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8 회: 14장. 아메리칸 드림 -- >
14장. 아메리칸 드림 (4)
“여기도 이걸로 마지막이지?”
후드득.
강현이 말하는 것과 동시에 사람 키보다 커다란 박쥐가 강현을 향해 덤벼들었다. 몬스터 박쥐였다. 날개처럼 보이는 커다란 막을 펼치자. 강현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 박쥐는 그렇게 먹잇감을 위축시킨 다음. 반원형으로 끝이 뾰족한 갈고리 같은 발톱을 뒷발로 움켜쥐어서 사냥했다.
이번에도 역시 발톱을 내밀어 강현을 움켜쥐려고 했다. 다섯 개나 되는 그 갈고리에 쥐어지면 그대로 여섯 개의 토막고기가 될 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누구도 강현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현의 뒤쪽에는 각각 미국과 한국의 관리자인 제인과 채영. 그리고 두 사람의 경호를 위해 동행한 뉴욕주의 도퍼 한 명. 이렇게 세 명이 있었다. 그들과 강현의 사이에는 강현이 단신으로 쓰러트린 몬스터 박쥐들의 사체가 무수히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강현은 자신을 노리는 발톱을 가볍게 피한 다음 소형화한 레이저 버스터로 선을 그었다. 그러자 몬스터 박쥐의 한쪽 날개가 잘려나갔다. 그렇게 날개를 잃은 몬스터 박쥐는 그대로 추락해서 강현을 옆으로 마구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멈췄다. 그나마 상처가 덜한 것은 저공비행 한 탓이었다.
“자 마지막 한 방. 그리고 알지?”
-체크했습니다. 마스터.
[ 콩 ]이 대답했다. 최후의 일격을 가한 레이저 버스터는 재빨리 원래의 암쉴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와중에 레이저 버스터에 장착되어있던 몬스터 코어가 떨어지는 걸 강현이 재빨리 낚아챘다. 고열로 인해 새하얀 연기가 쉴새 없이 피어올랐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는지 색이 많이 바랬다.
뒤쪽을 힐끗 보니 서로 열혈히 대화를 하고 있었다. 강현은 눈치껏 인벤토리를 열어 색이 바랜 몬스터 코어를 집어넣었다.
“아껴야 잘 살지.”
그렇게 중얼거린 강현은 흥얼거리면서 몬스터 코어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한편 뒤쪽에서 나누고 있던 대화의 화재는 당연히 강현이었다.
“정말 대단해요. 이 정도면 1급이 아니라. 등급외 판정이겠네요. 한국에서 이렇게 대단한 도퍼가 있을 줄 몰랐어요. 그보다 저렇게 활달한데 이제까지 잘도 꽁꽁 감춰두고 계셨군요.”
“그러게요.”
채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제인이 게임 폐인인 강현더러 활달하다고 표현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제 몬스터 울프 무리와 몬스터 그리즐리베어를 쓰러트린 강현은 오늘 오전에는 뉴저지에서 같이 거대화된 도토리를 던지면서 공격해오는 몬스터 다람쥐를 잡고, 오후에는 이렇게 펜실베이니아의 이름 모를 폐광촌을 점거하고 있는 몬스터 박쥐들을 처리했었으니까.
“한국에 세미나 갈 때마다 기자들이 두유 노우 퍼스트 도퍼?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에요.”
“아무래도 한국이 절대적으로 도퍼 숫자나 강함이 부족하죠. 퍼스트 도퍼가 국내에서 활동해 주셨으면 좋겠지만 불가하니. 저희 측에서도 강현 님한테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채영의 말에 제인의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현 때문이 아니라 채영이 퍼스트 도퍼를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한국에서 퍼스트 도퍼가 돌아와 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는지 몰랐어요.”
한국군인의 신분으로 미국에 가서 최초로 레이드를 성공한 노정석은 퍼스트 도퍼라는 칭호로 불렸다. 그와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단번에 유명해졌고, 한국 내에서의 인기도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수시로 노정석에 대한 특별방송이 나왔다. 강현이 인천펭귄상륙대첩으로 잠시 유명세를 탄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노정석을 대통령에 앉히자는 말도 진지하게 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한국인들은 외국인만 보면 “두유노우 퍼스트 도퍼?” 라고 시도때도없이 질문해서 외국인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진저리쳤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얻는 몬스터 코어가 연구를 거듭해.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뒤. 정부는 노정석에게 귀국하기를 요청했다.
