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59화 (5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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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막간극(1)

인천펭귄상륙대첩이 있기 이틀 전.

“아참, 여기로 분명히 예약했단 말이에요.”

뉴욕 맨해튼. 6성급 호텔 뉴델러노.

그 로비에서는 때아닌 소란으로 시끄러웠다. 동양인 관광객 두 명이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한 명이 진상을 부리고, 한 명이 말리는 형국이었다.

“다현아 진정해.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봐. 저기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소유 언니두 참 외국인이라고 굽실굽실할 필요 없어요. 자기권리는 당당하게 찾아야죠. 거기다가 채영이 언니가 호텔 바꿔놓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 언니가 실수할 리가 없어요. 얼른 찾아보세요. 예약 명단에 있죠?”

속사포처럼 쏟아대는 다현의 한국어에. 응대하고 있던 프론트서비스 매니저 로이는 식은땀을 흘렸다. 평소라면 소란을 일으키기 전에 적당히 무마시키면 된다. 서비스를 주거나 공실에 묵게 하거나.

문제는.

이곳에는 블랙마켓이 열리게 되어있어. 출입이 엄금되어있기 때문이었다. 한 달 전부터 호텔에는 어색하지 않게 위장손님들이 묵게 되어있었다.

이런 어중이떠중이 관광객들을 묵게 했다가 문제라도 일으킬 경우에는 소란의 책임은 자신이 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자신의 목숨으로.

‘관광객들이 여기에 오다니, 무슨 착오가 틀림없어.’

더욱 황당한 건 분명 저 둘이 예약명부에 있다는 것. 어딘가의 말단 직원이 실수한 것일까?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 쩔쩔매고 있을 때. 로이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능숙한 한국어와 멋진 저음으로 새삼 사이에 끼어든 남자는 총 매니저 잭이었다. 살가운 미소를 띠며 두 사람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로이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딱 봐도 이야기가 잘 되는 듯 아까와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한참을 두 사람과 이야기하던 잭은 오히려 싱글벙글 웃으면서 호텔리어에게 지시해 카드 키를 내줬다. 그 모습에 로이는 놀랐다. 저래도 되는가? 하지만 그 의문은 두 관광객이 벨보이의 안내를 받으며 사라진 뒤에 잭에게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저 아가씨들 한국정부에서 보낸 거 같아.”

“한국정부에서?”

“여기 오기 전에 뒷조사를 해보니, 예약자가 한국의 안전관리국 직원이었어. 물론 경비도 그쪽에서 결제하는 걸로 되어있고. 아마도 한국대표로 이번 블랙마켓에 참가하러 오는 거 같았어.”

“근데 보통 저렇게 관광객 차림으로 와?”

일반 호텔이라면 좋은 위장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드레스 코드에 맞지 않았다.

“한국은 국정원도 그렇고 뭔가 일 처리가 어설픈 거 같단 말이야.”

로이는 몇 달 전에 한국요원들을 망신줬던 추억을 떠올렸다. 블랙마켓이 열리는 날짜를 잘못 입수하고 잠복하고 있던 걸 알았다. 그 뒤로 몇 개월 동안 이 호텔에 언제 열리나 투숙하고 기다렸다가 때마침 저번 달에 퇴실했던 터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온다는 한국대표도 미스 유였지? 그럼 옆의 글래머 아가씨는 한 명만 붙여올 수 있다는 경호원인가? 왜 한 명밖에 못 데려오는 경호원을 여자로 한 거지? 이해가 안 가.”

로이는 지난달부터 숙지하고 있던 고객리스트를 되짚어가며 중얼거렸다. 프론트 매니저인 로이와 총 매니저인 잭만 알고 있는 명단이었다. 잭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모르지. 저렇게 보이는 아가씨라도 특수훈련을 받은 요원이라든가. 요즘은 어디 외모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잖아. 도퍼일 수도 있고 말야. 거기다가 저 커다란 가슴안에 뭔가 비밀병기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들지 않아?”

“뭐야 이 저질.”

루이는 잭의 말에 나무랐다. 평소라면 손님을 상대로 절대로 농담을 하지 않는 잭이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그런 농담이라도 않으면 못 버틸 테니까. 적당히 웃고 넘어갔다.

“몇 년에 한 번 하는 거지만. 블랙마켓때마다 신경 쓰느라 죽겠어.”

“말 꺼낸 김에 곧 VVIP가 온다니까. 그쪽이나 준비해.”

“뭐? 젠장.”

로이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

“야호. 여기 침대 너무 좋아요.”

다현은 문을 열자마자 방으로 뛰어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혼자서 좌우로 몇 번을 뒹굴어도 될 만큼 널찍했다. 창가로 간 소유는 뉴욕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었다.

“다현이 말대로 호텔을 바꾼 보람이 있네. 야경도 멋질 거 같아.”

