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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전사-69화 (6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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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아메리칸 드림 (5)

수증기가 가득한 샤워실 안.

강현이 몸을 움직여 샤워기 앞에서 벗어나자 센서가 사람이 샤워기 앞에 없다는 걸 감지하고는 자동으로 멈췄다. 그러자 수증기가 금방 가라앉았다. 그 뒤에는 엉거주춤하게 안겨있는 알몸의 두 남녀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금방까지 강현은 JS 온라인에 만들어질 한국팀에 같이 합류했으면 좋겠다 싶었던 멤버로 수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중얼거린 말을 밖에 있던 소유가 어렴풋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수증기와 좁은 공간 탓에 소유가 잘못 들었다는 것.

강현에게 절반쯤 안기다시피 한 소유는 창피함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수건은 넘어지려고 할 때 놓쳤는지 바닥에 떨어져 흠뻑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뒤로 소유가 뭐라고 말했지만. 강현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지금 강현이 정신이 집중하고 있는 건 청각이 아니라 촉각과 시각이었으니까.

“그만 일어날게요.”

소유가 고개를 숙이며 엉거주춤 일어서려고 했다. 겨우 소유의 말이 귀에 들어온 강현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몸을 일으키면?!’

소유의 부드러운 손이 강현의 가슴을 집으려고 했지만. 강현은 한참 비누칠 하던 중이었다. 소유의 손이 미끄러졌다. 그 반동으로 다시금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출렁. 가슴이 과격한 효과를 내면서 강현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대리석 바닥에 넘어지려고 하는 소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강현이 몸을 날렸다. 바닥에 슬라이딩해서 소유가 다치는 걸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강현에게는 A급 몬스터를 상대할 때보다 긴박한 순간이었다.

“소유씨 괜찮으세요?”

소유는 간신히 강현의 위로 안긴 채로 무사했다. 하지만 강현의 비누가 칠해진 몸 때문에 가슴팍에 안착하지 못하고 좀 더 미끄러져 올라가 버렸다. 결국, 소유의 거대한 가슴을 강현이 얼굴로 막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물컹.

정신없는 와중에 소유의 안부를 챙긴 강현이었지만. 얼굴에 닿는 가슴팍에 닿는 부드러운 느낌에 그만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짐승처럼 덤벼들지 않았지만. 다리 사이에 피가 쏠려서 단단해졌다.

“어맛.”

소유는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는 딱딱한 것에 놀라서 황급히 몸을 빼려 했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쳐버렸다.

“괜찮으세요?”

굳어버린 강현이 몸을 반쯤 일으켜서 소유가 무사한지 확인하려 했다. 그때 머리를 부딪친 아픔에서 간신히 벗어나 고개를 들어 올린 소유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봤다. 시선을 교환은 잠시. 강현은 가슴이 서로 쿵쾅거리는 소리가 샤워실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유는 알몸이었지만. 창피해하기보단 항상 자신을 걱정해주는 강현의 눈빛에 소유의 시선이 그대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강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크게 눈을 한번 깜빡이자. 걱정에서 격정으로 변한 눈빛으로 변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둔 남자의 눈빛. 소유는 그 눈빛에 숨이 멎었다.

“소유씨.”

강현이 소유를 나직이 불렀다. 강현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걸 보면서 소유는 자신의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자연스레 눈꺼풀이 내려왔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입술과 입술이 가까워졌다.

그때.

짝. 하는 소리가 샤워실의 촉촉한 공기에 찬바람을 불어넣었다.

“자! 거기까지!”

어느새 나타난 다현이 강현과 소유의 사이에 끼어들어 왔다. 손에는 가운이 들려있었다. 소유를 부축해서 일어선 다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강현을 흘겨봤다.

“금방 퇴원한 환자 가지고 뭐하는 짓이야? 엉큼하게”

“그, 그게.”

강현은 당황해서 변명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소유가 대신 사정을 설명해줬다.

“내가 확인도 안하고 들어가서 그래. 다현이 네가 안에 있는 줄 알았거든. 아까 같이 씻자고 했잖아.”

“으응. 오빠 오고 나서 알렉스가 우리더러 좀 더 넓은 방으로 옮겨가라고 했거든. 근데 회복실에 데리러 갔더니 퇴원했다지 뭐야.”

그러면서 뒤쪽을 힐끗 쳐다봤다. 강현이 그 시선에 따라가 보니까. 채영이 이쪽을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채영은 강현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획하고 돌렸다. 원래부터 하얀 피부라서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게 눈에 띠었다.

