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56화 (5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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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또 다른 과금전사(1)

촬영 중인 스튜디오 안.

널찍한 스테이지 안에는 단 두 사람만이 앉아있다. 좌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은 그 두 사람의 말을 경청. 아니, 그 중 게스트 석에 앉아있는 한 남자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까 집중에서 듣고 있었다.

그 남자가 누구라는 건 방청객들이 들고 있는 팻말과 플랫카드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 코리아넘버원 도퍼킹 ] [ 인천항의 영웅 ] [ 대한민국의 자랑 마스터도퍼 유강현 ] [ 펭귄학살자 강현짱 ]

이 모든 것을 뜻하는 이름은 바로.

유강현이었다.

일주일 전의 사건. 최근에 이름이 정해진 [ 인천펭귄상륙대첩 ] 이후로 국내에서 유강현 이 세 글자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전투 후에 집에서 휴식시간을 하루도 채 갖기 전에 아파트로 몰려드는 취재진 때문에 강현은 호텔로 피신해야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있었던 77빌딩에서 몬스터 출현했을 때 기억하시나요? 그 현장에도 강현씨가 계셨었습니다. 그때 강현씨가 없었으면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못 보게 됐을 수도 있었어요.”

여자 진행자의 말에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한편 강현은 여자 진행자가 입고 있는 눈에 띄는 레드 투피스 사이에 드러난 새하얀 가슴과 허벅지 때문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이 여자 진행자는 하지우.

전 티비쇼 [ 몬스터 레이드 ] 출연자 중 한 사람으로. 77빌딩의 보안도포로 있다가 77빌딩이 영업정지 당한 후에 도퍼로 다시 활동하고 있었다.

약삭빠르게도 사건이 터진 후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만들어서 첫 번째 게스트로 강현을 초대한 것이었다. 강현으로서도 막대한 출연료와 함께 정부 측에서 앞으로 몇 가지 편의사항을 봐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별다른 불만사항은 없었다.

계속해서 지우가 질문해왔다.

“강현씨께서는 수백의 몬스터가 몰려드는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도망치시지 않으셨죠. 일부 도망친 도퍼 요원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혼자서 당당하게 맞서셨는데요.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시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서 살신성인 하신 거라고 봐야 하나요?‘

지우는 그렇게 말하며 슬며시 강현 쪽으로 몸을 기댔다. 대답을 기대하는 몸짓. 방척객에서도 강현의 대답을 듣기 위해 숨을 멈춘 듯 적막했다. 몇 번이나 들었던 질문이지만. 강현의 대답은 똑같았다.

“살신성인은 아니라도.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저는 운이 좋았던 것뿐이고요.”

진부한 소리지만. 방청석에서 다시 한 번 탄성이 터져 나왔다. 좌중의 반응에 만족한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지우는 강현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은근한 눈길로 쳐다봤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입니다. 혹시 애인 있으신가요?”

대본에 없던 질문이다. 강현은 순간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방청객에서는 아까보다 훨씬 집중해서 강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공기가 느껴졌다.

“그, 그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강현이 에둘러 대답했지만. 지우는 물러나지 않았다. 또렷한 눈빛으로 강현의 눈을 들여다봤다.

“혹시 저 하지우는 아닌가요?”

“아뇨.”

당황한 나머지 딱 잘라 말했다. 하지우는 살짝 실망한 눈빛이었으나 이내 거두고 방청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가 완전히 한 방 먹었네요. 강현씨. 유머 감각도 좋으시죠?”

“네!”

방청객들도 즐거운 듯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지우의 마무리 멘트를 들으면서 강현은 이제야 끝났다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지금까지 이상으로 인천펭귄상륙대첩의 영웅. 유강현 씨였습니다.”

방청객의 함성과 박수 속에서 강현은 스테이지 밖으로 나왔다. 계속해서 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코너로는 그때 그 급박한 상황에서 무사히 탈출하셨던 커플을 모시겠습니다. 신광철 씨와 김주현 씨 어서 오세요.”

처음 봤을 때. 육두문자를 난무하며 틱틱거렸던 지우와 연예인으로서 카메라 앞에서의 지우는 인상이 완전히 달랐다.

‘하긴, 도퍼로 활동하기 전에도 연예인이었었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손목시계로 변해있던 콩이 대뜸 말을 걸었다.

-체크했습니다. 마스터. 32 21 34입니다. 단 가슴이 모여있는 각도와 옷의 외형을 고려했을 때. 내부에 보형물이 있을 가능성이 89%입니다.

“뭐하는 거야.”

강현이 [ 콩 ]에게 얼굴을 붉히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왔다.

“아직 여유가 있어 보이네요.”

