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3 회: 13장. 막간극 -- >
13장. 막간극 (5)
-어디로 가세요? 차량 준비하겠습니다.
루엘 타워 로비. 다현과 소유가 나가는 걸 보고 황급히 따라온 세바스찬이 두 사람에게 권했다. 재빨리 뛰어왔음에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편하게 돌아다니고 싶었던 두 사람은 세바스찬의 정중한 제안을 거절했다.
“저흰 괜찮아요. 그냥 잠깐 구경하고 올 거예요.”
-그러시군요. 최근 뉴욕에 몬스터 출현이 늘어났다고 하던데 조심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세바스찬님도 이제 저희 신경 쓰지 마시고. 좀 쉬세요.”
-과분한 배려 감사합니다.
세바스찬이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를 숙인 다음 다시 로비 안쪽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본 다현과 소유는 감탄했다.
“언니 세바스찬님 멋지지 않아요? 집사라니. 만화에서나 볼법한 집사처럼 행동하시잖아요.”
“그러게. 나도 저런 분이 실제로 존재하실지 몰랐어. 그럼. 다현이의 취향은 알렉스보다 세바스찬님?”
소유의 말에 다현이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그런 건 아니죠. 한 30년 정도 젊으시면 모를까? 그보다 오늘 어디 가실 거예요?”
“전에 말했던 퀸즈로 갈까 하는데 어때? 그렇게 멀지도 않고, 퀸즈 플러싱 쪽으로 가면 한인들이 많이 살아서 한식가게도 많거든. 다현이가 좋아하는 치킨 요리랑. 오랜만에 양념갈비나 비빔밥도 먹을 수 있을 거야.”
“오예. 어서 가요.”
“알았어. 알았어. 천천히 가~”
신 난 다현이 소유의 팔을 잡아끌었다.
*****
“미스터 노. 그럼 부탁합니다.”
다현와 소유가 루엘타워를 벗어나는 걸 카메라로 보고 있던 세바스찬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한 남자가 커다란 소파에 다리를 올린 채 거들먹거리면서 앉아있었다.
“나 참, 중요한 일이라더니만. 한국인 경호야?”
“알렉스님의 소중한 사람입니다. 벌써 주목하고 노리는 악인들이 많겠죠. 폴도 회복되었으니 붙여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노정석이 똑바로 앉았다. 폴이라면 미국 도퍼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탱크였으니까.
“뭐? 그 정도로 대비해야 하는 거야? 그쪽 삶도 편치 않겠구먼.”
“그쪽도 만만치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저번에 습격한 자 중 아직 체포 안 된 자들에 대한 정보입니다. 폴도 당했죠.”
세바스찬이 한쪽에 둔 태블릿 피시를 노정석에 건넸다. 정석은 씩 웃으면서 그걸 받아들었다.
“한마디도 안 진단 말이야. 내게 맡겨두라고.”
*****
몇 시간 뒤.
뉴욕 퀸즈. 플러싱 내 위치한 메도우 코로나 공원을 거닐고 있는 두 여인이 있었다. 한쪽은 볼록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그 모습을 보면서 미소 짓고 있었다.
“그렇게 맛있었어?”
“네.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식 먹었으니까요.”
한인 식당에서 양껏 배를 채우고 나온 다현은 기분이 완전 좋았다.
“와아. 여기 영화에 나왔던 곳 아니에요?”
아파트만 한 대형 지구본을 보고 다현이 소리쳤다.
“눈에 익지? 저 안쪽에는 동물원도 있어.”
“앗, 저 동물 좋아해요.”
“나도. 동물들이 잘 따르거든.”
결국, 둘은 식후 운동 겸해서 퀸즈 동물원으로 가기로 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동물원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이 커다란 동물원 안에는 처음 보는 무늬의 물새들부터 퓨마, 바다사자등 익숙한 동물뿐만아니라.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이 많았다. 특히 커다란 돔형식으로 된 새장에서는 새들이 한 번씩 머리 위를 돌고 갈 정도였다.
거기다가 희한하게도 소유와 다현 두 사람이 구경하는 게 아니라. 한가로이 있던 동물들이 펜스에 바짝 붙어서 두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소유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놀랐지? 동물원 올 때마다 이래.”
“아뇨. 언니가 동물들을 좋아하는 만큼. 동물들도 언니를 좋아하는가 봐요. 어쨌거나 전 좋아요. 전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잖아요.”
