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3 회: 9장. 서브웨이 스트리트 -- >
9장. 서브웨이 스트리트(4)
탕. 탕탕. 탕.
총알이 하나 뛰쳐나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강현은 한창 교전 중이었지만. 새삼. 채영의 인선에 감탄했다. 거주구역으로 보이는 곳까지 내려온 강현들은 수많은 총탄 사이에서 버텨내고 있었다.
“총 좀 보삼. 여기 한국 맞삼?”
수지가 투덜댔다. 그런 수지에게. 적이 거든 총알이 날아왔지만. 탱커의 능력을 활성화한 수지에게 큰 데미지를 주진 못했다. 반대로 수지는 그런 공격을 버텨내면서 아까 받은 권총을 쏴대고 있었다.
‘채영씨한테 총 쏘는 번 배우고는 처음 쏘는 걸 텐데 의외로 안정감 있게 잘 쏜단 말이야. 정말 여자라는 게 아쉬울 정도야.’
또 다른 탱커인 길태훈도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은폐 엄폐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탱커의 능력을 활성화해서 총알을 몸으로 버텨내면서 싸워나가고 있었다.
레이드시에 탱커들이 몬스터를 제대로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없을 뿐이지. 인간들을 상대로는 총과 칼 정도면 충분한 공격력을 갖춘 셈이다. 그 정도면 일방적인 전력차이.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탱커를 중심으로 한 부대를 양성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강현은 채영이 상대의 허벅지나 종아리 부분을 공격하는 걸 봤다. 그 뒤로 뒤쪽에서 레이저 포인트를 위력을 조절해 한 번씩 몰려든다 싶으면 발부분을 쭈욱 그어버려서 열상을 입게 했다.
그 정도가 총알이 오가는 와중에서도 망설이고 있던 강현이 선택한 공격이었다. 자신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면 적들을 단번에 쓸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가 상대라면 괜찮겠지만. 사람을 상대로 그러면 그저 살인마밖에 안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이 정도로 무력화시켜두면 물러나겠지.’
하지만 그 뒤로 새로운 적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오히려 적들은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진격해 오는 바람에 밟혀서 비명을 지르거나 심지어는 사망자도 나오는 거 같았다.
“이거 인간들이 끝도 없이 기어나오노.”
태훈이 이제 맨몸으로 달려드는 녀석의 턱을 후려쳤다. 두 개나 챙긴 총과 총알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였다. 망설여졌지만. 아군이 다치는 건 싫었던 강현이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아아. 난 할 일이 없네.”
지우가 뒤쪽에서 하품했다. 가끔 수지와 태훈이 막아내지 못한 총알이 지우에게도 날아왔으나. 강현이 펼쳐둔 실드가 튕겨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이제까지 따라오기만 했던 지우의 존재를 깨달았다.
거기에 더해 채영은 지우의 능력을 떠올렸다.
“지우님. ‘그거’ 부탁합니다.”
“아아 해버려도 되는 거야?”
지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그 물음에 채영은 슬며시 웃었다.
“네 어차피 뒤처리도 정부 측에서 할 것도 아니니까요.”
두 사람의 대화에 무슨 소리 하냐면서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우는 즐거운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핸드백에서 조그마한 유리병을 꺼냈다. 그걸 본 채영이 강현에게 부탁했다.
“강현 씨. 실드를 조정해주시겠어요?”
“네에”
강현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 뜨끔했다. 딱히 감추고라고 한 건 아니지만.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했다. 실드와 비슷한 스킬은 탱커들이 사용하긴 하는데, 일정 공간을 설정해서 방어하는 실드를 사용하는 탱커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손꼽을 정도라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역시 눈치챘구나.’
그런 실드 라는 말에 반응한 건 태훈과 지수였다.
“실드? 요기 실드쳤었나? 난 몰랐는데?”
“나두 몰랐삼. 그러고 보니. 뒤쪽에는 총알로 다친 사람 없삼?”
그 말에 지우가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면서 소리쳤다.
“당연하지. 미인한테는 총알도 피해가니까.”
“말을 꺼낸 내가 잘못했삼.”
수지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으면서 그 분노를 자신에게 덤벼드는 사내의 복부에 블로우를 날리는 걸로 해소했다.