두 사람은 채영이 마련한 미국행 비행기에서 만났다. 바로 옆자리였다. 소유는 유다현이라는 이름을 듣고 나서 다현을 보니. 왠지 강현과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름도 비슷하기에 혹시나 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혹시 게임 좋아하시나요?”

라고.

강현이 동생을 위해서 문화상품권을 편의점에 사러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히 다현은 게임 안 한다고 대답해서 처음에는 강현의 동생이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이어서 다현이 게임을 좋아하는 건 강현 오빠라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겨우 다현이가 강현의 동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편 다현은 강현이 자신을 팔아서 문상을 샀다는 말에 분노했다.

“강현 오빠. 만나면 죽었어. 어디 동생을 팔아서 문상을 사다니.”

다행히 그 분노는 나긋나긋하고 다정한 소유와 대화하면서 금방 풀려버렸다.

그 뒤. 갑작스러운 미국행에 계획이 없었던 둘은 의기투합해서 같이 여행을 다니는 중이었다. 그래서 예약했던 호텔을 취소하고 돈을 합쳐서 뉴욕에서 제일 비싼 호텔을 예약했다.

자신의 돈으로 호텔을 예약하는 거라면 둘이 함께 묵으면서 호텔비를 반반 나눴겠지만. 이번 여행은 어디까지나 정부에서 내는 총 경비여서 아끼는 게 의미가 없었다. 때문에 둘이 합친 경비로 자신들이 묵을 수 있는 제일 좋은 곳에 예약을 변경한 곳이 이곳이었다.

“저녁은 룸서비스 먹을래? 아니면 내려가서 뷔페 먹을까?”

“당연히 뷔페죠. 룸서비스는 돈 들잖아요.”

소유의 말에 다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침 배에서 꼬르륵 대기 직전이었다.

“여기에도 치킨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

몇 시간 뒤.

뉴델러노 호텔의 정문 앞에 리무진이 섰다. 조수석에서 내린 사람은 반백 머리의 단정하게 차려입은 집사. 기품있는 모습으로 뒷문을 열자 안에 탔던 청년이 내렸다. 20대의 나이에도 올곧게 선.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루엘가의 가주다운 모습.

집사는 그런 주인의 모습에 만족했다.

“주인님. 이쪽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다음 알렉스 루엘은 입구로 향했다. 그 뒤로 2미터 하고도 머리 하나가 더 들어갈 만큼 큰 키에 굴강한 체격의 거한이 따라붙었다. 보디가드였다. 알렉스 루엘이 이 호텔까지 굳이 행차한 이유는 블랙마켓 때문이었다.

블랙마켓이라고 하면. 몬스터들이 출현하지 않는 일본에 위치한 암시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전 세계를 돌면서 비정기적으로 옥션 또한 블랙마켓이라고 불렸다. 정말 상등품은 이곳에서 거래됐다.

그 조건은 두 가지.

대리인 참석불가. 경호원은 단 한 명만.

굳이 블랙마켓에 의지하지 않고서라도 돈으로 원하는 걸 뭐든지 가질 수 있는 알렉스는 보통이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보통의 루트로는 손에 넣기 힘든 물건 때문에 이번에 처음으로 블랙마켓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일본에서 소유하고 있다는 S급 몬스터 코어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졌다. 실제로는 찾는 물건은 블랙매터 라고 이름 붙인 신물질이었다.

한국에서 공수해온 이 블랙매터는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몬스터 코어와 달리 합성물질로 이용할 수 있었다. 다른 물질과 섞거나 에너지를 주입해 특정형태로 고정하는 듯 후처리가 가능했다.

그러면 일반인들이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무기나 몬스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어구를 제작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알렉스는 예거아머라는 획기적인 몬스터용 병기를 개발 중이었다.

문제는 다크매터의 입수방법.

한국에서만 두 덩어리 정도 들여왔는데, 최초에는 연구목적으로 들여왔고 다음에는 한국에서도 무슨 낌새라도 눈치챘는지 내놓지 않으려고 하는 걸 미국 정부를 이용해서 억지로 받아왔다.

그렇게 해도 예거아머를 두 개 만들 정도의 양밖에 안 됐다. 이 다크매터를 대량으로 입수하거나, 입수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다방면으로 정보수입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남은 건 이 블랙마켓에서 뒷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다. 실수 없이 해내야 해.’

알렉스 루엘이 그런 생각을 하며 호텔 앞으로 나서자 호텔입구에는 그를 환영하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좌우로 나뉘어서 허리를 숙인 채 인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총괄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로비를 지나서 시크릿룸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옆 통로에서 누가 지나가고 있는지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유언니랑 강현 오빠랑 데이트했죠? 그때 입고 간 옷이 제가 골라준 옷이었어요.”

“어머. 남자 옷 고르는 센스도 좋네. 다현이 남자친구는 좋겠다.”