좀 더 안쪽으로 걸어가니까 좁은 길에 비석이 좌우로 늘어져 있었다.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다른 비석에는 영어로 된 이름과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 비석들은 뭐에요? 혹시 여기 동물원에 살았던 동물들을 추모하는 건가요?”
다현의 질문에 소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동물원에 있었던 동물들이 아니라. 지구에서 멸종된 동물들이야. 스텔러바다소 1767년. 도도새 1681년. 캐롤라이나잉꼬 1930년. 나그네비둘기 1914년...”
“아...”
“각종 공해와 서식지 파괴로 해마다 5만 여종의 생물들이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해.”
“그렇게 나요”
다현은 중얼거리면서 새삼스럽게 주위의 비석을 둘러봤다. 괜히 분위기가 어두워진 거 같아서 소유는 재빨리 사과하고 여기를 나가려고 했다.
“아, 미안 괜히 불편한 이야기 했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인간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해로운 존재일지도 몰라요. 서로 욕심부리느라 불필요한 게 너무 많이 생긴 거 같아요.”
“그냥 소중한 사람이랑 같이 있는 것만 해도 좋은데 말이지?”
“네.”
두 사람은 말하면서 마주 봤다. 그러고는 동시에 빙긋 웃었다.
“그럼 이제 돌아갈까?”
“네 언니. 그전에 장이라도 보고 갈까요? 아까 한인타운 지나면서 보니까 고추장이랑 조미료도 파는 거 같더라고요. 맨날 신세 졌으니까. 한국 요리라도 해먹이죠. 뭐.”
“그거 기대되는데? 나도 도와줄게.”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동물원 밖을 나오려고 했던 다현과 소유의 앞에 시커먼 사람이 나타났다. 얼굴을 가린 두건을 쓰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악의가 있는 듯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뭐, 뭐에요?”
당황한 소유가 다현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주위를 도망칠 곳을 찾기 위해서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주위로 수십 명의 사람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나같이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두건을 쓰고 있었다.
정면에 있던 한 명이 나서서 두 사람에게 손을 뻗었다.
“STOP!”
그 말과 동시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소유와 다현이 비명을 지르면서 그대로 무너졌다.
“꺅!”
공간장악을 펼친 사내가 다른 손으로 손짓하자. 뒤에 있던 사내들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현에게 달려왔다. 그때.
“스탑은 고스톱 칠 때나 찾아라.”
누군가 한국말로 썰렁한 유머를 하면서 점프해왔다. 그 사람은 순식간에 공간을 차단하는 막을 부숴버리고 다현들의 앞에 착지했다.
“너, 넌. 퍼스트 도퍼?”
괴한들은 노정석을 알아보고 당황했다. 도퍼 경호원이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그게 1급 도퍼. 그것도 퍼스트 도퍼인 노정석 일 줄 생각도 못 했으니까.
“날 알면 이야기가 쉽겠네.”
여유 있게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리던 정석은 괴한들에게 말했다.
“꺼져.”
단호하고 일방적인 통보. 하지만. 괴한들도 작정한 듯 주춤거렸어도 물러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대답 대신 품속에서 총을 꺼냈다. 그때. 좌측에서 또 한사람이 나타나서 노정석의 옆에 당당하게 섰다. 2미터 5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고. 알렉스 루엘의 전담 경호도퍼 탱커 폴이었다.
“어이어이 반응이 너무 늦잖아?“
“미스터 노가 너무 빠른 겁니다.”
“어쨌든. 그만 포기하시지. 안 그러면.”
정석과 폴이 영어로 가벼운 한담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면서 주의를 끌다가 정석이 갑자기 정면으로 뛰었다. 저공 비행하는 독수리와 같은 기세였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쉽사리 반응할 수 없는 속도. 노리는 건 정면에 있던 공간장악 능력자였다.
“그럴 수는 없죠.”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어느새 정석이 내민 주먹을 잡았다. 하지만 정석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자신의 주먹을 축으로 회전해 발차기를 먹였다.
“소용없습니다. 그쪽의 공격은 이미 제 예측범위 안에 있으니까요.”
“이쪽이 보스구먼. 이건 예상외인데?”
뒤쪽에서 봤을 때는 정석의 발차기가 먹혀들어간 것 같았지만. 여자는 다른 손으로 발차기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 감각을 느낀 정석이 쉽지 않은 상대임을 눈치챘다.
