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6 회: 10장. 프리 서버 -- >
10장. 프리 서버(1)
“에이씨. 더러워.”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시궁창을 거니는 사내가 투덜거렸다. 몸을 제대로 펴기 힘든 파이프 안에서 반쯤 쭈그린 상태로 걷다가 몇 번이나 넘어졌다. 그럴 때마다 더러운 물이 전신에 튀어서 머리카락에 엉겨 붙었다.
사내는 그런 추레한 모양새로 도망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몸보다 소중히 다루고 있는 게 있었다. 양손으로 품에 안고 있는 그것은 몸통만 했다. 얼핏 보면 시커먼 돌. 혹은 원석으로 보였는데. 이질적인 쇠붙이가 돌을 감싸고 있었다.
그 돌은 무게가 상당했지만.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이 돌덩어리가 사내의 인생을 바꿔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이성제. 이걸로 팔자 피는 거야.”
성제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S급 몬스터 코어를 사랑스럽게 만지작거렸다. 듣기로는 이게 도퍼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백억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게 성제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성제는 정부에 쫓겨 이 지하의 서브웨이 스트리트에 잠깐 조용해질 때까지 몸을 숨길 생각이었다. 그때. 클레임이라는 꼬맹이 녀석이 이 귀중한 걸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여기까지 떡하니 가져온 것이다.
그 뒤로 정부에서 자신을 쫓아왔을 때는 깜짝 놀랐다. 거기에 끼어 있던 건 사사건건 자신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녀석. 유강현. 근데 특제강화물약과 특수복제약까지 먹었는데도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성제는 강현에게 한 대 맞고 날아가면서 마영석 외삼촌도 상대 안 될 거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성제의 행동은 빨랐다.
마영석의 부하들을 재촉해서 치료한 다음에는 이 S급 몬스터 코어를 숨겨둔 밀실로 갔다. 다들 보스들의 싸움을 구경한다고 몰려가서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단단히 봉해둔 곳이지만. 강화된 자신의 능력으로는 시간이 좀 걸렸어도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다음에 밀실에서 바로 S급 몬스터 코어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현재는 예전에 얼핏 들었던 비밀 탈출로를 더듬어 가면서 도망치는 중이었다.
S급 몬스터 코어를 넣어왔던 백팩도 들고오고 싶었지만. 혹시나 클레임이 나중에 찾을 때 눈치채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그대로 두고 나왔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간다?’
이미 정부에서는 쫓기는 몸이다. 자신이 이런저런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이 지하의 서브웨이 스트리트까지 쫓아올 정도의 흉악범죄를 저지르진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썼는지 유강현이 우겨서 여기까지 쳐들어온 게 분명했다.
‘재수 없는 새끼. 언젠가는 꼭 뒤통수 거하게 한 대 쳐주마!’
거기다가 이렇게 클레임의 물건까지 훔치고 나왔으니까. 그 그레이인가 하는 범죄조직에서도 쫓아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성제에게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일본으로 가자. 일본으로.”
성제는 몬스터 발생 후에 최고의 경제호황기를 맞고 있는 일본이 떠올랐다. 왠지 모르지만, 일본에는 몬스터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이동성이 강한 몬스터나. 가끔 바다를 통해 흘러들어온 몬스터들 뿐이었다. 일부 일본의 오타쿠들은 이런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일본을 한탄하기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반대로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는 만큼 이곳에서 몬스터 코어의 거래가 제일 활발했다. 덕분에 몬스터 코어처리 기술이 제일 높은 나라이기도 했다.
이곳이라면 정식루트로 거래가 안 되더라도 혹은 야쿠자들이 끼어 있는 음성적인 시장도 있었다. 거기다가 몬스터 코어 처리 기술도 높아서 그 몬스터 코어로 도퍼 능력을 강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렇게 능력을 강화할 수 있으면 부자나 국가를 스폰서 삼아 용병으로 자신의 능력을 파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었다.
“흐흐흐.”
그렇게 성제는 시궁창 속에서 자신의 장밋빛 인생을 꿈꿨다.
*****
“그래서 성제가 그 폭탄을 들고 튀었다고요?”
강현이 성제를 찾아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동안 채영이 클레임을 심문했다. 채영에게 제일 우선순위는 성제보다는 클레임이 가지고 온 S급 몬스터 코어였다.
