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2 회: 9장. 서브웨이 스트리트 -- >
9장. 서브웨이 스트리트 (3)
“여가 원체 험한 곳으로 소문난 곳이라 가능하면 여자분은 안 데려가는 게 좋을 낀데...”
차량으로 이동 중에 태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운을 띄웠다. 차량 내부에는 좌석이 서로 마주 보게 되어있었는데. 태훈은 지우가 자신의 맞은편에 짧은 원피스를 입고 다리를 꼬고 앉은 모습에 어찌할 줄 몰라했다.
“임무를 수행하는데 남자와 여자를 구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채영이 그렇게 말하면서 뒤쪽에 앉아있는 요원으로부터 상자를 건네받았다. 그 말에 수지와 지우가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근데 그건 뭡니까?”
강현이 무안해진 태훈을 도와주기 위해서 화제를 돌렸다. 채영이 말없이 손에 들고 있던 박스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권총과 탄창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
“총?!”
강현은 깜짝 놀랐다. 아니 무슨 도퍼 범죄자를 잡으러 가는데 총까지 써야 해? 물론. 도퍼들끼리 싸운다면 총보다 위험하겠지만.
“안 쓰고 싶으신 분은 안 써도 됩니다. 저도 가능하면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채영은 권총 하나를 들어 탄창을 결합한 다음에 품에 넣었다.
“확실히 그만큼 위험한기라.”
“나도 하나 주셈”
태훈이 박스에 손을 뻗어 권총과 탄창 두 개를 챙겨 들었다. 수지도 내키지 않는 듯 주저하면서 권총 하나를 챙겼다. 지우와 강현은 손을 내저었다.
“나 같은 숙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무기야.”
“저도 됐습니다.”
그러자 태훈이 하나 더 챙겨서 품 안에 넣었다. 채영은 수지에게 사용법을 아느냐고 물었고. 수지가 고개를 가로젓자. 간단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총이라. 괜찮으려나.’
강현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보한테 대뜸 들려도 괜찮은 무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한참을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예거를 먹은 상태인 강현을 제외한 모두는 채영에게서 예거를 한 알씩 건네받아서 바로 먹었다.
그런 다음 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의 왕래가 없어서 을씨년스럽게 변한 번화가가 보였다. 예전에는 대형 쇼핑몰과 결합해 있던 커다란 건물에는 활기가 하나도 없었다.
“어디로 들어가죠?”
강현의 질문에 채영이 앞장섰다. 그러자 태훈이 지우의 옆에 붙어서 떠들었다.
“지우 씨는 지하철역에 한 번도 안 와보셨지예. 요가 원래 출구만 30군 데가 넘는 곳이라고 한다아입니까. 그래서 지하로도 몇 층인지도 모를 정도로 깊고...”
“네. 네에.”
지우는 귀찮다는 듯이 영혼 없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강현은 그 모습을 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저 여자가 저렇게 좋을까? 쇼 프로그램 [ 몬스터 온라인 ]을 봤을 때도 강현은 강한 도퍼들이 좋았지. 얼굴마담인 도퍼들에게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 당시 첫인상부터 속살이 아니라. 속살을 초월한 내장까지 봤으니. 더욱 그런 감정이 안 생기는지도 몰랐다.
묵묵히 따라오던 수지는 채영이 향하는 곳이 지하철역 중앙입구인 걸 보고 놀랐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거삼?”
태훈은 지우에게 자신의 박식함을 어필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지. 채영이 대답하기 전에 끼어들어 왔다.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다 아이가. 이기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안 막는다.”
“그래요?”
태훈은 처음으로 자신의 말에 지우가 관심을 보이자 더욱 신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네. 외부에 있다가는 조만간에 올 세컨드 웨이브에 사람들이 다 휩쓸려 죽는다고 생각한다 아입니까.”
“세컨드 웨이브?”
“홍수가 일어난다는 말도 있고. 빙하기가 온다는 말도 있는데요. 보통 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세컨드 웨이브는 몬스터들이 다시 창궐해서 온 세상을 뒤덮는다 카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 말에 지우가 이해 안 간다는 듯이 대꾸했다.
“하지만 이제는 몬스터들의 출현도 점차 감소추세잖아.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등급도 낮고. 몬스터 레이드도 하향추세라던데.”
“가만 그럼 최근에 등장한 A급 몬스터들은 뭐삼? 몬스터는 감소하는 추세라며.”
수지의 반발에 태훈이 슬쩍 지우의 편을 들었다.