뒤쪽을 힐끔 보니 어느새 폴이 그 거구로 길을 거의 가로막다시피 하면서 막아내고 있지만 언제 뚫릴지 몰랐다.
‘이런 젠장.’
정석은 자신의 틈을 노리고 양옆으로 찔러오는 능력자들을 펀치로 각각 날려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혼전 상태에 인질로 삼을 여자들이 다칠까 봐 걱정된 탓인지 몰라도 총을 쏘아대진 않는다는 거였다.
‘일단 이 여자와 거리를 벌리고 다현 양부터 구해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고 발을 내딛기 직전에. 여자 쪽에서 먼저 선수를 쳤다.
“지금입니다.”
“응?”
또 다른 공격이 준비되어있는 건가? 그런 경계심을 품고 한 발짝 물러서려고 할 때. 여자의 뒤쪽에서 그림자가 나타나 손이 뻗어나 왔다. 접촉하면 위험한 걸 직감적으로 깨달은 정석은 뒤로 점프했지만. 반 박자 늦은 탓에 손끝에 닿고 말았다. 정석은 몸속의 힘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세바스찬이 보고해준 특이체 중. 도퍼 능력 흡수형이 틀림없었다. 정석은 자신이 방심했음을 깨닫고 혀를 쳤다.
자신이 이 여자 보스를 상대할 동안. 특이체 둘이서 폴을 제압한 전력이 있는 만큼. 둘이서 폴을 먼저 제압할 거라고 예상한 덕분이었다.
“젠장.”
그 말을 남기고 정석은 그대로 쓰러졌다. 뒤쪽에 있던 폴은 그걸 보고 품속에서 연막탄을 꺼내려고 했지만. 여자가 달려와서 제지했다. 그다음에는 일사천리. 폴은 금세 제압당했다.
“그럼. 이제 이 여자들을 회수해볼까요?”
여자가 손짓하자 커다란 가방을 다시 가져왔다. 그때. 이 소란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소유가 일어나서 외쳤다.
“안돼요!”
말은 안 통했지만. 명백한 거절의사. 하지만 이 무능력해 보이는 동양인 여자가 무슨 짓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모두 비웃었다.
푸드덕-
“어 뭐야?”
비웃는 소리는 갑자기 나타난 새떼들에 의해 묻혔다. 새들은 한 종류도 아니었다. 수백 마리의 새떼들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서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으악. 이게 뭐야.”
“저리 꺼져.”
다탕탕. 괴한 중 한 명이 허공에 총을 쐈지만. 새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되려 더욱 맹렬하게 공격했다. 괴한들은 손에든 무기로 새들을 해치거나
“으악. 살려줘.”
탕. 두 번째 총성에 갑자기 새들이 하늘에 흩어졌다. 하늘은 순식간에 어지러워졌다. 새들이 도망치고 남은 자리에는 소유만 서 있었다. 소유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양손으로 복부에 손을 대고 이었는데, 그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윽.”
소유는 신음성을 내뱉으며 그대로 엎어졌다. 총을 쏜 건 정석과 상대하던 여자였다. 옆에 있던 괴한이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간장악 능력을 쓰던 자였다.
“미스 그레이. 괜찮습니까? 도퍼들은 해치면 않는다고.”
“이 동양인 여자는 도퍼 능력자가 아니야. 내 예지 범위 안에서 행동이 예측되지 않았어.”
“과연.”
괴한은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대로 철수한다.”
*****
“뭐 혼자 오라고? 그것도 알몸으로?”
다현을 납치한 괴한들은 곧바로 알렉스에게 연락을 취했다. 자신들이 보낸 지도의 장소로 혼자서 오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예거아머등 수상한 장치를 가져오지 말고 알몸으로 오라는 요구였다.
제일 먼저 반대한 것은 세바스찬이었다.
“알렉스님.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루엘가의 가주를 그렇게 위험한 곳에 단신으로 보냅니까?”
“아냐. 내가 혼자 가야 할 사안이다. 나 때문에 그런 험한 꼴까지 당했는데. 내가 어떻게라도 해야지.”
“하지만 알렉스님...”
“걱정하지 마! 그냥 당할 생각은 없으니까.”
알렉스는 세바스찬을 보며 씩 웃었다.
============================ 작품 후기 ============================
연참이라기엔 늦었지만, 그래도 연참입니다.ㅠㅠ
중간에 살이 조금 붙어버렸네요.
그나저나 바닥이 차가운데 보일러가 안되네요;ㅁ;
다들 추운데 감기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