심문한 결과. 클레임은 성제가 전투 전부터 눈독 들이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S급 몬스터 코어를 가지고 도망쳤을 거라고 한다. 현재 시점에서 더 두꺼운 밀실을 강제로 열 수 있는 사람이 성제 외에 있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그 정도의 강자라면 자기들 보스가 당하기 전에 같이 앞으로 나와서 싸웠을 테니까.
“그렇습니다.”
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들이 수색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는 걸 보고 더욱 표정이 굳어있었다.
“그보다 채영씨. 처음부터 폭탄에 대해서 알고 있던데. 혹시 내 핑계로 여기를 쓸어버리려고 했던 거 아닌가요?”
“그게 무슨 말이삼?”
수지가 강현의 말에 펄쩍 뛰었다. 옆에 있던 태훈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우만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표정을 지으면서 팔짱을 끼고는 채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 점이 일부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이곳에 대규모 인원을 파견했다가는 자칫 문제가 커질 수 있으니까요. 다만. 애당초 성제가 도망쳐서 위탁하려고 온 이곳 부평 서브웨이 스트리트의 보스 마영석이 외삼촌이었습니다.”
채영은 그러면서 구석에 포박되어있는 마영석을 쳐다봤다. 지금은 강현이 힐로 최소한의 치료만 한성태로 기절한 상태로 있었다.
“일단 여기에 도망쳐온 이상. 이성제를 잡으려면 마영석을 쓰러트리는 게 당연한 순서였습니다.”
“하지만. 클레임인가 하는 꼬맹이는요? 그리고 그 꼬맹이가 들고 있던 폭탄에 대해서는 미리 알고 있었지요?”
“...”
청산유수로 이야기하던 채영도 계속되는 강현의 추궁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근데 우리끼리 이렇게 쳐들어와도 되는 거셈?”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수지와 지우의 말에. 채영이 강현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말을 이었다.
“물론 이 밖에는 국내에서 동원 가능한 도퍼들이 포위하고 있습니다. 지금 클레임의 EMP때문에 외부와 통신이 안 되지만. 곧 요원들 일부가 내려와서 연락을 취할 거로 생각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통로를 통해 누군가가 달려왔다. 관리자 김지훈과 정부소속 도퍼 세 명이었다. 채영이 지훈과 현재 상황을 공유하는 듯 재빠르게 이야기를 나눈 다음. 강현들에게 다가왔다.
“혹시 밖에서 성제 찾았대요?”
강현이 물었지만. 채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별개의 루트로 탈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젠장.”
그 말에 태훈이 주먹으로 벽을 쳤다. 쿵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수지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그럼. 그 미친놈 손에 그런 위험한 폭탄이 들어간 거란 말이삼?”
“네. 그러니까 국가를 위해서라도 얼른 체포해야 합니다.”
채영의 말에 강현이 발끈했다.
“지금 장난해요?”
강현의 분노어린 목소리에 모두 놀랐는지. 다들 강현을 쳐다봤다. 강현은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런 위험분자를 체포하는 데는 동의합니다. 폭탄도 어디서 터트릴지도 모르니까. 안전하게 회수해야죠. 더구나 S급 몬스터 코어는 돈 주고도 쉽사리 못 구하는 거니 국가에서도 탐내고 있겠죠.”
“...그렇습니다.”
“좋아요. 그럼 당장 미국행 비행기 수배해주세요.”
“네?”
강현의 말에 의외였는지. 채영이 반문했다. 강현은 눈을 내리깔면서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런 강력한 폭탄이 국내에서 돌아다니는데.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데. 피할 사람은 피해야죠.”
그 말에 태훈과 수지가 찬성했다.
“오. 그거 마음에 드는데?”
“그, 그래. 그건 좋은 생각이삼.”
“이번에도 또 무리한 소리를.”
채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가 뒤늦게 온 지훈과 다른 도퍼들도 난감한 표정으로 강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강현은 전혀 꿀릴 게 없었다.
“언론에 안 퍼트리기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요.”
강현의 말에 채영이 세게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새어나올 거 같았다.
“그래서 국가를 버리고 도망치실 생각입니까?”
“아니. 제가 외국에 보내고 싶은 건. 다현이뿐입니다.”
