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65화 (6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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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아메리칸 드림(1)

미국 땅을 밟은 뒤 강현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루엘타워내의 의료실이었다. 세계 최고의 의료진이 있는 이곳의 중환자병실 중의 한 곳에는 눈을 뜨지 않는 소유가 누워있었다.

“소유씨...”

강현은 회복 캡슐 위에서 소유를 내려다보면서 나직이 불러봤지만. 강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소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미 미국에 오기 전에 채영에게 대강의 사정은 들었다. 알렉스 루엘이 다현에게 청혼하면서 따라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는 다현이에게 그런 재벌이 왜 들이대는지 이해 못 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는데, 함께 찍힌 사진을 보고서야 믿었다. 그 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근원을 모르는 분노였다. 더군다나 이제 20살인 다현에게 들이대는 알렉스의 나이가 32살이라는 걸 듣고서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들고 있던 태블릿 피시를 부숴버렸다.

‘띠동갑이라니!’

거기다가 그 녀석 때문에 다현이 그레이라는 범죄집단에 납치당했고, 그 과정에 나서서 지키려던 소유가 중상을 입었다. 거기에 왜 소유가 같이 있는지는 의아해했지만. 다행히 다현이는 무사히 구했다고 들었을 때는 그 자리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소유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 주제에 보자마자 동생을 달라고 한다니. 용서가 안 됐다. 루엘이라는 이름만 달고 있지 않았으면 벌써 어딘가에 파묻어버렸을지도 말랐다.

“제가 개발한 힐링머신을 통해서 치료를 마쳤음에도 깨어나시질 않네요. 혹시나 싶어서 힐러를 데려와서 치료해봤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소유를 내려다보는 강현의 옆에 서 있던 알렉스가 그렇게 설명을 했다. 강현은 굳은 표정으로 알렉스를 쳐다봤다. 금발에 벽안. 외국인 주제에 한국어가 유창한 것도. 굳이 다현이 옆에 서 있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이거 캡슐 뚜껑 열어주세요.”

“네?”

알렉스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다른 병원이라도 데려가려고 하는 걸까? 하지만 숨겨진 명의라도 있지 않은 이상 더 좋은 치료는 받기 힘들 터였다.

“이거 열어달라고요.”

다소 시비조로 이야기하는 강현에게 움찔한 알렉스는 황급히 의료캡슐을 조작했다. 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캡슐의 뚜껑이 천천히 열렸다. 아무리 눈치 없는 알렉스라도 강현이 굳이 존댓말을 하는 건 거리감을 두고 있어서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

알렉스는 강현이 예거를 품속에서 꺼내는 걸 보고 강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무리라고 생각했다. 2급 힐러도 깨어나게 하지 못한 소유를 강현이 깨어나게 한다? 간혹 도퍼 중에서도 여러 가지 능력을 보유하긴 했지만. 높은 등급을 복수로 보유한 경우는 드물었다.

전의 전투를 봤을 때 원딜, 근딜 1급처럼 보이긴 했지만, 힐러 능력까지 3종류나 고 등급을 보유하고 있을 확률은 낮았다. 괜히 헛된 시도를 해서 더욱 절망하는 게 아닐까 걱정되어 말리려고 했지만. 강현은 이미 예거를 삼킨 뒤였다. 이내 무릎을 꿇고 소유의 손을 잡고 힐을 보내고 있었다.

“아.”

알렉스 옆에서 그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던 다현이 다음에 벌어진 상황을 보고 놀랐다. 평생 잠자고 있을 것만 같았던 소유가 눈을 조용히 뜬 것이었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강현을 본 소유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또 구해주셨네요.”

*****

‘휴우. 다행히 [ 상태이상 치료 ]는 제대로 먹혔네.’

병실밖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힐과 달리 이런 용도로 써본 적 없는 게임스킬이었다. 그 뒤로 소유와 감격스러운 재회를 음미할 수는 없었다.

다현이 울먹이면서 소유에게 안겨든 다음 ‘다행이야’ 라면서 울기 시작해버린 탓이었다. 소유는 그런 다현의 머리 쓰다듬으면서 연신 달래기 바빴다. 그런 다정한 모습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고 할까?