몸에 딱 맞는 단정한 슈트를 갖춰 입은 여자는 손에 태블릿 피시를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강현이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채영씨. 또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현의 질문에 채영이 줄줄이 다음 스케쥴을 읊어 대기 시작했다. 태블릿 피시 화면을 보지도 않은 채였다.

“다음 스케쥴은 대한수호협회에서 표창장 수여를 하고 싶다고 그다음에는 염의섭 의원님께서 주최하는 간담회에서 초대장이 와 있습니다. 그리고...”

“뉘에뉘에. 일단 출발이나 하죠.”

강현은 말을 끊고, 채영의 등을 떠밀면서 밖으로 나갔다.

*****

그 사건이 있는지 벌써 일주일.

방송사나 언론사에서는 앞다투어 강현과 인터뷰나 방송을 하기 위해서 난리였다. 이제는 거리만 나가도 파파라치가 달라붙어서 골치 아팠다.

강현이 혼자서 A급 몬스터를 두 마리나 해치운 건 유례없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을 뿐. 더욱 강한 최상급의 도퍼들은 존재했다.

특히 도퍼 커뮤니티를 벗어나 고급정보를 공유하는 도퍼 사이에서는 S급 몬스터를 퇴치하는 레이드 팀의 팀원들 하나하나가 강현 못지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단지, 외부에 공개가 안 되어 있을 뿐. 그 도퍼들은 대부분 강대국의 긴밀한 협조하에 위험한 지역을 탐사하고 있다는 말만 들렸다.

그렇다면 강현 가지고 왜 이렇게 난리인가? 공개적으로 미디어로 노출된 도퍼들 중에서는 그래도 퍼스트 도퍼와 더불어 가장 강해서? 단순히 강한 것 때문은 아니었다.

언론에서 강현의 소식에 비해 다루는 비중이 낮지만, 몬스터 펭귄들의 침공 때문에 인천항이 쑥대밭이 됐다. 도퍼들의 활약과 별개로 민간인의 피해도 작지 않았다. 다행히 그런 피해자들이 나서서 여론에 호소하면 분명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할 것이고, 안전관리국을 포함해 정부에서 책임질 일이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가장 좋은 해결방법을 정부에서는 알고 있었다.

바로 대중의 시선을 돌리는 것.

사망자에 대한 애도와 엉망진창으로 폐허가 된 인천항을 방송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영웅을 만들고, 그 영웅의 활약상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이 대중에게 더 환호를 받는다.

그 영웅의 강함과 비하인드 스토리. 이번 사건으로 강현이 받는 천억대의 정산금. 그런 자극적인 것들로 대중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밀어붙이는 순간. 일개 개인이 그걸 피하는 방법은 없었다.

강현이 할 수 있는 건. 잠적해버리거나 이 흐름을 안전하게 타고 잔잔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 지금까지는 후자를 선택한 강현은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한계라는 걸 강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몇 년 동안 게임 폐인처럼 생활했던 강현이 이런 스케쥴을 일주일 가량 버틴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거기다가 [ 콩 ]도 처음에 약속했던 시뮬레이션 게임의 공략을 한 번씩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생각한 가장 강현다운 선택. 도피.

‘미국에서 잠깐 쉬다 올까?’

겨우 모든 스케쥴을 마치고 호텔 방의 소파에 퍼질러 누운 채 강현은 그런 생각을 했다. 같이 여행하기로 약속도 했으니까 미국에 갈만한 명분은 충분했다. 갈려면 언제든지 갈 수 있었다. 정부 측에서 강현을 위한 전용기도 항시 준비되어있으니까.

문제는 다현이가 자신에게 화내고 있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미국에까지 방송되자마자 다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내용은 칭찬보다는 질책. 왜 이렇게 위험한 짓을 했느냐고. 나만 내버려두고 죽어버릴 생각이냐고 울부짖었다. 강현은 한마디도 대꾸할 수 없었다.

강현도 누가 봐도 무모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알고 있었고. 다현의 질책이 애정이 듬뿍 담긴 걱정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그 뒤로 가끔 연락하기는 하는데. 아직 가시 돋친 투로 전화를 받아서 계속 마음에 걸렸다.

덕분에 강현이 지금 고급호텔 방에서 룸서비스로 아무리 맛있는 걸 시켜먹어도 마음이 불편했다.

“어떡해야 기분이 풀릴까?”

옆방에서 상시대기하고 있는 채영을 불러다 물어볼까 하다가 금세 포기했다. 딱히 좋은 생각이 나올 거 같지도 않은 데다가 자기 스케쥴따라다니느라 못한 업무처리에 바빠 보이기도 했으니까.

강현이 미국행을 결정한 것도 채영이 성제와 S급 몬스터 코어의 행방을 놓치고, 대책본부가 사실상 해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채영은 상부의 지시로 이렇게 수행비서 겸 매니저로 강현의 수발을 들고 있는 처지였다.