“도탄 되는 부분이 아무래도 이상하니까요. 실드에 부딪힌 탄환이 튕겨나는 걸 봤었거든요.”
‘보통 이런 상황에서 그런 걸 보고 있을 여유가 있나.’
강현이 어이없어할 때. 지우가 준비가 끝낸 듯이 앞으로 나섰다.
“자자 그럼 걱정 않고 간다. 다들 뒤로 빠져.”
그 말에 황급히 강현이 실드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나갔다. 지우가 앞줄에 선 지우와 태훈에게까지 간 다음. 손에든 유리병을 앞으로 내밀어서 꾹 눌렀다. 그러자 칙 하는 소리와 함께 병 입구에서 스프레이가 뿜어져 나왔다.
“향수?”
하지만 강현의 실드 때문인지 누구도 향을 맡을 순 없었다.
“이걸로 뭘한다는 거셈?”
수지가 다가오는 적들 때문에 고개도 못 돌린 채로 다그쳤을 때. 눈앞에 망치를 들고 덤벼드는 사내가 갑자기 멈췄다. 이내 눈을 감더니만 그대로 쓰러졌다. 그 사내를 필두로 여기저기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인근의 적들이 대부분 쓰러졌다.
그리고 다행히고 이 수면향기의 범위 밖에 멀리 떨어져 있던 적들 몇몇은 놀라서 도망쳐버렸다.
강현이 살펴보니 쓰러진 적들은 다들 기절하듯이 자고 있었다.
‘슬립... 마법같네.’
“역시 지우씨. 짱입니다.”
“머 이 정도로. 대형 몬스터 상대로는 통하지 않아서 거의 사용한 적 없어. 되려 함께 레이드하던 동료들이 잠들어버렸으니까. 그때는 난리가 났지.”
태훈이 감탄하자. 지우가 별거 아니라는 듯한 태도로 설명을 더 붙였다. 그리고 채영을 돌아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도 내 능력을 알고 있다니. 제법인데?”
그때 채영은 사내들이 들고 있는 총들을 챙기고 있었다. 별거 아닙니다. 하고는 멍하니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어서 무기 챙기고 움직이죠.”
*****
부평 서브웨이의 지배자 마영석을 따르던 간부들은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했다. 백 명이 족히 넘는 부하들이 당한 것도 황당한데. 던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부평 서브웨이안의 본거지까지 헤매지 않고 다가오는 움직임에 더 황당했다.
“아이씨 저것들 어떻게 보스가 있는 쪽으로 가는 거야?”
“혹시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는 거 아닐까요?‘
간부는 부하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뒤통수를 한 대 퍽하고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네가 배신했다고 해도 거기까지 바로 안내할 수 있어?”
“아니요. 지금이야. 보스방을 중심으로 방어하고 있어서 그렇겠지만. 평소라면 단번에 못 찾아가죠.”
“그런데 배신은 무슨 배신. 쓸데없는 소리 말고 애들이나 더 불러와. 아, 아니다. 잠깐만.”
간부는 부하를 재촉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든 이 침입자들을 사로잡지 않으면. 자신이 마영석에게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차라리 자살하고 싶어질 만큼 잔혹하게. 그렇기에 앞뒤 가리지 않고 가능한 모든 전력을 쓸 필요가 있었다.
“그 중독자들이나 깡그리 모아와. 그리고 요 앞의 애들을 다 철수시켜.”
“네 그래도 돼요? 거기다 중독자들을 모아오라니. 대체 어떻게 하시게요?.”
“알잖아. 약 잔뜩 먹인 다음. 먹잇감을 다 먹어치울 때까지 풀어두는 거지. 그러니까 빨리 빨리 움직여.”
그렇게 말하며 간부는 망설이는 부하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
“와 여기 와이리 복잡하노.”
태훈이 지하거리를 거닐면서 중얼거렸다. 예전에 상가들이 있었는지. 셔터를 내린 가게들이 잔뜩 있어서. 여기가 저긴지 저기가 여긴지. 헷갈렸다. 낡은 간판들도 하나같이 비슷하게 생긴 덕분에 이정표로 삼기에는 부족했다.
처음에 살짝 보이던 여자들과 아이들도 총격전이 시작되자 어디론가 사라져버려서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이곳으로 가면 되나요?”