강현이 숨을 돌리자마자. 멀리서 강현을 지켜보고 있던 알렉스가 쪼르르 다가왔다.

“저기. 형님.”

“누가 형님입니까? 저 아직 창창한 20대인데요.”

“아니, 그럼...뭐라고.”

알렉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귀여운 척을 하려는 걸 강현은 이를 악문 채로 참아냈다.

“그냥 편하게 이름 부르세요.”

“아, 그럼. 강현.”

“그 정도로 편한 사이는 아닌데 씨는 붙여주시고요.”

“네. 강현씨...아니, 그냥 강현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알렉스가 쩔쩔매면서 겨우 호칭을 정리한 다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대하기가 어려운 사람은 처음이었다. 겨우 심기일전한 다음에 무뚝뚝한 강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강현님.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도퍼 커뮤니티에서 나와 있는 등급은 참고할게. 못 되는 거 같아서.”

그러고 보니 강현은 도퍼 커뮤니티에 안 들어간 지 오래된 걸 깨달았다. 어쨌든 대답은 뒤에 있던 사람이 대신했다.

“그건. 국가기밀사항이라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딱 잘라서 말한 사람은 관리자 권채영이었다. [ JS 온라인 ]을 클리어하느라 바쁠 때, 강현을 불러서 여러 정보를 알려준 다음. 강현이 미국행을 결정했을 때 전용기를 수배하고 같이 비행기까지 탔다.

강현은 채영이 동행하는 게 마뜩잖았지만 영어를 잘한다는 말에 그래도 통역 삼아 데리고 왔었다.

알렉스는 채영을 보고는 강현에게 쩔쩔매던 표정을 금세 풀었다. 아무래도 채영과 안면이 있는 거 같았다.

“에이~ 미스 권. 우리 사이에 기밀 같은 게 어딨어요. 아니면 제가 미국정부 통해서 알아봐요? 괜히 서로 피곤하게 기 싸움하지 맙시다. 언더스탠?”

누가 봐도 능숙한 협박이었다. 그것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강현은 평소에 채영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대놓고 한국어로 그렇게 시비를 거는 건. 자기가 한국 정부 측의 사람을 이렇게나 압박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걸. 과시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저기. 말이 좀 심하신 거 같습니다.”

강현이 점잖게 한마디 던졌을 뿐이지만. 알렉스는 그새 굽힌 모드로 돌아왔다.

“앗. 그런 게 아니라...어디까지나 우호적인 미한관계에서 서로 숨기는 거 없이. 정보를 공유하자는 거였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럼 제가 답해드리면 하나 제가 궁금한 거 하나 알려주시나요?”

“네? 그거야...”

알렉스가 머리를 굴리면서 손익을 계산하려고 할 때. 재빨리 강현이 채영에게 눈빛을 줬다. 그 눈빛을 받은 채영이 얼른 대답했다.

“강현님은 모든 등급이 1등급입니다.”

“모든 등급이라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시를 하는 알렉스를 보고 채영이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네. 탱커,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힐러. 4가지 분류등급 모드 1등급입니다. 아니 현재까지는 1등급밖에 분류되지 않지만. 일반 1등급을 웃돈다고 저희 측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그, 그래도 아무리 힐러 등급이 높다고 해서 저렇게 혼수상태의 사람을 치료해내진 못한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잖아. 자력으로 깨어나는 게 아닌 이상.”

“그것까지는 저희도...”

채영이 말꼬리를 흐렸다. 강현은 두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면서 답을 구하는 걸 짐짓 모른척했다. 강현이 게임 스킬로 치료한 거라도 밝히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이 어떻게 소유가 깨어났는지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보다 이제 제가 궁금한 거 물어봐도 될까요?”

강현의 말에 알렉스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강현과 채영을 쳐다봤다.

“단, 미스 권이 궁금해하는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 강현님이 궁금하신 걸 물어보셔야 합니다.”

알렉스의 경계심이 가득한 말에 강현은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렇군요. 전 예거아머 만드는 방법이 궁금한데요?”