“흥. 생겨야죠 말이죠. 그보다 그래서 우리 오빠랑 사귀시는 거예요?”

대화의 내용보다 알렉스의 주의를 끄는 건 이 대화에 사용되는 언어였다.

‘한국어?’

이제까지 다크매터를 입수한 곳은 한국이 유일했다. 이번 블랙마켓에도 한국인 참가자가 있다는 소문을 들을 만큼. 기대감이 조금 더 생겼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앞장서서 안내하던 잭이 멈췄다.

“루엘님 이쪽으로 들어가시죠.”

잭은 벽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손을 집어넣더니 옆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문이 생겼다. 알렉스는 잭이 주는 가면을 쓰고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안은 널찍했다. 커다란 테이블마다 두 사람씩 앉아있었는데 테이블마다 어두워서 누가 앉아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인원은 총 67명.’

눈썰미로 대충 파악한 인원수 수. 알렉스가 아는 평소 블랙마켓 참가자의 두 배 이상 되는 숫자였다. 모두 좌·우측에 위치한 수십 개의 문으로 따로 들어왔기 때문에 서로 마주치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알렉스 루엘이 안내된 자리에 앉아. 앞쪽 무대의 조명이 밝아지면서 경매가 곧 시작됨을 알렸다. 알렉스가 늦은 게 아니라 제일 중요한 고객이 제일 늦게 입장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후로는 초대장이 있어도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 밝아진 무대 위로 올라온 남자는 양손을 벌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그럼 이번 분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전면의 무대와. 테이블마다 있는 모니터, 좌측의 모니터까지 편하신 방법으로 이용해주시면 됩니다. 배팅은 테이블마다 설치되어있는 태블릿 피시를 사용하십시오.

간단한 설명과 동시에 경매가 시작됐다.

올라오는 옥션의 물품은 다양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소지하기 힘든 몬스터 코어부터 등급별로 올라 울뿐만 아니라. 사망 후에 빠른 속도로 부패하여 재활용하기 힘든 몬스터의 사체도 품목별 부위별로 출품됐다. 특히나 몬스터의 특수부위는 독특한 풍미가 있다면서 미식가들이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몬스터 코어는 부자들이 개인적으로 쓰기 위해서 많이 사들였는데 그 가격은 최고가로 거래되는 A급 몬스터 코어의 경우 최소 200억에서 500억 가까이했다. S급은 아직 출품된 적이 없었다.

그 S급 몬스터 코어가 옥션에서 나왔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건 홀로그램이었다. 매니저의 설명으로는 몬스터 코어가 지금 이송 중으로 곧 일본으로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비록 홀로그램일 뿐이었지만. 경매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초가 500억은 금세 돌파하고 순식간에 천억이 넘었다. 계속해서 가격이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알렉스 루엘은 불편한 눈으로 쳐다봤다.

루엘사에서 보관하고 있던 S급 몬스터 코어를 도둑맞았다는 보고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예거아머에 사용될 몬스터 코어여서 회수하기 위해서 퍼스트 도퍼 및 각종 요원을 추격자로서 보냈지만. 실패했다는 소리만 들었다. 추격 중에 다른 중요한 일로 복귀시킨 탓도 있지만.

어쨌든. 일본 측에서 내놓은 S급 몬스터 코어는 원래 알렉스 루엘의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돈을 아무리 많아도 자신이 도둑맞은 물건을 돈을 주고 회수하는 건 자신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일본은 한번 털어야겠군.’

알렉스 루엘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지금 중요한 건 저 S급 몬스터 코어가 마지막 물품이라는 것. 알렉스가 원하는 다크매터는 이번 블랙마켓 경매에 나타나지 않았다.

‘실망이로군.’

아직도 한창 가격이 치솟고 있는 S급을 보면서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옆에 앉아있던 보디가드도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거구에 비해서 신속하고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돌아간다.”

알렉스 루엘의 말에 구석에 있던 매니저 한 명이 다가와서 안내했다. 밖을 나가서 조금 걷던 루엘은 금세 위화감을 느꼈다.

‘이쪽은 출구가 아닌데?’

그때 뒤따라 걷던 경호원이 알렉스의 어깨를 잡았다. 평소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라는 걸 알렉스와 경호원 둘 다 인지하고 있었다.

“계약은 문제발생 시 3분만 지키면 되는 것. 맞죠?”

“물론입니다.”

알렉스의 대답에 경호원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알렉스를 막아섰다.

“뒤로 물러나시죠.”

============================ 작품 후기 ============================

원래 어제나 오늘 연참하려고 했습니다만.

어제는 급한 일이 생겨서 못했네요.ㅠㅠ

대신 표지변경 기념해서

오늘,내일(26일 27일) 2연참씩 들어갑니다.

성공할 수 있도록 응원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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