“감소하니까 그런 것들도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거 아니가? 그 뭐냐 마지막 발악?”
태훈이 편들어 줬지만. 이미 지우는 다 귀찮아졌다는 듯이 웨이브 진 머리를 마구 긁적였다.
“아아~ 난 복합한 거 몰라. 어서 들어가서 그 성제라는 범죄자나 잡아오자고.”
그렇게 말하면서 지우가 먼저 뛰어들어갔다.
“앗. 지우 씨. 위험합니다.”
태훈이 깜짝 놀라서 지우의 뒤를 따라 입구로 내려갔다. 출입금지가 적혀있는 철조망을 지나.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 아래에는 지우가 멈춰서 있었다. 태훈은 그걸 보고 자신도 발걸음을 멈춘 뒤 앞을 살폈다. 그 뒤를 따라서 나머지 사람들이 달려왔다.
“...”
거기에는 차가운 바닥에서 신임을 흘리며 고통스럽게 뒹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눈을 휘 번뜩 뜬 사람.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엎드린 채 바닥을 긁고 있는 사람. 입을 헤벌린 채.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는 사람.
다들 어딘가 하나씩은 이상한 듯 보였다.
“이 사람들은...다 뭔가요?”
“중독자들입니다. 제대로 된 예거 대신. 싸구려 복제약을 쓴 결과입니다. 지속시간도 들쑥날쑥하고. 중독성이 있어서 저렇게 쉽게 폐인이 되어버리지요. 폐인이 된 다음에는 치료도 할 수 없어서 이렇게 방치됩니다.”
“그런...”
채영의 설명에 다들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채영은 별거 아니라는 듯 중독자들을 지나쳐갔다.
“이 아래쪽은 생활공간도 있고. 시장도 서 있습니다. 그쪽에서 정보를 모아보죠.”
그때. 채영의 앞을 가로막는 사내들이 나타났다. 열 명 이상 되어 보이는 사내들은 하나같이 총이나 칼등 무기를 들고 널찍한 통로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출입금지 구역이야.”
“저기.. 들어오는 거는 마음대로 아니었삼?”
“정부녀석들은 예외다.”
채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품 안에서 총을 꺼냈다.
“강행 돌파하죠.”
*****
“ 그럼 클레임님 저기로 들어가시죠.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러지.
이곳 부평 서브웨이의 보스인 마영석이 극진하게 모시면서 밀실로 데려가는 외국인 소년은 클레임 그레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범죄집단의 간부였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성제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 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마영석은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있던 성제를 그제야 눈치를 채고는 성제에게 다가왔다.
“그래. 성제. 네가 모셔왔구나. 수고했다.”
성제는 마영석이 그렇게 칭찬하면서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줬지만. 구겨진 표정을 펼 수 없었다. 여기까지 데려오면 저 꼬맹이를 혼쭐을 내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정작 이곳의 보스인 외삼촌이 굽실거려서야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마영석은 성제의 기분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피곤할 테니 쉬고 있으라는 말만 남기고는 클레임과 밀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문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웃는 얼굴로 클레임을 대했던 마영석은 짙은 눈썹을 치켜떴다.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부하들은 정문 쪽에서부터 정부 측 침입자들이 나타나서 교전 중이라고 알려왔다. 성제는 직감적으로 자신을 쫓아온 요원들이라고 짐작했다. 어쩌면 강현이 녀석도 같이 왔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뜨끔했지만. 쫓겨왔다고 생각하니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나중에 외삼촌의 부하들이 그 녀석들을 잡아오거나 죽여버리면 그 위에다가 침이나 뱉어줄 생각을 했다.
‘정부녀석들이 쳐들어왔다고? 또 밑에 말단들이 공명심에 쳐들어온 건가?’
최근에는 드물지만, 예전에는 이곳을 수복한다고 덤벼드는 놈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대대적으로 군사력을 투입하거나 내부의 사람들을 대부분 죽일 각오로 쓸어버려야 하는데. 정부 측에서 사회단체나 국제기구의 눈치를 보는 이상 쉽게 나설 수 없었다.
그런 움직임이 발생하면 미리 마영석이 심어둔 정보통을 통해서 사전 입수될 터였다.
거기다가 지금 단계에서는 어지간한 공격에 대해서는 방어책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자신감 속에서 결국 마영석은 이번 침입자를 우발적으로 일어난 작은 소동으로 치부했다.
“알아서들 처리해. 성제 넌 따라 들어와라.”