“오는 길에 채영 언니도 만나서 오빠도 일하러 갔다가 일찍 돌아왔다는 소리 들었는데. 설마 그 잠깐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다현은 한숨을 쉬었다가 금세 뭔가 생각이 났는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아참, 이왕이면 방해하지 말까 그랬나?”

강현은 왠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겨냥한 말이 아닌 거 같아서였다. 다현이 부축하고 있는 소유와 문가에 서 있는 채영이 움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대꾸가 없자 재미없다고 중얼거리는 다현은 그대로 문밖을 나섰다. 겨우 소동이 진정되나 싶었던 강현이 한숨을 쉬고 마저 씻으려고 할 때, 갑자기 불쑥 다현이 머리를 샤워실 안으로 내밀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머리통에 강현이 질겁했다.

“뭐, 뭐야!?”

“그보다 다행이네 싶어서.”

“뭐가?”

“오빠가 고자가 아니었다니.”

그렇게 말하면서 다현이 강현의 배 아랫부분에 힐끗 시선을 줬다.

“이게!”

강현이 화내며 쫓아가기 전에 다현은 혀를 삐죽 내밀고 쏙 도망쳐버렸다.

*****

“강현님 여기가 접속실입니다.”

알렉스가 강현을 보안이 철저한 지하 연구실보다 아래층에 위치한 곳으로 안내했다. 알렉스 루엘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그의 권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이렇게 단신으로 남자를 에스코트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정작 안내받고 있는 강현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아까 샤워실에서 소동을 겪은 뒤, 소유의 나신과 가슴의 촉감이 눈앞에 계속해서 어른거렸다. 한마디로 번뇌가 강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뒤로 알렉스가 강현의 선심을 사기 위해서 일급요리사가 만든 저녁도 함께 먹었지만.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체하기까지 했다.

알렉스는 강현이 뭔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자. 조심스럽게 강현을 불렀다.

“저기...강현님?”

“강현님.”

하지만 별로 대꾸가 없자. 먼저 내려와서 기계를 점검하고 있던 채영이 재차 강현을 불렀다. 강현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채영을 쳐다봤다. 채영은 왜 얼빠진 표정이냐는 듯 책망하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주눅이 든 강현은 재빨리 사과하고 화제를 돌렸다.

“아, 미안합니다. 어서 준비하죠. 한국 쪽에는 멤버들이 이미 준비 중이라고 하셨죠?”

“김지훈에게 연락받은 바로는 미국에서 저와 강현님. 한국 쪽에서는 총 4명의 멤버가 준비되어있습니다. 이미 접속한 다음에 캐릭터 설정을 마치고 지정해 주신 접선위치에서 대기 중입니다.”

“네. 저희만 어서 들어가면 되겠네요.”

채영이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알렉스를 쳐다봤다. 알렉스는 중앙에 있는 접속캡슐을 가리키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이 접속캡슐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제까지 어떤 접속캡슐을 쓰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제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루엘사의 최신 기술을 집약해서 안정성이나 반응속도. 내부의 쾌적함도 기존 접속 캡슐과 비교도 안 되게 좋습니다.”

홈쇼핑 쇼호스트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는 알렉스를 보며 강현은 피식 웃었다. 강현이 쓰고 있던 [ 콩 ] 접속기야말로 휴대성이나 안정성으로 보나 비교도 안될 정도로 편했다.

“이거 밖에서 멋대로 잠글 수 있거나 문이 제대로 안 열리고 그러는 건 아니죠?”

강현이 의심스러운 듯 접속캡슐을 보면서 더군다나 처음 접속캡슐을 썼을 때만 해도 유노가 외부에서 락을 걸어버려서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기도 했으니까.

강현이 하는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알렉스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수습하려고 애썼다.

“아, 그때 보고받았습니다. 강현님이 정식으로 개시되기 전에 잠깐 서버 내에 접속하셨었다죠? 그때 저희 관계사 직원의 실수로 고초를 겪으셔서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외국인이 어려운 말도 알고 있네.'라고 생각할 때. 옆에서 채영이 알렉스를 거들었다.

“제가 먼저 내려와서 확인했습니다만. 별다른 위험한 요소는 없어 보였습니다.”

“네. 채영씨가 그렇다고 말씀하시면 확실하겠죠.”

강현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접속캡슐의 뚜껑을 열었다. 안은 알렉스가 자신한 대로 널찍하고 푹신해 보였다. 거기의 중앙에 바르게 누운 강현은 속삭이듯이 [ 콩 ]을 불렀다.

“어이 [ 콩 ]. 조용히 대답해봐.”

-체크했습니다. 마스터.

