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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전사-67화 (6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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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아메리칸 드림(3)

“말도 안 돼요.”

강현을 몬스터 관리법 위반으로 체포하겠다는 제인의 말에 가장 격렬하게 반응한 건 채영이었다. 처음에는 국제 몬스터 관리조약. 안전관리국 규약 등등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한국말로 했지만. 이내 반 박자 늦게 통역되는 통역기에 의지해서 대화하는 게 갑갑했던 제인은 통역기를 벗었다.

그 뒤로 채영과 한참을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강현은 외국인과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하고 있는 채영을 보면서 비참함을 느꼈다. 학창 시절 10년 넘게 영어를 배웠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다니. 이건 분명히 공교육이 나쁜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강현은 한참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서로 한창 열 내면서 대화하다가 손으로 강현을 가리켰다가 저 늑대가 있었던 숲 속을 가리켰다가 했다.

‘역시 영어에서 중요한 건 제스쳐 인 거 같아.’

둘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면서 강현이 숲 아래로 내려다보니까 몬스터 늑대 한 마리가 레이더에 여전히 포착됐다.

“휴우 오래 기다리셨죠?”

채영이 잔뜩 지친 표정으로 대화를 마친 뒤 돌아왔다. 채영은 강현 앞에서 저렇게 융통성 없고 까다로운 사람은 처음 본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강현은 이제 내 고충을 알겠지? 라는 표정으로 채영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쨌든, 체포는 안 하는 걸로 합의했습니다. 다만, 저 몬스터들을 잡고서 나온 몬스터 코어는 절대로 해외반출이 안 된다고 엄포를 놓더군요.”

“미국에서 사간대요?”

예거를 먹은 김에 막간을 이용해 JS온라인 내에 쓸 자금 마련을 위한 사냥이었으므로 미국이 제대로 돈만 쳐준다면 불만은 없었다. 국내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방금 사냥에서 얻은 몬스터 코어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국에 가야겠다는 그런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아뇨. 미국에서도 구매 안 한답니다.”

평소와 달리 인상을 잔뜩 구긴 채영의 말을 듣고서야 강현은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미국에서 적정시세에 사지도 않고, 미국 밖으로 들고가지도 말라. 그 말은 여기에 얌전히 두고 가라는 협박을 에둘러서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히야 여기에도 게임 안에서처럼 사냥터 독점하고 그러는게 있나 보네.”

강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혀를 쳤다. 국내최대 군사대국이었던 미국은 몬스터의 등장 이후에 예거를 제일 먼저 개발하면서 도퍼들이 제일 먼저 생겨났고, 이후 몬스터 산업도 선점하고 있었다. 그런 미국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려고 하는 정부관계자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제인과 채영이라서 이렇게 설전을 벌였지. 미국담당자가 막무가내인 사람이었으면 체포까진 안 되더라도 이 자리에 쫓겨났을지도 몰랐다.

강현은 결심한 듯. 채영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네?”

강현이 손쉽게 포기하고 나서자 채영이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뒤쪽에서 이쪽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제인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 놀았으니까. 된 거죠. 뭐. 어차피 예거 먹은 게 아까워서 온 거니까. 이대로 가면 상관없죠?

-네,네.

황급히 다시 통역기를 옷깃에 꽂은 제인이 대답했다. 제인은 좀 더 충돌이 있을 걸 예상하고 주 방위군 소속의 도퍼를 호출해두기도 했었다. 그와 동시에 협상이 필요하면 반반으로 나누는 것까지 고려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강현은 별다른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저 숲 속에 수십, 수백억 원어치의 몬스터 코어를 내버려둔 채 가버리려는 것이다.

강현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몬스터 늑대들에게서 나온 몬스터 코어들은 모두 강현의 인벤토리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펭귄상륙대첩때의 교훈이었다. 막무가내로 몬스터 펭귄을 퇴치하고 난 다음 수많은 인력이 몬스터에 달라붙어서 부패하고 있는 몬스터 사체 해치고 코어를 끄집어내 나가는 게 여간 힘들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거기다 이곳에는 그 잡일을 해줄 만한 사람도 없어서 직접 해야 했다. 어차피 혼자서 처리해야 할 일이라면 짬짬이 해버리자고 마음먹었다. 몬스터 늑대 한 무리를 잡고 잠시 숨돌림 틈에 짬짬이 몬스터 코어를 회수했다.

