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4 회: 9장. 서브웨이 스트리트 -- >
9장. 서브웨이 스트리트(5)
화르르륵-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았다. 통로를 가득 메운 화염은 순식간에 중독자들을 삼켰다. 그걸 연료 삼아 맹렬하게 타오른 불길은 아직도 배가 고픈 것인지 강현에게까지 뻗어왔다.
“...”
하지만 강현의 실드에 막혔다. 그러나 이 불길을 막은 강현도. 그 주위의 사람도 모두 멍하니 불길을 바라봤다. 그 불길 속에는 허우적대는 시커먼 사람들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 그림자가 결국에는 하나둘씩 사라진 다음에 화염은 시커먼 연기를 트림하듯 뱉어냈다.
도퍼가 만들어낸 화염이기 때문인지 모든 것은 짧은 시간에 이뤄졌다.
“이제 좀. 널찍해졌군. 성제야 잘했다.”
연기는 금세 천장과 외벽의 환풍구를 통해서 빠져나가고 중독자들 뒤에서 불을 지른 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운데에는 야구모자를 눌러쓴 소년. 좌측에는 선텐한 것 같은 갈색피부의 건장한 사내. 우측에는 성제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부하들은 한참 뒤에 멀찍이 서 있었다.
-생각보다 환기가 잘 되는 모양이네.
소년이 중얼거리자. 목에 달린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왔다. 소년의 칭찬에 사내가 자랑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지하에서 오래 지내려면 그런 설비는 필수니까요. 외부로 보내는 것 외에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체 정화가 가능합니다.”
-그렇군.
반대편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강현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남자 쪽이 마영석이 맞제? 근데 정작 통은 저 꼬맹이처럼 보이노.”
“그러게 말이삼.”
태훈과 수지는 그렇게 말을 주고받았을 때. 건너편에서 성제가 소리쳤다.
“아! 시바. 유강현. 역시 너였구나. 지독한 새끼 여기까지 쫓아와? 이제 넌 죽었다.”
강현은 성제의 발광을 어이없이 쳐다봤다.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에서 만렙을 찍은 자신의 강함은 모르더라도. 최소한 도퍼 연수 후반 때만 해도 성제보다 자신이 강한 모습을 보여줬었는데 뭘 믿고 저렇게 덤비는지 알 수 없었다.
“조심하세요.”
“채영 씨...”
중독자들이 사라지자 정신을 차렸는지. 채영이 일어섰다. 안색이 파리했지만. 평소와 같이 머릿속에서 떠오른 정보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원래 입력된 데이터로는 이성제가 이 정도의 화염을 낼 수 없습니다. 뭔가 모종의 조치를 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갈색피부의 사내가 마영석. 마영석보다는 중앙의 클레임 그레이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다들 채영의 말에 꼬맹이는 쳐다봤다. 점퍼에 양손을 꽂은 채로 여유로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레이란 말에 지우가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그레이? 설마 그레이 잡으러 온가였어? 미쳤어. 정말.”
양손에 향수병과 미니 권총을 하나씩 나눠 쥐고는 한층 진지한 기세로 전투태세를 취했다. 태훈과 수지도 자신들이 아는 한도 내에서의 그레이를 떠올리고는 몸을 움츠렸다.
“그레이라고 하면.. 그 국제 범죄조직아니가.”
“이런 지하에는 무슨 일로 온거셈?”
모두 말을 꺼낸 채영을 쳐다봤지만. 채영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날카로운 눈으로 클레임을 노려봤다.
‘분명히 S급 몬스터 코어를 들고 있을 텐데 어디다가 숨겼지?’
강현들이 움츠러든 게 느껴졌는지. 상대편에서 먼저 나섰다.
-어서 처리하고 회의를 계속하지.
“뭐야. 기세 좋게 내 보금자리에 쳐들어와 놓고서는 가만히 있는 거야?”
마영석이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들고 있는 채찍을 양손으로 쫙 펼쳤다가 그러자 푸른 불길이 화르르하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그때. 성제가 앞으로 나왔다.
“외삼촌. 제가 쓸어버리겠습니다.”
*****
“뭐해 안 따라 나오고?”
침입자들 때문에 부하들이 어영부영하자 마영석은 분노했다. 평소라면 가볍게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그레이의 간부가 친히 자신의 본거지에 왕림했는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서야 망신도 이런 망신도 없는 거였다.
그래서 침입자를 격퇴하기 위해서 직접 나서야겠다고 마음먹고 밀실을 나서는데. 성제가 S급 몬스터 코어에 눈을 못 떼고 있는 거였다.
잠자코 보고 있던 클레임이 한마디 했다.