강현이 그렇게 묻자 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가면 됩니다. 예전에 남아있는 역 설계도를 머리에 입력하고 입구를 기준으로 X축과 Y축 Z축을 잡고 이동하고 있거든요.”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하삼?”
“이 정도는 보통 아닌가요?”
“말을 건 내가 또 잘못했삼...”
수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강현은 그래도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아서 재차 물어봤다.
“하지만 여기도 많이 고쳐져서 이전 모습이 별로 안 남아있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본거지가 어디 있는 건 알 수 없을 텐데.”
“그거야 적들이 알려주지요. 결과적으로 많은 인원이 배치되어있는 쪽이 상대방이 방어하고 싶어하는 곳이니까요.”
“아하.”
강현이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조심스레 경계하며 걷던 태훈이 말을 받았다.
“근데 그 적이 아까부터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앗. 저기 봐.”
태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서부터 시커먼 덩어리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었다. 하나같이 구멍이랑 구멍에서 시커먼 기운을 뱉어내고 있었다. 시커먼 덩어리처럼 보였던 것은 그것 때문이리라.
채영은 그 사람들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중독자들.”
“머? 아까는 그냥 방치 중이라고 한 거 아니었삼?”
“네. 복제약을 먹으면 결국 정신이 붕괴되어서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둔다고 들었습니다만. 저건 일부러 약을 더 먹인 거 같네요. 그러면 다시 기운은 나지만. 의식이 없는 채로. 폭력성만 발휘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시바. 우리 막는다고 저런 거란 말야?”
“끔찍해. 약을 얼마나 먹였길래. 저래서야 거의 몬스터나 다름없잖아.”
다들 채영의 설명에 분통을 터트렸다. 중독자들은 다가오면서 육신이 거의 녹아내리고 남는 건 시커먼 사람형체의 덩어리로 밖에 안 보였다.
강현이 예전에 자신이 몇 번 봤었던. 진흙 덩어리 같은 물질 같다고 생각했을 때. 채영이 갑자기 머리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으읔.”
“왜 그러셈?”
수지가 당황해서 채영을 살펴봤다.
터덜터덜 걸어오는 중독자들은 아직 거리를 두고 있어서 공격을 당한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공포심을 느낀 듯 눈이 초점을 잡지 못하고 동공이 흔들렸다. 지금 채영의 머릿속에선 과거 군사고아원에서 처음으로 봤던 몬스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검은 거인.’
분명히 그 검은 거인과는 크기와 모양도 다르다. 채영의 이성은 그렇게 판단했지만. 도저히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에잇 다가오지 마.”
지우가 다시 향수를 꺼내서 슬립퍼퓸을 써봤지만. 이번에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태훈이 위협사격을 해도 총이 무섭다는 두려움조차 사라진 듯. 계속해서 걸어왔다. 결국, 강현이 레이저포인터로 다리를 노려 공격했지만. 무시하고 걸어오는 통에 저 중독자의 다리를 토막 내버릴뻔하고 질겁해서 공격을 거두었다.
“젠장.”
강현이 바닥을 내려쳤다. 그러자 바닥이 움푹 패였다.
“머 어쩔 수 없군.”
지우가 핸드백에서 비비탄 총을 꺼냈다. 손바닥에 쏙 들어갈 만큼 작았는데. 원래 몬스터 레이드 티비 쇼에서 비밀요원 콘셉트로 활동할 때 주로 쓰던 무기였다.
“어차피 채영 씨가 이 사람들은 이제 원래대로 못 돌아온다고 했잖아.”
“...”
강현이 대답이 없자. 지우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그럼 빨리 죽여주는 게 서로를 위해서 좋은 거 아냐? 여기에서 저 몬스터화된 중독자들을 쓰러트릴 수 있는 건 너랑 나밖에 없잖아. 너 힐러기도 하지만. 원딜이기도 하다면서.”
“...”
“됐어. 네가 하기 싫으면 내가 할 테니까. 그보다 좀 실망이네. 좀 더 멋진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지우가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때. 중독자들의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부하들이 하나같이 볼품없군.
“죄송합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 같은 목소리. 거기에 정중하게 대답하는 굵은 목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강현과 태훈이 익숙한 이름과 목소리가 들렸다.
“성제야. 이 거추장스러운 것부터 치워버려라.”
“네.”
그리고 뒤에서부터 커다란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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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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