때문에 미국 측에서 이 일대의 몬스터 코어를 회수한다고 수색해봤자. 제대로 된 거 하나 건지기 힘들 것이었다. 그나마도 수색하기 전에 제인이 방해하는 바람에 강현이 한 마리 놓친 몬스터 늑대를 마무리 지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강현이 신경 써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강현은 채영과 같이 자신이 타고 왔던 헬기 방향으로 걸었어갔다. 제인은 여기저기에 연락해서 빨리 출동하라고 채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우우우우-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몬스터 늑대가 숲을 쩌렁쩌렁하게 흔들어 될 만큼 크게 울어댔다. 두 번, 세 번. 끊임없이 울어댈 거 같은 늑대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뚝 끊어졌다.

몬스터 늑대의 울음소리 때문에 숲을 내려다보던 강현은 무언가 변화를 느꼈다. 자신의 몬스터 레이더에도 몬스터 늑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났다. 느껴지는 건 A급 몬스터의 기척이었다. [ 콩 ]이 강현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알려줬다.

-표시했습니다. A급 몬스터 그리즐리 베어입니다.

*****

하나 남은 몬스터 늑대를 해치고 새롭게 등장한 A급 몬스터 그리즐리베어는 빠른 속도로 산에서 내려갔다. 작은 아파트만 한 크기의 몬스터 그리즐리베어는 숲을 거침없이 가로질렀다. 그 앞에서는 어지간한 거목들은 버텨내질 못하고 마구 꺾여나갔다.

몬스터 그리즐리베어는 거대한 질량에 무서운 속도로 움직일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철판은 그대로 종잇장처럼 찢어버릴 거 같은 사나운 발톱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곧 제인이 여기에 강현이 몬스터 헌팅을 하는걸 중단시키기 위해서 출동할 때 연락해둔 도퍼팀들이 도착했다. 주 소속 도퍼들은 몬스터 그리질리 베어를 앞에 두고 자신만만하게 막아섰다.

특히 예거를 먹고 덤프트럭만 하게 커진 스킨헤드의 흑인탱거는 정면으로 서서 그리즐리 베어를 멈춰 세우려고 했다.

“호오. 이거 재미난 구경거리인데요?”

“하지만 A급 몬스터인데 막아낼 수 있을는지.”

채영이 아무리 미국 내의 일이라고 안전관리국의 관리자답게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도퍼들이 몬스터에게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거 같았다.

제인에게 상황을 들어보니 때마침 퍼스트도퍼와 그 일행은 미국 서부로 원정을 떠난 상태라. 이곳에는 주 소속 도퍼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채영의 판단대로라면 B급까지라면 전력을 모아서 어떻게든 쓰러트릴 수 있었지만. A급 몬스터의 상대가 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그래도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데 뭔가 있지 않을까요?”

강현이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몬스터 그리즐리 베어와 스킨헤드 탱커가 격돌했다. 그리즐리베어는 눈앞의 도퍼가 사소한 방해 거리라는 듯 날카로운 발톱을 번뜩이는 커다란 곰 발바닥을 휘둘렀다. 그대로 동강하고 썰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때 양옆으로 농구공 두세 배는 될법한 쇠 구슬이 그리즐리베어에게 날아왔다. 하나는 다리 쪽을 하나는 눈 쪽을 노리고 온 것이었다. 어느 것 하나 쉽사리 무시하기 힘든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결국, 그리즐리베어는 몸을 슬쩍 비틀어 피했다. 육중한 몸매에도 기민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일직선으로 뛰어 내려오던 그리즐리베어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흐트러트렸다.

스킨헤드탱커에게 필요한 건 그 작은 틈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을 피해 양손으로 몬스터 그리즐리 베어의 한쪽 다리를 막아섰다. 그와 동시에 다른 쪽 발에도 두 명의 탱커가 달라붙었다. 일단은 마을 쪽으로 뛰어 내려가는 몬스터를 막은 거였다.

“탱커 어그로 성공. 원거리 딜러들 공격 시작해!”

스킨헤드의 외침과 동시에 그리즐리베어의 머리 쪽으로 딜이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강현은 일사불란한 미국 레이드팀을 보고는 절로 휘파람이 불어졌다. 레이드 하는 걸 이렇게 보고 있는 건 처음이었다.

