어떻게 뽑았길래 저래요?

강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묻자 채영이 흠칫했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걸 확인한 다음에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수지님은 딱히 설명 안 드려도 같은 팀이 되신 걸 알겠죠?”

“네에.”

강현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수지를 쳐다봤다. 수지는 방어구 코너 쪽에서 이것저것 들춰보고 있었다.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내팽개치기 일쑤여서 보조해주는 로봇이 달라붙어서 챙긴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 외 세 분은 정확히 특정하지 못하겠지만, 이번 인사에 상부에서 끼어든 정황이 있습니다.”

*****

“상부라면.... 안전관리국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강현이 질문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채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청와대? 아까부터 태클 걸던 남자, 청와대 사람?”

채영이 대답 없는 걸로 봐서 정답인 거 같았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만큼 정부의 개입이 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정치에 무지한 강현이라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발목 잡을 거까진 생각 못 했다.

‘나 참, 실적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의 대표로 나오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투덜거린 강현은 뭔가를 눈치챘다.

‘설마….’

강현은 각각 총기류와 투척류 무기 코너에 있는 스포츠머리와 6대4가르마를 가리켰다.

“저쪽 사람들도 청와대 사람...아니, 또 다른 부서 사람인 거죠?”

“네. 누군지 특정할 수 없지만, 각각 국방부와 경찰청에서 내려보낸 인원들입니다. 각 기관의 유망주를 선별해서 참가시킨 거 같더군요.”

“청와대쪽도 아마 그럴 테고….”

강현은 이 사람들의 왜 그렇게 콧대가 높았는지 깨달았다. 평생 탄탄대로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는데, 이런 게임 안에서 다른 사람 지시를 받으려면 배알이 꼴릴만도 하겠지. 거기다가 가능하면 자신의 진두지휘하에 좋은 성과를 내어서 치적으로 내세우고 싶을 테고.

“그래서 아까 죄송하다고 하신 거였군요.”

“네….”

강현의 말에 채영은 답지 않게 유난히 힘없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강현은 피식 웃었다. 강현의 웃음소리에 의아한 표정으로 채영이 올려다봤다. 그때 채영의 눈에 비친 강현의 모습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나 홈그라운드는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렇게 말한 강현은 재밌는 놀 거리가 생각난 아이처럼 빙긋 미소를 지었다.

*****

“네? 저희끼리 레이드 가라고요?”

희희낙락하며 온몸에 천억이 넘는 아이템을 두르고 나온 남자들은 강현의 말에 펄쩍 뛰었다. 셋은 금세 불쾌한 표정으로 인솔자도 없이 가란 말이라는 소리를 구시렁거리면서 했다.

자기네들끼리는 속삭인다고 이야기한 거였지만. 그대로 다 들은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인솔자라. 이 남자들은 강현을 리더가 아니라 그저 가이드로 생각하고 온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전 처음에 그런 좋은 아이템 하나도 없이 클리어한 걸요.”

그렇게 운을 띄운 강현은 뻔하지만. 효과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못 하시겠어요?”

그러자 남자 셋뿐만 아니라 수지까지 움찔하는 게 보였다.

“누,누가 못한다고 했어?”

“그 정도야 껌이지. 기초잖아 기초.”

“매뉴얼에 나온 대로라고 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겠지.”

“이거 결국 몬스터 잡는 거라고 안했삼? 그런 거라면 문제없삼.”

예상대로의 반응.

여기서 좀 더 주도권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 아까부터 이야기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지만. 강현은 지금 같은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보다 이제 캐릭터네임 블라인드 아이템은 제거하죠. 본명으로 플레이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캐시템을 썼나요? 돈 아깝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다. 기본적으로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에서는 온라인 게임처럼 상대의 기본적인 정보는 보인다. 예를 들면 캐릭터 네임 같은 것 정도? 하지만. 어쩐 일인지 채영을 비롯해서 모두 캐릭터명을 가리고 있던 것이었다. 아마도 비싼 캐시템을 썼을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세금으로.

강현의 말에 샤기컷이 얼굴을 붉혔다. 강현은 짐짓 모르는척하면서 다시 물었다.

“누가 제안한 거예요?”

다들 자신을 쳐다보자 샤기컷은 필사적으로 변명을 생각해서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그거야…. 그만큼 이번 프로젝트가 그 정도의 기밀사항이기도 하니까. 보안에 관련된 거라면 뭐든지 해봐야 하지 않겠어?”

샤기컷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위에 동의를 구했지만. 다른 두 남자는 모른 척 딴청을 피웠다.

‘정부에서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속으로 피식 웃은 강현은 이번에는 좀 더 부드럽게 제안했다.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캐릭터이름 정도는 공유하죠. 팀원끼리 통성명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 그래요.”

그 말에 6대4 가르마와 스포츠머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한편 샤기컷의 표정은 똥 씹은 것 마냥 좋지 않았다.

어쨌든. 겨우 알게 된 팀원들의 이름은 이랬다.

샤기컷의 캐릭터 이름은 스타로드.

6대4 가르마의 캐릭터 이름은 인텔파이브.

스포츠 머리의 캐릭터 이름은 빅사이즈.

함수지의 캐릭터 이름은 레드파이어.

권채영의 캐릭터 이름은 퍼스트영.

“자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우선 탱커인 레드파이어님의 지시에 따라서 초기 퀘스트를 하고 오세요. 거기에 나오는 미니 크랩. 공략법은 퍼스트영님이나 레드파이어님께서 설명해 주실 겁니다.”

강현의 말에 스타로드, 인텔파이브, 빅사이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채영 일행들은 초급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한 게이트 앞에 있었다. 가상세계에서지만 직접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에. 다소 긴장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럼. 여러분.”

“여러분이 아니다.”

샤기컷. 이제는 스타로드의 캐릭터명을 쓰고 있는 힐러가 그렇게 말했다. 즐겜, 행운을 빕니다. 라고 말할려던 강현은 엄청나게 진지한 표정으로 부정하고 나선 스타로드를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여러분이 아니라. 우리 한국팀의 이름은 [ 다이나믹 코리아 ]다.”

모두에게 선언하듯 말하는 스타로드를 보고는 강현은 아연함을 느꼈다.

‘하아. 정말 정부의 작명센스하고는. 다이나믹 코리아라니 도대체 언제쩍 슬로건이야.’

하지만 채영은 체념한듯하고, 무슨 소린지 갸우뚱하는 수지와 달리. 거기에 감격한듯한 빅사이즈와 인텔파이브를 보니까 딱히 딴죽 걸 힘도 생기지 않았다.

강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스타로드는 강현이 자신의 비장미에 동감했다고 생각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자 어서 갑시다.

하나둘씩. 게이트를 통과할 때 맨 뒷줄을 지키고 이던 퍼스트영. 채영이 강현을 불렀다.

“1234님은 어디로 가시나요?”

“저요? 저는 따로 알아볼 게 있습니다.”

저 다이나믹코리아 팀과 달리 강현에게는 게임 클리어를 위한 정말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작업이 많이 늦어졌네요.ㅠㅠ

그럼 모두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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