-자신의 분수에 안 맞는 것에는 손을 안 뻗는 게 좋다.
“방금 말씀 들었지. 얼른 와.”
그 말에 마영석이 성제를 끄집어냈다. 그러고는 밀실의 문을 잠갔다. 안에 S급 몬스터 코어가 있는 것이다. 평소보다 세심하게 잠그고 주위의 부하들에게 좀 더 신경 쓰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클레임은 조금 불안한 눈으로 밀실 쪽을 쳐다봤다.
-안은 괜찮은가?
“네. 엄청 두꺼운 철문이라서 어지간한 녀석들은 힘으로 열려고 해도 못 열겁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클레임을 보고 멋쩍게 웃었다.
“물론. 클레임님이라면 만의 하나의 경우에 힘으로 열 수 있겠지요.”
-그럼 좋다.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성제가 눈치를 보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외삼촌. 저도 여기 지키고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너 예가 먹으면 등급이 어느 정도가 나와?
“원딜 7급이요.”
“그 정도냐.”
마영석이 성제의 대답에 다소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난 참고로 2급이다.
그때 옆에 있던 클레임이 뽐내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재수 없는 새끼 누가 네 자랑 듣고 싶다고 했나.’
“그래도 썩 나쁘진 않네. 자 이거 먹어봐.”
성제가 속으로 클레임을 진탕 욕하고 있을 때. 잠깐 뭔가 생각하는듯했던 마영석이 자신의 주머니 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내서 뚜껑을 열었다. 거기 안에는 약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 거기에서 약을 하나 꺼낸 다음에 성제에게 내밀었다.
성제가 약을 받아보니. 자신이 평소에 먹던 예거보다 다소 크고 투박해 보였다.
“이건?”
“이번에 새로 만든 특제복제약이다.”
“복제약이요?”
복제약이라는 말에 성제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섰다. 여기까지 오면서 본 복제약을 먹고 중독된 사람들을 떠올랐다. 죽지도 못하고 약 기운에 몸이 지배되어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는 중독자들을 생각하자 절로 몸서리가 쳤다.
“크크큭. 이 녀석.”
마영석은 그런 성제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낄낄 되며 웃었다. 그러면서 한번 보라는 듯이 케이스에서 약을 하나 더 꺼내서 자신이 날름 삼켰다. 성제는 놀란 눈으로 마영석을 쳐다봤다.
“이건 기존의 복제약이랑 달라. 순도도 훨씬 높고. 아마 네 기존 능력보다 훨씬 강화해 줄 거다.”
“그래요?”
다소 경계심이 누그러진 성제가 들고 있던 특수톡제약을 쳐다봤다. 그때. 옆에서 보고 있던 클레임이 뭔가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수고했으니까. 이것도 주지.
성제가 보니 엄지손가락만 한 유리병이었다. 병안 물약의 색은 딱 보기에도 탁한 게 한약 같았다. 성제는 일단 주는 거니까 유리병을 받으면서도 미심쩍은 눈으로 클레임을 쳐다봤다. 하지만 옆에 있던 마영석이 그 물약의 정체를 눈치채고는 놀란 눈을 했다.
“앗. 그건 그레이들만 마신다는 특제 강화약 아닙니까?”
-그레이들이 높은 등급인 것도 저 강화약이 비밀이지. 강화약없는 등급이라면 나도 4등급밖에 안될 테니까.
“네 저도 익히 들었습니다. 그런 귀한 걸 제 조카에게 선뜻 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성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손에 쥔 유리병을 쳐다봤다.
‘이 물약이 2등급이나 강화한단 말이야?’
마영석이 관심을 보이자. 클레임은 마영석에게도 물약을 하나 건네줬다.
“앗. 감사합니다. 성제야 너도 얼른 감사하다고 안 해?”
마영석이 그렇게 말하면서 성제를 돌아보았을 때. 성제는 이미 마영석이 준 특수복제약과 강화액을 삼키고 있었다.
“녀석도 참...”
-크크크.
마영석과 클레임이 그런 성제의 모습을 보면서 실소했다. 그때.
“우앗!”
성제는 비명을 질렀다. 평소 예거를 먹듯이 쉽게 약을 먹었는데 뱃속에서부터 차오르는 기운이 온몸을 쥐어짜 내는 거 같았다.
바닥에 손을 대고 엎드려서 몇 차례 숨을 세차게 내쉬고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이내 가볍게 몸을 일으켜 섰다. 지포 라이터를 튀기면서 손을 내밀자 바로 불이 전신에 타올랐다. 평소 같았으면 손바닥에서 불길이 나타나는 게 고작이었을 터였다. 온몸에서 뻗어나오는 기운이 짜릿짜릿하게 느껴졌다.