그 질문에 알렉스가 주춤한 다음에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물론, 강현은 알렉스가 그런 중차대한 정보를 손쉽게 뱉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 즉흥적으로 알렉스가 가장 곤란해할 질문을 생각해서 말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알렉스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좋습니다. 알려드리죠. 어차피 미스 유와 결혼하는데 비밀을 두는 것도 내키지 않으니까요.”

‘혼자서 무슨 소리래.’

알렉스는 큰 결심을 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강현은 어이가 없었다. 부자는 모두가 이렇게 자기중심적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알려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강현님의 등급만 듣고 알려드리기에는 수지타산이 안 맞네요. 제 부탁을 하나만 더 들어주시면 알려드리죠.”

“부탁?”

*****

“블랙마켓을 상대로 하는 건 위험합니다.”

알렉스가 마련해준 숙소로 들어가자마자 채영이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알렉스의 부탁은 간단했다. [ JS 온라인 ]을 우승한 다음에 그 상품인 예거아머를 가지고 블랙마켓과 거래해달라는 것.

블랙마켓에서 예거아머를 노리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유명했다. 현재로서는 세상에 두 벌밖에 없는 거니까. 단순히 컬렉션을 위해 갖고 싶어하는 부호부터. 예거아머를 분해해서 신병기로써 활용하고자 하는 국가 등. 눈을 번뜩이면서 갖고 싶어하는 곳은 미어터지게 많았다.

그러므로 정당한 방법. 즉 [ JS 온라인 ]에서 우승해서 예거아머의 정당한 소유자가 된 다음 블랙마켓에 가서 거래해야 한다.

일전의 블랙마켓 경매 때도 S급 몬스터 코어의 경매가가 수백억을 넘어서 천억대에 이르렀지만. 그 원래 주인이 알렉스 루엘이라는 소리에 참석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결국, S급 몬스터 코어는 유찰되어서 일본으로 회수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처럼 알렉스가 소유한 예거아머를 S급 몬스터 코어처럼 탈취해 간다고 해도 옥션에도 올리기도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아직 루엘가를 쉽게 거스를만한 국가나 조직은 그레이 정도밖에 없었다.

어쨌든 알렉스는 강현이 예거아머를 우승상품으로 가지고 블래마켓에 가서 자신이 도둑맞은 S급 몬스터 코어와 한 번도 경매에 나오지 않았던 화이트코어를 트레이드해오길 원했다.

“거기다가 화이트 코어는 저도 처음 들어봐요.”

채영이 자신의 머릿속에 입력된 각종 정보를 끄집어 봤지만. 그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염려하는 채영의 모습이 낯설었던 강현은 한숨을 쉬고는 소파에 퍼질러 앉았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차피 하기로 한 거였잖아요.”

“네. 그랬었죠.”

미국에 오기 전에 이미 정부에서는 팀별로 [ JS 온라인 ]에서 우승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었다. 채영도 강현을 자신의 팀에 넣기 위해서 접촉을 했었다. 이미 강현이 플레이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도퍼이자 게임에 조예가 깊다는 것. 그리고 동생이 알렉스 루엘과 접점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같이 팀을 짜기를 원했다. 강현도 솔로 플레이로는 2단계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팀을 만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 게임은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제대로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므로 아무나 같이 할 수 없었다. 국가나 다국적기업의 스폰서가 있어야 했다.

“한국에서는 누가 접속하게 되나요?”

“최종 선발 중입니다.”

여기에 뽑히는 사람은 아마 막대한 보상을 얻게 되리라.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다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참을 운 탓인지 눈이 새빨갰다.

“오빠. 여기서 뭐 해?”

“아 잠깐 일 이야기했어. 소유씨는 괜찮아?”

“의사선생님이 아직 하루 정도만 더 경과를 보자고해서 내일 퇴원하기로 했어.”

“그래. 이제 내가 가봐도 되겠지?”

“응.”

그렇게 말한 강현은 병실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채영에게 말했다.

“그럼 시차가... 아니. 한시가 급한 일이니 국내에서도 접속할 수 있게 준비해주세요.”

“네.”

============================ 작품 후기 ============================

11월달도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독자분들도 이번 달 마무리하시고 다음 달도 건강하게 보내세요.

(송년회등 회식자리가 잔뜩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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