-마스터. 심심하시면 게임이나 하시죠.

“언제는 절대 게임이 아니고 시뮬레이션이라며.”

-그러면 좀 더 의욕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계산했습니다.

“그래그래. 다음에.”

[ 콩 ]은 강현이 시간이 조금이라도 날 때마다 시뮬레이션을 클리어해 달라고 물어왔다. 하지만 요즘은 소화하는 일정만 해도 손가락 꼼짝하기 싫을 정도로 피곤했다. 거기다 막상 억지로 클리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영 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뤄두고 있었다. 어차피 언제까지 클리어한다고 기한을 정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채영이 들어왔다.

“강현님.”

“아아. 설마 또 스케쥴 있는 거예요? 이제는 안 갈 거예요. 분명 이제 스케쥴 끝났다고 했잖아요.”

“그게 아니라. 지금 티비보세요.”

채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전면에 있는 대형티비를 켰다. 무안해진 강현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거대한 침팬지가 빌딩을 사이를 걷고 있었다. 빌딩에 매달려 있었다면 고전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착각할만했지만.

그 침팬지의 크기가 커도 너무 컸다. 거기다가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의 중앙에 눈이 달랑 하나만 달려있었다.

“몬스터?”

“네. 뉴욕 맨해튼에서 발생했습니다. B급 키클롭스라고 하는군요.”

“근데 아직 안 잡고 뭐 하는 거예요?”

강현이 불길한 눈초리로 티비화면에 집중했다. 뉴욕이라고 해서 일본처럼 아예 몬스터가 출현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도시는 몬스터가 출현하기라도 하면 상시대기 중인 도퍼들이 3분도 안 돼 출동해서 5분 안에 퇴치해버린다. 그래서 뉴욕사람들은 몬스터 출현도 교통사고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다현이는 LA에 있다고 했었지?’

다현이의 안전부터 걱정한 강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폭탄을 피하러 미국에 보냈는데 몬스터한테 당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화면 안의 외눈 침팬지는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라면 살의를 보이는 몬스터의 행동과 조금 달라 보였다. 갑자기 화면이 바뀌어서 카메라가 한 사내를 비추기 시작했다.

화면 안의 사내는 미국의 카툰에 등장하는 히어로처럼 전신에 슈트를 갖춰 입고 있었다. 전신에 황금으로 도배한 듯 황금빛이 번쩍번쩍해 보였다. 각 파츠에 검은색 선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그나마 유치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화면에 비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몬스터를 퇴치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다. 사내의 등에 장착된 로켓에서 불이 올라오더니만 천천히 외눈 침팬지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사내가 외눈 침팬지의 정면에 날아가자. 외눈 침팬지는 거슬린다는 듯이 그 커다란 손으로 파리를 내쫓듯 휘저었다. 사내는 여유롭게 비행하면서 피했다. 묘기라고 할 만큼 멋진 비행이었다. 그런 다음에 왼쪽 등에서 로켓런처를 꺼냈다.

한국도퍼들이 사용하는 장난감 총 같은 것과 다른. 실전형 무기였다. 피슛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탄이 날아가서 외눈 침팬지의 눈을 정면으로 맞췄다.

외눈침팬지의 비명. 그리고 분노의 외침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은 외눈침팬지는 마구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황금색 슈트는 이미 그 범위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로켓런처를 다시 집어넣은 황금색 슈트는 이번에는 등에서 기다란 막대기를 꺼냈다. 팔꿈치 길이만 했던 막대기는 손에 쥐자 족히 2미터는 넘어 보였다.

그런 다음에 한참 팔을 휘두르느냐 진이 빠진 외눈 침팬지의 눈을 다시 한 번 깊숙이 찔러넣었다. 그 뒤로 몇 번의 공격이 이어지고 외눈 침팬지는 이내 쓰러져버렸다. 강현은 왜 저 황금 슈트 혼자서 몬스터를 퇴치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강현은 그 화려함에 감탄했다.

“이야 쩐다. 미국 도퍼들은 저렇게 히어로처럼 옷을 맞춰 입나요?

“아닙니다.”

“그래도 저 비행로켓은 탐나네요.”

“아뇨. 그게 아니라. 저 사람은 도퍼가 아닙니다.”

“네?”

강현은 이해가 안 간다는 투로 채영을 쳐다봤다. 채영은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알려줬다.

“저 사람은 도퍼가 아니라. 일반인이에요.”

============================ 작품 후기 ============================

이제 정상적으로 연재하는 패턴이 돌아온거 같습니다.

다 독자여러분께서 힘이 되어주신 덕분입니다.

항상 추천과 응원해주시는 독자여러분 감사합니다__)

즐거운 일요일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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