“외삼촌. 이, 이거... 완전 쩌는 데요?”
*****
‘지금의 나라면 아마도. 4급 아니면 3급에 가까울지도 몰라.’
금방 자신이 일으킨 불길에 중독자들이 단숨에 타올랐다. 그걸 보면서 성제는 자신이 확실히 강해진 걸 알 수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눈엣가시 같았던 강현 녀석을 날려버릴 테다.’
성제는 자신감 있게 화염을 일으켰다. 아까처럼 모든 걸 태워버릴 정도로 광범위한 불길이 아니라. 양손을 모아서 화염을 압축한 다음. 조금씩 손을 벌려서 기다랗게 뽑아냈다. 그 모습은 2m에 가까운 불타는 막대기처럼 보였다.
조금 더 세련되게 다뤄서 검처럼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꽤나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5급 아니 4급의 탱커라도 단숨에 때려눕힐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앞에 서 있는 태훈과 수지를 향해 덤벼들었다.
‘이 정도 녀석들은 동시에 날려버려야지.’
태훈과 수지가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을 때. 옆에서 파공음이 들리고 뭔가 빠르게 지나갔다.
“너 이 자식. 어디서 함부로 남의 동생을 노려?”
순식간에 성제의 코앞까지 다가간 사람은. 강현이었다. 성제가 눈을 크게 뜨고 놀라기도 전에. 강현의 주먹이 성제의 복부에 꽂혔다.
“카 아악.”
통로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면서 그대로 날아갔다. 뒤쪽에 있는 부하들에게 부딪힌 성제 쪽으로 온갖 고통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본 마영석이 한심한 듯 혀를 찼다.
“쯔쯧. 저 녀석 까불더니. 그래도 정예로 온 것만큼 상대해줄 만한 녀석이 왔나 보네요. 클레임님 이번에는 제가 나서겠습니다.”
클레임이 마영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강현이 먼저 나서서 마영석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너 마영석.”
앞으로 걸어 나오던 마영석이 순간 멈칫한 다음에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서 강현을 쳐다봤다.
“여기를 해산하고 사람들을 풀어줘.”
강현의 말에 마영석은 실소했다.
“무슨 소리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다 자발적으로 있는 거란 말이지. 내가 리더로서 관리해줄 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한편 채영도 의외의 상황에 놀란 눈으로 강현을 쳐다봤다. 강현이 꽤나 분노한 상태라 상대와 바로 싸울 거라고 예상했던 터였다.
“아아. 위쪽에는 보도 통제하기 때문에 잘 모르지? 몬스터 레이드라는 시답잖은 방송이나 보면서 시시덕거리고 말이지.”
가만히 듣고 있던 태훈이 지우의 눈치를 보며 버럭 화를 냈다.
“뭐 이놈이?”
“시답잖은 방송이긴 해요.”
하지만. 지우가 쉽게 인정해버리자. 깨갱 하고 들어가버렸다.
“어쨌든. 위쪽에는 언제 세컨드 웨이브가 올지 모른단 말이야. 어때? 너도 능력도 좀 되고 재밌어 보이니까 우리와 함께하자. 이쪽에서 세컨드웨이브에 대비하는 거야. 그러면 내가 좋은 자리를 약속해주지. 뭐든지 마음대로 가질 수 있다고. 앞으로는 힘을 가진 자가. 세상의 정의가 될 테니까.”
“거절한다. 너처럼 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강현은 성제가 불태워버린 중독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입구 쪽에 죽도록 방치되어있는 중독자들을. 이게 다 불법으로 복제약을 유통하고 약을 먹이고 있는 이 자식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한편.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클레임은 지루했던지 주머니에 찔러넣었던 손을 뺐다. 그 손에는 베레타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마영석.
“네. 클레임님.”
-이야기가 너무 길다. 아니면 내가 해치워버릴까?
“아, 아닙니다. 금방 손보겠습니다.”
클레임의 말에 마영석이 쩔쩔매며 대답을 하고 강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양손에 진 채찍을 팽팽하게 할 때마다 불길이 치밀어 올랐다.
“아쉽군. 앞으로 더욱 능력 있는 부하가 필요한데 말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마영석이 채찍을 휘둘렀다. 챠악- 하는 소리와 함께 채찍에 불이 붙어서 허공에 불꽃을 흩뿌렸다. 위협적인 소리에 태훈과 수지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내 부하가 되지 못한다면 내 적일 뿐. 이대로 타죽어라.”
그 말과 함께. 마영석의 채찍이 강현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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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요일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