“팀웍좋네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강현에게는 몬스터를 사냥할 때보다 [ JS 온라인 ]안에서 이렇게 한 몸처럼 움직일 동료가 필요했다.

강현이 미국 레이드팀을 칭찬하자 채영이 별거 아니라는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한국군 소속 도퍼들도 저 정도 팀워크는 충분히 해냅니다.”

한국말이었지만. 늬앙스만으로 채영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눈치챈 제인이 실소했다.

-말만으로는 누구나 하죠. 그것보다 이제 볼일 없으면 먼저 돌아가시죠?

이제 볼일 없으니까 그만 꺼지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강현은 슬쩍 한창 레이드중인 쪽을 힐끗 보면서 걱정하는 눈치를 꾸며내면서 이죽거렸다.

“정말이요? 후회 안 하실 거죠?”

-물론입니다.

제인의 대답과 동시에 데미지를 입은 몬스터 그리즐리 베어가 울부짖으면서 몸을 뒤흔들었다. 그러면서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자 몬스터를 잡아두고 있던 탱커들이 허공을 날아갔다.

-뭐, 뭐야?!

제인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어서 탱커를 날려버린 몬스터 그리즐리 베어는 뒤에 힐러들을 지키고 있는 근딜러를 향해 뛰어갔다. 대부분 한두 번의 공격을 맞고 들고 있던 무기가 박살 나버렸다. 한참 레이드 중이었던 팀은 순식간에 붕괴해버린 것이다.

*****

-어떻게 좀 해봐요.

“네? 여기에서 몬스터를 퇴치해도 몬스터 코어로 돈도 못 벌어 국내로 들고가지도 못해. 딱히 제가 몬스터를 잡을 이유라도 있나요?”

제인의 부탁에 강현이 차갑게 대꾸했다. 하지만. 제인은 그 자리에 서서 안절부절못했다. 순식간에 뉴욕 주둔 도퍼팀을 박살 낸 몬스터 그리즐리베어는 이어서 마을 쪽으로 방향을 자고 뛰어 내려간 것이다. 그런 몬스터를 아무 보답 없이 막아달라? 선의로 하기에는 관광객으로서는 너무 주제넘은 일이다.

퍼스트 도퍼에게 연락을 취해서 복귀시킨다거나 도퍼들을 긁어모아 내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야 있겠지만. 민가에 내려갔을 대의 피해는 어마어마 할 것이었다.

그 피해를 머릿속으로 떠올린 제인은 불쌍해 보이는 표정으로 강현을 연신 쳐다보았다. 채영은 그런 제인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님. 그래도 인명피해가 발행하기 전에 도와주시는 게.”

“인명피해라면 이미 대피하라고 조치 취한 거 아니었나요?”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강현과 채영이 실랑이하고 있을 때. 옆에서 털썩하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보니 제인이 어디서 본 건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박고 있었다.

-제가 무릎 꿇고 사죄하겠습니다. 도와주세요.

그 모습을 본 강현이 억지로 제인을 일으켰다.

“이러지 마세요. 도와드릴 테니까.”

-강현님 감사합니다.

감격한 제인은 목이 메는지 갑작스레 쉰 목소리였다. 하지만 강현은 이런 상황에서도 그냥 넘어가진 않았다.

“그래도 그냥 도와드릴 수는 없고. 제 조건은 하나입니다. 부당한 요구도 아니고요.”

-어떤 요구를....하실 건가요?

“어디까지나 미국에 있을 때. 몬스터에 대해서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지금처럼 참견하지 말아 달라는 거 하납니다.”

-무, 물론입니다.

생각보다 쉬운 일에 제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참. 하나 더. 잠깐 뒤로 돌아주세요. 채영씨도요.”

“네?”

“어서어서.”

강현은 채영과 제인의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는 인벤토리를 살짝 열어서 거기서 몬스터 코어를 하나 꺼냈다. 예전에 보스급이나 마찬가지였던 A급 펭귄몬스터를 단방에 쓰러트릴 때 썼던 A급 몬스터 코어였다. 아직 잔여에너지가 남아있어 한두 번은 족히 더 쓸 수 있어 보였다.

“좋아. [ 콩 ]! 레이저버스터 모드 온.”

강현의 말과 함께 왼쪽 팔목에 있던 [ 콩 ]이 모습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강현의 몬스터 레이더에 A급 몬스터 그리즐리 베어는 더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갑자기 너무 추워졌네요.

독자 여러분 감기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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