“이 캡슐로 바로 게임에 접속하는 게 아니라. 너를 우회로 삼아서 게임에 접속할 수 있어? 말하자면 이상이 생겼을 때. 네가 강제로 게임의 접속을 끊는다든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체크 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대답한 [ 콩 ]은 자신의 기계 몸을 변형해서 이 접속캡슐 자체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알렉스가 딱히 적대적으로 보여서 이렇게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려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어지간하면 뭐든지 다해줄 기세로 우호적이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보험을 들어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예전에 불똥이라는 보험은 실패했지만. 기계라면 그런 변수가 적을 테니까.

그리고 [ 콩 ]은 금방 긍정적인 대답을 돌려줬다.

-마스터. 가능합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연결해줘.”

-다만. 제가 이 접속캡슐을 장악하려면. 예거드럭이 효능을 발휘하고 있는 상태여 만 합니다.

[ 콩 ]의 말에 강현은 지체없이 주머니에서 예거하나를 꺼내 삼켰다. 아까 오전에 몬스터 너구리를 상대할 때를 생각하면 앞으로 한두 시간이면 예거 효능이 풀릴 터였다. 며칠 만에 게임에 접속하는 걸 생각하면. 팀을 소개받고 게임상에서 할 일을 지시하는 것 말고도 할 일이 꽤 많았을 테니까. 지금 상황에서 1억, 2억. 아낄 때가 아니었다.

-체크했습니다. 예거효능 완료까지 12시간. 현 시간부로 JS온라인에 접속합니다.

“좋아. 잘 부탁해.”

*****

“에. 잘 부탁합니다.”

강현. 아니 JS온라인 안에서의 캐릭터 이름인 1234는 자신의 앞에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원래부터 강현을 알고 있던 채영을 제외하고는 네 명은 미묘한 표정으로 강현을 쳐다봤다.

그야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강현이 저들과 같은 입장이었어도 같은 표정을 지었을 테니까. 국가급의 프로젝트에 뽑혀 기대에 차서 왔더니. 리더라고 내정되어있는 사람이 외국인의 모습에다가 이름은 1234.'라고 되어있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국내에서 인천펭귄상륙대첩 때문에 유명해진 강현의 이름을 팔면 금방 신뢰도를 얻을 수 있었을 테지만. 일단 강현의 정체는 비밀이었다. 강현이 JS 온라인에서 우승하고 예거아머의 소유자라는 걸 최대한 비밀리에 하기 위해서였다. 블랙마켓에는 정보를 흘릴 테지만. 그전까지는 신변보호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막과 달리 표면적인 부분에서 납득 못한 참가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공기가 흘렀다. 이내 바람에 흩날리는 듯 유료 머리카락을 세팅해 있는 남자가 이 공기를 참을 수 없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저 사람을 믿고 팀 대표를 맡겨도 될까요? 전 솔직히 못 미더운데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세요?”

은근한 거부. 채영이 문제가 커지기 전에 강현에 대해서 다시 설명했다.

“일단 이분은 초창기 때부터 이 JS온라인에서 플레이하셨을 정도로 경험이 풍부하고 다른 게임의 경험도 많으십니다.”

하지만. 정부관계자라고 소개되어있는 채영의 말에도 다들 납득 못하는 듯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게임 폐인 아냐?”

“역시 좀 못 미더운 거 같은데.”

나머지 두 남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샤기컷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나마 짧은 머리의 여자 한 명은 입을 꾹 다물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듯 보였다.

“1234님에 대해서 못 알려드리지만, 이점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각각 다른 지역에서 정부요원의 경호를 받으면서 접속하고 계시죠? 그리고 막대한 혜택과 지원을 받는 대신. 게임 안에서는 정부통제를 따르기로 되어있고요.”

“하지만. 우리도 동등한 플레이어로서 합리적인 의심은 충분히 해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샤기컷과 채영의 설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강현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조용히 있던 플레이어였는데, 이 팀에서는 채영을 제외한 유일한 여성플레이어였다. 붉게 염색해서 짧게 쳐올린 머리카락에. 전신라이더 슈트를 입은 섹시한 여성이었다. 액션스타처럼 근육질이지만 눈을 떼기 힘든 육감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분위기가 마뜩잖았던지 입을 다물고 결국, 나서서 한마디 했다. 그걸 들은 강현은 여성의 정체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다들 그만 좀 하삼!”

============================ 작품 후기 ============================

어제는 나갔다가 얼어죽을뻔 했네요...지갑도 잃어버리고..ㅠㅠ

끙끙 앓다가 이제 일어나서 올립니다.

어쨌든, 독자분들의 예상에는 감탄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총각딱지 떼는건 아니죠...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감히;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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