그렇게 말을 남기고 클레임과 함께 밀실로 들어갔다. 성제는 잠자코 따라 들어갔다. 두꺼운 철판으로 되어있는 밀실은 생각보다 널찍하고 밝았다. 테이블과 의자뿐만 아니라 냉장고등 각종 생활필수품을 다 갖추고 있어서 오피스텔 같아 보였다.
-이 자는 괜찮은가?
“네. 제 유일한 혈육인걸요. 좀 까불어대긴 하지만. 절 배신할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백팩을 벗어 테이블에 올려둔 클레임이 그렇게 묻자 마영석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는 성제를 보며 ‘안그래?’ 라고 되물었는데. 성제는 거기에 억지웃음으로 대답했다.
‘이런 꼬맹이한테 굽실거린 정도로 별 볼 일 없으면서 잘난척하긴.’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테이블 구석 편에 자리 잡고 앉은 성제는 괜히 따라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지금은 씻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술과 여자로 몸을 데우고 싶었다.
그런 생각들은 클레임과 마영석의 대화를 듣고 싹 날아가 버렸다.
“이게 S급 몬스터 코어로군요.”
클레임이 계속 메고 다니던 백팩 안에는 백팩을 가득 채울만한 크기의 검은색 보석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몬스터레이드를 하는 도퍼들이라면 늘 보는 몬스터 코어. 하지만 몬스터에서 갓 추출했을 때와 달리 몬스터 코어에게는 각종 기계장치가 붙어있었다. 거기다가 그 크기는 성제가 이제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컸다.
마영석도 생전 처음 보는 S급 몬스터 코어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탄 성을 내뱉었다. 성제도 어느새 몸을 앞으로 내밀어 S급 몬스터 코어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국내에서는 S급 몬스터는커녕 A급 몬스터도 최근에 나온 몬스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다. 주로 높은 산이나 깊은 바다등 대자연 속에서만 출현한다고 알려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은 가지도 못하는 백두산 천지에서나 발견되지 않을까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희귀한 몬스터를 잡아서 나오는 S급 몬스터 코어의 가치는 A급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높았다.
“그래서 이걸로 미국에서 무기를 만들려고 한 겁니까? 멍청하긴 세컨드 웨이브를 더욱더 가속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미국에서 만든다면 차라리 나을걸세.
그렇게 말한 클레임은 외모답지 않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루엘이 사적으로 쓴다는 거야. 스스로를 강화하는 재료로서.
옆에서 듣고 있던 성제는 의외의 정보에 귀를 바짝 세웠다.
‘몬스터 코어를 가지고 자신을 스스로 강화시켜?’
“루엘!?”
마영석은 루엘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골치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부잣집 도련님은 이번에 이 귀중한 몬스터 코어를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런답니까.”
-글쎄. 일단은 그자의 손에 안 들어가도록 훔쳐나오는 수밖에 없었네. 다행히 사용할 용도는 그레이들의 회의에서 정해졌다네.
“그렇군요. 그래서 한국에 온 이유는... 설마. 이걸 한국에서 터트릴 생각이십니까?”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 이걸로 북한으로 올라갈 생각이네.
클레임의 말에 성제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런 천문학적 가치를 가진 걸 힘들게 북한으로 들고가서 터트린다고?! 병신들 아냐?’
성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클레임과 마영석 두 사람은 다른 화제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보다 세컨드 웨이브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네 이곳 지하에 쉘터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좋아.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밀실 문을 쾅쾅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영석은 죄송하다면서 고개를 숙였고, 클레임은 괜찮다고 하면서 다시 몬스터 코어를 백팩이 집어넣었다.
“보스! 보스!”
“손님 왔는데 조용히 못 하고 대체 무슨 일이야?”
마영석이 화내자. 부하가 움찔했다. 하지만 위급한 사안이라고 생각했는지. 지체 않고 보고했다.
“아까 침입자들 말입니다.”
“아직도 그 일이야. 이번에 대체 몇 명이나 왔길래 쩔쩔매고 그래? 한 개 대대라고 내려온 거야?”
“아닙니다. 5명입니다. 그런데 전원 도퍼로 추정됩니다.”
“도퍼라고해도 우리 쪽 애들도 있잖아. 애들 약 먹이고 안 내보냈어?”
“그게... 대부분 당해버렸습니다.”
“뭐?!”
마영석의 짙은 눈썹이 꿈틀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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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응원감사합니다.
피곤해도 손을 안 놓을 수 있는건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__)