어차피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는 상속문제 때문에 친척들과 소원해졌었다. 강현이 제일 신경 쓰는 건 하나밖에 없는 동생 다현이었다. 그리고.
“혹시 한 사람 정도 더 세계여행권 당첨되었다든가 하는 명목으로 보내줄 수 없을까요?”
“네?”
“아, 아니에요.”
채영이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묻자. 강현이 즉각 철회했다. 소유까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두세 번밖에 안 본 사이에. 이러는 건 오지랖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 둘뿐인 자신과 다현과 달리 소유에게는 더욱 소중한 사람이 잔뜩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소개해준다는 친구도 있고.
한편 수지는 강현의 말에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설마...위장해서 도망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게 전에 그 데이트 한 여자아니셈?’
강현에게 이렇게 물어볼 용기가 수지에게는 없었다. 그보다 수지도 자신이 챙길 사람이 있었다. 부모님과. 자신의 절친.
“아, 아참 나두. 부탁할 사람있삼.”
“좋아 나도...”
수지의 뒤를 이어. 태훈도 와서 채영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지가 태훈에게 차례를 넘기고 돌아보니. 지우가 자신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지우님은 연락할 사람 없삼?”
“나? 없는데?“
태훈도 이야기를 다 끝냈는지 손을 털고 나왔다. 그 사이에 클레임과 마영석은 지훈과 함께 온 도퍼들이 옮겼다.
“그럼 자 다들 철수하죠.”
채영이 그렇게 말하자. 태훈을 선두로 다들 부평 서브웨이 스트리스 지하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중간쯤 됐을까. 슬쩍 채영이 강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강현이 뒤를 돌아보니 채영이 속삭였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강현은 채영의 요청에 다른 일행을 먼저 보냈다. 수상쩍은 소리가 들려서 잠깐 살펴보고 간다는 말에. 다른 일행은 의심 없이 먼저 밖으로 향했다. 다들 이 갑갑한 지하가 지겨웠는지 딱히 따라온다는 사람은 없었다.
수지는 평소라면 따라왔을 테지만. 아까 강현이 데이트한 상대를 챙겨주는 걸 보고 넋이 나가버려서 그대로 태훈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제일 후미에 지훈이 곧이어서 수색을 위한 추가인원을 보낸다고 말하면서 사라졌다. 그렇게 일행이 다 사라지고 채영이 꺼낸 말은 이제까지 채영을 알고 지내던 강현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놀란 강현이 되묻자. 채영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반복했다.
“지금 성제가 들고 있는 S급 몬스터 코어가 우리나라에 회수되면 안 됩니다.”
평소 애국심이 깊은 채영의 말로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에 눈을 크게 떴다.
정부에서는 몬스터와 다른.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괴물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수백 년 이상을 살아온 이 괴물은. 사람처럼 생겼으나. 늙지 않고 사람의 몸에서 몸으로 옮겨가며 오랫동안 살아왔다고 한다.
원래의 그 능력만으로도 가공할 지경인데, 최근에는 태아일 때부터 도퍼의 재능이 있는 아기들을 조사해서 최고의 몸을 선택한 다음. 몬스터 코어를 체내에 흡수해서 빠른 성장과 함께 힘을 키워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지금 이런 귀중한 S급 몬스터 코어를 정부에 가져가도 그 괴물의 힘을 키워주는데 밖에 쓰이지 않을 거라고 했다.
각 나라에서는 몬스터 코어를 이용해서 각종 병기를 만드는 중으로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 국내에선 이 괴물을 최종병기로서 지원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책임자이며. 그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클레임이 EMP덕분에 도청기기가 망가져서 강현에게 말을 전할 유일한 기회였다고.
강현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다른 나라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괴물을 키우고 있다니 대체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저한테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건....”
이어지는 채영의 대답에 강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부평 서브웨이 스트리트밖으로 나간 강현은 다른 사람들이 뒤처리하고 있을 때.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멍한 눈으로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의자에 앉자.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있다며 스피커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불똥이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 게임 관련해서 보내온 메시지였다.
============================ 작품 후기 ============================
어제는 일이있어서 연재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ㅠㅠ
혹시 연재가 늦더라도 절대로 연중은 없습니다.
마지막 한분이 보시더라도 끝까지 연재해 나가겠습니다.
어제는 하루 못 올린 만큼.
오늘 시간내서 한편 더 올릴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