루엘사의 지원으로 전 세계를 돌면서 몬스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던 노정석은 일단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자신의 팀을 이끌고. 한국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하지만. 퍼스트 도퍼팀은 몇 군데의 몬스터 레이드를 진행한 다음 다시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것도 한국에서 얻은 몬스터 코어를 들고서. 그 일로 한국정보는 노정석을 압박하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했다. 한국인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고. 그 결과 한국 내에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나라를 버린 배신자라며 이를 갈았다. 조용히 살던 노정석의 친인척들 대부분은 한국을 등지고 미국에 이민 오게 됐다.
채영은 당시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노정석의 고민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루엘사에서는 최초에 몬스터를 사냥하고 예거를 제작할 때 들었던 수천억 달러의 손실을 만회하기 전에 당시 한 명뿐인 1등급 도퍼를 놓칠 순 없었으니까.
그나마 국내에서 예거 생산 초기부터 예거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었던 것, 각종 몬스터 레이드에 대한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노정석이 물밑에서 애썼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당시에 몬스터가 출현하지 않는 일본과 더불어 낮은 등급의 몬스터만 출현하는 한국을 지키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곳을 도와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 측면도 있었다.
어쨌든. 노정석은 그 일을 겪고 난 뒤로 엄격한 군인이었던 모습을 버렸다. 그가 대신 택한 것은 술과 향락을 즐기는 난봉꾼의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한국국민들은 인간쓰레기라며 노정석에게 더 가열차게 손가락질했다.
노정석에 대해서 생각하자 채영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도 정석이 구해줬기 때문이었으니까. 기회만 되면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두두두두두하는 헬기 소리가 들렸다.
채영과 제인과 하늘을 올려다보니 저공 비행하는 헬기의 옆면에는 워싱턴 포스트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이어서 뉴욕타임스등 몇 군데의 언론사 헬기가 줄이어 나타나 현장을 촬영하고 있었다.
“보도통제 하지 않았나요?”
나무라듯 이야기하는 채영을 보면서 제인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한번 본 다음. 채영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 정도로 소란피우고 다니고 있는데 방송국에서 이제야 꼬리 물고 나타난 게 신기한 거죠.”
“하긴, 그렇겠네요.”
채영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현에게 사냥터를 추천해준 건 다름 아닌 채영이었다. 미국 정부에서 몬스터 레이드를 엄격하게 규제하려는 건 이미 여러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동할 때나 사냥 시에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띄는 곳으로 선정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면 이쪽도 불편하지만. 제재하려는 측도 과격한 움직임을 보일 수 없었을 테니까.
다만, 의외였던 건 어제의 제인이 쉽게 도움을 요청한 거였다.
‘아무리 퍼스트 도퍼가 없다고 해도. 다들 뭘 하고 있길래?’
채영이 제인의 의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강현은 방송국 헬기들을 향해서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
“강현님. 국내에서 최종선발이 끝났다고 합니다.”
강현과 채영은 다시 헬기를 타고 루엘 타워로 복귀했다. 어느새 저녁 무렵이었다. 강현이 자신이 흘린 땀과 먼지로 뒤덮인 옷을 얼른 벗어 던지고 샤워하고 싶은 생각을 간절하게 하고 있을 때, 채영이 휴대폰으로 한국에서 온 보고를 전달했다.
그 말에 피로했던 기분이 단숨에 날아갔다.
드디어 지루한 기다림이 끝났다. 이틀 동안의 준비가 빛을 발할 때였다. 어제오늘 획득한 몬스터 코어는 어제 사건 이후로 미국에서 정산해줬고, 일부는 강현이 인벤토리에 숨겨뒀었다.
미국에서 레이드 관리비용이니 세금이니 하는 명목으로 제하고 정산해주는 금액과 달리, 게임상에서 상점에다가 몬스터 코어를 파는 가격이 훨씬 셌으니까.
“그럼 바로 접속할까요?”
채영은 몸을 내밀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강현을 보고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억지로 집어넣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시차가 있어서 일단 저쪽에서도 선정된 인원들에게 연락하고 준비시키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차가 얼마나 되죠?”
“14시간이니까 저쪽은 이제 이른 아침입니다. 그보다 강현님도 접속하시기 전에 씻으시죠.”
“아, 그렇네요.”
채영의 지적에 강현이 멋쩍은 웃음을 띠며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바로 탈의한 뒤에 샤워실로 들어가자마자 뜨거운 물을 틀었다. 샤워기에서 물이 쏴 하고 뿜어져 나와 먼지를 씻어내자. 한결 개운함을 느꼈다.
“어이. [ 콩 ] 어때 게임 내의 상황은?”
-체크했습니다. 아직 중급퀘스트를 완료한 플레이어는 없는 걸로 확인됩니다.
“그래? 의외로군.”
자신이 게임에 접속 안 한 지 3일째. 그때 이미 중급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진입한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솔로 플레이어였던 자신과 달리 상급퀘스트를 위한 던전 입구 정도는 찾았으리라 생각했었다.
‘아마도 일본팀과 중국팀이었지?’
[ JS 온라인 ]은 사실 게임이라기보다는 가상세계에서 벌이는 나라 간의 전쟁에 가까웠다. 각 나라별로 예거아머를 손에 넣기 위해서 공식, 비공식적으로 나랏돈을 엄청나게 써대는 곳도 있을 터였다. 일본이랑 중국처럼.
어쨌든. 이제 한국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자신의 팀을 꾸릴 수 있게 된 참이었다. 강현은 팀멤버를 뽑는데 세세하게 관여하지 않았다. 내건 조건은 세 가지.
게임에 대한 이해가 높을 것.
도퍼가 아니라도 몸쓰는데 익숙할 것.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는
게임캐릭터는 성별에 맞게 제작할 것.
크게 어려운 조건은 아니었다. 그 조건을 밝히자 되려 채영이 혹시 믿을만한 사람을 추천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었다. 이른바 낙하산. 강현은 불똥을 제일 처음 떠올렸지만, 유노와의 사건을 떠올리면서 진저리쳤다. 그나마도 감옥살이하는 유노를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다니 게임에 집중 안 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 외에 굳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혹시 수지씨에게도 한번 조심스레 물어봐 주세요.”
메신저로 게임초대를 보내는 그런 일반적인 게임 권유가 아니다. 어디까지 수지의 의사가 중요했다.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 시절에도 컨트롤 헬멧을 쓰고 가상세계에서 접속해서 움직이는 것도 거북해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이른바 가상세계멀미 CSMS (Cyber Space Motion Sickness) 라는 거였다.
“이왕이면 같이 했으면 좋을 텐데.”
뜨거운 물로 수증기가 가득한 샤워실 안에서 강현이 중얼거렸다. 예거를 먹은 탓인지. 자칫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운 물이었지만. 전혀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샤워기 온도를 낮춘 뒤 샤워실에 오래 있었다는 걸 깨달은 강현이 머리를 감고 나서 멋들어지게 올백 머리로 넘겼다. 그다음 샤워수건에 비누를 묻혀 몸을 닦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샤워실의 문이 열렸다.
“나 들어가.”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그것도 여자의. 강현은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굳어버렸다. 널찍한 샤워실 쪽으로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하얀 수건에 감싸져 있는 풍만한 가슴이었다.
몸이 굳어 버렸을 텐데도 신기하게도 시선만은 가슴으로 절로 모였다. 그 가슴의 주인은 당연히 소유였다. 강현은 평소에 상상했던 가슴의 모습과 달라 실망했다.
물론 소유에게 실망한 게 아니었다. 강현이 실망한 쪽은 자신의 안목이었다. 봉인이 풀린 듯 자유로워진 저 커다란 두 개의 융기는 강현의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자랑했다.
“헙.”
발광하고 있는 뽀얀 피부가 이루어내고 있는 아름다운 곡선에 그만 숨이 막혔다.
“앗, 죄송해요.”
샤워실에 아무 저항 없이 몇 걸음 들어온 소유가 뒤늦게 강현을 목격하고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강현이 먼저 샤워하고 있던 탓이었던 때문이지. 그만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
그걸 강현이 손을 뻗어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었다. 무안한 상황에서 소유가 고개를 돌렸다.
“죄송해요. 다현이가 같이 샤워하자는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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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연재 하루 쉬었네요.ㅠㅠ
대신 오늘 있다가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점심때 올릴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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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올릴때 적었는데, 오늘 간만에 외출스케쥴이 있었던걸 깜빡했네요.
연참은 무리일거 같아요.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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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강현이는 총각 딱지를 뗄 수 있을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